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史/미국판 親北세력?

政敵 레이건을 치려고 소련과 손 잡은 케네디.
폴 켄고르가 쓴 '레이건의 십자군-소련을 붕괴시킨 내막'은 조갑제닷컴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막내 동생 테드 케네디가 1980년대에 레이건 대통령을 치기 위하여 소련 정보기관과 접촉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케네디 상원의원은 레이건의 호전적 對蘇정책이 핵전쟁을 몰고올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하여 그와 같은 반역질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보수파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좌파정권과 김정일 정권의 거래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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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케네디(Ted Kennedy)라는 요소

소련의 고급 자료에 의하면, 모스크바는 1984년 선거 운동 기간에 레이건을 패배시키는 데 있어 뜻밖의 도움을 받을 뻔했다. 만약 소련의 자료가 주장하고 있는 바가 실제로 일어났다면, 이는 의심할 바 없이 1984년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최고위층 관료들조차 이 일에 대해 아는 이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고, 따라서 미국의 신문이나 방송 매체들은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만약 이 일이 알려졌더라면, 1984년 선거의 주요 기삿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대통령직에 오른 지 첫 3년 동안, 그중에서도 특히 1983년 봄 이후 레이건은 퍼싱-II라고 알려진 중거리 핵 미사일(INF)을 서유럽에 배치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레이건은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이 동유럽에 배치된 소련의 중거리 핵 미사일을 철수하도록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만약 크레믈린이 그 미사일들을 철수한다면 미국이 INF를 배치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건은 이를 ‘제로-제로 옵션’(zero-zero option)이라고 불렀다. 즉, 그는 양쪽 모두에서 INF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자 했던 것이다. 만약 안드로프프가 이를 수락하지 않는다면, 레이건은 나토 동맹국들에게 INF 배치를 요청할 생각이었다.

이 정책에 대한 반대는 극렬(極烈)했다. 소련은 선전 기관을 동원해 레이건을 핵 전쟁광이라 부르며 그를 한 번도 핵무기를 접한 바 없는 서유럽 국가의 때묻지 않은 영토에 핵 미사일을 배치하고자 하는 호전주의자(好戰主義者)라고 비난하였다. 이와 함께 런던과 본(Bonn), 그리고 뉴욕에 이르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서구의 핵 동결 운동 역시 소련의 비난에 가세하였다. 핵 동결주의자들은 대규모 반대 시위를 조직했고,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언어를 동원해 레이건을 공격하였다.

전 세계의 좌파들은 레이건이 세계를 핵 아마겟돈(*주: 성경에 나오는 용어로, 선과 악의 세력의 싸울 최후의 전쟁터)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 협회(Physician for Social Responsibility)’의 헬렌 칼데콧(Helen Caldicott) 의사 같은 핵 동결주의자들과 몇몇 가톨릭 주교(主敎)들은 레이건이 핵으로 세상을 날려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결국 안드로포프는 레이건의 제안을 거절했다. 사실 레이건의 제안은 1970년대 후반 서독의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와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이 제안했던 내용에 기초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어려움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레이건 팀은 서독의 헬무트 콜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같은 지도자들을 설득해 INF 배치에 대한 동의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1984년 동안 미사일들은 배치되었고, 좌파들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INF와 SDI, 그리고 그 밖에도 레이건의 많은 생각들은 진보주의자들을 분노로 떨게 만들었고, 그중엔 미 상원의원 에드워드 ‘테드’ 케네디(Edward ‘Ted’ Kennedy, 민주당-매사추세츠)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극히 민감한 KGB 자료에 의하면, 그는 이로 인해 매우 이례적인 일을 감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레이건의 핵 정책에 대한 반대 중 가장 흥미를 자극하는 이 자료는 수십 년간 소련의 고문서(古文書)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었다.8 만약 이 자료에 나타난 구체적 사항들(부록 참고)이 정확하다면, 테드 케네디는 유리 안드로포프와 매우 보기드문 동지 관계를 맺고자 시도했다.

