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텔레비전 방송에 사는 집이 노출된 뒤 피신생활을 하고 있다는 대한항공기 폭파범 金賢姬씨가, 진상이 다 드러난 이 사건에 대해서 말도 안 되는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과 이 의혹을 확산시킨 방송과 과거사 조사를 한 국정원을 상대로 반격에 나섰다고 月刊朝鮮 12월호가 보도했다. 金씨는 국정원, 법원, 그리고 知人에게 호소문, 탄원서, 항의문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의혹제기자들, 국정원, 방송, 진실화해委로부터 일종의 인민재판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호소문을 입수한 월간조선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범인 金賢姬씨는 좌파정권 시절에 많이 시달렸다. 국내외적으로 이미 확정된 사건의 진실을 뒤엎으려는 세력이 좌파정권과 친북세력을 업고 金씨를 몰아세웠다. 사건 희생자의 유족들 가운데서 일부도 이에 가세했다. 어용방송들은 말도 안 되는 의혹들을 모아서 특집방송으로 내보냈다. 드디어 국가정보원이 과거사 조사 차원에서 안기부 시절의 이 사건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결정했다. “태양이 서쪽에서 뜬다”는 수준의 억지를 국가기관이 국민세금을 써가면서 검증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김현희씨 집 주변을 취재하고, 국정원 산하 조사위원회는 김현희씨를 불러 신문하겠다고 나섰다. 김씨는 사는 집이 방송에 노출되자 거주지를 옮겼다. 그는 국정원의 조사 요구에 불응했다. 그럼에도 국정원의 조사위원회는 작년에 “조작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불복한 의혹 제기자들은 진실 화해 위원회에 또 다시 의혹을 풀어달라고 재조사를 신청했고 받아들여졌다. 법원의 3심, 국정원의 4심에 이어 진실 화해위가 5심을 하고 있다. 김현희씨는 자신이 인민재판을 받고 있는 기분이라고 한다.>
2003년 10월 金賢姬씨 주변에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정원의 모 직원으로부터 국정원 내부가 시끄러우니 외국으로 이민을 갈 것을 권고 받았다는 것이다. 담당직원은 전화로 수십 차례에 걸쳐 대한항공 폭파 사건에 관한 질문들을 했다. 담당 경찰간부로부터는 2년 정도 他지역에 거주해 줄 것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그 시기 방송 기자들이 金씨의 거주지 주변을 며칠 동안 배회하면서 취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하 사제단)은 2001년 11월23일 천주교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이른바 ‘대한항공 858편 사건 관련 7대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2003년 11월에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의 주장은 2003년 11월18일자 MBC ‘PD수첩’ 프로에 ‘16년간의 의혹, KAL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의혹 제기자들의 억지 주장에 많은 시간을 내어주고, 김정일의 범행임을 뒷받침한 수많은 증거들을 묵살하고, 의혹을 부풀리는 방향으로 편집된 프로였다. 그런 왜곡의 수법이 올해 광우병 선동 프로 제작에도 나타났었다.
김현희씨는 호소문에서 <주변 상황으로 마음이 매우 어수선한 이 시기에 국정원 담당관으로부터 MBC- PD수첩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그 요구를 거절했다. 그는 재차 지휘부에서 이미 결정한 사항이니 그 지시에 따를 것을 강요해왔다고 한다. 그래도 완강히 거부했는데, 이것이 큰 禍根(화근)이 되었다고 김씨는 생각한다.
11월 중순경, 김씨의 남편이 경기도 분당 모 식당에서 국정원 담당간부와 직원들을 만나고 있는 바로 그 시각에, 밤을 틈타 카메라를 멘 기자 여러 명이 김씨의 집을 ‘습격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MBC-PD수첩의 취재기자들이었다는 것이다.
MBC 기자들에게 ‘습격당한’ 다음날 새벽 김현희씨는 계속해서 시달릴 것이 두려워 어린 자식들을 업고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MBC-PD 수첩 프로에서 취재진은 김현희씨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아파트 주변 인물들을 만나고 불이 켜진 창문도 보여준다. 취재진은 김현희씨가 산다는 호실의 문을 두드리고 문틈으로 나오는 여인의 목소리도 들려준다.
