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권에서 죽어도 해결 못하여 한번도 자유권(圈)을 이기지 못한 분야가 농업. 벌판에 나간 농민들 통제는 불가능.
그녀의 유언 '17살이에요'처럼 왜 북한에서는 굶어 죽을까요.
(청년 예술인 모임에서 한 강의 연속)
탈북과정 네 개 나라 감옥을 갇혀보았는데 북한 감옥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장 가혹했습니다.
그 가혹함 중에 굶주린 고통이 제일 컸었는데
이를 견디어 내는 체질은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강했습니다.
그런 여자도 굶어 죽는 북한 식량난은 왜 일어날까요.
저는 그 식량난 원인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북한 주민의 주식인 옥수수 연구소 연구원이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북한이 남한보다 농사하기 훨씬 나쁜 조건인 줄 압니다.
아닙니다. 정 반대입니다.
농업생산의 3대 절대 조건으로 보면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유리합니다.
농업 생산 3대 조건에서 첫째가 경지 면적이 많아야 하는데
남한보다 2배나 됩니다.
경지 총 면적이 남한보다 더 많은 데다가 인구는 절반도 안되기에
1인당 경지 면적이 남한인들보다 2배 이상 되지요.
농업 생산의 두 번째 조건은 기후입니다.
혹자는 북쪽의 북한이 추워서 불리하지 않은가 하는데
그러면 북한보다 훨씬 북쪽인 만주에는 왜 농사가 잘될까요.
한반도는 주변국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습니다.
기후 역시 별 차이 없어 비슷한 조건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농업 생산의 세 번째 조건은 종자가 좋아야 합니다.
놀랍게도 종자 수준은 북한이 남한보다 앞서 있거나 같습니다.
옥수수 종자는 역사적으로 남한보다 앞서있습니다.
1970년 초부터 김일성의 지시로 남한의 종자들을 간첩들을 시켜
가져다 북한 종자와 비교 시험하였기에 드러난 과학적 자료입니다.
옥수수는 훨씬 앞서있고 벼 종자는 비슷한 수준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옥수수 종자가 남한보다 앞선 것은 주식이란 필요성으로 하여
남한의 연구 역량에 비해 수백 배 이상 집중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쌀이 넘치는 남한은 옥수수에 연구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없은 결과이구요.
이렇게 놓고 보면 북한이 남한보다 농업 생산 조건이 좋으면 좋았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남한은 '살 빼는 전쟁'을 하고
북한은 굶어 죽을 정도가 되는가 하는가가 문제지요.
저도 탈북 전에 이러한 딜레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연구원인 우리가 만든 옥수수 종자가 정보당 10톤을 낼 수 있는데
협동 농장(집단 농장)에 나가면 3톤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생산 효율이 30%도 나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 답답하여 농민들을 도와주려 현장에 나갔습니다.
확실히 현장에 나가보아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농민들은 한 마디로 내 것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과학자는 실험 데이터로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 되는 개인농과 집단농과 비교시험을 해보았는데
그 결과가 500% 증산입니다.
집단농장에서 1 내지 1.5톤 나던 옥수수 밭이 개인농을 하니 7톤 난 것입니다.
10년 이상 연구한 새 품종이 기존 품종보다 1 내지 3%만
증산되어도 농업 분야에서는 혁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500% 증산이니 저는 놀라 까무라칠 뻔?했습니다.
내 것이라는 저력이 이렇게 대단한 걸 숫자로 확인한 것입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진짜임을 실감하였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발견을 한 자료를 수령님께 올렸습니다.
쌀은 공산주의!라며 인민에게 이 밥에 고깃 국을 주시려고 한평생 고생하시는
어버이 수령님이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이색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이색 사상 분자이면 처형, 하지만 하도 순수한 청년 과학자로 인정되어
처벌은 면했습니다.
그리고 다짐받기를 과학 연구만 하라! 개인농 건의는 정치이다.
아니 정치가 뭡니까. 한 마디로 배부르게 하는 것이 정치가 아닌가요.
아무튼 그때 처음으로 수령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래도 탈북할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
아무리 높은 식자래도 라디오, 인터넷 막아 놓은 유일 폐쇄 속에서
도망칠 생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암흑 속에 빛을 보낸 것이 남조선 삐라였습니다.
결국 탈북 결심은 삐라 보고 최종 결심하였지만
여기서는 식량난 문제를 논하는 마당이기에 그외 얘기는 약합니다.
공산권이 자유권을 그런대로 한때 앞선 분야가 있었습니다.
인공위성을 먼저 올리고 원자 쇄빙선을 먼저 띄운 것이 그 실례입니다.
하지만 모든 공산권에서 죽어도 해결 못하여
한번도 자유권을 이기지 못한 절대 분야가 있습니다.
그것이 농업 분야입니다.
농업 분야가 아닌 공업 분야는 상대적으로 집약 장소이기에
통제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벌판에 나간 농민들을 일일이 다 통제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농민 개개인의 엉덩이를 다 쫓아다니며 감시할 수는 없거든요.
농민 개개인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마음속의 자각성밖에 없습니다.
그 자각성은 내 것이라는 이해관계가 있어야 형성되지요.
즉 내 것이라는 인간의 이기성을 인정해야 하는데
공산권은 이것을 부정하고 만든 체제이니 해결될 수가 없는 거지요.
지금 중국 베트남 공산당은 이를 인정한 후에야 식량문제가 해결되었지요.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농은 물론 개방까지 해야 고질적인 식량난이 해결됩니다.
하지만 3대세습 수령이 존재하는 한 죽어도 개방을 못하지요.
개방하면 일제타승 8·15 해방자, 6·25 미제타승 수호자가 수령이라는 신격화가
새빨간 거짓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북핵을 비롯한 북한의 식량난 해결은 3대 세습을
제거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집단농장서 1톤 나던 옥수수밭이 개인농을 하니 7톤 생산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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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3, 08: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