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육로(陸路) 입국 첫 한국인이 된 사연

여행 중 만난 사람들194 – 꿈과 야먕의 방글라데시 젊은이들<193회에서 계속>
(English Version is Bellow)

태국 어딜 가나 그렇지만 특히 이곳 ‘파타야’에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세계인들이 많아서 좋다. 대부분 장기 체류자들인 서구인들이지만, 예외도 더러 있다. 아니 갈수록 그 예외가 많아서 좋다. 오늘 만난 방글라데시인도 그중 하나. 최근년(2020)부터 방글라데시는 중공(中共)의 경제 몰락 덕에 경제 성장률이 계속 상승세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빈곤국으로 분류된다. 2022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2687달러이며, 大韓民國은 3만,236달러이다. 한국과 약 12배 차이다. 그럼 내가 이곳을 방문한 1996년은 어땠을까? 방글라는 471달러였고, 한국은 1만3402달러였다. 약 28배였다(월드뱅크). (이 자료는 대화 중 내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것임.)

그는 경제에 매우 민감했다. 자국의 정치 지도자들을 인도(印度)와 비교하면서 대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한 애국심이 느껴졌다. 인도에서 대학을 나온 듯했다. 그는 인도에서의 삼성, 현대, LG, SK 등 한국 기업들이 인도 발전에 크게 기여했듯이 지금 방글라데시에도 그렇다며 한국이 고맙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꼭 한국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열린 마음과 함께 깨어있는 젊은이였다. 사실과 현실을 이성적으로 보고 판단한다. 내가 본 1996년의 방글라데시를 얘기해도 괜찮다 싶었다. 인도에서도 흔히 보는 장면이었지만, 이곳 ‘쿨나’는 더 심했다. 동네 가운데 마구 버린 온갖 쓰레기 더미에서 개, 소, 염소, 아낙네들이 쓰레기를 뒤지는 모습이었다. 이는 내가 어릴 때 본 1950년대의 서울(신촌)을 연상케 했다. 이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잠시 후 어디선가 30대 남자가 나타나 위협했다. 큰 봉변을 당할 뻔한 얘기도 해줬다.

그는 내 얘기를 신중히 들으며 당시(1996)에 그는 태어나지도 않았다며, 마치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옛 이야기를 듣고 놀라거나 신기해하는 표정을 보였다. 난 그에게 당시 내가 찍었던 사진을 스마트폰에서 꺼내 보여주며 내가 ‘쿨나’에서 일주일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들려주었다.

당시 나는 인도 여행에 빠져있었다. 방글라데시를 염두에 둔 적은 있었지만 선듯 나서지 못했다. 비행기로 가면 간단하지만, 내 취향이 아니었다. 육로로 가야 볼 것도 많고 추억거리도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육로의 열악한 교통편이었다. 특히 ‘콜카타’에서 방글라데시 국경까지의 구간이 심했다. 결단을 내렸다. 입석 기차를 탔다. 불과 90km도 안 되지만 5시간이나 걸렸다. 열악한 도로 환경, 느려빠진 폐차 직전의 기차, 지독한 더위에 온갖 냄새가 뒤범벅된 찜통 차량. 서 있기조차 힘든 그야말로 콩나물시루 같은 공간이었지만 기상천외(奇想天外)의 광경도 펼쳐진 곳이다. 두 명의 젊은이 중 한 명은 웃통은 벗은 채로 그 좁은 차량 선반 위에 끼어 누운 채 손에 들고 있는 칫솔을 소개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사람 틈을 비집고 다니며 팔았다(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1950~60년대 한국도 그랬다). 신비의 나라, 철학의 나라, 예술의 나라, 실존(實存)의 현장 인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진기(珍奇)한 장면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인도 출국 도장을 받고 방글라데시 입국 심사관 앞에 섰다. 내 여권을 살펴보더니 여권을 도로 내주며 콜카타의 방글라데시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아 오란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 발생. 나는 그에게 한국과 방글라데시는 비자 면제 협정 국이라 무비자 입국이 맞다고 했다. 그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비자를 받아 오란다. 나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그를 설득했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나라에 비자를 요구하는 이유가 뭐냐. 근거가 있다면 보여달라고 했다. 그는 다시 내 여권을 달라더니 자기 옆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오더니 나에게 그 사무실로 가란다. 들어갔더니 중년의 관료가 책상에 앉아서 내 여권을 보며 말했다. “한국과 비자협정을 맺은 건 맞다. 그러나 무비자의 경우는 공항 입국에만 해당한다. 그러므로 육로 입국을 하려면 비자비를 내야 한다.”라며 캐비닛에서 장부를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펼쳐보니 명단과 국적 그리고 비자 수수료 액수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KOREA는 없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그럴 듯했다. 즉, 한국인들은 쉽고 간단한 공항 입국을 하지 불편한 육로입국은 안 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왜냐면 한국은 이미 90년대 중반에 더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는 소문이 세계에 퍼져있었고 다수는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내가 제안했다. “그렇다면 내가 육로로 입국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기록을 남기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그는 YES도 아니고 NO도 아닌 상태였다. 난 그에게 추가 설명을 했다. “내가 오늘 방글라데시에 온 것은 그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나는 3년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여행하던 중 당신의 나라 방글라데시의 용맹스러운 두 명의 엘리트 유엔군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3일을 함께 숙식하며 지냈습니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결과 나는 그들의 고향이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 곳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약속을 했지요. 언젠가 그들의 고향을 꼭 방문할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와 있습니다. 이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내게 적어준 그들의 고향 주소입니다.” 그는 놀랍게도 내가 보여준 당시 방글라 유엔군이 내게 적어 준 주소를 확인한 뒤 두말없이 내 여권에 7일짜리 비자 도장을 꽝 찍었다. 조건이 있었다. 정확히 7일 후 나는 이곳에 와서 자기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난 약속했고 또 지켰다.