<취재기자: 김현희씨 관련 프로그램을 취재 중에 있어요. 여기 사신다 그래서…
아파트 경비원: 누가 그럽디까?
취재기자: 저희가 다 알고 왔거든요.
아파트 경비원: 모릅니다.
-내레이션: 그런데 주민들 중에는 金씨를 봤다는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아파트 주민1: 항상 선글라스 쓰고, 모자 눌러 쓰고 다녀서 알아요.
-취재기자: 아파트 주민들하고 교류는 거의 없네요?
-아파트 주민2: 없어요. 일체 교류 없다고. 알기야 다 알지. 주민들은 다 알지. 알아도 일체 뭐, 외면한다고.
-내레이션: 김씨의 집을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본인이 아니라며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수차례 요청 끝에 문틈 사이로 얼핏 얼굴을 드러낸 김씨. 그러나 그녀는 김현희 임을 끝까지 부인했습니다.
“불안해 죽겠어요. 자꾸 오지 마세요. 저 혼자 자고 있는데… (인터폰)더 이상 말씀드릴 게 없네요. 자꾸 이러면 경찰 부를 겁니다. 짜증나 죽겠어요. 정말…”>
북한측도 아마 이 장면을 유심히 보았을 것이다. 며칠 뒤 이번에는 SBS 취재기자들이 김씨의 집 주변을 취재하고 다녔다고 한다.
김현희씨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만 5년 동안 제가 살던 보금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렇게 피난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사이 가짜로 낙인찍히고 부도덕한 여자로 몰리게 되었다”고 호소했다.
MBC 취재기자들이 ‘습격한’ 다음날, 김현희씨의 ‘임시 피난처’ 근처를 찾아 온 담당경찰간부는 김씨의 남편에게 “신문을 함부로 펴서 읽지 말고, 우유 같은 배달물은 조심해야 한다. 이번 일은 000 의원을 치기 위한 것이다. 모 지역에 두 달 정도 거주해 주겠는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하는데 며칠 뒤 이번엔 국정원 담당관으로부터 김씨의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그는 MBC 방송에 출연하거나 인터뷰해줄 것을 재차 요구했다. 김현희씨는 자신의 출연거부로 국정원이 오래 전부터 기획하고 추진해온 사업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게 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고 한다. 공작원의 눈에는 그 사업이 ‘공작’ 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현희씨는 방송사들은 국정원의 묵인하에 자신의 집을 취재했고, 경찰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으며, 그 배경에는 음모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김현희씨는 '내가 북한공작원이 아니라면 외계인이란 말인가'라면서 이렇게 집요한 의혹제기를 하는 이유가 '김정일이 범행을 지령한 사실을 뒤집으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김현희씨는 국정원 과거사委와 진실화해委의 조사에 응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음모와 조작의 도구가 되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국정원이 안기부와 김현희 죽이기를 기획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국정원의 과거사 조사에 관여했던 전직 간부는 '의심이 있어서 재조사를 한 것이 아니고 의심하는 이들이 있기에 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국정원의 과거사 조사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결정하여 한 것이다. 우리는 한번도 대한항공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조작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재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의문이 있어서 재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한 것이다. 조사위원들을 그쪽 인사들로 주로 구성하고, 조작설을 주장하던 사람을 조사관으로 채용한 것도 그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김현희씨를 불러 조사를 해보고 싶었지만 본인이 완강히 거부함으로 강제하지 않았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조사 결과가 ‘조작 없었음’으로 나오니 조사위원들이 난감해 했다. 나는 ‘이건 落張不入(낙장불입. 화투판에 한번 내어놓은 패는 물리지 못한다는 뜻)’이라면서 발표를 하도록 밀어붙였다. 국정원이 결론을 낸 것을 가지고 진실화해위원회가 또 다시 조사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없는데도 일부 유족들이 신청을 하니 받아준 것이다. 법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니 우리로선 말릴 수가 없었다. MBC가 김현희씨 집을 방송에서 노출시킨 것은 잘못 된 것이다. 국정원이 집 주소를 알려준 것이 아니고 방송사가 찾아낸 것이다. 한국의 언론과 정치인들이 보호받아야 할 사람을 보호해주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개탄스럽다.”
피신중인 金賢姬의 호소, "나는 인민재판을 당하고 있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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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18, 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