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북한의 지하교인들

"지하교인도 행실은 탈북자들과 오십보 백보"…그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고 그게 생존 방식. 북한 지하교인과 북한 일반사람과 다른 점이 있을까.
(북한에 깊은 관심을 가진 실향민 지인과의 대화록)

<지하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면 당장에 통일이 돼야겠지만
그러고 나면 다수의 사람들은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도 큰 심리적 충격을 받고
북한 동포들은 동포들대로 이남 사람들은 이남 사람들대로
되려 통일 전보다 더 원수가 되서 갈라설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지하교인을 생각하면 통일 되어야 하겠는데…하셨는데
이에 찬성하면서도 북한 지하교인과 북한 사람과
별 다름 없음을 직접 체험한 실상으로 참고해 주십시요.

제가 대북풍선으로 직접 북한 동포 돕기를 하기 전부터
주요 사역이 북한 지하교인 돕기였습니다.
<북한 선교 별 거 아니다. 북한에 있는 교인을 도우면 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지하교인 찾기가 정말 힘들었지요.
그럼에도 기적적으로 연변에서 장백 가는 버스 안에서
친척 방문 왔다가 북한 가는 지하교인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라디오를 비롯해서 선물을 드렸고
그 분의 여동생은 이미 탈북하여 중국 친인척 집에 있는 분도 만났지요.
그래서 이 북한 지하교인 홍00 여인을 돕자고 물심 양면 나섰습니다.
하지만 중국에 있을 때부터 욕심이 과하여 저를 오해를 하시더니
다른 선을 통해 어쨌든 한국에서 들어오셨기에 반갑게 만났어요.
만나고 보니 그분 자신이 저에 대한 오해를 푸셨어요.
오해란 중국에서 자신과 인터뷰한 것을 이용하여
내가 한국에 와서 엄청 돈을 모금하는 줄로 아셨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오해가 풀리자 함께 북한 사역 즉 대북 풍선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분 숙소를 보장해드리고 신학 대학원인 총신에도 다니게 배려하였습니다.
그런데 총신에서 만난 돌팔이 같은 어떤 남자 목사와 함께
대북풍선 사역을 따로 하겠다고 이른바 쿠테타를 일으키십니다.
당시 북한 구원운동 전 서울시장 김상철 변호사를 설득하여 나선 것입니다.
풍선을 저와 함께 했으니 그 기술을 안다는 것으로 따로 사역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 내부 분쟁으로 무산되었습니다.
함께하기로 한 남자 목사가 월급을 높이 주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고 깨어진 것입니다.
또 대북풍선 기술을 저를 통해 안다고 해도 실제로 해보자니
정작 저 같은 개발자처럼 구체적 경험이 없어 할 수가 없었지요.
자신을 초기부터 배려하고 키워준 저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하는데
세상 사람과 다름없이 욕심 그대로였습니다.

이분은 이 걸로 하여 자기 죄가 있어서인지 다시는
저 앞에 나타나지 않고 연락해도 받지 않습니다.
근 20년 전 일인데 이젠 80이 되셔서 활동하기 어려우시리라 봅니다.
이분 자신이 말한 탈북 동기는 -
골동 장사를 하다가 북한 당국의 억울한 조사를 피해 중국으로 도피.
탈북한 아들도 있었는데 약혼한 몸으로 갑자기 잡혀 북송된 후
소식이 없는 가슴 아픈 가족사도 있는 분입니다.
이분은 3대째 지하교인이 분명하였습니다.
신앙 1대는 러시아 연해주 이주시 복음을 받았고
러시아가 공산화되자 복음을 지키기 위해 2대째는 중국으로 이주.
또 중국 만주가 공산화되자 북한으로 이주하였는데
북한도 공산화 되어 3대로 지하교인으로 있게 된 것입니다.
중국에서 조선에 넘어올 때 성경 책과 그 관련 서적을
한 달구지나 싣고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날 예감이 이상하여 다 불 태워 없앤 후에
검열단이 들이닥쳐 살아났다고 합니다.
이들은 신앙생활을 주로 가족 친지끼리 유지하였으며
지혜스럽게도 혜산 김일성 동상 밑에 가서 예배하였다고 합니다.
김일성을 숭상하여 모인 가족인 척하고 예배한 것입니다.
10일조도 잘 내고 기도도 잘하고 말씀도 잘하고 심지어 음식도 잘하는 분이심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동전의 뒷면에는 배은망덕한 행동도 하시고 또 거짓말 즉
분명한 말하고도 언제 그랬냐고 순간 뒤집기도 하시고
아무튼 이런 면은 일반 탈북자들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또 한 분의 충직한 북한 지하교인 이순옥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일제시대 서울 이화여대 출신으로서 신앙을 가진 북한 지하교인입니다.
이분의 특징은 해방 전에 성경책을 그 모든 환란 속에서도
간직하시다가 탈북하여 남한에 올 때 가지고 온 분입니다.
땅 속에 보관하다가 몇 장이 젖어 썩어진 것을 버리기가 불신성스러워
이를 잘 말렸다가 가루를 내서 자식들에게 먹일 정도로 신앙심이 깊은 분입니다.
90세 일기로 세상을 떠나셔 그 성경책은 교단의 대학 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이분이 탈북하여 연길에 있을 때 일입니다.
연변 과학기술대학 김진경 총장 사모가 이화여대 출신입니다.
이 지하교인을 만나 해방 전 진짜 이화여대 출신인지 확인하기에
교가를 부르라고 하니 즉시 거침없이 부르시더라는 것입니다.
이분은 안식일 교인 출신입니다.
김진경 총장이 연변과학기술대학을 많이 후원한 곽선희 소망교회에 각별히 모시겠다고 해도
자신 교회의 지조를 끝까지 지킬 정도로 투철한 지하교인입니다.
제가 직접 탈북시켜 모셔오진 못했지만 한국에 와서 자주 찾아뵙곤 하였습니다.
그 아드님도 탈북하였는데 저와 나이가 비슷하여 주말농장도 함께 힐링하자고 할 정도였구요.
일반 탈북자 교인과 달리 10일 조도 철저히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분을 한국에 거금을 들여 비행기로 모셔 오고 사망하실 때까지
보살핀 분이 예천에 사시는 박인경 집사님(현재 89세)이십니다.
박인경 집사님은 이순옥 지하교인뿐 아니라
이분의 북한에 계신 자녀들에게도 적지 않은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지요.
또 한국에 온 이분의 아들(이광일)과 그 부인과 아들을 탈북시켜
가정을 이루게 하였구요.
하지만 이분의 아들은 주정이 심하고 난폭하여 가정이 갈라지고
중병으로 지하교인 엄마보다 먼저 사망했습니다.
신앙은 잘 지키셨지만 아들 교육은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박인경 집사님은 말합니다.
금방 한 이야기를 금방 언제 그랬나고 거짓말도 잘 하셔
경악했던 지난 얘기를 박인경 집사님은 지금도 재미로 외우십니다.
미국도 보내달라, 뭐 해달라 자신을 종처럼 잘 부려 먹어도
다 들어주실 만큼 박인경 집사님은 천사이십니다.
그러기에 탈북자 어머니, 교단에서는 정식 북한선교사로 임명하였습니다.
이런 박 집사님은 '그 분은 독실한 북한 지하교인은 틀림 없지만
모든 행실은 탈북자들과 오십보 백보'라고 하십니다.
그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고 그게 생존 방식이었기에 그만을 탓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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