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핵전략: '실존적 억지(Existential Deterrence)' 전략

북한은 소수의 핵무기로 미국을 억지한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는 핵억지 전략 가운데 ‘실존적 억지(Existential Deterrence)’ 전략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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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략(核戰略)이란 핵무기의 구성·배치·운용을 둘러싼 군사전략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무기는 재래식 무기와 비교하여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전략사상을 일변(一變)시켰다.

핵무기는 그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궁극의 무기’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 무기의 사용으로 인류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전쟁은 이제 영원히 회피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등장하게 됐다. 비록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의 사용은 없었지만 전쟁은 계속 발생했으며, 핵무기 사용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어 국제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핵무기의 등장과 함께 재래식 군사력도 핵무기의 전략과 비슷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하여 상대방에 대한 움직임도 군사적 수단뿐만 아니라 정치·외교·경제·문화·심리 등 여러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핵전략도 단순히 핵무기의 배치·운용에 따른 군사 전략이라기보다는 핵무기의 존재를 배경으로 하여 국제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성격이 강해졌다.

북한은 2012년 4월에 수정·보충한 사회주의헌법 서문(序文)에서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다. 이후 2013년 3월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여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竝進)노선’을 채택했다. 당시 김정은은 “제국주의자들의 압력과 회유에 못 이겨 이미 있던 전쟁억제력마저 포기했다가 종당에는 침략의 희생물이 되고만 발칸반도와 중동지역 나라들의 교훈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경제·핵무력 건설의 병진은 “조성된 정세의 필수적 요구”이자 “혁명발전의 합법칙적 요구”라고 말했다.

같은해 4월1일에는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라는 법령(일명 ‘4·1 핵보유 법령’)을 의결했다. 이 법령은 북한 외무성이 2010년 4월21일 비망록을 발표하면서 제시한 핵정책을 확대하고 구체화하여 대외적으로 공표한 북한 최초의 핵전략으로 10개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조항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기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으로 가중되는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에 대처하여 부득이하게 갖추게 된 정당한 방위수단이다.>

북한은 핵보유의 원인을 이른바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으로 돌리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2005년 2월10일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한 이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이는 결국 핵억지 대상이 미국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북한은 미국을 겨냥하여 핵억지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2조; 조선민주주의이민공화국의 핵무력은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과 공격을 억제·격퇴하고 침략의 본거지들에 대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하는데 복무한다.>

북한은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라는 문구를 넣어 사실상 영구적인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이 반발하자 북한은 2013년 6월16일 김정은이 주재한 국방위원회 결정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는 군대와 인민의 의지이자 결심이고,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훈이며, 당과 국가와 천만 군민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정책적 과제”라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의 핵보유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말했다. 북한은 핵무기의 용도를 ‘공화국에 대한 침략과 공격을 억제·격퇴하고’, ‘보복타격을 가하는데 복무한다’고 규정하여 북한의 핵전력이 이른바 자위적 성격의 방어용 무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또 외부의 공격과 침략이 재래식 무력이건 구분하지 않고 핵무력으로 보복 타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3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가중되는 적대세력의 침략과 공격위험의 엄중성에 대비하여 핵억제력과 핵보복 타격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운다.>

북한은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첨단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을 핵억지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핵과 미사일의 수준은 질량 면에서 미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북한은 소수의 핵무기로 미국을 억지한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는 핵억지 전략 가운데 ‘실존적 억지(Existential Deterrence)’ 전략에 해당된다. 실존적 억지는 약소국들 간에, 혹은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 작동되는 핵억지 전략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전력은 보잘것없지만 서로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힐 것이 분명하기에 핵전쟁이 억지된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도 이러한 실존적 억지가 작동한다. 현재 북한의 핵무기는 그 숫자도 알 수 없을 만큼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게다가 북한에는 핵무기를 은닉하기 좋은 땅굴이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다. 유사시 미국은 북한에 대해 복수의 핵탄두를 투하하지 않고서는 北核을 모두 제거하지 못한다.  미국의 핵공격에서 살아남은 단 개의 핵무기가 미국 땅에 떨어지면 이는 엄청난 재앙이 된다. 이러한 실존적 억지 개념에서 보면 핵무기의 보유량과 질적 수준에 관계없이 북한의 핵무력은 미국의 핵공격을 억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제정치학 이론인 ‘고슴도치 이론(porcupine theory)’이 바로 이런 상황을 묘사한다. 강대국을 상대해야 할 약소국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고슴도치의 가시를 보유하여 사자가 건들이지 못하게 만든다는 전략이다. 북한이 양순한 나라이고 미국이 극악무도한 깡패국가라면 북한의 행동은 고슴도치 이론에 비추어 정당하다. 그러나 북한은 고슴도치 같이 약하고 온순한 동물에 비유될 나라가 아니다. 북한은 전(全) 한반도를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혁명국가이다. 또한 현대식 군사력으로 발톱까지 무장한 공격적 군사국가다. 그런 북한이 이미 한국과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을 넘어 미국까지 날아가는 미사일을 개발하는 이유는 그것이 북한의 혁명적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략 수단이기 때문이다.