한 해 전인 1983년, 더 정확히 말하면 1983년 5월 14일, KGB의 수장(首長) 빅토르 체브리코프(Viktor Chebrikov)는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가장 높은 비밀등급이 매겨진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서한(書翰)을 전했다. 그 편지의 제목은 ‘공산당 서기장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보내는 상원의원 케네디의 요청에 관하여’였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였다.
‘올해 5월 9일부터 10일에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의 친한 친구이자 속을 터놓는 오랜 벗인 제이 터니(J. Tunney)가 모스크바에 머물렀다. 케네디 의원은 터니에게 비밀 연락선을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안드로포프에게 전달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이 편지에서 터니로 불리는 이는 전직(前職) 상원의원 존 터니(John V. Tunney, 민주당-캘리포니아)인데, 그는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상원의원을 지냈다. 1976년 선거에서 패한 이후 1983년 당시 터니는 평범한 미국 시민이었다.

터니와 케네디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터니가 케네디의 연락책으로 일했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들은 버지니아 대학 법대 시절 같은 방을 썼으며, 졸업 후엔 종종 함께 보트를 타거나 산에 오르곤 하였다. 터니는 자신의 첫 아이에게 테드 케네디의 이름을 붙여 주었고, 케네디는 그 아이의 대부(代父)가 되었다. 두 사람은 그들의 전처(前妻)들과 함께 케네디의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곤 했다. 그들은 곧잘 같은 사교 모임에 나갔고 둘이 함께 알고 지내는 친구들도 많았다. 어찌된 일인지 터니는 하이애니스포트(Hyannisport) 출신(*주: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케네디 고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 말투를 썼다. 둘은 너무나 친해서 한때 터니는 “내 남은 생애 동안 테디 케네디의 친구로 불리고 싶지 않다”고 염려했을 정도였다.

오랫동안 케네디의 가족들과 친구로 지내게 되면서 터니는 심지어 그 유명한 테드의 형을 만날 기회까지 갖게 되었다. 터니가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테드와는 달리 열렬한 반공주의자였던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는 직접 터니에게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를 부를 때 사용해 온 바리크(Varick)라는 미들네임을 떼어버리라고 충고했을 정도였다. 미들네임에서 너무 러시아 냄새가 난다는 것이 냉전의 용사 잭의 생각이었는데, 유권자(有權者)들이 터니를 공산주의자로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1983년 5월의 KGB 자료에 의하면 존 바리크 터니는 상원의원 테드 케네디가 현재의 미소(美蘇) 관계로 인해 ‘깊이 심려(心慮)’하고 있다는 것을 공산주의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모스크바에 갔다. 케네디는 이처럼 위험한 상황을 유발시킨 주요 원인이 ‘레이건의 호전적 태도’, 특히 서유럽에 INF를 배치하고자 하는 그의 정책이라고 믿었다. ‘케네디에 의하면, 현재의 위협은 레이건 대통령이 그의 정책에 대해 어떤 수정안(修正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빅토르 체브리코프는 편지를 통해 안드로포프에게 보고했다. 레이건의 이러한 태도는 그의 정치적인 성공으로 더욱 심해졌는데, 이로 인해 그는 오히려 자신의 방식에 대해 더욱 큰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완고해졌다.

