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환
‘노무현씨를 버리자’는 제목의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의 칼럼(2009. 4. 27.)을 읽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최고의 논객으로 존경해왔던 김 고문이 전직 대통령 노무현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별 의미가 없어졌다”고 판단하고, “좌파 리더로서 존재가치도 사라졌다”고 단정하고, “그를 기소하지 말고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고 주장한 글을 보니 과연 김 고문이 쓴 것인지 의아(疑訝)했다.
김 고문의 논거는 세 가지다. 첫째 논거는 노무현이 받은 돈의 성격과 액수가 “정치자금도 아니고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정치자금이 아니니 봐주어야 하고 액수가 적어 ‘생계형’이니까 덮어주자는 것이다. 이 무슨 망발(妄發)인가. 차라리 정치자금이면 봐주어야 한다. 법적으로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치인이나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돈 많은 사람의 돈을 받아 정치하는데 사용했다면 어느 정도 용납하는 것이 우리 국민감정이고 세계적인 경향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거두들인 선거운동자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엄중히 단속하고 선거자금을 본인이나 가족이 개인용도로 사용하면 공금횡령으로 가중 처벌하는 것을 봐도 이런 사정을 쉽게 알 수 있다. 노무현이 받은 돈이 정치자금이 아니고 사리사욕(私利私慾)의 목적이니까 더 불법적이고 그 죄질이 더 나쁘다.
노무현이 받은 돈이 어떻게 ‘노후자금’이고 ‘생계형’인가. 노무현이 얼마나 가난하기에, 노무현의 현재 재산이 얼마이기에 600만 달러를 추가로 보태야 노후생활이 가능하고 생계가 유지된다는 말인가. 애매하게 전직 대통령의 품위유지에 필요한 돈이라고 하면 수긍할 사람이 다소 있을지 모르겠다. 노무현이 받은 돈이 우리 돈이 아니고 달러로 받은 것만 봐도 노후자금도 아니고 생계형 돈도 아님이 자명한데 노무현의 하수인이 한 말을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 가서 노후생활을 즐기겠다는 계획이 있다는 말인가. 고향에 산답시고 아방궁(阿房宮) 같은 집을 짓고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눈으로 보고서도 그 사람의 생계를 걱정하고 있는가.
김 고문의 두 번째 논거는 노무현이 “지루한 법정 공방에 나설 것이 뻔한 지금 상황”에서 “경제위기 극복에 바쁜” 시기에 “시간을 낭비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죄를 짓고도 악착스레 달려드니 ‘더러워서’ 피하자는 논리다. 대통령의 뇌물수수 사건을 거리의 자동차 접촉 사고 정도로 간주하고 도덕군자(道德君子)가 시중의 양아치를 대하는 태도다. 노무현의 행동이 시중의 양아치 행동 정도로 보일 수는 있겠으나 노무현은 엄연히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 장관을 지냈고 대통령까지 역임했으며 자기 혼자만이 청렴한 것처럼 행동했던 사람이다. 목사가 강간을 하고도 잘못이 없다고 모질게 달려들면 그냥 넘어갈 것인가. 정의 실현은 물론 청소년 교육 차원에서도 철저히 실제적 진실을 밝히고 죄 값을 받게 해야 한다.
경제위기 극복과 노무현 재판은 서로 상관이 없다. 경제위기 극복은 기업인을 구속할 때 쓰는 말이다. 노무현이 재벌 총수라도 된단 말인가. 노무현을 구속하여 장기간 재판해도 영향을 받을 기업은 없다. 아무리 노무현 재판을 오래 끌어도 GDP(국민총생산)이 감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의 뇌물수수를 철저히 수사하여 응징함으로써 기업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상적인 경영을 하게 되어 경제가 살아난다. 논쟁과 공방이 사회를 정화하고 그 결과로 투명성이 확보되면 경제가 더 발전한다. 국민적 공방이 극에 달하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도 GDP가 감소한 적이 없다.