<4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기는 적대적인 다른 핵보유국이 우리 공화국을 침략하거나 공격을 가하는 경우 그를 격퇴하고 보복타격을 가하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명령에 의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

북한은 다른 핵보유국이 북한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공격받은 무기가 재래식이건 핵이건 관계없이 일단 공격을 받으면 핵으로 보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와 함께 핵사용의 최종 승인자를 최고사령관으로 명시함으로써 북한의 핵무력이 최고 지휘부에서 책임감 있게 안정적으로 관리·통제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5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적대적인 핵보유국과 야합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비핵국가들에 대하여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비핵국가를 대상으로 조건부의 소극적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적대적인 핵보유국과 야합’하는 비핵국은 미국의 동맹국을 지칭(한국과 일본)한다. 따라서 제4조와 제5조는 북한이 6.25전쟁과 같은 남침을 감행하더라도 핵을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핵무기는 ‘보복용’으로 국한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6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무기의 안전한 보관 관리, 핵시험의 안정성 보장과 관련한 규정들을 엄격히 준수한다.>

제6조에서 언급한 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확실하다. 핵무기의 보관 관리, 핵시험의 안정성 보장과 관련된 사안은 핵을 보유한 각국의 책임 하에 진행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방사성물질의 안전한 관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핵시설을 보유한 북한도 내부적으로 관련 규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다만 영변 핵시설의 열악한 안전 상태를 고려할 때, 그런 규정들이 국제기준에 부합하고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지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제6조는 안정성을 최대한 확보해서 주변환경과 이웃나라에 방사능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핵실험을 계속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제7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무기나 그 기술, 무기급 핵물질이 비법적으로 누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담보하기 위한 보관·관리 체계와 기술을 배운다.>

‘비법적(非法的)’이라는 표현은 통상 국제사회에서 핵기술의 확산을 ‘불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을 의식한 북한식 표현으로 보인다. 핵확산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법령에 명시한 것은 핵확산 금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지를 감안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시리아와의 핵협력이나 이란 및 미얀마와의 핵협력 의혹 등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기 위한 선제적(先制的)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제8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적대적인 핵보유국들과의 적대관계가 해소되는데 따라 상호 존중과 평등의 원칙에서 핵전파 방지와 핵물질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 협조한다.>

핵시설과 핵물질의 안전한 관리, 도난 및 사보타지 등으로부터 안보, 불법적인 확산방지에 대한 국제적 협력의 뜻을 밝히고 있다. 다만 이러한 협조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달려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이 보유한 핵전력의 안전, 안보 및 비확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이용하여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겠다는 북한 지도부의 전략적 계산이다. 

<제9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전쟁 위험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하며 핵군비경쟁을 반대하고 핵군축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적극 지지한다.>

북한은 자국의 핵무력을 토대로 미국의 오바마가 언급했던 ‘핵무기 없는 세계’ 구상에 동조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핵보유국으로의 지위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이 핵군축을 언급한 이유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핵전력을 감축하고 행동반경을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얻게 되면 향후 북한의 의무는 ‘핵폐기’가 아니라 ‘핵군축’이 된다. 현재 상황에서는 북한의 핵개발 자체가 NPT를 포함한 국제체제를 위반한 것이라는 논리로 북핵의 폐기를 압박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면 북한의 핵개발을 국제사회가 사실상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북핵 문제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고, 대신에 중동 등 다른 국가로 북핵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국제사회의 화두가 될 개연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미국 역시 암묵적으로 이러한 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북한 외무성 부상 박길연은 2013년 10월1일 UN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청산하는 것이며, ‘핵군축 협상’을 조속히 개시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길연은 같은 해 9월26일 UN본부에서 열린 비동맹운동(NAM) 회원국들 간 UN고위급회의에서도 “전제조건 없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조선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향하는 것은 우리의 변함없는 입장”이라면서 “핵군축을 실현하는 데 있어 세계 최초의 핵무기 사용국이며 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UN주재 북한대사 신선호도 같은 해 6월 기자회견을 자청한 자리에서 “미국의 적대적 위협이 계속되는 한 핵포기는 불가하다”면서 美北 대화를 통한 평화협정 논의 및 미·중·러를 포괄한 ‘핵군축’ 회담 등을 제안했다. 북한은 2011년 3월 제네바 군축회의에서도 “조선반도 비핵화(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세계적인 핵군축과 종국적인 핵무기 철폐를 추동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제10조: 해당 기관들은 이 법령을 집행하기 위한 실무적 대책을 철저히 세울 것이다.>

위 법령이 공표된 지 하루 뒤인 2013년 4월2일 북한의 원자력총국 대변인은 현존하는 핵시설의 용도를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에 맞게 조절·변경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북한의 모든 핵시설을 재정비하여 다시금 가동시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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