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은 北에서의 생존 수단이었다…그의 이실직고 "우리는 북한에서 자신의 삶이 없었습니다"
황장엽 선생님의 관습과 비운의 인생 끝
황장엽 최측근 비서로 있던 분의 유튜브를 보다가 이 글을 씁니다.
먼저 황장엽 선생의 업적은 뭐니뭐니 해도
북한의 사상을 망명시킨 것입니다.
사상적으로 북한을 완패시키신 것이지요.
그 대가는 가정의 참혹한 불행인 것이니 정말 희생하신 겁니다.
1997년 망명하신 후 다음 해에 희생의 대가를 받아내기 위한
조국통일의 전위 조직 <탈북자동지회>를 무었습니다.
또한 조선중앙방송과 국방과학원 기자 출신 실력가들이 망라하여 월간지도 내고 그랬지요.
한편 황잡엽 선생님이 친히 강사로 철학 강의도 하셨습니다.
당연히 존경스러운 분이기에 사사 모사 참가하였습니다.
그런데 왠지 맞지 않은 데가 갈수록 많아져 가
끝까지 남아있던 <탈북자 동지회> 자유방 회원으로도 나오고 말았습니다.
성심성의로 우상처럼 받들고 싶지만 자유 세상인 여기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더군요.
그 이유를 몇 가지 적을까 합니다.
비판이라기보다는 그분의 관습이라고 보아주시면 합니다.
첫째로, 황장엽 선생의 강의 시간입니다.
강의실에 들어오시면 일제히 일어나고 그분이 앉으면 우리도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도저히 만나 볼 수 없는 경지에 있던 분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정말 안 맞는 것은 강의 방식입니다.
북한에서 주체 사상 학습하던 고루한 내용과 별다른 것 없었습니다.
우선 문장이 너무 깁니다.
북한의 사상 학습 문장들을 보면 지루하다 못해 지겹습니다.
이분이 문장들을 만드신 것 틀림없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고 해도 이렇게 하면
여기에서는 독자들의 외면으로 망하기 딱 좋은 것입니다.
이것도 참을 수 있지만 진짜 참을 수 없는 것은 질문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북한식 학습 방법 그대로 즉 주입식과 조금도 다름 없었습니다.
한편 강의 중 인간적인 대화나 자세가 없었습니다.
막 말하면 로봇 강사였고 우리는 로봇 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동시 강의를 듣는 나로서는 너무나 판이함에 놀랄 정도였습니다. 저 분을 모시고 있는 주위 분들이 충고를 드렸으리라 봅니다. 탈북자 출신 비서만 있었다면 몰라도 남한 출신 비서로 있던 동아일보 기자 출신 손광주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관습을 못 고치시는 것일 겁니다. 어디서 감히 기라성 앞에 의문을 달며 질문을 한단 말인가 식일 겁니다. 충고를 안 해드렸다면 맹목적인 충신만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너무나 개방된 남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거짓말쟁이라기보다는 일관성 부재라고 말합니다. 황장엽 선생님의 망명 초기의 글, 자서전과 차후 발표하시는 바들이 갈수록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비서로 있던 김길선 전 국방과학원 기자도 유튜브에서 언급합니다. 들은 정도가 아니라 녹음 자료가 다 있다고 하며 차후 공기관에 기증한다고 합니다. 김길선 전 비서는 황장엽 앞에서 노골적으로 문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즉 북한에서 하셨던 주제 사상과 별다른 것이 없지 않는가?!
필자가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것은 주체 사상을 만들게 된 동기입니다. 황장엽 선생님은 초기 자서전에서 분명 주체 사상을 만들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서술하셨습니다. 1967년 김일성대 총장으로 있을 때 역사 발전에 관한 논문 때문에 실각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총장으로서 학생들 기숙사의 하수구를 청소하며 언제 목이 달아날까 조마조마하던 시기였다.보다 못한 김일 내각 부수상이 찾아왔다. <사상적 과오는 사상적으로 해결하라!>
김일성의 충신 중에 충신인 김일의 이 말의 의미를 그제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김일성의 의도에 맞추는 사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눈치 없이 엉뚱한 논문을 썼다는 것입니다.
* 이 <엉뚱한 논문>은 차후 발표되는 주체 철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순수 학자풍의 논문입니다.
당시 중소 관계는 악화 일로, 그 가운데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북한이었습니다. <문화 대혁명>이 최고조로 달아오는 중국에서는 노골적으로 조선은 엉덩이를 두 의자에 걸치고 있다고 비난하던 시기입니다.
심정적으로는 중국과 친하지만 모든 기술과 무기는 소련에 의거해야 하는 북한은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습니다. 족쇄 같은 이 틈바구니에서 탈출구를 고심하는 김일성은 국내에서는 자신의 유일 지도체제를 위한 최후의 숙청을 감행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주체가 절실한 입장이었습니다.
김일성의 이 눈치를 알려준 김일의 충고를 명심하여 만들기 시작한 것이 주체사상입니다. 당연히 총장 자리는 보장되었고 보다 출세하여 노동당 사상 비서로 승승장구하였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것을 김 부자가 악용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입니다. 자신의 철학 사상은 없었으며 있었다면 막스 레닌주의였습니다. 따라서 김 부자가 자신의 철학을 악용한 것이 아니라 시초부터 그 눈치에 알맞게 만들어 드린 것입니다. 그 근거는 황장엽 자신의 자서전으로 증명됩니다.
이렇게 일관성이 없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모든 걸 희생하고 망명하여 왔는데 운이 억수로 나쁘게
친북 정권이 들어서 미국도 마음대로 못 가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야속한 정치는 황장엽 선생님의 관습과 약점을 꽉 잡고 흔듭니다.
그 결과 생사의 둘도 없는 동지인 김덕흥도 떠나갑니다.
나이는 들어가고 기는 꺾여져 갑니다.
비운의 망명객이 되신 것입니다.
이제 남은 인생 소망은 이것밖에 없으신 것 같습니다.
황장엽의 대명사인 <주체 철학>을 남기고 싶은 것으로 이해가 갑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지 못하실 정도의 비운의 망명객이 되신 것입니다.
아니면 거짓말에 자신도 동조하신 관습이기도 합니다.
이는 비서였던 전 북한 국방 과학원 김길선 기자가 황장엽의 말을 기억하여 증언합니다.
<주체 사상을 만들어내니 저 높은 경지에 올라 맑스레닌주의가 저 발 아래 보였다.>
또 김정일은 비판해도 김일성은 어렵다는 황장엽에게
김덕흥의 실날한 충고에서도 엿 볼 수 있습니다.
<형님! 모든 악의 원흉인 김일성을 비판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떻게 탈북 망명가입니까.
그러면 여기 보수층도 지지를 철회할 것입니다.>
황장엽 선생님은 스스로 이실직고하신 적도 있습니다.
현재 105세의 김형석 연세대 교수를 만났을 때 <부럽습니다.
우리는 북한에서 자신의 삶이 없었습니다.>
인간의 삶 속에 삶인 자기 생각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북한입니다.
있다면 정치범 수용소에 영원히 갇혀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철학을 김 부자가 악용했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북한은 한마디로 거짓 공화국입니다.
이 북한의 사상인 주체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시종일관하셨다면 정말 학자라는 명성을 유지하실 수 있을 건데
정말 아쉽습니다.
아무튼 탈북하신 것을 존경하며 명복을 빕니다.
비운(悲運)의 망명객 황장엽을 위한 변명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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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9, 05: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