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영향력 행사하여 장난 치지 못하도록 하라"
미국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안전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소련을 통하여 북한정권에 압력을 넣은 일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슐츠 국무장관, 칼루치 국방장관까지 나서서 소련을 움직였다. 이런 사실은 1988년 6월8일 청와대로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한 프랭크 칼루치 미 국방장관의 보고에서도 잘 드러난다. 칼루치 장관은 크라우 합참의장 등을 대동했다. 그는 그 직전에 있었던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에 대해서 보고하면서 서울올림픽의 안전문제에 대해 거론했음을 밝혔다.
<북한문제와 올림픽 안전에 관해서는 수차 소련 측에 의견을 개진하였는 바, 셰바르드나제 외상은 오찬시 레이건 대통령께 북한은 도발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대하여 미 측에서는 그렇다면 다행한 일이나, 분명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슐츠 장관은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소련 측에 북한이 최근 SA-5 미사일을 전방배치 한 것을 지적한 바 있고, 본인도 만찬석상에서 옆에 앉은 그로미코 의장(과거 25년간 외상을 지냄)에게 촉구하였던 바, “그는 북한에 알아본 바, 올림픽을 방해할 하등의 의사가 없다고 하더라” 고 하였으며, 본인이 한국 측에 그렇게 전달해도 되겠냐고 문의한데 대해서 좋다고 확답을 하였습니다. 후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소련 외무부는 북한에 올림픽 방해책동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 건에 관한 소련의 언질은 단호한 것이 아니고, 항상 약간의 회피성을 보였는바, 예컨대 “북한은 독립주권국가이다” “우리의 영향력엔 한계가 있다” “우리도 참가하므로 똑같이 안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는 등, 단서가 붙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칼루치 장관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대한 의구심도 전했다.
<정상회담 자체에 관하여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르바초프는 특징 있고, 소련 지도자 중에서는 새로운 타입인 바, 명석하고 활동적이며, PR에 능한 사람이며, 교섭에 있어서는 끈질긴 기교(hard-driving)를 보였습니다. 레이건 대통령과 각료 간에 이견이 있을 법한 문제를 캐내어 대통령의 구미에 맞도록 함으로써, 그 간격을 활용코자 하는 기교도 보였습니다. 예컨대 대통령 앞에서 슐츠와 본인을 지적하면서, “저 사람들이 SDI에 관해서 허위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든지, 본인을 지적하면서 “왜 귀하는 해군 편만 드느냐” 는 등의 예가 있습니다. 토론이 종료되어 공동성명서 초안에 합의된 후에 다시 평화공존 등 70년대 상투어를 들어 적절하지 않은 표현을 집어넣으려 하기도 했고, 마치 미·소가 모든 지역분쟁 문제에 의견합치를 본 듯이 표현하려하거나, 미·소 양국이 지역적 군사균형을 이룩한 듯이 표현 하고자도 하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계기로 다른 문제도 자동 해결될 듯이 표현하려 하였는데, 이는 미·소 양대국에 의한 세계질서 공동책임(condominium)에 합의한 듯이 선전함으로써, 미국과 동맹국 간을 이간하려는 저의로 보였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러한 소련 측 주장을 일축하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철군도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회교반란군, 무자헤딘에 의한 패배 결과입니다. 미국으로서는 회의의 논제를 인권문제, 미 측이 제기하고자 하는 지역문제와 군축문제 등으로 한정토록 노력하였습니다. 군축문제에 있어서는 아직도 많은 난관이 놓여 있습니다. 예컨대 이동성 미사일의 해체는 확실한 검증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 START교섭은 SDI와 무관해야 한다는 점, 검증되지 않는 해상발사 순항미사일의 삭감을 억제한다는 점 등입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Perestroika)과 신외교정책의 궁극 목표는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스탈린주의를 레닌주의 정도로 바꾸는 것, 다시 말해서 나쁜 체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경계를 늦추도록 하면서, 자국경제를 현대화하고, 서방의 기술을 도입해서 기술낙후를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소련의 기본 노선의 수정이라는 아무런 보장이 없으며, 군사 면에 관한 한 아무런 변동이 없습니다. 야조프 국방상은 본인에게 수차 “소련의 국방정책은 방위위주이니 믿어 달라” 고 말했지만, “지금은 방위 위주라면 전에는 무엇 이었는가” 에는 대답을 못하고, “방위위주라면 군사력 구성도 변화되어야 하지 않느냐” 에 대해서는 시간이 소요된다고만 말하고, 각종 공격적 전투부대, 예컨대 공정사단, 도하작전부대, 자동소총부대의 기갑화 등 공격적 부대편성에도 명확한 대답이 없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만찬석상에서 군비를 감축, 사회복지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그러면 “왜 군비를 공개하지 않느냐” 고 물은 데 대해서는 “어려운 것이지만 좋은 생각이다” 라고만 했습니다. 소련의 전체 군사비는 전혀 삭감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도 연간 GNP의 15-17%, 연간 실질증가율 3% 등 막강한 방위산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군사비 지출이 과다함을 인정하고 가급적 이를 절약하여 다른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며, 논의는 많으나, 아직 확실한 방향은 정해지지 않은 듯합니다. 이와 같은 소련의 대내외 정책은 계속적으로 주시,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인은 금년 8월 다시 소련을 방문하여 대화를 계속할 것이나, 서방세계는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칼루치 장관은 레이건처럼 데탕트라는 용어를 싫어했다.