이렇게 해서 나는, 그의 말대로라면, 방글라데시를 육로로 입국한 최초의 한국인으로서 외국인의 명단 장부에 오른 셈이다. 귀국 후 나는 이 점을 배낭여행자들에게 알려주며 방글라데시를 육로로 입국해 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 장부에는 모두가 북미와 유럽 그리고 일본 국적뿐이었다. 이젠 Korea란 국적도 있을 것이다.)

출입국 관리소를 나온 뒤, 일단 중간 도시인 ‘쿨나’에 도착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들이 준 주소의 집을 찾아가기엔 거리상 너무 멀었다. 불안정한 교통시스템을 고려할 때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 대신 난 현지의 또 다른 두 젊은이를 만났다. 그들은 내가 그곳에 있는 7일 동안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선 내가 선택한 숙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서 숙박부를 쓰는데 영어만으론 안되고 반드시 현지어로 기록하라는 것(지금까지 유일한 경험). 결국, 이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 해결함.

일주일간 이곳에 있는 동안 나는 자유롭게 강가 나루터, 동네 극장, 인력거 타고 시내 돌기, 재래시장 구경 등을 했다. 하루는 두 젊은이가 내 숙소에 왔다. 종합시장에서 삼성의 컴퓨터 모니터 등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친구가 있다며 그 가게를 소개했다(당시에도 이미 삼성제품은 이런 곳까지 보급돼 있었다). 그다음 날 또 그들은 내 숙소에 왔다. 그들은 나에게 어제 본 전자제품 가게 친구가 나를 그의 집에 초대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의외였지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긴장 반, 기대 반이었다. 말로만 듣고 영상으로만 본 이슬람인의 가정집을 직접 볼 기회였다. 이층집이었다. 집안은 매우 정결(淨潔)했다. 그의 어머니가 과일을 들고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히잡이 아닌 니캅을 썼기 때문에 난 그녀의 두 눈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과일을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나가버렸다. 이들이 나에게 묻는 건 대부분 삼성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쿨나’를 떠나는 날, 그들은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 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나에게 삼성이 최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 세계여행 중 나에게 항상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일등 공신은 바로 삼성이었다. 이는 방글라데시의 어느 조그만 전자 상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28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이 친구처럼 재미있게 그리고 귀담아듣는 세계인이 있다는 점에서 나의 ‘세계인과 대화하는 배낭여행’ 에피소드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참고1. 방글라데시 국경에서 ‘쿨나’까지 가는 버스를 타려면 약 1~2km쯤 걸어야 했다. 그 길 양옆에는 150년이 됐다는 거대한 가로수가 긴 터널 숲을 이루고 있었다. 둘레가 보통 7~8m. 장관이었다. 더 놀라운 광경은 거대한 가로수에 빈틈없이 더덕더덕 붙여놓은 이상한 물체들이었다. 쇠똥이었다.)

(참고2. 만약 방글라 입국 과정에서 그 관료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면, 나는 그에게 그가 원하는 만큼의 비자비를 주었거나 아니면 콜카타까지 되돌아가서 비자를 받아 와야만 했다. 어느 쪽이든 내 성격상 원칙론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지다 보니 이런 경험 역시 한둘이 아니다.)