체브리코프는 케네디가 1984년 레이건의 재선을 좌절시킬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레이건 대통령의 취약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당시 발생한 일에 대한 소련의 해석은, 케네디가 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었다. ‘레이건에게 있어 유일한, 그리고 진정한 위협은 전쟁과 평화, 미소 관계와 관련된 문제들이다’라고 체브리코프는 편지에서 밝혔다.
‘케네디 의원에 의하면, 이러한 문제들은 의심할 바 없이 선거 운동의 가장 중요한 사안(事案)으로 떠오를 것이다.’
핵동결 운동권과 의회의 내부에 레이건에 저항하는 세력이 존재했다. 하지만 아직 레이건 반대파의 세력은 미약했고 케네디는 이를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체브리코프는 밝혔다. 즉 케네디는 레이건이 ‘선전’에 능한 반면, 소련 관료들의 (아마도 선전이 아님이 분명한) 말은 ‘맥락에서 벗어나서’ 또는 ‘제멋대로 폄하(貶下)되어’ 인용되는 상황을 통탄해 마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체브리코프는 이른바 케네디의 제안을 안드로프포에게 전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평화라는 목적을 위해 그리고 군국주의적인 레이건의 정책에… 맞서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하며 현명하다고 케네디는 생각한다.”
터니와의 만남을 통해 소련이 해석한 바에 따르면, 케네디가 권한 첫 번째 조치는 안드로포프가 케네디를 모스크바로 초청하여 비공개 회담을 갖는 것이었다. 체브리코프는 “케네디 의원에 의하면, 이 회담의 주요 목적은 소련의 관리들에게 핵무기 축소 문제에 대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더욱 설득력 있고 준비가 된 모습으로 미국 방송에 출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케네디는 진보적인 공화당원인 마크 햇필드(Mark Hatfield)의 대동을 제안했다고 체브리코프는 전했다.

둘째로, “케네디는 미국 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올해 (1983년) 8월부터 9월 사이에 안드로포프와 미국 방송국 사이에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KGB 수장은 보고했다. 체브리코프의 말에 의하면, 이 매사추세츠의 상원의원은 안드로포프가 미국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할 것을 제안했다. ‘케네디와 그의 친구들’은 안드로포프가 월터 크론카이트(Walter Cronkite)나 바바라 월터스(Barbara Walters) 같은 TV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할 것이라고 체브리코브는 적었다. 체브리코프에 의하면, 케네디는 안드로포프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좀더 낮은 서열(序列)의 소련 관리들, 특히 군 관계 관리들’을 위해서도 인터뷰를 주선하겠다고 제안했는데, 이를 통해 그들 또한 ‘소련의 평화적인 의도를 미국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었다. 이러한 조치는 소위 레이건 행정부가 조작해 내고 있던 정보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케네디가 ‘미국과 소련 관계를 개선하고’, ‘핵전쟁의 위협을 뿌리 뽑고’, ‘세계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한’ 소련의 PR 캠페인을 조직하는 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체브리코프는 해석했다. “케네디는 안드로포프와 다른 소련 지도자들의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체브리코프는 설명하였다.
이 편지의 마지막 단락에서, 체브리코프는 1984년 케네디의 정치적인 계획과 전망에 대해 언급하였다. KGB의 수장은 마지막으로, “케네디는 1984년 선거 운동 동안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그에게 공화당을 상대로 한 선거전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주도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란 점을 도외시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소련 당서기장에게 말했다. 즉 케네디 의원은 “이 호소에 대한 대답을 열렬히 고대하고 있으며 그 대답은 터니를 통해 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고 체브리코프는 전했다.

KGB 문서에 의하면, 케네디가 안드로포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목적은 두 가지 전선에서 레이건을 패배시키기 위해서였다. 즉, 그는 레이건 대통령의 국방 정책의 방향을 바꾸고, 1984년 재선에서 레이건이 패배하기를 바랐다. 만약 이 보고서가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라면, 미국 상원 의원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좌파 정치인들이 어느 정도로 레이건을 막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보여 주는 주목할 만한 본보기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레이건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에겐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9
1983년 봄부터 1984년에 이르는, 즉 INF부터 SDI에 이르는 레이건의 조치들로 인해 분명 몇몇 진보주의자들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레이건은 모스크바뿐만 아니라 워싱턴 내부에서 그리고 거의 워싱턴(혹은 적어도 워싱턴 내의 일부)과 모스크바의 합동 공격이라는 막대한 반대에 직면해 있었다.

