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농하면 7톤, 집단농하면 1톤으로 급락하는 이유는 왜 그럴까요.(청년 예술인들 앞에서 한 강의 연속)
7톤과 1톤 차이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 큰 차이였습니다.
전쟁시보다도 더 무서운 파괴라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왜 이런 무서운 파괴가 일어나는지 조사 구를 정하고 관찰해 보았습니다.
과학자는 데이터로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시험하고 조사했던 곳은 량강도 김정숙군 보파리입니다.
압록강변으로서 2004년에 중국 쪽에 가서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이곳은 해발이 600m 되는 곳으로서 벼농사도 되지만
옥수수를 주로 심는 곳입니다.
위도와 해발이 높은 곳이기에 올 강냉이 품종인 <올 1호>를 심습니다.
<올 1호>는 최우수 육종 기술로 만든 단순 계통간 1대 잡종입니다.
아빠 계통인 1241, 엄마 계통 213을 교잡하여
1대 잡종 강세가 극대화된 세계적 수준의 좋은 품종입니다.
올 강냉이 종자 중에서 최고로서 1 정보당 7톤은 넉넉히 납니다.
평당 27 포기 심습니다.
즉 5m70cm 이랑 길이에 27개 옥수수를 심는다는 뜻입니다.
결과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
27대 심은 옥수수는 가을 수확시 11대 남아있었습니다.
나머지 16대가 사라진 것입니다.
작황에 관계없이 3분에 2 가까이 이미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 남아 있는 11대는 잡풀 속에 있습니다.
북한에서 하는 말 그대로 범이 새끼 치는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증언했지요.
현장 시찰시 보면 길 옆만 번듯하지 좀 들어가면 잡풀 천지라고요.
그래도 1톤 내지 1.5 톤 나는 것은 기적일 정도로 종자는 좋습니다.
왜 27대가 11대로 남는지 다음 해 심층 관찰해보았습니다.
역시 현장에서 연구 사업해야 진실의 깊이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전세계에서 옥수수 옮겨 심는 것을 가장 정확히 하는 나라는 북한입니다.
영양 단지 재배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남한에서 거름 달린 채소 모종을 심는 것처럼 이해하면 됩니다.
사료용 옥수수를 이렇게 정성 담아 심는 것은 북한밖에 없습니다.
*북한에서 사료용 옥수수는 100% 식용입니다.
이렇게 100% 정확히 옴겨 심은 옥수수인데 왜 가을에는 27대 중 11대만 남아 있는가구요.
그것은 그 후 작업 공정에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옥수수 모를 옴겨 심은 다음 공정이 김매기입니다.
김매기는 두 가지 공정으로 진행됩니다.
그 하나는 호미로 하는 손 김매기이고
다른 하나는 소 보습으로 골 타고 가는 <후치질>입니다.
옥수수대가 사라지는 원인은 인간의 거친 작업 때문입니다.
북한 농번기에 농사는 농민보다는 주로
총동원된 학생, 군인, 노동자, 사무원이 합니다.
이를 <농촌 지원 전투>로서 봄철 60일, 가을철 30일 합니다.
이들은 가장 힘든 농번기 때 작업하지만 대가는 무상입니다.
거기다가 농산 작업에 익숙치 않은 아마추어들입니다.
일할수록 힘든 고통만 남는 이들 손길의 호미질은
옥수수대를 잡풀과 같이 쳐버리기 일쑤입니다(단두대).
옥수수의 수난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뒤따라 작업인 소 보습으로 인한 <후치질> 때 풀과 함께 묻어버리기 일쑤입니다(생매장).
이들 개개인 엉덩이를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가 없습니다.
감시하자면 그만한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정말 불가능하지요.
이러한 전쟁보다 더 무서운 <학살>행위에서 용케 살아 남은 옥수수들은
수난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병과 해충의 공격에 의한 소멸입니다.
이런 <살인> 과정에서 <영웅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11대입니다.
그 11대도 범이 새끼 칠 풀 속의 영양 부족을 끝까지 견디어 내야
전면 전쟁보다 더 무서운 최종 수난을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7톤 날 수 있는 옥수수가 1톤으로까지 급락하는
믿어지지 않는 미스터리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조사 관찰은 북한 내에서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하였습니다.
바로 나의 시험포 맞은켠 압록강 건너 중국 장백현 14 도구에
몰래 건너가 관찰하여 보았습니다.
강 하나 사이 둔 똑같은 환경임에도 중국은
풀 하나 없을 정도 밭에 옥수수가 팔뚝 같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중국 종자가 얼마나 좋은지도 훔쳐다 우리 것과 비교하였는데
북한 것보다 우수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중국과의 차이라면 개혁 개방 정책 하의 개인농이었습니다.
북한과 똑같이 집단농 할 때 중국은 더 못 살았다고 합니다.
문화 대혁명 때 몰래 압록강 변 중국에 넘어가 본 마을 사람이 증언에 의하면
중국 농민들이 점심밥을 보이지 않으려고 감추기에 억지로 보니
콩깍지를 가루 낸 것에 옥수수 가루를 섞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중국이 이제는 불과 몇 년 안에 옥수수밥에서 횐 쌀밥으로,
초가집에서 벽돌집으로,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해마다 잘 살아지는 것을
나 역시 이 지역에서 5년 간 체류하면서 목도하였습니다.
긴 말 할 것 없었습니다. 정책적 문제였습니다.
아사될 정도의 북한 식량난은
경지 면적이 적어서도 아니요. 종자가 나빠서도 아니요.
기후가 나빠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은 극심한 자연 재해 때문이라고 하며
이를 남한의 책상머리 북한 학자들이 앵무새처럼 따라합니다.
크지 않은 한반도는 기상 기후가 거의 같습니다.
그럼에도 유독 기후 탓만 합니다.
남한과 중국은 빼고 북한에만 큰 비와 가뭄이 온 것처럼 말합니다.
역천자는 망한다고 그래서 망하는 것입니다.
저는 1990년 5월 31일 <제 1호 편지> 즉 김 부자 앞으로
이 데이터를 담아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색 사상>이라고 답하는 당국이 골 때렸습니다.
마침 남한 삐라를 보고 1990년 11월 탈북 하였습니다.
제가 떠난 후 이른 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습니다.
만약 이 농사 시험 데이터를 받아들였더라면 수백만 아사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나에게서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고 선언한 김 부자는
오직 정권 유지밖에 모르는 반 인민적 독재자임을 자인한 것입니다.
옥수수 27대가 11대만 남는 이유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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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3, 08:45












이 글을 저 아래 엄상익 변호사님이 동해 바닷가에서 만나 얘기한 탈북 북한군 상좌가 읽었으면 합니다,이런 정치,경제체제를 만들어 주민의 사유재산을 부정하여 가난과 굶주림에 빠지게 하고 김가의 영구집권만 획책한 김일성이를 아직도 좋은 지도자라고 한 그 북한군 상좌는 뇌와 가슴이 없는자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