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李明博 정부가 등장하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한 것을 계기로 韓美日 共助와 북한의 對中의존이 선명하게 대조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對北제재결의안 채택을 저지하는 등 국제사회의 압박에 제동을 걸었다. 중국이 북한 편을 드는 한 核과 미사일 문제는 해결될 수 없고, 6者 회담은 실패할 것이다. 중국의 협조 없이는 북한정권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압박이 효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을 緩衝(완충)지역으로 본다. 韓美日의 영향력이 중국으로 北上하는 것을 막아준다. 冷戰시대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있어선 소련과 중국의 南進을 막아준 완충지역이었던 것과 같다.
李明博 정부는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에 대하여 식량 및 비료 지원을 중단하고 남한 관광객 피살 사건이 나자 마자 금강산 관광도 중단시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엔 한국쪽에서 年間 약10억 달러어치의 金品이 북한으로 들어갔었다. 韓美日로부터의 원조가 줄어든 만큼 북한은 중국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중국은 延命할 정도의 물자 지원만 하여 김정일 정권을 조종하려 한다.
중국 정부는 북한의 核 및 장거리 미사일 기술이 아직 實戰用으로 배치될 수 없는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핵폭탄을 500kg 정도로 小型化하여 미사일에 싣고 그 미사일이 誤差 없이 목표물에 도달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든지 수십 년의 세월과 여러 번의 추가적 핵실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韓美日의 과잉대응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탈북하여 한국에 온 한 고위급 북한 과학자도 '북한측이 국제적 봉쇄로 기술과 부품을 수입하기가 힘들어 核과 미사일 개발에서 넘기 어려운 장벽에 직면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하였다.
12년 전에 한국에 온 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중국은 미군이 북한지역에 전개될 때만 한반도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영토적 야심은 없지만 당장 한국 중심으로 통일되고 자유의 바람이 뒷문으로 들어와 중국대륙의 안정이 위협받는 것은 절대로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김정일을, 중국의 뒷문을 지키는 '미친 개'라고 비유하는 한국인도 있다. 黃씨는 최선의 對北정책은 북한이 중국식 개방 개혁의 길을 걷도록 하여 내부적으로 체제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북한정권의 親美化는 막을 수 있겠지만 북한체제의 총체적 붕괴를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최근 발표된 북한 국방위원회의 간부 명단을 훑어보면 軍과 保安경찰기구의 대표들이 많이 배치되어 마치 戒嚴(계엄)사령부를 연상시킨다. 김정일이 말하는 先軍정치란 군대를 앞세운 계엄통치를 뜻한다. 계엄통치를 해야 할 만큼 밑으로부터의 변화욕구가 크다. 핵과 미사일 실험은 對外的 위협을 통하여 긴장을 조성, 흔들리는 체제의 통제를 강화한다는 對內的 목적에 더 무거운 비중을 두고 있다.
요사이 東北亞는 7세기말 新羅가 한반도를 통일할 때의 정세와 비슷하다. 신라는 唐과 연합하여 百濟,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倭의 백제부흥군 지원을 白村江 해전에서 좌절시키는 과정에서 唐의 목표가 한반도 전체의 屬國化임을 간파하고 對唐결전을 준비한다. 신라는 한때 敵對國이었던 倭가 唐을 편들어 新羅의 배후를 공격하지 않도록 對日외교공세도 폈다. 서기 670년부터 6년간 신라가 唐과 싸울 때 天武天皇의 日本은 신라에 대하여 우호적 中立을 견지하였다. 日本은 그때 唐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北규슈 등 여러 곳에 방어시설을 만들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신라가 이기는 것은 이런 唐의 對日침략을 근원적으로 막아주는 방파제를 건설하는 일이라고 판단하였다. 新羅와 일본의 對中 전략판단이 일치하였던 시기 약50년간 두 나라의 관계가 매우 좋았다. 한국이 북한을 흡수하여 한반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지 모른다.
헌법 등에 명시된 한국의 국가목표는 '통일되고, 강력하며, 자유롭고, 번영하는 나라 건설'이다. 한국인들은 주변국가들중 미국만이 이에 동의하고 일본과 중국은 반대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한국의 국가목표에 동의한다면 韓美日 관계는 전략적 가치 동맹으로 격상될 것이다. 세 나라는 이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치이념을 共有하고 있다.
新羅가 對唐결전을 할 때 지금 티벳 지역에 있던 吐蕃(토번)이 반란을 일으켜 長安을 위협하니 唐은 兩面작전을 펼 수 없어 한반도를 포기한다. 그 수십 년 뒤 唐과 신라는 다시 國交를 회복하고 동북아의 세 나라는 약200년간 공존공영하면서 고대사의 황금기를 만든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주변국가들도 평화를 누리고 분열되거나 약화되면 주변국들도 불편해진다.
新羅의 한반도 통일 이후 중국의 漢民族과 한반도의 韓民族 사이엔 1200년에 걸친 친선관계가 이어졌다. 유목민족인 몽골과 遼나 淸은 고려나 조선을 침략했으나 漢族정권인 宋과 明은 우호적이었다. 韓族은 漢族의 문화적 우월성을 인정, 事大하였고 漢族은 韓族을 군사적으로 지배하려 들지 않았다. 도요토미의 일본군이 쳐들어왔을 땐 大軍을 보내 지켜주었다. 이런 오랜 親善관계는 1950년 10월 毛澤東의 중공군이, 퇴각하는 金日成을 구출하기 위하여 한반도에 개입함으로써 종료되었다. 1992년 韓中 수교 이후 두 나라는 경제적 친선관계를 회복하였다. 韓中무역액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韓日 및 韓美무역액을 합친 것과 비슷해졌다. 그럼에도 중국과 북한이 군사적 동맹국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번 미사일 실험은 그 현실을 재확인시켜준 셈이다.
중국은 북한정권을 지탱해주는 것이 한국 주도의 통일을 묵인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싸게 먹힌다고 생각할 때까지 北을 끌어안고 갈 것이다. 한국은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란 사실을 주변국에 설득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한반도의 再통일은 독일통일처럼 민족자결의 원칙에 입각하여 이뤄져야 하므로 결국은 북한주민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 북한주민들이 결정적 순간에 '우리는 남쪽의 형제들과 같이 살겠다'는 결단을 내릴 때 중국을 포함하여 어느 나라도 통일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도록 지금부터 북한주민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정일에 대한 압박과 북한주민에 대한 직접 지원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韓美日 對 北中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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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20, 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