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과 같은 독재자는 任期가 없다. 민주국가의 지도자는 任期가 있다. 임기 있는 지도자가 정치적 욕심에 빠져 초조한 심정으로 임기 없는 독재자와 상대하면 百戰百敗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그런 마음으로 김정일을 상대하였다가 국가이익에 심대한 손실을 초래하였다. 김대중, 노무현은 국가이익을 희생시키고 개인적 私慾을 채운 경우에 해당한다. 김정일에 대하여 잘 아는 고 申相玉 감독은 2001년 10월호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가진 사람과 단 5년의 시간밖에 없는 사람이 벌이는 게임에서 누가 더 유리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모든 믿음을 주고 뭔가 「통했다」고 바라보며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과, 그런 만남조차 지나간 반 세기와 앞으로 올 한 세기 동안의 권력 유지에 필요한 단막극의 무대장치쯤으로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 정말 「대화」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아직도 생각하십니까?]라고 비판하였다. 글의 일부를 소개한다.
[1978년 金正日은 먼저 저의 아내인 崔銀姬를 끌어다 놓고, 6개월 후에는 똑 같은 방법으로 저를 저들의 소굴로 납치해 갔습니다. 저는 거기서 두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前後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저들의 감옥에서 인간의 한계를 오가며 곰의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그동안 저들은 崔銀姬를 극진하게 대우하고 회유하면서 제가 수령과 지도자의 하해 같은 「은혜」에 감복, 전향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세월이 5년이나 걸렸습니다. 영화 감독 한 사람을 끌어다 놓고 그를 회유하여 써먹기 위하여 무려 5년이라는 세월을 참을성 있게 공을 들이며(?) 기다려 준 것입니다.
대통령의 정부 같으면 그럴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에게는 어떤 한 인간을 대상으로 5년이라는 긴 시간을 소모하여 공을 들일 여유가 없습니다. 5년 임기를 통하여 처음 1년은 정신없이 보내고 나머지 1년 반은 레임덕과 차기에 대한 불안 때문에 더욱 정신이 없는 상황인데 임기 전체와 맞먹는 세월이 걸리는 일을 계획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끈기를 낼래야 낼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金正日은 다릅니다. 그가 지닌 시간은 40~50년입니다. 그보다 더 길게 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번 일본에 밀입국했다가 쫓겨난 그의 아들 김정남의 얼굴에 묻어 있는 세습왕조의 거친 때를 보니 적어도 한 세기는 지배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가진 사람과 단 5년의 시간밖에 없는 사람이 벌이는 게임에서 누가 더 유리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모든 믿음을 주고 뭔가 「통했다」고 바라보며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과, 그런 만남조차 지나간 반 세기와 앞으로 올 한 세기 동안의 권력 유지에 필요한 단막극의 무대장치쯤으로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 정말 「대화」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아직도 생각하십니까? 가장 큰 문제는 北의 무슨 위원장이라는 사람과 그 참모들이 남쪽 시간의 촉박성, 남쪽 지도자들이 시간에 볼모 잡혀 있다는 사실을 훤히 꿰뚫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南과 北의 지도자가 전혀 다른 時空(시공)에 살고 있다는 또 한 가지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벌써 짐작하시겠지만 지난 여름 金正日의 러시아 행차가 그것입니다. 서울에서는 北의 국방위원장이 언제 올 것이냐, 오기는 올 것인지 말 것인지를 나라 전체의 에너지를 실어 논란하느라 날이 새는데 정작 당사자인 金正日 자신은 대륙횡단 열차에 몸을 싣고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또는 스탈린이 그랬던 것처럼 유장하게 한 달 동안이나 「황제식」 여행을 즐겼던 것입니다.
秦始皇(진시황)이 마차에 올라 통일 제국을 순시했던 것처럼 그는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 유럽까지 행차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손에 쥔 지도자가 편도 보름이 걸리는 열차 여행을 하면서 그 열차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을까, 도대체 나라를 그렇게 오래 비워놓고도 안전한 것일까, 하고 호기심 반, 걱정 반의 추측들이 난무했습니다. 한 마디로 삼류 주간지의 토픽감이었지요. 일부에서는 金正日이 혹시라도 반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인물 150여 명을 모조리 열차에 함께 싣고 다녔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유장한 행차를 즐기고 있는 金正日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대통령의 입장은 도대체 뭡니까? 창피하다는 생각에 앞서 인간의 본질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불행하게도 대통령은 아직도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金正日은 올 것이다. 와야 한다』 고.
金正日은 서울에 못 옵니다. 언젠가 올지도 모르지만 대통령이 기다리는 때에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는 선물을 가지고 오지는 못합니다. 혹시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는 때에 온다고 하더라도 기대했던 통일무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무드가 일어난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가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통일과 대통령과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통일 사이에는 태평양보다 넓은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통일은 구실이고 金正日의 정말 목적은 권력의 유지, 강화입니다. 北은 그렇다 치더라도 南에서조차 통일이 그런 藥方文(약방문)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통일을 논하기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초청해놓고 그에게 모든 열쇠를 맡겨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金正日은 오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명백하고도 간단합니다. 金正日이 귀하를 平壤에 초청해놓고 연출한 일련의 연극들은 對內(대내), 對外(대외)의 이중적인 용도에 의한 것입니다.]
그들은 왜 김정일에 졌던가?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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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3-07, 16: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