“산에 가면 중이 되고 싶고, 갯가에 가면 어부가 되고 싶다”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자칫 위험한 젊은 시절의 판단>
이번 잼버리에 참가했던 서양인 몇몇이 절에 가서 승려와 그들의 생활을 보고는 멋있어 보였던지,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더니 결국 백고(중처럼 머리를 완전히 미는 것)를 치고 중이 되겠다고 했다 한다. 어떤 승려는 자랑스럽게 말하기를 “아무리 말려도 안 된다”고 했다. 또 그제는《법주사서 삭발한 잼버리 독일 대원들 “스님 같은 삶 살래요”》란 기사 제목이 조선일보에 있었다.
젊은 날의 겉멋에 대한 동경과 승려에 대한 추앙심 그리고 잼버리에서의 들뜬 감정이 뒤섞인 나머지 저런 마음을 먹은 모양인데 한때의 일시적 판단으로 인생을 그르칠까 안타깝다. 승려 같은 구도자의 삶을 살겠다는 그 마음은 장하다. 그러나 “산에 가면 중이 되고 싶고, 갯가에 가면 어부가 되고 싶다”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백고를 친 중이 멋있어 보여서 따라 백고를 쳤겠지만 이것부터가 겉멋이지 않은가. 백고를 치지 않아도 얼마든지 구도자의 삶을 살 수 있다. 백고까지 칠 일은 무엇이며 한때의 들뜬 생각으로 종교에 귀의하는 것은 또 무엇이며 집에서 기다릴 부모를 여태까지 돌아가서 찾아뵙지 않은 것은 감히 무슨 일인가. 잼버리 대원을 전국 지자체로 흩어 보낼 때 절에는 보내지 않았어야 했다. 나중에 부모나 그의 국가가 책임을 물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종교든 종교는 위대하고 신비해서 자기가 중이 되고 싶다고 해서, 목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절대자의 특별한 부름이 있어야 신부가 되고 목사가 되고 승려가 되는 것이지 절대자의 뜻이 없다면 제아무리 매달려도 되지 못하는 게 성직자이다.
구도자의 삶도 좋고 승려 같은 삶도 좋다. 그러나 효는 백행(百行)의 본(本)임을 먼저 알아야 한다. 서양에는 효도란 말 자체가 없으니 그 개념 또한 없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이역만리에 보내놓고 얼마나 기다리겠는가. 그 부모에게 찾아가 보지도 않고 중이 된다면 책에나 나오는 일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어렵고 긴 말은 하지 않겠다. 나에겐 그런 말을 들려줄 능력 또한 없다. 그래서 책을 한 권 권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서머셋 몸의 장편소설 ‘면도날’을 권한다. 소설의 주인공 래리 대럴이 설산(雪山)에서 도를 닦다가 왜 사바세계로 되돌아왔는지, 와서는 어떻게 살든지 알아보면 거기에 백고를 친 마음보다 더 소중한 무엇이 있을 것이다.
젊은 날의 겉멋에 대하여
- 무학산(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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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2, 11:08












우리 아이들은
'효는 백행(百行)의 본(本)'임을 먼저 알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孝의 가치를 나라통치에 기본으로 하는 고뇌를 보여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꼬.
聖職은, 승려도 포함해서, 職業이 아니라 召命입니다. ‘그분’의 부르심을 받는 것이지요. 아무나 되고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이를 알기엔 아직 어린 청소년시절, 색다른 세계를 접하고 빠진 일시적 感傷에 의한 섣부른 행위로 생각되는데, 일단 제 나라로 돌아가 인생을 좀 더 살아보고, 성직이 뭔지를 이해한 후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타일러 보내는 게 어른이 해야할 일일진데...‘산에 가면 중이 되고싶고 갯가에 가면 어부가 되고싶은 게 사람의 마음’ 이라는 비유를 외국인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