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은 예술가가 주는 것, 판사는 재판만 해야

헌법도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라 했지 주관에 따라 하여 감동을 주라고 하지는 않았다. <재판을 감동주기用으로 쓰려 했다니>

어제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었다《김명수, 재판 지체 묻자 “국민에게 감동 주는 재판 하려고 했다”》이걸 읽고 두려움이 왈칵 밀려왔다. 말로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다고 했지만 실제는 좌파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지 않았겠나. 좌파가 아니라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을지라도 잘못된 생각이다. 일개 판사도 아닌 대법원장이 재판을 감동용으로 하려 했다니 말도 아니다.

재판은 이쪽과 저쪽이 다투는 일이라 감동을 주자면 어느 한쪽에게는 손실을 주어야 한다. 감동적인 ‘솔로몬의 재판’도 진짜 어머니에게는 아이를 죽이는 비참을 주려 하지 않았던가. 감동은 예술가가 주는 것이고 판사는 재판만 해야 한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레위기 19:15-

“송사하는 일을 재판할 때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겔 44:24-

성경에 “재판을 재판으로만 하라”는 말씀도 있는데 그 말씀이 있는 곳을 급히 찾지 못했기에 여기에 올리지는 않았다. 성경은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인 고아와 과부에게 특별한 애정을 기울인다. 이런 성경도 재판할 때는 그런 것을 개입시키지 말라고 가르침에랴.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 약한 사람 혹은 힘 있고 가진 자를 생각하는 것은 재판 밖에서 할 일이지 재판에서는 아니다. 그런데 감동이라니.

‘감동’은 주관적인 것이다. 김명수가 감동을 느꼈을지라도 다른 사람은 무덤덤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재판으로 감동을 주려 한 것은 재판에 자기 주관을 넣으려 했다는 말이 된다. 헌법도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라 했지 주관에 따라 하여 감동을 주라고 하지는 않았다.

세상이 평화롭자면 신부가 정치인보다 심해서는 안 되고, 판사가 감동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그러려면 판사가 아닌 소설가를 하면 된다. 국민 각자가 자기 일에 충실할 때 세상은 밝고 맑아진다. 이를 분의(分義:자기 분수에 알맞은 도리)라 한다. 김명수의 주장대로 하더라도 그는 판사로서 실패했다. 재판으로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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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白丁 2023-09-02 오후 7:50

    문재인 시다바리 司法部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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