<데탕트란 용어는 70년대에 서방은 긴장완화, 소련은 국방력 강화를 초래한 그릇된 인식을 준 용어이므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소련의 정세추이를 전망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소련사회가 보다 개방되고 경제가 현대화되며, 해외 팽창주의가 정지되고, 기본인권이 존중되며, 각 지역분쟁을 해결하는 데 보다 합리적인 대화로 응해 온다면 좋을 것이나, 고르바초프의 Glasnost, Perestroika, 군축제의 등은 서방으로 하여금 긴장을 완화토록하고, 그동안에 기술혁신과 경제 현대화를 기하여 가령 1995년경에 가서 현재보다 엄청나게 발전된 대량무기를 생산해낸다면 서방으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책을 범하는 것입니다. 소련과의 대화를 계속하는 일방 분명한 검증을 전제로 한 군축을 추진하고 소련의 저의에 현혹되지 않도록 경계를 해야 합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성공하여 소련 체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까 경계했다. 미국 레이건 정부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소련 내부에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하여 체제붕괴로 이어지도록 유도했다. 그런 목적의식을 깔고서 레이건 행정부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잘한다고 부채질하였다. 그러면서도 소련에 대한 경제 원조는 일체 하지 않았다.
김정일 정권을 향해서 개혁, 개방하라고 아무리 애걸복걸을 해도 김정일이 그 말을 듣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는 개혁, 개방하면 내부적으로 붕괴된다는 것을 소련이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등소평의 중국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사회주의의 반을 포기함으로써 살아 남았다. 김정일은 사회주의의 반이 아니라 10분의 1만 포기해도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런 김정일을 향하여, 개방만 하면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들어주겠다고 미끼를 던지고 있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다.
미국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안전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소련을 통하여 북한정권에 압력을 넣은 일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슐츠 국무장관, 칼루치 국방장관까지 나서서 소련을 움직였다. 이런 사실은 1988년 6월8일 청와대로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한 프랭크 칼루치 미 국방장관의 보고에서도 잘 드러난다. 칼루치 장관은 크라우 합참의장 등을 대동했다. 그는 그 직전에 있었던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에 대해서 보고하면서 서울올림픽의 안전문제에 대해 거론했음을 밝혔다.
<북한문제와 올림픽 안전에 관해서는 수차 소련 측에 의견을 개진하였는 바, 셰바르드나제 외상은 오찬시 레이건 대통령께 북한은 도발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대하여 미 측에서는 그렇다면 다행한 일이나, 분명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슐츠 장관은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소련 측에 북한이 최근 SA-5 미사일을 전방배치 한 것을 지적한 바 있고, 본인도 만찬석상에서 옆에 앉은 그로미코 의장(과거 25년간 외상을 지냄)에게 촉구하였던 바, “그는 북한에 알아본 바, 올림픽을 방해할 하등의 의사가 없다고 하더라” 고 하였으며, 본인이 한국 측에 그렇게 전달해도 되겠냐고 문의한데 대해서 좋다고 확답을 하였습니다. 후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소련 외무부는 북한에 올림픽 방해책동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 건에 관한 소련의 언질은 단호한 것이 아니고, 항상 약간의 회피성을 보였는바, 예컨대 “북한은 독립주권국가이다” “우리의 영향력엔 한계가 있다” “우리도 참가하므로 똑같이 안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는 등, 단서가 붙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칼루치 장관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대한 의구심도 전했다.
