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충성의 일기>란 제목으로 시작, 1980년대엔 <참된 생, 지워지지 않는 생을 위해>로 바뀌었다.
<북한에서 나는 왜 일기장을 남기려 했을까>
북한처럼 나(개인)가 없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구호는 거창하다.
하지만 전체만 남고 하나는 사라졌다.
아니 하나는 수령으로 둔갑되어 버렸다.
나(개인)는 하나(유일)인 수령의 노예로 전락되었다.
견제 구조가 아닌 사회는 아무리 좋은 구호를 높이 불러도
권력을 쥔 하나로 되어 간다는 것이 법칙이다.
독재냐 민주냐는 아무리 좋은 말해도 이것을 보면 판별된다.
개인이 무시된 북한에서도 사람이 산다.
제한적이지만 개인 생활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일기를 쓴 것이다.
일기를 쓰게 된 것은 일기장 제목에 그 뜻이 반영되어 있다.
처음 일기장을 쓸 때(1970년대)에는 <충성의 일기>라고 제목이 달려있다.
개인의 일기장에도 개인을 떠난 수령에 대한 충성인 것이다.
그러나 점차 성장하여서는(1980년대) 나(개인)가 들어가 있다.
<참된 생, 지워지지 않는 생을 위해>라고 제목을 단 것으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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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력과 인생관이 없으면 일기장 쓰기가 힘들다.
특히 채 바퀴 돌리듯 박쎈 북한 생활에서는 더욱 그렇다.
생활 여유가 없는 데다가 말 한 마디, 글 한 자에 죽고 사는 사회 분위기이기에 더 더욱 그렇다.
이런 열악한 속에서도 일기장을 남겼다.
현재 보유한 일기장은 몇 개 안된다.
탈북한 후 그래도 남겨진 소중한 그루터기를 손에 쥐게 된 것이다.
한편 남는 것은 사진이라고 부모 형제, 친지 사진도 몇 개 남아있다.
일기를 쓰게 된 것은 이런 인생관 때문이어서이다.
이것을 나름대로 이렇게 묘사하였다.
배가 지나가면 물결이 생긴다.
하지만 배가 멀어지면 그 물결은 점차 사라진다.
물결이 사라지는 것처럼 남기지 않으면 인생도 저렇게 되겠구나.
그래서 일기를 남기게 된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하루 지나도 까먹는 판에
먼 북한 생활이 통째로 사라질 뻔한 것을 몇 귀퉁이라도 잡아 남긴 것이다.
고루한 북한 생활이기에 몇 귀퉁이로라도 거의 다 표현이 된다.
이것은 나의 일기장이자 북한인 것이다.
하나의 물방울로 온 우주를 볼 수 있다고
북한을 볼 수 있는 한 방울이 될 것이라 믿는다.
북한 연구와 통일에 둘도 없는 좋은 사료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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