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비동맹 체제로 가야 했다는 암시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이 갔어야 할 체제적 志向(지향)을 ‘비동맹체제’로 인식시키기 위하여 ‘광복과 대한민국의 수립’이라는 章에서 비동맹 운동을 중점적으로 기술한다. 중국을 비동맹국가로 설정하고 비동맹과 관련된 사항을 사진 3장, 그림 1개, 도표 1개를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북한의 변화와 평화통일의 과제’라는 장에서는 김일성이 참여한 비동맹(쁠락 불가담)운동을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이 교과서의 비동맹에 대한 반복된 강조는 북한 헌법 前文(1998년)-<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세계정치의 원로로서...쁠럭 불가담 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하여>와 북한 역사서에 반복되어 나오는, 쁠락 불가담 운동을 이끈 김일성에 대한 찬양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반둥...회의에 참가한 나라들은...냉전체제 아래에서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블록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는다는 비동맹 노선을 택하고 평화 10원칙을 채택하였다>(금성 교과서 251페이지)
<북한은 종전 소련과 중국에 편중되었던 외교관계에서 벗어나 제3세계 비동맹 세력에 적극적으로 접근하였다...(사진 설명)김일성이 티토 대통령과 얼싸안고 있다. 티토는 비동맹세력의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303)
<수령님께서는 쁠럭 불가담 운동을 강화발전시키는 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쁠럭 불가담 운동은 그 어떤 쁠럭에도 들지 않고 온갖 지배와 예속을 반대하고 자주성을 지향하는 진보적 운동이며 제국주의 반동세력에 대처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위력한 반제혁명 력량이다>
(북한 고등중학교 5년,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 66)
비동맹 운동을 했던 인도네시아, 이집트, 유고슬라비아, 북한 등은 뒤가 좋지 않았다. 한국은 韓美동맹으로 성공했다. 이미 역사적 심판이 내려진 비동맹 운동을 ‘광복과 대한민국 수립’이란 章에서 집중적으로 서술한 것은 필자들의 반미성형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을 제국주의로 인식하고 저항하도록 선동
筆陣(필진)의 이런 반미성향은 금성교과서의 반미적 서술로 확인된다. 미국에 대한 표현은 집중적으로 反美감정을 부추기는 방향이다. 미국(미군정)을 서술하는 167회의 표현 중 몇몇 문장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부정적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全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희귀한 교과서로 기록될 만하다.
<미군정의 방침은 도리어 농민들의 반발을 더욱 크게 하였다...미군정에 대한 여론은 갈수록 나빠졌다...미군정의 사회경제정책에 반발하는 철도노동자의 총파업이 일어났다...민중봉기로 이어졌다.. 수십만명의 민중들은...미군정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로 돌입하였다>(260 페이지)
<한국경제는 점점 더 미국의 영향 아래 놓였으며...한국의 경제는 점점 미국에 종속되어 갔다>(324-325페이지)
북한 역사서의 아래 記述과 비교해보자.
<미군은 남조선에 들어가자마자 자기의 식민지 예속화정책을 실시하는 데 착수하였으며...경제적으로는...미국경제에 예속시키는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현대조선력사’ 217)
<남조선인민들은..미제의 식민지 예속화 정책과 민족분열정책을 반대하며...과감한 투쟁을 일으켰다...총파업을 단행하였다(219)...미제의 야수적 탄압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은 대중적인 시위투쟁으로 넘어갔으며...각종형태의 반미구국투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220)>(‘현대조선력사’)
금성 교과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만든 역사 참고 교재인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옮긴 듯한 서술을 했다.
<일장기 대신 올라간 것은 태극기가 아니었다. 일장기가 걸려 있던 그 자리에 펄럭이는 것은 이제 성조기였다...자주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기도 했다>는 금성교과서의 기술은, 전교조 교재의 <미군이 서울에 들어와 맨 처음 한 일은 총독부 건물에 걸려있는 일장기를 내리고 미국기를 올리는 것이었다>와 비슷하다.
금성교과서, 韓美동맹보다 非동맹체제 선호
- 김광동(나라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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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22, 1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