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식층의 한 특징은 僞善이다. '나는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너는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존경 받고 산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 이들이 많다. 이는, 淸濁이 혼재해야만 하는 인간세상에서 도덕성을 너무 강조하다가 현실과 괴리된 관념론, 명분론으로 흐른 주자학적인 가치관에서 유래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도덕君子는 도덕성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덕을 부르짖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치에 대한 시각이 대표적 사례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들도 드물 것이다. 한국의 정부처럼 지식인, 특히 교수들을 우대하는 나라도 없다. 그런데 한국처럼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많은 곳도 없다. 反좌파운동을 하던 뉴라이트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정부에 들어가고, 정부를 지지하는 것을 '순수성을 잃은 것'이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지식인이 정치에 몸 담는 것'을 순수성을 잃는 행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요구하고 걱정하는 것은 거의가 정치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정치를 경멸하는 사람들일수록 정치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지식인의 정치참여는 惡이 아니다. 지식인의 순수성을 잃는 것도 아니다. 교수, 운동가, 기자들이 정부에 들어가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막을 일도, 비판할 일도 아니다. 한국정치를 업그레이드하려면 좋은 사람들이 정치판에 많이 들어가야 한다. 깡패, 건달, 사기꾼, 반역자가 아니라 착하고 강한 人材집단이 정치에 대거 참여하여야 정치 수준이 높아진다.
물론 公私구분이 분명해야 한다. 정치에 入門하기 위하여 기자직을 악용, 편파보도를 하면 안 된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하여 교육을 등한히하는 교수는 안 된다. 기자를 제대로 한 사람이 정치도 제대로 한다. 기자직을 정치적으로 수행한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 성공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운동과 정치의 구분도 분명히 해야 한다. 운동은 전체 국민을 상대로 國益을 수호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고, 정치는 정당이란 이념결사체를 통하여 특정 지지층과 특정 정책을 다룬다. 운동식으로 정치를 해서도, 정치식으로 운동을 해서도 안 된다.
정치를 하든 운동을 하든 목적하는 바가 중요하다. 대한민국 헌법 질서를 수호하고 자유통일하여 一流국가를 만들겠다는 목적에 충실한 사람은 정치를 하든 운동을 하든 기자를 하든 같은 길을 가는 이들이다. 우파운동가는 대중운동만 한다고 순수한 것이 아니다. 우파운동의 목적인 대한민국 헌법 수호 및 발전에 충실해야 순수한 것이다. 정치에서 순수성은 행동의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이지 무슨 직장에 근무하느냐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조선조 시절 정권에 참여하지 못한 在野 선비들은 정권에 참여한 선비들에게 대책 없는 비판을 많이 했다. 왕이 누구에게 고위직을 제의했을 때 이를 거절하고 평생 선비로 살았음을 자랑하는 家門들이 많다. 柳成龍 선생처럼 在野에선 교육을 하고 官職에 나아가서는 나라를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이 더 훌륭하다.
정치를 비판하고 분석만 하는 이들보다는 좀 실수를 하더라도 정치에 몸을 담아 욕을 먹어가면서 公益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의 영혼이 더 순수하다. 역사를 만드는 사람은 참여자이지 局外者가 아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公職을 聖職이라고 표현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정부는 인간이 가진 善性을 북돋우어 인간이 가진 惡性을 누르도록 돕는 일이다'라고 했다. 정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다. 물론 잘못 되면 가장 나쁜 일이 된다.
이런 우스개가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보통사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은 기업인. 인간이 해선 안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정치인>
역설적으로 위대한 정치인은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일을 해가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보통사람들을 격동시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李承晩, 朴正熙, 케말 파샤가 그런 정치인이었다.
뉴라이트의 정치참여는 욕할 일이 아니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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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2-13, 13: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