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기사를 외부 인터넷 매체에 옮기지 마십시오.
<주> 복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근 회고록에서 국가 기밀을 누설했다는 논란을 야기시킨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이 새누리당에 입당한 것으로 4일 확인됐다고 한다. 아래는 수년 전 기자가 金 전 원장의 행적에 대해 기록한 글이다.
[2012년 10월15일자 보도]
김만복(金萬福) 前 국정원장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민통당 대선후보의 외곽조직으로 알려진 ‘담쟁이포럼’에 임수경, 이학영 의원 등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金 전 원장은 지난 10일 이재정 前 통일부 장관, 백종천 前 청와대 안보실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문헌 의원이 폭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비밀 녹취록’ 문제와 관련해 ‘비밀 녹취록’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며 鄭의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 문재인 민통당 대선후보는 후보는 지난 12일 북한군의 공격으로 폭침된 천안함에 獻花하면서 '천안함 침몰'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金 전 원장도 이와 똑 같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金 전 원장은 親北성향 일본 잡지 '세계'(世界: 일본발음 '세카이') 2011년 2월호 기고문(제목: 하단 '世界' 표지사진 참고)에서 러시아의 천안함 사건 자체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천안함 폭침’을 ‘침몰’로 표현했었다.
《3월26일 저녁 우리의 대잠 초계함인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나서 침몰하였다. 미국과 일본은 우리 정부의 조사 결과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천명하였으나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두둔하여 한반도 주변 상황이 냉전시기로 후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0년 7월 말 동해상에서 한·미 연합 對잠수함 훈련이 실시되는 등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더욱 고조되었다. 더욱이 러시아의 자체조사 결과로 밝혀졌다는 언론 보도 내용을 보면, 1) 천안함 CCTV 영상의 마지막 촬영시각이 ‘3월26일 21시 17분 03초’로서 우리 정부가 세 번 수정 끝에 발표한 침몰시각인 ‘21시 22분’과는 5분이나 차이가 나며, 2) 천안함이 해저면에 접촉되어 오른쪽 스크루 날개 모두와 왼쪽 스크루 날개 2개가 손상되었고, 3) 천안함이 기뢰로 폭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국방부의 반박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의 자체조사 결과가 언론에 보도된 후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 국민들 중 30%만이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 이라는 우리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를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세계 최고의 막강한 정보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천안함 침몰 직후인 3월30일 “천안함 사고에 제3자가 개입했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고 하면서 북한의 소행을 부정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다가 5월20일 우리 정부의 조사 결과 발표 후에는 자체조사나 분석결과는 밝히지 않으면서 “한국 정부의 조사결과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함으로써 의혹해소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정부는 천안함 사건 이후 민간-군인 합동조사단(합조단)을 구성했다. 이에 따라 한국을 포함,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 5개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합조단은 2010년 5월20일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당시 조사 결과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외에 인도 등 非동맹국들의 지지를 얻어 UN안보리 이사회의 안건으로 회부되어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내용의 의장성명까지 채택했다. 사실이 이런데도 정보전문가라는 金 전 원장은 천안함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며 ‘침몰’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 金 전 원장의 문제 발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기고문에서 남북관계 惡化의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전가한 뒤, 2010년 11월23일 발생한 ‘연평도 포격’ (국군 해병대원 2명 전사, 민간인 2명 사망)사건을 “연평패전”이라고 표현했다.
《천안함 침몰사고로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되고 한반도 안보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가고 있던 중 2010년 11월23일 이른바 ‘연평도 피격’ 사건이 발생하였다. 11월22일부터 우리 군이 ‘호국훈련’의 일환으로 연평도 인근 해상을 향해 사격훈련을 실시하자 11월23일 오전 북측은 여러 차례 전화통지문을 보내 우리 군의 해상사격훈련이 “사실상 북에 대한 공격행위”라는 항의성 경고문을 보내왔지만, 우리 군이 예정대로 11월23일 오후 2시 25분까지 해상사격훈련을 계속하자, 2시 34분경 북한군이 연평도에 150발의 포탄을 발사하였다. 그로부터 13분 후 우리 군이 50발의 대응사격을 하였고 3시 12분경 북측이 다시 20발의 포탄을 발사하였으며 3분 후 우리 군은 30발의 대응사격을 하였다. 북측의 피해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우리는 2명의 해병 대원과 2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였다. 한마디로 우리의 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발생한 ‘연평패전’이었다.》
■ 金 전 원장은 위와 같은 북한의 對南도발을 방지를 위해 ‘3차 남북정상회담’, ‘10.4선언의 이행’, 그리고 NLL 문제와 관련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을 주장했다.
《전쟁 대신 평화를 희망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6·2 지방선거 결과 국민들이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종 대화채널을 조속히 복구·확대하여 점점 쌓여 가는 남북한 간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특히, 남북 함정 간, 함대 사령부간 통신이 복원되어야 하고, 쌍방 軍작전 책임자간 비상연락망도 복원되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非공개 특사도 상호 교환해야하며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도 추진되어야 한다. 제2의 천안함 침몰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가장 확실한 과제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에 관한 남북 정상간 합의를 이행 하여 ‘전쟁의 바다 서해’를 ‘평화·번영의 바다’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10·4 남북정상선언’을 이행함으로써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이 땅에 평화를 구축하고 통일로 가는 길을 닦아야 하는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켜내는 일을 맡았던 정보기관 최고 수장이 북한의 악행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피해자인 정부에 떠넘기는 글을 일본 잡지에 기고한 것이다.
金 전 원장은 이 같은 행위로 국정원 퇴직자 모임인 ‘(사)양지회’(陽地會)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양지회는 2011년 1월16일 보도자료를 통해 “金 전 원장이 모임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물의를 야기한 데 대해 긴급 이사회를 열어 회원자격을 박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 김만복 前 원장의 글을 실은 日잡지 '세카이'(世界)의 正體
![]() |
초대편집장은《여러분은 어떻게 살 것입니까》의 著者인 요시노 겐자부로(吉野源三郎)이다. 최고 책임자는 이와나미 문고 창업자인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의 친구 아베 요시시게(安倍能成)였다.
 
