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받침대로 쓰는 레닌 황동상(黃銅像)

"이 놈 때문에 인류가 참 고생이 많았지": 黃銅像
<천만 마디보다 위력한 신앙 인도>

언제 때 김일성이게 아직두야?!
32년 전인 1992년 6월 말 탈북 노정인 하바로프스크에서
난생 처음 만난 선교사 유영길 목사의 말이었다.
이 분은 선교사이기 전에 정보 장교, 사업가 출신이었다.
엊그제 83세 생신날 만났을 때 이 말이 새롭게 떠오른다.

만주 북쪽 시베리아의 하바로프스크라고 해도 한여름은 무덥다.
에어컨이 없는 소련 시절 아파트에서 더위를 식히려면
창문을 열 수밖에 없다.
창문이 닫기지 않게 책상에 있던 레닌 황동 반상으로 고이면서
<이 놈 때문에 인류가 참 고생이 많았지>하신다.
사실 김일성에 비교할 수없이 더 높은 공산권 우상이 레닌이다.
그런데 창문 받치개로 전락되었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졌다.
세상이 바뀌어도 정말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그런데 1940년대 김일성 소리가 아직도 인가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2년 후에 김일성은 죽었다.

그 아들 김정일 고향은 하바로프스크이다.
참 묘한 위치에서 선교사를 만났고 거듭났다는 침례 의식도 이곳에서 받았다.
공산주의를 버리고 거듭났다는 의미로 침례명도 <중건>으로 지었다.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도 70살에 죽었다.
그 좋은 것 다 처먹고도 선교사보다 더 못 살았다고 하니 다 웃는다.
정말 그랬다.
사실 선교사는 20년 전 중풍으로 휠체어 신세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가 중풍을 맞으셨다.
특히 어린이들의 참상을 본 충격의 여파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절뚝거리며 걷거나 말은 했었다.
그러나 중풍이 재발되어 말과 사지가 마비되셨다.
하지만 의식은 또렷하셔 식물인간은 아니시다.
대소변 처리, 입술에 밥 떠드리는 등 모든 것을 사모님이 하신다.
우리는 하루 한순간 도와드리는 것도 힘든데 십여 년 이상 하신다.
인간성에 신앙이 아니라면 자식이라도 도무지 감당 못할 것이다.
사모의 말 없는 행위는 천만 마디의 전도(신앙 인도)보다 위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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