김 고문의 세 번째 주장은 노무현을 재판에 회부하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어 우리가 모욕감, 수치심”을 느끼게 될 것이니 포드 대통령이 닉슨 대통령을 사면했듯이 노무현을 기소하지 말자는 것이다. 600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전직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고 넘어 가면 세계가 우리를 칭찬할 것인가. 이미 창피당할 대로 당했다. 오히려 노무현을 처단하지 않으면 세계가 우리를 더 모욕할 것이다. 천슈이벤 전 대만 총통이 부패혐의로 법정에 서는 것을 보고 대만의 희망을 보았는가, 대만을 깔보았는가. 노무현을 법정에 세워 처단해야 우리나라를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로 평가할 것이다.
닉슨 대통령의 경우와 노무현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닉슨은 ‘워터게이트’를 직접 저지른 사람이 아니고 부하가 저지른 사건을 은폐하려고 거짓말한 것이 문제였다. 단지 거짓말한 죄로 대통령직을 물러나 죄 값을 충분히 치르고 난 뒤 사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드 대통령이 닉슨을 사면한 것에 대해 많은 미국인들은 둘 사이에 무슨 암약(暗約)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했고 이런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포드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해명해야 했다. 만약 노무현이 부하의 잘못(예를 들어 안희정의 뇌물수수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죄로 대통령직을 그만두었다면 사면이 아니라 훈장이라도 주고 싶다. 600만 달러의 뇌물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거짓말하고 부인을 끌어들려 처벌을 면하려는 잔꾀를 부리고 있는 노무현을 닉슨과 비교하는 것은 지하에 있는 닉슨이 억울해 할 일이다. 닉슨의 사면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경우가 아니다.
처벌을 강화하면 범죄가 줄어든다는 것은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고 말하는 것만큼 진리이다. “‘대통령의 뇌물’은 대통령 개개인의 사람 됨됨이와 격(格)의 문제”인 것도 사실이지만 처벌도 대통령의 뇌물을 감소시키는 품격 이상의 중요한 요소다. 과거 대통령들과 대통령 가족들의 범죄에 대한 처벌이 있었기에 그나마 범죄의 건수와 뇌물의 액수가 줄어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두고 봐야 할 것이지만, 만약 재벌이나 대기업에서 노무현에게 거금을 뇌물로 바치지 않았다면 과거 대통령들에 대한 처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고 처벌한다고 ‘청와대의 은밀한 돈거래’가 완전히 없어지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처벌을 강화하면 범죄가 감소할 개연성은 높다. 일벌백계(一罰百戒)는 말단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대통령에게는 일벌천계(一罰天戒)를 내려야 한다.
노무현을 사면하는 것은 노무현을 “철저히 버리는”는 길이 아니다. “그가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가진 일체의 움직임에 연루되는 일없이 조용히 지내”게 하기 위해서도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그의 번잡한 언변을 늘어놓는 것을 다시는 보”지 않기 위해서도 노무현을 처단해야 한다. “그가 국민 앞에 자신의 마지막 성실성을 보”이게 하고 “검찰에서 진술하는 과정에서도 보다 겸손하고 피의자”답게 행동하게 하기 위해서도 노무현을 구속해야 한다. 김 고문의 제안대로, 만약 노무현을 기소하지 않으면 노무현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 같은가? ‘감도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보수 언론이 죄 없는 사람을 모함했다고 할 것이고, 정권이 바뀌어 정치보복을 당했다고 할 것이고,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가진 운동을 더욱 전개할 것이고, 번잡한 언변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필자가 감히 김 고문을 나이브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노무현에게 그렇게 속고도 노무현의 언행을 예측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아량을 베푼다고 자숙할 노무현이라면 아애 그런 짓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100만 달러를 ‘집에서’ 받았고 자기는 모른다고 거짓말하는 것을 엊그제 보지 않았는가. 필자의 예측으로는 노무현은 “검찰에 출두하는 방법에서도 장난을 칠” 것이고 “사안을 이벤트화(化) 할” 것이다. 그런 노무현이다. 김 고문의 희망대로 노무현을 변화시키려면 ‘노무현’을 뿌리 채 뽑아 버려야 한다. 오뉴월 잡초를 자르기만 하면 당장 보기는 그럴듯하지만 뿌리가 번져 더 무성해진다. 김대중 고문의 반론을 기대한다.
2009. 4. 28.
변 재 환
김대중 칼럼에 대한 反論
- 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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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28, 23: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