*People met on my backpacking 194 – Funny experience in Kuhlna, Bangladesh

Everywhere I travel in Thailand, it's especially lovely to have so many international friends in Pattaya to spend time with. The Bangladeshis I met today is among them. Bangladesh's economic development has continued to accelerate since 2020 as a result of the CCP's collapse. However, it’s still considered a poor country. As of 2022, its per capita income is $2,687, whereas S. Korea's is $32,236. It’s around a 12-fold difference from S. Korea. So, what was it like in 1996, when I visited it? Bangladesh was $471, while S. Korea was $13,402. It was about 28 times (World Bank).

He was quite attentive to the economics. He expressed his gratitude to Korea, adding, "As Korean companies such as Samsung, Hyundai, LG, and SK greatly contributed to India's development, so do Bangladesh now." I began conversing with him about Bangladesh, which I visited in 1996. Kulna was a large city in Bangladesh. Nonetheless, cows, dogs, goats, and women were digging among the waste in the center of the roadway. It brought back memories of my childhood in Seoul (Shinchon) in the 1950s." I photographed this sight. After a time, a man in his 30s approached and threatened my activities.

The young guy listened intently and informed me that he was not born in 1996. He was astonished or amazed by old anecdotes from his parents when he was younger. I showed him the photo I took in 1996 and told him about my week-long trip to Bangladesh.

At the time, I continued to backpack exclusively to India. Entry Bangladish was an issue. It was straightforward via aircraft, but it was not my kind of style. I knew there were plenty of things to see and remember on land. The issue was poor transportation. I boarded a standing train. It was less than 90 kilometers from the border, yet it took five hours. Poor road conditions, a train on the edge of scrapping a car, and a steamer with a variety of odors in the sweltering heat. It wasn't this severe, but it was comparable in Korea throughout the 1950s and 1960s.

After a while, I stood in front of the Bangladesh immigration department, having received the India exit stamp. He glanced at my passport, returned it to me, and told me to go to the Bangladesh Embassy in Kolkata to obtain a visa. I informed him that Korea and Bangladesh had agreed to visa exemptions. He stated, "It is correct that we have a visa agreement with Korea. However, visa-free entrance is only available through airports." As a result, he brought out the ledger and presented it to me, explaining that anybody might enter the nation by land. However, there was no Korea there. The Koreans wanted the airway. It meant Koreans had already become prosperous.

I kept talking to him, "Then why don't you record me as the first Korean to enter the country by land?" He was undecided. I provided him an extra explanation. "I am here in Bangladesh today because I met two heroic elite U.N soldiers from your nation, Bangladesh, three years ago while traveling in Budapest, Hungary. We spent three days together, sharing a room and board. Let me show you their home address." Surprisingly, he reviewed the address that the UN soldiers in Bangladesh had given me at the time and stamped a seven-day visa on my passport without difficulty.

In this way, I was listed as the first Korean to enter Bangladesh by land. After returning home, I informed Korean backpackers and recommended that they try Bangladesh by land. (*Actually, it was only North America, Europe and Japan. Somehow I think it hasn't changed.)

After leaving the immigration office, I arrived at Kulna. It was too far to find the house at the address they provided. The unsteady transit system was a challenge. Instead, I met two other young guys there. They were quite helpful during my seven-day stay there. They even helped me write down the hotel's ledger in their native tongue. No allowed to use English then.

During my week there, enjoyed visiting a riverside, a local theater, rode a rickshaw, and explored the city on my own. One day, two young guys arrived at my hotel. They connected me to their buddy who sold Samsung computer monitors. They arrived at the hotel the next day. They invited me to a Muslim friend's home. It was an entirely unexpected present for me. It was a two-story house, but it was really clean. His mother entered the hospitality room with fruit. Because she wore a niqab, I could only see her eyes. She placed the fruit on the table and went without saying anything.

They waved their hands at the bus terminal the day I departed 'Kulna'. It was especially remarkable because they applauded me till the last minute, claiming that Samsung was the greatest. Throughout my travels in the world, Samsung was always there to make me feel proud to be Korean. This was the same for any little electronic retail mall in Bangladesh.

This story was 28 years old, yet this guy appreciated it and listened to it as if he had never heard it before. So my World Backpacker series will most likely continue.

(Note 1. I had to travel approximately 1-2 kilometers to catch the bus to Kulna from the Bangladesh border. On either side of the route, massive 150-year-old street trees formed a lengthy tunnel forest. Trees were typically 7-8 meters thick. It was really beautiful. What was more startling were odd objects that were carefully hidden up on large street trees. (It was cow poo.)

(Note 2. If I was unable to persuade the official throughout the procedure of entering Bangladesh, I either gave him as much visa money as he requested or returned to Kolkata to obtain the visa. In any case, I would not have given up on my principles. I always dispute what is right and wrong. It means that I have had a lot of unique experiences.)

Thanks for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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