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소피아’, 조상神 ‘탄구르’, 귀족名 ‘보야’
오늘(2월26일)자 朝鮮日報(조선일보) 1면을 보면, 현대건설이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자력발전소’ 건설 공사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고 한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原電(원전) 이후 15년 만에 거둔 최대 규모의 해외 原電 受注(수주)다. 최종 계약은 4월쯤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즐로두이는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북쪽 200㎞ 떨어진 곳. 여기에 220만kw 규모의 原電 2기가 들어선다. 총 사업비는 18조7000억 원. 원자로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공급하며, 현대건설은 총사업비의 50% 안팎에 해당하는 부지 정비, 원자로 설치, 부속 건물 건설 등 시공 부문 전체를 담당한다.
불가리아는 서양에서 ‘훈(Hun)’이라 불린 匈奴(흉노)의 한 갈래로서, 우리와 역사적으로 무관치 않은 것 같다. 불가리아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불가리아 역사를 알고 우리와 親緣(친연)성을 강조하는데 이용했으면 좋겠다.
흉노족은 기원전 50년, 기원 직후, 서기 160년, 그리고 4세기 중엽 등에 카자흐스탄, 키르기스 지방을 경유, 광대한 「하서회랑」 벌판을 통해 서쪽으로 쳐들어갔다. 훈족 가운데 최초로 서양을 떨게 했던 집단이 아틸라(Attila=Goth語로 아버지라는 뜻·395~453년) 군단이다. 434~452년 아틸라가 이끌던 시대가 훈족의 전성기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 훈족은 판노니아 평원에 도착하여 그 곳 東고트(Goth·게르만족의 일부)족을 몰아낸 후, 정착하여 훈 제국을 세웠다. 게르만족은 이 때문에 오늘날, 독일, 프랑스 지방으로 이동(이를 서양사에서 ‘게르만족 대이동’이라 한다)하여 프랑코 왕국(오늘날 독일과 프랑스를 합한 나라)을 건국한다.
東로마제국은 아틸라에게 뇌물을 바쳐가며 연명을 시도했다. 훈 제국은 아틸라 사망으로 멸망했지만, 후에 마자르(Magyar)족이 도착하여 헝가리 왕국을 세웠다. 이어 柔然(유연=Aval)족이 서방에 이동해 와 캅카스 지방과 다뉴브江, 라인江 우안 일대에 6세기 초 정착하여 250여 년간 이 지역을 통치했다.
뒤이어 캅카스 지방을 거쳐 발칸반도에 들어간 일군의 훈족이 불가리아 제1제국을 건설한다. 불가리아를 건국한 사람들은 처음 헝가리의 마자르族의 영향 아래 있었다. 5~7세기 초까지 돈 江 양안과 北캅카스 지방에 흩어져 정착했다. 서양사에서는 이때부터 이들이 불가(Bulgar)族으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慎鏞厦(신용하) 전 서울大 교수는 ‘불가’가 부여(=불)의 귀족인 加(=마가 우가 저가 구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635년 족장 쿠브라트(Kubrat)는 불가 부족연합을 결성해 훈族 지배로부터 독립하면서 大불가리아(=Magna Bulgaria)를 건국한다. 그러나 건국 7년 만인 642년 칸은 아들 다섯을 남기고 갑자기 사망한다. 쿠브라트 칸의 다섯 아들은 격심한 권력투쟁 끝에 헤어졌다. 장남은 아버지가 나라를 세운 자리에 ‘쿠비 불가’국을 수립했으나 그 남부를 장악했던 카자르(Khazar)족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넷째아들은 판노니아 평원(지금의 헝가리)을 찾아가 복속했다. 다섯째 아들은 다뉴브 江을 건너 東로마제국에 복속했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 아들은 끝까지 외세에 굴하지 않고 독립국가의 길을 걸었다. 둘째 아들 코트라그(Kotrag)는 北으로 이동하여 그들이 이름붙인 볼가(Volga)江과 카마(Kama)江의 합류 지점에 ‘고추불가’(고추가는 왕이 되지 못한 王父, 王妃를 배출한 가문을 지칭)국을 건설한다. 고추불가국은 7세기부터 14세기까지 이 지역에 정착하여 번성했다. 고추불가국에는 922년 바그다드의 통상사절단이 도착하여 아랍세계와 통상이 시작됐다. 이 사절단이 ‘고추불가’國을 볼가江의 명칭을 따서 ‘볼가 불가(Volga Bulga)’로 부르면서 아랍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고추불가’族은 현재 소련 연방의 하나였던 타타르(達旦·달단) 자치공화국을 수립해 모여 사는데 그 언어의 문법구조가 한국어와 동일하고 외양도 혼혈이 덜 돼 동양인의 모습이라고 한다.
