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帝 下 白善燁은 평범한 취업자 청년 중 하나

그를 헐뜯을 자격 있는 사람 대한민국에 한명도 없다 광복회가 白善燁(백선엽•1920~2020) 장군은 護國(호국)의 공도 크지만, 日帝(일제)시대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한 親日派(친일파)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했다고 한다. 短見(단견)이고 독선적이다.
白 장군은 지금으로 치면 중•고교 격인 5년제 평양사범학교를 나와 1940년 20세의 나이에 봉천군관학교에 입학, 22세에 졸업했고, 만주군 소위에 임관했다. 일부에서는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하며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문제가 된 洪範圖(홍범도) 장군 사례에서도 잘 알려졌다시피 1930년대 이후, 만주에는 독립군 조직이 없었다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 견해이며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일본이 세운 만주국의 군에서 근무했으니 ‘親日’이라고 하는 말은 억지다. 日帝시대 태어나서 취직하여 일본 돈을 급여로 받고 생계를 유지한 사람은 전부 親日행위자라고 해야 하는가? 군인만 親日이고, 교사, 은행원, 관리, 일반 직장인, 농사꾼은 애국자인가?
白善燁은 지금으로 치면 군관학교라는 전문대를 나와 군대라는 조직에 취업한 조선 청년의 한 명이었을 뿐이다. 20살짜리가 親日하려고 전문대에 갔겠나. 80여 년 전의 일을 지금에 와서 재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틀렸다. 장년이었고, 선택의 여지가 있던 李光洙(이광수)나 崔南善(최남선)의 親日과는 다른 문제다. 그들마저 功過를 따져야 한다고 하는 판이다.
독립투사의 자손으로 중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이 아닌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망국민으로 조선 땅에서 태어나 日帝의 지배 하에서 생존한 것을 비관할 필요도 없고, 비난할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弱冠(약관)의 힘없던 식민지 청년에게 오늘 대한민국 관점에서 역사의 짐을 지우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짓이다.
더구나 그는 전문대에서 갈고닦은 戰技(전기)와 정신력으로 백척간두에 선 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영웅 아닌가. 흠이랄 것도 없지만, 있다고 해도 0.01%? 功은 99.9%인 사람이다. 그를 헐뜯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땅에 단 한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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