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어제도 '당당히'를 말했지만

이러다 보면 ‘당당하게’의 말뜻이 변천하여 ‘피의자가 타인을 속일 때 쓰는 말’로 정의(定義)가 바뀔지 모른다. 이재명이 가장 애용하고 강조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당당하게'일 것이다. 검찰에 불려갈 때마다, 틈날 때마다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말했다. 막상 검찰에 가서는 제출서로 갈음하겠다 했고 혹은 돌부처같이 입을 봉하고 있었다.

이번 9일 검찰에 출두하겠다면서도 또 저 말을 했다. “대정부 질문이 끝난 직후인 9일 출석해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검찰 출두를 이리저리 피해오던 자가 “당당히 맞설 것”이라 하니 듣는 내가 다 무안하건만 본인은 그런 것 없다.

명심보감은, 일성지화 능소만경지신(一星之火,能燒萬頃之薪) 반구비언 오손평생지덕(半句非言,誤損平生之德) 불씨 하나가 넓은 밭을 태울 수 있고, 한 마디 그릇된 말이 평생 쌓은 덕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행복. 불행. 성공. 실패. 믿음. 불신. 사랑. 미움 등 모든 것이 말에서 시작된다. 말은 무덤에 들 때까지 관리돼야 하고 관리해야 비로소 문명인이다. 말과 입을 관리하지 않으면서 자기 관리에 부지런한 자는 없다.

이재명의 단식은 검찰의 수사에 쫓기다가 달리 방법이 없자, 법 앞에 드러누운 것이고 또 하나는 동정표를 얻자는 속셈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당당함을 누구보다 힘주어 말하는 자가 당당하게 맞서지 않고 왜 단식을 하며 왜 눈물어린 동정표나 구걸하나? TV 뉴스에 한 여자가 이재명이 단식하는 데서 대표님. 대표님 하면서 흑흑 흐느껴 울던 모습이 있었다. 늙다리 남자가 젊은 여자를 울려서야 쓰나?

보통 사람은 ‘당당하게’란 말을 평생 쓰더라도 이재명이가 쓴 만큼은 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이 생각나고, “당당히 맞설 것”이란 말을 겉으로 많이 할수록 속으로는 쫄고 있다는 방증으로 다가온다. 이러든 말든 ‘당당히’를 특허 낸 것처럼 혼자서 마구잡이로 쓰는데 그래본들 실없는 사람밖에 더 되겠나.

“당당하게 맞설 것”이라고 말하여 두려움을 털어버리려는 자기 최면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같은 말을 자꾸 하면 말은 무게감을 잃고 자기는 우습게 되고 만다. 이 점을 잊을 정도로 두려울까? 그래서 “당당하게 맞설 것”이란 말을 수도 없이 말했다는 사실조차 잊었을까?

“당당하게 맞설 것”이란 말을 써먹을 만큼 써먹었으니 이젠 효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당당히 맞설 것”이란 말 대신에 “성실히 조사받겠다”를 쓰도록 권한다. 설령 ‘성실히’를 쓸 체면이 없더라도 자꾸 쓰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성실해질 것이다.

이재명이 벌써 몇 번이나 불려갔나? 불려 갔을 때마다 당당하지 못했다. 이제 당당하든 말든 관심도 없다 그가 ‘당당히’를 말하면 말할수록 듣는 이는 신물만 나고 코웃음만 나온다. 이재명의 '당당하게'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 속을 사람도 없고 재미도 없다. 다만 그의 국립대학 입학은 기대된다.

: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