레이건이 공직을 떠난 뒤, 터니는 자신이 그 기간 동안 약 15차례에 걸쳐 소련을 방문했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몇몇 다른 이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미국 상원의원을 위해 (그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중개자’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런던 타임스(London Times) 지에 털어놓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는 몇몇 의원들의 관점을 대표하였다.”
그는 1992년 2월 타임스에 보도된 몇 개의 체브리코프의 보고서 문장 중 몇몇 부분에 대해선 이의(異意)를 제기했다. “그와는 달리 나는 만약 그들이 (군비 문제와 관련해) 삭감을 발표한다면 훌륭한 PR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고 터니는 말했다.1

어떤 면에서 평론가들은 케네디의 행동을 치졸하기 짝이 없는 정치적 기회주의라고 비난할 것이다. 분노한 보수주의자들은 그의 제안에 ‘배신(背信)’이란 꼬리표를 붙이고, 그가 전시(戰時) 동안, 즉 이른바 공포되지 않은 ‘냉전’ 동안 미국의 적을 돕고자 하였다고 비판할 것이다. 그리고 냉전의 정점에서 크레믈린을 향해 손을 뻗은 점에 대해 그를 적군에게 이용당하는 ‘멍청이’ 혹은 ‘공산주의자 테드’라고 부르며 혹평(酷評)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다른 한편에서 케네디의 옹호자들은 케네디 의원이 세계 평화를 위해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을 지라도.11 그들은 케네디가 당시 핵에 의한 인류의 전멸이라는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는, 통제불능 상태에 이른 미소(美蘇) 대결 관계를 염려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 안드로포프를 비롯한 소련의 고위 관료들은 미국이 핵 공격을 감행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고, 테드 케네디를 포함한 서구의 많은 좌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케네디를 옹호하고자 열심인 민주당원들은 케네디가 선거철에 현직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약화시키기 위해 모스크바를 향해 손을 내민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즉, 또 다른 KGB 자료에 의하면 이 매사추세츠의 상원 의원의 이전 목표물은 자신의 피와 살이나 다름없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인 지미 카터였다. 무슨 이유인지 케네디는 카터가 아프가니스탄 문제와 관련해 소련에 대해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믿었다. 1980년에 케네디는 전혀 알 수 없는 이유로 소련이 이제 막 침공하여 차후 10여 년간 머물게 될 아프가니스탄에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전념하고 있다고 확신해 마지 않는 것 같았다.
2002년 워싱턴 D.C.의 우드로 윌슨 센터(Woodrow Wilson Center)에서 열린 저명한 국제 냉전사 프로젝트(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에서 바질리 미트로힌(Vasiliy Mitrokhin) 역시 소련의 자료를 인용하여 “존 터니가 1980년 3월 5일에도 케네디의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즉 그때도 케네디는 고조(高調)되는 긴장과 공격성에 대해 크레믈린과 그 독재자가 아니라 대통령직을 놓고 자신과 맞서 싸우고 있는 미국의 총사령관에게 그 책임을 전가(轉嫁)했던 것이다. 터니는 그 매사추세츠의 위대한 진보주의자가 이를 (미트로힌의 표현에 의하면) ‘스스로 조치를 취해야 할 자신의 의무’로 보았다고 말했다.

1984년 선거 운동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면서, 테드 케네디는 레이건의 재선을 막기 위해 이례적인 일들을 계속해 나갔다. 그는 1984년 3월, 롤링 스톤(Rolling Stone)을 위한 기사에서, 한 번 더 레이건의 ‘스타워즈 계략(計略)’을 비난하면서 레이건을 ‘현대 정치사에 등장한 최고의 사기꾼’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서 그는 ‘레이건의 백악관 팀이 1985년에 있을 전쟁에 대한 일종의 전주곡(前奏曲)으로 1984년에 평화 운운(云云)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억측을 펼쳤다. 케네디는 “핵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고 돌아다니는 관료들로 이루어진 행정부에 대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러한 케네디의 경고는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1985년은 물론 그 후 어떤 시기에도 레이건은 핵탄두(核彈頭)를 발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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