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念은 漢字語 그대로 理論化된 信念이다. 가치관이므로 대단히 경직되어 있다. 의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진실의 세계는 다르다.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선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고정관념, 선입감, 假說, 그리고 자신까지도 의심해야 한다. 진실에 도달하려면 겸손해야 하고 이념에 사로잡히면 오만해진다. 이념과 사실의 관계에 대해선 '모든 이념(이론)은 실천을 통하여 檢證되어야 한다'는 말이 그럴 듯하다. 공산주의는 실천을 통하여 쓰레기임이 증명되었음으로 이념으로서 폐기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실천을 통한 검증결과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좋은 이념임이 증증되었으니 생명력이 있다.
이념과 사실이 충돌할 때는 사실 편을 들어야 한다. 이념은 主觀이고 사실은 客觀이다. 객관적인 사실은 주관적인 신념보다 더 소중하다. 사실을 짓누르는 이념은 크게 실수할 때가 있다. 이념과잉은 사실을 무시하고 질주하다가 큰 사고를 낸다.
부시가 시작한 이라크 전쟁의 功過는 지금 판단하기엔 이르다. 미군 철수 이후에도 이라크가 민주적인 체제를 유지하여 中東의 모범사례가 된다면 후세인을 제거하여 그런 길을 열어준 부시 대통령은 높은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1950년 북한군이 남침했을 때 트루먼 대통령은 미군을 보내 한국을 지켜주는 결정을 내린다. 미국 여론은 그러나 중공군이 개입하고 미군이 38선 이하로 밀려나자 악화되기 시작했다. 1953년 트루먼 대통령이 퇴임할 때 한국전쟁은 승리도 패배도 아닌, 소모적 高地戰으로 변하여 미국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이로 해서 트루먼 대통령의 퇴임時 지지율은 20%대로서 사상 최악이었다. 그 후 한국이 발전하고 냉전이 서방세계의 승리로 끝나자 트루먼 대통령의 한국전 참전 결정은 미국의 냉전승리를 가져온 위대한 결단으로 평가받는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념과잉'이 빚은 큰 실수가 하나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군대를 독재자 후세인에게 충성한 惡의 집단으로 간주하여 이라크가 항복한 직후 군대 전체를 해산해버렸다. 군대의 속성상 지휘부만 바꾸고 사병집단은 그대로 써도 되는데 장교, 사병 모두를 같이 취급하여 수십만명의 무장집단을 실직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원한을 품고 무기를 갖고 고향으로 돌아가 叛軍이 되었다. 지휘부를 바꾸고 이라크 군대를 부렸다면 治安을 미군이 직접 맡지 않아도 되었는데, 이라크 군대가 해산되니 미군이 반군의 저항을 분쇄하면서 治安을 유지해야 했다. 이라크의 두 종파, 시아파와 순니파 사이의 內戰도 일어났다. 이런 內戰도 이라크 군대가 남아 있었다면 미군의 직접 개입 없이 진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종교內戰에 미군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것이 이라크 군대 해산이란 바보짓이었다. 이라크 군대 해산 결정은 이라크 사정에 밝은 CIA와 상의도 없이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안에서 이뤄졌다.
히틀러도 1941년 여름 소련으로 쳐들어가면서 같은 실수를 했다. 그는 소련 침공을 시작하기 전 독일군과 SS(보안부대)에 대해서 공산당 간부, 유태인, 집시, 아시아系, 장애자들을 처형하라고 지시했다. 히틀러는 공산당과 유태인의 국제적 음모가 독일을 포위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독일군이 파죽지세로 쳐들어가니 러시아와 사이가 나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하기 시작했다. 유태인들을 잡아 죽이면서 보니 이들은 독일군에 대항하기 위한 아무런 조직도 준비도 없는 상태였다. 이때 히틀러가 反蘇的인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스탈린의 탄압을 받던 이들을 포섭하여 활용했더라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공산당과 유태인은 무조건 죽일 놈이란 그릇된 선입감에 빠져 黑白을 구분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독일편이 될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유태인들도 무기를 들고 게릴라가 되어 독일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부시는 이라크 군대 전체를 敵으로, 히틀러는 소련 전체를 敵으로 보고 대하는 바람에 苦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敵의 내부를 잘 들여다 보고 틈이 보이면 서로 분열시킬 생각을 해야지 敵 전체를 몽땅 惡으로 규정하면 敵의 단결을 돕는다. 2차 대전 때 연합군도 같은 실수를 했다. 영국, 미국, 소련은 독일과 일본에 대해서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독일과 일본사람들 전체를 敵으로 간주한 셈이다. 이 무조건 항복 요구는 히틀러나 天皇으로 하여금 '항복은 죽음이다'면서 국민들을 決死抗戰으로 몰아가는 구실을 제공했던 것이다. 연합군이 정권과 군대와 주민들을 분리하여 슬기롭게 대응했더라면 전쟁은 2년 일찍 끝났을 것이라고 말하는 역사학자들도 있다.
사실은 신념보다 더 소중하니 더 존중되어야 한다.
理念과잉이 부른 재앙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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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15, 2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