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는 이렇게 망가지기 시작했다!

차베스 마두로는 베네수엘라판 주사파였다. 카스트로에 영혼을 팔아 쿠바의 지도를 받는 종속국으로 전락했다.
*2019년에 조갑제-김영남이 쓴 글


<중남미에 두 나라가 있다. 하나는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다. 역내(域內) 어느 국가보다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 모든 국민들에게 무료 의료혜택과 고등교육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나가려 하고 있다. 언론은 자유롭고 정치체제도 투명하다. 야당은 선거에서 격렬하게 싸울 수 있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가 이뤄지기도 한다. 이 국가는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빈발하는 군부독재를 따라가지도 않았다. 오래된 미국과의 동맹과 무역 및 투자 관계로 인해 많은 다국적 기업들의 중남미 본사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나라는 남미에서 최고의 사회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다. 물론 부패와 불공정이 있는 개발도상국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다른 후진국과 무엇을 비교해 봐도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국가는 중남미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이자 가장 새롭게 독재정권이 들어선 곳이다. 학교는 학생이 줄어들어 텅 빈다. 수십 년간 이뤄진 투자 부족과 부패, 말라리아와 홍역과 같은 질병 창궐로 의료체계는 무너져버렸다. 극소수의 엘리트층만이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살인사건이 기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이번 세기에 중남미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배출한 국가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 사이 수백만 명이 이 나라를 떠났다. 부정선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 소수의 언론마저도 탄압을 우려해 정부측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2018년 말 기준 이 국가의 경제력은 5년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코카인 밀수의 허브로 사용되고 있고 정치 엘리트층의 핵심 인사들이 마약과 관련해 미국에서 기소를 당하기도 했다. 물가는 25일마다 두 배로 뛴다(올해는 물가상승률이 1000만 퍼센트로 예상된다). 주요 공항에서도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일부 항공사들이 소수의 승객들만을 태운 채 이 공항을 찾는다.
이 두 나라는 같은 국가이다. 전자(前者)는 1970년대 초반의 베네수엘라이고 후자(後者)는 지금의 베네수엘라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급변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상의 글은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최근 실린 ‘베네수엘라의 국가적 자살’이라는 논문 일부이다. 전쟁이 나지도 않았는데 전쟁을 겪은 나라보다 더 망가진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다 보니 한국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하나의 참고가 될 것 같아 소개한다.


차베스와 카스트로의 만남, 비극의 시작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취임식이 1월10일에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날로 황폐해지고 있다. 좌파포퓰리즘은 전쟁보다 더 무서운 피해를 끼친다는 증거이다. 작년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약 140만%, 인구의 10분의 1인 300만 명이 콜롬비아를 비롯한 이웃 국가로 탈출했다. 500만 명 이상이 추가로 탈출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한다. 국민의 64%는 기근으로 몸무게가 11kg 이상 줄었다.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가진 나라가 이 모양이다.
베네수엘라가 국가적 자살의 길로 가게 된 데는 전임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이를 승계한 마두로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지만, 이 두 사람의 배후에서 이 나라를 사실상 식민지로 조종한 쿠바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일부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재앙에 쿠바의 지문(指紋)이 묻지 않은 곳이 없다고도 주장한다. 쿠바가 베네수엘라의 국가 지도부 및 보안 정보기관을 장악, 조종하고 있는 것은 북한 노동당정권이 남한의 좌파정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추정하는 데 하나의 시사점이 될 것이다.
차베스는 1954년 시골 지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고 소수의 급진좌파 세력들과 함께 민주주의 정권을 뒤집으려는 계획을 짰다. 1992년 4월 그의 쿠데타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수감생활을 시작했다.
1994년 출소한 그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찾아가 극진한 환영을 받았다. 차베스는 돈도 정치경험도 조직적인 지지세력도 없었지만, 카스트로는 차베스의 잠재력을 바로 알아봤다고 한다. 카스트로와 차베스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시골에서 태어나 지금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에 대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야구투수로서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정치를 위해 메이저리그의 꿈을 포기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차베스가 공산주의자가 된 배경에는 시몬 볼리바르가 있다. 볼리바르는 19세기 초 중남미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키려고 한 영웅이다. 차베스는 이런 볼리바르 이미지를 대중에 팔았다. 차베스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 부패를 청산하고 원유로 번 부(富)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겠다는 공약을 내놨고 대승했다. 그는 1999년에 대통령 당선인 자격으로 쿠바를 다시 찾았다. 차베스는 쿠바를 가리켜 베네수엘라가 항해(航海)에 나서야 할 ‘행복의 바다’라고 했다.
친미(親美)노선의 베네수엘라는 1959년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이후 경제 지원을 중단하고 거리를 둬왔었다. 1974년에 양국간 국교 수립이 이뤄졌지만 차베스의 대통령 당선 전까지의 관계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차베스 정권 출범 이후 두 나라는 밀착하기 시작한다.