훗날 이와나미 문고의 사장으로 일본 左派인사 미노베 료키치(美濃部亮吉, 前동경도지사, 親北성향 사회주의자)의 문하에서 도지사 특별 비서를 지낸 야스에 료스케(安江良介)도 오랜 동안 ‘세카이’의 편집장을 맡았다. ‘세카이’의 現 편집장은 오카모토 아츠시(岡本厚)이다.
 
북한-중국 등 공산진영에 우호적 논조
 
‘세카이’는 스스로 학술성과 정확성을 중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면면히 살펴보면 소위 평화문제를 중심으로 동서냉전 문제와 관련, 공산진영보다 자유진영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취해왔다. 현재도 한국, 미국, 일본 등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북한과 중국 등 공산진영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논조로 일관하고 있다.
 
과거 左派 전성기에는 일본 左派 진영 핵심 월간지로 그 권위(?)를 자랑하며, 左派 논단의 중심적 위치를 점유했었다. 1980년대 들어 일본 내 左派 논단의 쇠퇴로 ‘세카이’는 수많은 월간 논단지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 사양길로 접어드는 듯 했다.
 
그러던 중 아사히(朝日)신문사가 발행하는 ‘논좌’(論座)가 폐간된 후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유일한 左派 논단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발행부수는 1950~1960년대에는 20만부 정도였고, 1990년대 이후에는 7만부로 줄어들어 최근에는 1만부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일본의 마이니치(毎日)신문사가 실시한 ‘전국독서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카이’는 ‘중앙공론’(中央公論)보다 독자수가 훨씬 적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잡지 발행 초창기부터 다른 종합지-논단지에 비해 ‘특정이념’을 공유하는 정기구독자가 많았고, 이른바 학술전문잡지라는 타이틀을 붙인 탓에 현재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前편집장 야스에 료스케, DJ와 막역한 관계
 
