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16일 새벽, 朴正熙 소장은 혁명 공약 인쇄물을 들고 남산으로 달리는 車中에서 김종필에게 처음으로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아니, 장 장군이 그럴 수 있어? 나한테 총을 쏘라고 시키다니. 우리가 그동안 알려 줄 것은 다 알려 줬잖아.”
남산 KBS 방송국에 박정희가 도착했을 때 공수부대원들은 아나운서와 방송 기술자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당직 아나운서인 박종세는 1층 보도계실로 피했다가 다시 텔레타이프실로 옮겨 웅크리고 있었다. 연초에 이런 일을 예상하여 방송국 내부를 염탐해 둔 적이 있었던 김종필이 “박 아나운서 있소, 나오시오.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오”라고 외치면서 들어왔다.
박종세가 김종필을 따라 바깥으로 나오니 별을 단 장성들이 여러 명 서 있었다. 키가 작고 바싹 마른 사람이 앞으로 나오더니 “나 박정희라고 하오”라고 하며 손을 내밀었다. 이 바쁜 상황에서도 박정희는 박종세에게 군사혁명의 필연성에 대하여 간략한 설명을 한 뒤 혁명공약이 적힌 전단을 건네주었다. 박정희 일행은 박종세를 앞세워 2층 主방송실로 올라갔다. 박종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저 혼자서는 방송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거짓말 말어. 썩었구나 이놈도. 너 따윈 죽여 버려야 돼.”
한 공수단 장교가 철거덕 권총을 장전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한웅진 준장이 “자넨 참아”라고 말리고는 “지금 다섯 명이나 되는데도 더 있어야 한단 말이오”라고 했다. 방송기계를 다룰 줄 아는 엔지니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공수단원들에게 이끌려 기술직원들이 나타났다. 이윽고 主조정실에 빨간불, 파란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웅진은 “형님, 직접 방송하십시오”라고 권했다. 한웅진은 간밤 차중에서 “방송이라도 하고 죽읍시다”라고 농담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박정희는 예의 그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가만히 있었다. 행진곡이 울리고 박종세가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今朝未明(금조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 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첫째, 반공을 國是(국시)의 제1義(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할 것입니다. 둘째,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 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舊惡(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 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하여 淸新(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 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다섯째, 민족적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집중할 것입니다. 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애국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본 군사혁명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 없이 各人(각인)의 직장과 생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육군 중장 장도영>
대한민국 성인 남녀들이 달달 외우게 되는 이 혁명 공약은 김종필이 초안을 잡고 박정희가 교열을 본 것이다. 이 문장엔 한 시대의 대명제, 또는 유행어가 될 단어들이 들어 있었다. 舊惡, 기성 정치인, 청신한 기풍, 기아선상, 참신한 등등. 이 혁명 공약문은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관념적인 용어가 적은 대신에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표현들이 많다. 언어가 사상을 표현하고 사상이 시대를 만들어 간다면 이 혁명 공약문은 實事求是(실사구시), 즉 현실과 사실에서 논리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행동윤리로 삼고 있는 새로운 국가 지도층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박종세 아나운서는 이 방송문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꼿꼿이 서서 방송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박정희는 부하들이 “각하, 한 번만 꼭 직접 방송을 하십시오”라고 권해도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李錫濟 중령은 혁명 방송이 나간 뒤 안도감과 함께 허탈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 사무실이나 문을 열고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맞은편 여직원에게 “물 한 잔 주시오”라고 했다. 여직원이 끙끙대면서 말했다.
“저… 저…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요.”
공포감 때문에 ‘허리가 빠진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盜用(도용)되고 있는 사이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중장은 비로소 병력 동원 명령을 내린다. 소공동에 있던 서울방첩대 사무실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그는 해병대와 공수단 병력이 한강 다리를 건너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수색 30사단 李相國(이상국) 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밤의 반란 기도를 제압한 李 준장의 목소리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고 있었다. 장도영은 “지금 어느 정도의 병력을 출동시킬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1개 중대 정도는 되겠습니다.”
장도영은 다른 장교를 시키면 또 반란군으로 돌변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사단장이 직접 지휘하여 서울로 들어와 시청을 경비하라고 지시했다. 全軍(전군)을 통틀어 제2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출동한 병력은 1개 중대가 유일했다. 이 중대도 시청에 도착했을 때는 혁명군에 접수되어 총구를 거꾸로 돌리게 된다.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행동을 개시하여..."
- 조갑제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9-03-06, 1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