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표현은 아버지 대신에 아들이 감옥에 갔을 때에는 약간 어울리겠으나…
어제(1.15)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었다.《남경필 “철창 속 아들이 날 변화시켜…정치할 때보다 행복하다”》남경필 전 지사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두 알 것이다. 나도 남의 아버지 된 사람으로서 부정(父情)을 전혀 모르지는 않는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하여 참척(慘慽: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이 가장 비통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자식의 징역살이를 보는 것이 세상에 가장 잔인한 일이지 싶다.
큰 슬픔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깊은 상처는 소리내지 않는다고 했거늘 여기에 객꾼이 감히 이러쿵저러쿵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남경필 전 지사의 저 말이 실린 신문은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할 수 있고 또 남경필은 도백을 오래 한 분이니 말의 효과나 영향을 익히 아는 분이다. 그래서 기사 제목을 저렇게 뽑은 것은 신문사의 철없음이지 남경필 전 지사의 의지와는 관계없다고 본다.
우리 부모는 각자가 걸음마를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에 각자의 부모 품에 안겨 일본에 살러 갔고, 거기서 자랐고, 거기서 결혼했고, 거기서 자식 낳고 살다가 해방이 되자 귀국했다. 그래선지 자식들에게 유독 사람들 앞에서의 언행을 조심시켰다. 내가 어려서 간혹 어머니와 함께 외출할 때, 길가에서 부모가 자기 자식을 안고 “어르르 까꿍” 하면서 귀여워 죽겠다는 투로 자식을 어르는 사람이 간혹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저만치 가다가 나에게 “세상에 자기만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저러면 안 된다. 부끄러운 짓이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런 밥상머리 교육 탓인지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는 부모가 보는 데서 자식을 어르기는커녕 아이가 방바닥에 기어 다니다가 내 무릎에 올라올 때 부모 보기가 부끄러워 아이를 밀어내 버리곤 했다. 그래도 평생에 효자 소리 한 번을 못 들어봤다. 이렇게 말한 나를 고타분하고 꽉 막힌 사람이라 비웃을 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남경필 전 지사의 아들이 장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남 지사가 “철창 속 아들이 날 변화시켜…”라고 말하면 어쩌자는 말인가. 아버지는 또 뭐가 되는가? 아무리 금지옥엽 키운 자식이라도 남이 듣는 데서 말을 저렇게 하면 곤란하다. 겸사(謙辭)라기보다 듣는 이를 언짢게 하는 것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며 사회를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 어른거려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지금은 효 사상이 무너지는 세상인데 지도층 인사가 말을 저렇게 하면 아버지의 위중(威重)함을 잃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에 좋지 않은 언어 질서를 가르치는 결과가 된다. 저런 표현은 아버지 대신에 아들이 감옥에 갔을 때에는 약간 어울리겠으나 그래도 대중 앞에서는 아들을 앞에 내세워서 말할 일은 아니다. 복싱 세계 참피온 홍수환의 어머니 말이 또 생각난다. 홍수환이 4전5기 경기 끝에 참피온이 되자 전화로 “엄마. 나 참피온 먹었어” 하니까 그의 어머니가 “대한민국 만세다” 했다. 좋은 일에서도 자식이 아닌 나라를 치켜세운 것이다. 하물며 궂은 일에서랴.
조선일보 유료 발행부수는 줄잡아도 120만 부가 넘는다. 120만 명의 사람이 저 구절을 읽었을 텐데 그들이 기분 좋은 느낌을 가졌을까? 우리 웃 세대는 100만 명이 넘는 대중 앞이 아니라 골목길에서도 저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라면 빈말이라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가르치지 못한 것을 국가가 가르쳐 주게 되었다. 내 아들을 변화시켜 줄 것이니 나는 미안하고 한편 행복하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분이 말씀을 저렇게 하면 우리 같은 하천배(下賤輩)와 신세대는 저렇게 말하는 것이 정상인 줄로 알게 되어 비슷한 경우에 거리낌 없이 저렇게 말하게 돼버린다. 체면을 차릴 줄 모르고 부끄러움을 잊은 세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지도층 인사의 말 한 마디가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 몰라서가 아니라 아들의 징역에 속이 타서 엉겁결에 나온 말씀으로 이해는 되지만 말을 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남 전 지사는 “정치할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진실로 행복하기에 한 말일 것이고, 자기 위로의 말이기도 할 것이고,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한 말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거나 본인이 행복하다니 그러면 됐다. 행복하다는 마음은 아들로 말미암은 것이니 아들이 징역 사는 것도 운명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여기면 또 어떻겠는가. 세상에 운명적이지 않은 일은 없다. 아들이 감옥에 가 있으므로 만수우환(萬愁憂患)을 비켰을 수 있다. 남경필 전 지사는 너무 마음 쓰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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