역사교과서문제, 오키나와 전쟁 등 특정 주제를 다루는 ‘세계임시증간호’(世界臨時増刊号)나 ‘별책세계’(別冊世界)등이 비정기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2005년 다뤄진 특집 기사를 보면, ‘동아시아 공동체-미래에 대한 구상’(1월호), ‘현대 일본의 기분-어디로 향할까?’(2월호), ‘경기(景氣) 상승을 어떻게 볼 것인가?-양극화 확대 속에서’(3월호), ‘오키나와-미군 재편 '미일합의'는 깨지다!’(4월호) 등 이다.
 
前편집장인 야스에 료스케의 경우 김대중과는 매우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1998년 10월9일 김대중은 일본을 방문해 같은 해 1월 사망한 야스에 료스케 前 ‘세카이’ 편집장의 부인을 만났다.
 
김대중은 당시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에 야스에의 부인이 초청 대상에서 빠진 것을 발견하고, 명단에 추가할 것을 특별히 지시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스에 료스케와 김대중의 관계는 1971년 처음 시작됐다. 김대중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뒤 국내잡지에 소위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 평화공존 등에 대해 기고를 했는데, 글의 내용에 감탄(?)한 야스에가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 ‘세카이’에 이를 전재했다.
 
세카이, 박정희 ‘새마을 운동’ 비하에 열중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된 후 김대중은 망명을 결심하고 야스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야스에의 도움으로 그는 많은 일본 정치인들에게 유신의 부당성을 알렸고, 이 과정에서 세카이의 지면을 적극 활용했다.
1982년 말 김대중이 미국으로 망명하자 야스에는 미국으로 달려와 인터뷰를 했으며, 무려 30쪽짜리 특집기사를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은 1985년 귀국길에 일본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이때도 야스에를 만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스에 료스케(安江良介)가 편집장으로 있던 시기 ‘세카이’는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이 민중을 탄압 하고 있다”면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제목의 연재 기사를 게재, 국내 유언비어의 원산지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북한에 대해서는 호의적 논조로 일관했다.
 
특히 서방언론과 일체 접촉을 피했던 김일성과의 인터뷰를 10여 차례에 걸쳐 게재하면서 확인도 되지 않은 북한의 발전상(?)을 보도했다.
북한의 천리마운동은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한 운동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체제를 연장하기 위한 대중동원 수단으로 비하했다.
 
'KAL기 폭파사건 조작설' 등 유언비어 퍼트려
 
김일성은 1977년 4월호 ‘세카이’에서 “우리는 핵무장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핵병기를 생산할 자금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험할 장소도 없다. 조선반도에서 핵을 사용하면 모두가 멸망해버리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조작설, 1987년 대통령 선거 컴퓨터 조작설 등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도 ‘세카이’가 썼다. 그리고 문제의 기사들이 한국으로 역수입되어 남한 주사파(主思派)들의 ‘무기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지적도 있다.
 
영어에는 까막눈인 국내 386주사파들 중에 일본어 독해에는 유독 도사가 된 인물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일본 左派와 ‘세카이’의 영향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 세카이에 문제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쓴 인물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알려져 있다(‘세카이’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에이 닭대리들
만복이 같은 애 집에 들여서 머하려고?
정말 머저리들
萬福아, 니 수준에 딱 맞는 당 찾아갔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한 나라의 국정원 장으로서 전 이명박 대선 하루전에 지난번 남북 정상 회담 기념식수에 표지석 세운다는 궁색한 명분하에 북한 집단의 통일 전선부장 김양건을 비밀리에 방문 했던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새누리 당에 입당하여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한 촌로로서 의구심(疑懼心)이 생긴다.
"기가차서 말이 안나옵니다!" 이런 말이 나오게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빨치산 후예라는 것을 다시한번 증명된 것과 새누리 당은 속씨는 벌레먹고 빚좋은 개살구임을 또 한번 알게한 좋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