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을 향해서 "저런 고얀 사람이 있나"

이승만, 韓日 국교 수립을 강권하다가 거절당하자 회담장을 나가는 아이젠하워를 향해서 일갈.
1954년 7월 李承晩 대통령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기 위하여 미국을 방문했다. 그는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국의 어중간한 對공산권 정책을 직설적으로 비판하여 미국 행정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7월30일 백악관에서 2차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에 묵고 있던 李 대통령에게 미 국무성 副의전장이 정상회담 후 발표할 공동성명서 초안을 들고 왔다. 이 초안에는 李 대통령이 싫어하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호적이고 운운'하는 대목이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수립하여 동아시아에서 미군 작전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 여기에 李承晩 대통령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李 대통령은 미국이 일본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싫었고, 한국의 國力이 약한 입장이므로 일본과 수교하는 데는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李 대통령은 즉각 참모들을 불러 모았다. 백두진, 양유찬, 김정렬씨 등이었다.
'이 친구들이 나를 불러놓고 올가미를 씌우려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날 필요가 없지'

제2차 韓美 장상회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인데 이승만 대통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백악관에서 '왜 안 오느냐'고 전화가 걸려왔다. 측근들이 '그래도 회담은 하셔야 합니다'라고 건의하여 李 대통령은 10분쯤 늦게 백악관내 회담장에 도착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韓日 국교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을 꺼냈다. 화가 나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내가 있는 한 일본 하고는 상종을 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해버렸다. 아이젠하워(愛稱이 아이크) 대통령은 화를 내면서 일어나 옆방으로 들어갔다. 李 대통령은 이때 아이크의 등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저런 고얀 사람이 있나. 저런'

물론 이 말은 통역되지 않았다. 아이크는 가까스로 화를 식히고 회담장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이승만 대통령이 일어났다.
'외신 기자 클럽에서 연설하려면 준비를 해야 합니다. 먼저 갑니다'

李 대통령에 이어 아이크도 나가버렸다. 양유찬 駐美대사가 덜레스 국무장관을 설득하여 실무자들끼리 회담을 계속했다. 그래도 미국은 군사원조 4억2000만 달러, 경제원조 2억8000만 달러, 도합 7억 달러의 對韓원조를 약속했다(한표욱 지음, '이승만과 한미외교' 참고. 중앙일보사 발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때 유럽전선의 연합군 사령관으로서 노르만디 상륙작전을 지휘했다. 독특한 웃음이 그의 매력이었다. 1952년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와 큰 차로 당선되었다. 이때 선거구호는 'I Like Ike'(나는 아이크를 좋아한다)였다. 아이크는 당선자 시절 한국전선을 방문했다. 그는 6.25 전쟁을 끝내겠다는 공약을 했었다. 이때부터 李承晩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1875년생인 이승만은 정상회담 당시 79세로서 아이크보다 15세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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