후계자로 쿠바의 심부름꾼 선택

1920년대부터 약 50년간 급격하게 성장해온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1970년대 들어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서민층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길 역시 좁아졌다. 이때 차베스는 양극화(兩極化)를 강조하며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경제학자인 라카르도 하우스만과 프란치스코 로드리게즈는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베네수엘라는 1970년에 들어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됐고 세계에서 20대 부자 국가 반열에 들었다.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스페인과 그리스, 그리고 이스라엘보다 높았고 영국보다는 13% 적은 수준이었다. 1980년대 초 국제유가(油價)시장이 침체되자 고속 성장 추세가 멈추게 됐다. 원유 수출 이익이 줄어든다는 것은 정부 지출 감소와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축소, 환율가치 하락, 물가상승, 금융위기, 그리고 높은 실업률과 서민층의 고통 확대를 뜻하였다.>

차베스는 양극화를 줄이고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국민들을 현혹시켰고 정부 지출을 계속 늘렸다. 그는 2013년 사망할 때까지 14년간 좌파포퓰리즘으로 베네수엘라를 통치했다. 차베스는 2011년 암 진단을 받았다. 브라질과 미국의 최고 전문의들이 치료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믿을 수 있는 곳은 쿠바뿐이라고 판단, 쿠바에서 치료받았다. 차베스는 2012년 12월8일 마지막 TV 연설에서 당시 부통령이었던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선출해줄 것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그의 사망 사실은 2013년 3월5일에 공개됐고 마두로는 그해부터 대통령직을 맡았다.
마두로도 차베스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였다. 10대에 수도 카라카스에서 親쿠바 성향의 마르크스당에 가입했다. 20대에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쿠바에 가서 혁명가 교육을 받았다. 그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차베스 밑에서 외교장관으로 활동했다. 차베스와 쿠바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보여줬고 이 때문에 후계자로 발탁된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원유를, 쿠바는 保安전문 인력을 제공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관계는 비대칭적으로 이뤄졌다. 경제적으로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쿠바의 의존도가 컸다. 2012년 기준 양국(兩國)의 무역 규모는 쿠바 GDP의 20.8%를 차지했으나 베네수엘라에는 GDP의 4% 수준이었다.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원유를 수출했는데, 대금의 60%만 수출 시점에서 90일 이내에 지불하도록 했고 나머지는 25년간 1%의 이율로 지급하게 했다. 베네수엘라의 對쿠바 원유수출은 2003년 기준 매일 3만 8000배럴이었다. 이 수치는 2008년에 들어 9만 7000배럴로, 2012년에는 10만 4000배럴로 늘었다. 쿠바 원유 수요의 61%를 베네수엘라가 공급했다.
정치적으론 쿠바에 대한 베네수엘라의 의존도가 더 컸다. 베네수엘라는 쿠바로부터 의료진과 교사 그리고 정권을 방어하기 위한 전문인력을 제공받았다. 첩보인력과 군 관련 자문관을 데려와 현(現)정권을 전복하려는 세력을 막도록 했다.
숫자에 대해선 다소 여러 의견이 있지만 쿠바는 약 4만 명의 전문인력을 베네수엘라로 보냈다. 이중 75%는 의료 관련 종사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수엘라는 이들의 인건비로 연간 54억 달러 정도를 쿠바에 지급한다. 2010년 베네수엘라는 쿠바 전문 인력 한 명당 매월 1만 1317달러를 쿠바 정부에 지불했다. 베네수엘라 현지에서 근무하는 쿠바인 의사의 월급은 425달러에 불과하지만 쿠바에서 받던 월급 64달러보다는 훨씬 많은 금액이었다. 나머지는 쿠바 정권의 손으로 들어갔다. 북한정권도 해외송출 인력의 봉급에 대하여 같은 착취 수법을 쓴다.


베네수엘라를 사실상 좀비처럼 통치하는 쿠바

쿠바에서 파견된 전문인력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베네수엘라 정권을 지키는 데 투입된 정보요원 및 軍 자문관들이다. 이들 규모가 만 명 이상이란 주장도 있다. 약 400명은 대통령 경호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 정보요원 및 군 자문관들은 베네수엘라의 법무부와 정보당국, 군 기관에 파견되어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쿠바 요원들이 자국(自國) 내에서 총기를 소지하고 사람들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다. 이들은 중남미로 송출되는 방송에도 개입, 親쿠바, 親베네수엘라 성향의 보도를 하도록 조종한다. 쿠바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베네수엘라를 사실상의 식민지로 통치하기 시작했다.
쿠바는 자국(自國)에서 실험하여 성공한, 군사 쿠데타를 막는 노하우을 베네수엘라에 수출, 마두로 정권을 유지시켜주고 있다. 마두로 정권은 우호적인 장교들을 부자로 만들어줬다. 베네수엘라 군대는 장군 숫자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미군 장군의 수(數)보다 많다. 정권은 말을 듣지 않는 고위 장교들을 감옥에 가두고 처형함으로써 정부에 대항하려는 의지의 씨를 말렸다.
루이스 알마그로 미주기구(OAS) 사무총장은 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에 파견된 쿠바 전문인력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알마그로 사무총장은 베네수엘라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反인도주의적 범죄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약 4만 6000명의 쿠바 전문인력이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신경계(神經系)를 장악한 쿠바 정보요원과 군 자문관의 수가 약 1만 5000명에 달한다며 ‘베네수엘라에 있는 쿠바 점령군’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들 점령군은 고문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도 했다. 쿠바는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