<정상회담 자체에 관하여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르바초프는 특징 있고, 소련 지도자 중에서는 새로운 타입인 바, 명석하고 활동적이며, PR에 능한 사람이며, 교섭에 있어서는 끈질긴 기교(hard-driving)를 보였습니다. 레이건 대통령과 각료 간에 이견이 있을 법한 문제를 캐내어 대통령의 구미에 맞도록 함으로써, 그 간격을 활용코자 하는 기교도 보였습니다. 예컨대 대통령 앞에서 슐츠와 본인을 지적하면서, “저 사람들이 SDI에 관해서 허위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든지, 본인을 지적하면서 “왜 귀하는 해군 편만 드느냐” 는 등의 예가 있습니다. 토론이 종료되어 공동성명서 초안에 합의된 후에 다시 평화공존 등 70년대 상투어를 들어 적절하지 않은 표현을 집어넣으려 하기도 했고, 마치 미·소가 모든 지역분쟁 문제에 의견합치를 본 듯이 표현하려하거나, 미·소 양국이 지역적 군사균형을 이룩한 듯이 표현 하고자도 하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계기로 다른 문제도 자동 해결될 듯이 표현하려 하였는데, 이는 미·소 양대국에 의한 세계질서 공동책임(condominium)에 합의한 듯이 선전함으로써, 미국과 동맹국 간을 이간하려는 저의로 보였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러한 소련 측 주장을 일축하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철군도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회교반란군, 무자헤딘에 의한 패배 결과입니다. 미국으로서는 회의의 논제를 인권문제, 미 측이 제기하고자 하는 지역문제와 군축문제 등으로 한정토록 노력하였습니다. 군축문제에 있어서는 아직도 많은 난관이 놓여 있습니다. 예컨대 이동성 미사일의 해체는 확실한 검증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 START교섭은 SDI와 무관해야 한다는 점, 검증되지 않는 해상발사 순항미사일의 삭감을 억제한다는 점 등입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Perestroika)과 신외교정책의 궁극 목표는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스탈린주의를 레닌주의 정도로 바꾸는 것, 다시 말해서 나쁜 체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경계를 늦추도록 하면서, 자국경제를 현대화하고, 서방의 기술을 도입해서 기술낙후를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소련의 기본 노선의 수정이라는 아무런 보장이 없으며, 군사 면에 관한 한 아무런 변동이 없습니다. 야조프 국방상은 본인에게 수차 “소련의 국방정책은 방위위주이니 믿어 달라” 고 말했지만, “지금은 방위 위주라면 전에는 무엇 이었는가” 에는 대답을 못하고, “방위위주라면 군사력 구성도 변화되어야 하지 않느냐” 에 대해서는 시간이 소요된다고만 말하고, 각종 공격적 전투부대, 예컨대 공정사단, 도하작전부대, 자동소총부대의 기갑화 등 공격적 부대편성에도 명확한 대답이 없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만찬석상에서 군비를 감축, 사회복지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그러면 “왜 군비를 공개하지 않느냐” 고 물은 데 대해서는 “어려운 것이지만 좋은 생각이다” 라고만 했습니다. 소련의 전체 군사비는 전혀 삭감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도 연간 GNP의 15-17%, 연간 실질증가율 3% 등 막강한 방위산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군사비 지출이 과다함을 인정하고 가급적 이를 절약하여 다른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며, 논의는 많으나, 아직 확실한 방향은 정해지지 않은 듯합니다. 이와 같은 소련의 대내외 정책은 계속적으로 주시,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인은 금년 8월 다시 소련을 방문하여 대화를 계속할 것이나, 서방세계는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칼루치 장관은 레이건처럼 데탕트라는 용어를 싫어했다.
<데탕트란 용어는 70년대에 서방은 긴장완화, 소련은 국방력 강화를 초래한 그릇된 인식을 준 용어이므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소련의 정세추이를 전망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소련사회가 보다 개방되고 경제가 현대화되며, 해외 팽창주의가 정지되고, 기본인권이 존중되며, 각 지역분쟁을 해결하는 데 보다 합리적인 대화로 응해 온다면 좋을 것이나, 고르바초프의 Glasnost, Perestroika, 군축제의 등은 서방으로 하여금 긴장을 완화토록하고, 그동안에 기술혁신과 경제 현대화를 기하여 가령 1995년경에 가서 현재보다 엄청나게 발전된 대량무기를 생산해낸다면 서방으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책을 범하는 것입니다. 소련과의 대화를 계속하는 일방 분명한 검증을 전제로 한 군축을 추진하고 소련의 저의에 현혹되지 않도록 경계를 해야 합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성공하여 소련 체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까 경계했다. 미국 레이건 정부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소련 내부에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하여 체제붕괴로 이어지도록 유도했다. 그런 목적의식을 깔고서 레이건 행정부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잘한다고 부채질하였다. 그러면서도 소련에 대한 경제 원조는 일체 하지 않았다.
김정일 정권을 향해서 개혁, 개방하라고 아무리 애걸복걸을 해도 김정일이 그 말을 듣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는 개혁, 개방하면 내부적으로 붕괴된다는 것을 소련이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등소평의 중국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사회주의의 반을 포기함으로써 살아 남았다. 김정일은 사회주의의 반이 아니라 10분의 1만 포기해도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런 김정일을 향하여, 개방만 하면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들어주겠다고 미끼를 던지고 있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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