한편 셋째 아들 아스파르흐(Asparukh)가 이끈 불가족은 흑해 연안을 횡단한 후, 679년 다뉴브江을 건너 발칸반도에 도착한다. 東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4세는 680년 군대를 급파하여 불가족의 퇴거를 명령한다. 이때 東로마제국의 연락장교가 불가족의 군영에 파견돼 생활하면서 기록을 남겨 불가족의 생활양식이 서양에 알려지게 되었다.
불가족과 東로마제국군 사이의 협상이 결렬돼 681년 대결전이 펼쳐진다. 불가족 아스파르흐 칸은 결전을 앞두고 조상신 ‘Tangur(탄구르)’에게 승전을 기원하는 제천의식을 행했다고 로마군 연락장교는 기록해 놓고 있다. 불가족은 681년 대결전에서 승리하고, 그 곳에 정착하여 그 해에 ‘불가리아’ 왕국을 건국한다. 불가리아 제1제국(681~1018년)이다. 국호 ‘불가리아’는 ‘불가족의 땅(니아, 또는 리아)’이라는 뜻. 불가족은 지배층이 되어 ‘보야(Boyar=부여의 변음?)’라 불렸으며 슬라브족을 다스렸다.
불가리아 제1제국은 9세기 초에 판노니아 평원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대국이 되어 서쪽으로 프랑코 왕국과 접경하게 됐다. 東로마제국 니케포로스 1세는 이를 허용치 않고 809년 불가리아를 공격했다가 불가리아의 크룸(Krum) 칸에게 역습당해 참패했다. 크룸 칸은 811년 산맥고개에 매복했다가 로마軍을 대파했으며 니케포로스 1세를 전사시켰다.
대승한 불가리아의 크룸 칸은 지금의 발칸반도 대부분에서 로마군을 축출하고 수도를 사르디카로 옮겨 이름을 ‘소피아(소비, 또는 사비)’로 고쳤다. 부여족은 나라를 세울 때, 수도를 ‘사비(소부리=솝울=서울)’라고 부르는 관습이 있다. 예컨대 부여족의 일파인 백제의 성왕이 538년 공주에서 부여로 천도할 때, 국호를 南夫餘로, 수도를 ‘사비(→소비)’라고 한 것이 좋은 예다. 전북 익산의 옛 이름인 솝리도 솝우리→소부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마한의 수도였기 때문에 솝리라고 한 것.
산 이름은 ‘발칸’ 산(밝은 산=白山 또는 白頭山)으로 작명했다. 발칸산은 서울 북악산처럼 수도 소피아에 붙어 있는 높지 않은 산이며 크룸 칸의 제천 유적이 지금도 일부 남아 있다고 한다. 발칸 산에서 발칸 산맥, 발칸 반도의 명칭이 유래했다.
불가리아 황제 크룸 칸은 814년 東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려다 병사했다. 패전으로 매우 취약해진 東로마제국은 위기에서 벗어났다. 크룸 칸의 뒤를 이은 불가리아 칸은 東로마제국과의 평화를 추구해 긴 평화의 시대가 오고, 보리스(Boris) 칸은 864년 그리스 정교를 수용하여 기독교 국가가 됐다. 불가리아 제1제국은 11세기 들어 약화되어 이번에는 도리어 東로마제국의 공격을 받고 그 屬州(속주)로 떨어졌다. 그 사이 소수 불가족과 다수 슬라브족 사이의 혼혈로 외형은 슬라브족 모습을 많이 갖게 됐다. 불가리아는 12세기 후반, 다시 독립하여 불가리아 제2제국(1186~1330년)을 수립했으나 제2제국의 지배층은 이미 슬라브화하여 제1제국의 지배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불가리아 민족은 정월 달집놀이, 굿거리 등을 즐기며, 갓난아기 때는 엉덩이에 몽골반점이 있다. 현재 백인 세계에서 갓난아이의 엉덩이에 몽골 반점이 나오는 민족은 오직 불가리아뿐이라고 한다. 유럽의 역사학자들은 현재 原불가족이 어디에서 出自(출자)했는지 알 수 없다고 단념하고, 5세기의 ‘불가족’을 그 기원으로 삼아 역사를 쓰고 있다.
불가리아는 불(=부여)의 加(=귀족)가 세운 나라?
- 趙南俊 전 월간조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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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6, 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