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정관)의 治’, 唐 太宗에겐 현명한 내조자 있었다

군주가 분위기 만들어야 諫言(간언) 쏟아져 다음은 필자가 2014년 5월29일 본란에 올렸던 글이다. 수정 재록한다.

<唐 太宗(태종) 李世民(이세민·599~649)은 漢(한) 이래 400여 년에 걸친 혼란을 수습하고 중국을 통일, 사실상 唐을 건국한 인물이다. 형과 아우를 죽이고 아버지 高祖(고조)를 몰아내는 패륜을 저질렀지만, 627년 제위에 올라 22년간 재위하는 동안,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고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여 唐을 세계적 대제국으로 만들었다. 역사가들이 ‘貞觀(정관)의 治’라는 이름을 붙여 줄 정도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君主(군주)로 꼽힌다.

그가 어느 날, 분함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퇴청했다. 文德皇后(문덕황후) 長孫(장손)씨가 이유를 물었다. “魏徵(위징·580~643)이라는 놈이 공주의 혼수가 과하느니 어쩌느니 하며 나를 비판했다. 혼내줘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황후는 일어서서 太宗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폐하, 感祝(감축)드립니다. 폐하의 면전에서 諫言을 아끼지 않는 賢臣(현신)을 두셨으니 어찌 感祝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太宗이 魏徵을 혼내줄 생각이 싹 없어져버린 것은 물론이고, 그 후로도 계속 魏徵을 중용했다. 魏徵은 죽기 전에 유언을 남겼다. “폐하, 절대 고구려를 공격하시면 안됩니다.” 太宗은 이를 어기고 魏徵이 죽은 지 2년 후인 645년,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실패했다.

諫言하기는 어렵고, 諫言을 받아들이기는 더 어렵다. 君主가 諫言을 잘 받아들이면 諫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諫言하는 신하가 많이 생기게 된다. 太宗에게는 魏徵을 비롯하여 房玄齡(방현령), 楮遂良(저수량), 王珪(왕규), 杜如晦(두여회) 등 諫言을 아끼지 않는 명신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文德皇后라는 현명한 내조자가 있었다는 것이 太宗에게 큰 축복이었다.>

지도자는 甘言(감언)과 利說(이설)에 능한 사람을 멀리 해야 한다. 이런 이와 가까이 있으면 직언하는 사람, 진실을 전하는 사람과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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