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내 알카에다 수괴 나시르 알 와하이시(사진 우측 첫 번째 인물). 2006년 감옥 탈출과 함께 조직 내 지위가 크게 상승했다. 지난 해 알 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에 의해 '예멘 무자히딘의 아미르(사령관)'로 임명됐다. 올 1월 사우디와 예멘의 알 카에다 조직을 통합했다.
자세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다수의 국내외 언론들은 이번 사건이 외국인을 겨냥한 테러 공격이라는 분석에 무게를 두는 듯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테러 발생 지역에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적의 외국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한국인 관광객들만 피해를 입었느냐 하는 점이다. 북한이 알카에다 못지 않은 국제테러조직을 동원해 한국민에 대한 테러를 감행한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서울아시안게임 개막 1주일 전(1986년 9월14일) 발생한 김포공항 테러다.
당시 우리정부는 이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서울아시안게임을 방해하고 종국적으로는 88서울올림픽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 공작원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86년 김포공항 테러, 김일성 청부받은 ‘아부니달’ 조직 소행
그러나 최근 스위스 베른신문사의 무라타 노부히코(村田信彦) 기자는 김포공항 폭파사건을 조사한 보고서를 베를린의 ‘구(舊)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STASI) 자료관리 연방정부 특명센터’에서 찾아냈다. 이 보고서는 김포공항 테러 직후, 독일의 프란츠 대령이 지휘하는 슈타지의 한 부서(22국)가 김포공항 폭파사건에 대해 조사한 것이다. (월간조선 최신호 인용)
보고서 안에는 22국의 한 간부가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 ‘아부니달’을 신문한 기록도 있는데, 아부니달은 신문과정에서 북한의 청부를 받고 조직원을 시켜 김포공항을 테러했다고 자백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슈타지의 조사에 따르면 아부니달이 이끄는 테러조직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김포공항 청부를 받은 것은 1985년 말이었다.
아부니달은 조직 내 서열 2위이자 테러 담당이던 슐레이만 삼린에게 김포공한 테러의 실행을 지시했다. 슐레이만 삼린은 폭탄 제조자인 아부 이브라힘에게 폭탄제조를 지시, 이브라힘은 동거 중이던 서독 적군파 요원 프레데리케 크라베에게 폭탄운반 임무를 맡겼다.
크라베는 영국인으로 위장해 김포공항에 입국했고, 폭탄을 5·6번 게이트 사이 쓰레기통에 놓고 홍콩으로 출국했다. 김포공항 폭파사건이 성공한 후 북한은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한 은행의 아부니달 비밀계좌로 500만 달러를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 알-카에다 무장세력 근거지-北과 밀접한 관계유지
이번 예멘테러의 경우 장소만 달랐지 김포공항 테러와 유사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주지하다시피 예멘은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출신지이자 ‘알-카에다’ 관련 무장세력 근거지로 테러가 빈발하는 곳으로 북한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01년 4월 미 국무성이 발행한 보고서(Pattern of Global Terrorism 1999)에는 북한이 알-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과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1970~1980년대 기간 내내 국제 테러리스트와 혁명기구에 대한 지원을 했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은 테러를 위한 자체 하부구조 개발과 함께 해외 훈련시설을 이용했다. 북한 내 테러 지원 하부구조는 특수8군단 요원의 수가 점증하면서 계속 개발 됐다. 1989년 말, 북한 내에는 10여 곳의 테러 훈련 시설들이 존재했다.
같은 기간 북한은 예멘인민민주공화국(舊남예멘), 알제리, 레바논, 리비아, 모잠비크, 우간다, 앙골라, 소말리아 등 중동·아프리카지역과 함께 칠레·쿠바·페루 등 중·남미 지역에 테러리스트 양성 시설을 설치했다. 이와 관련, 북한 군사전문가인 조셉 S 버뮤데즈 Jr. 박사는 자신의 저서인 'Terrorism: The North Korean Connection'에서 “북한은 아직도 다수의 해외 테러리스트 양성시설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훈련의 대부분은 국가보위부·대외정보조사부, 그리고 연락부 요원들의 지도하에 특수8군단 요원들에 이뤄졌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1967년 11월30일 예멘인민민주공화국(舊남예멘·PDRY)이 독립국가가 되기 전부터 예멘 내 ‘민족해방전선’(NLF)과 실무관계를 수립했다. 북한과 예멘의 이 같은 관계는 곧 테러리스트와 좌파 혁명 기구에 대한 협력 지원으로 발전됐다. 1969~1970년 기간 동안 북한은 남예멘의 묵인 하에 ‘에트리안 해방전선’(ELF)과 ‘에리트리안 인민해방전선’(EPLF)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지원을 위한 분배지로서 예멘을 이용했다.
北, 예멘과 군사협력 조약 체결-특수부대 출신 테러교관 파견
이 같은 북한의 대(對)예멘 원조는 1970년대 중반까지 지속됐다. 이 기간은 중동과 동아프리카 내 다수의 팔레스타인·좌파 혁명 기구에 대한 남예멘의 지원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북한은 이 때 쿠바·소련과 더불어 테러 교관과 무기를 제공했다. 실제로 1970~1972년 사이 약 10~30명의 북한 게릴라전 교관단이 일본 적군파·PELP·ELF 등을 포함해 다수의 테러리스트들과 혁명기구들을 훈련시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교관들에 의한 예멘 내 테러교육은 고립된 섬인 ‘소코트라’에서 이뤄졌으며, 이로 인해 미 국무성이 1977년 초 이 지역에 대한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미 국무성은 당시 남예멘과 더불어 이라크·소말리아·리비아 등의 국가들이 아랍 테러조직을 지원한 데 대해 비난했다.
물론 북한은 미 국무성이 지목한 이들 국가 모두에 대해 테러를 지원했다. 북한과 예멘 사이의 관계는 1970년대 내내 지속됐으며, 1978년 군사협력 조약을 체결한 뒤, 1994년 6월 전술미사일 인도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조약 체결에 뒤이어 북한은 예멘에 1백~5백 명의 군사훈련단을 주둔 시켰다. 이들은 예멘에 대한 재래식 군사 지원과 더불어 테러리스트 및 공산 혁명가 양성을 담당했다. 북한은 또 1984년 예멘과 우호협력조약을 체결, 대규모 군사고문단을 유지시켰다. 이들은 북한군 특수부대 교관들로서 예멘 내 테러리스트 및 공산주의자들에게 폭탄 사용법 및 위조폭탄 제조법, 비밀조직 및 통신사용법, 납치·암살 방법, 보병무기 사용법 등을 가르쳤다.
‘테러와의 전쟁’ 적극 참여, 김정일·국제테러 함께 근절해야
정부는 이번 사건에 과거 김포공항 테러와 같은 북한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한국민 테러 피습과 한국의 국가적 대응을 함께 주시하고 있다. 누가 희생되든 테러는 그 자체로 인류 공적(人類公敵)이며, 테러 수출국 북한에 존재하는 한 그들의 죄상을 물어나갈 것임을 더 명확히 해야 한다.
국내 차원의 조치, 곧 국외여행 국민의 안전을 위한 방문선 분류 혹은 여행지 정보 제공 확대 등은 문제해결의 본질이 될 수 없다. 김정일은 테러수출을 통한 ‘국제혁명역량강화’를 통한 한반도의 ‘적화(赤化)통일’을 주도하고 있다. 이참에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이라크·아프칸 전쟁)에 적극 참여해 '김정일'과 '국제테러'를 함께 제거-근절해야 할 것이다.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