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와 李秉喆의 역사적 만남

연재 21/李 회장은 기업의 중요성을 역설하였고, 朴 의장은 기업을 키워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믿게 된다.
삼성물산 사장 李秉喆은 회고록에 1961년 6월27일 군사정부의 실력자 朴正熙 부의장과 나눈 대화를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그는 부정 축재자 11명의 처벌 문제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었다. 나는 부정 축재 제1호로 지목되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말문을 열 것인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박 부의장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좋으니 기탄없이 말해 주십시오”라고 재촉했다.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소신을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부정축재자로 지칭되는 기업인에게는 사실 아무 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 부의장은 뜻밖인 듯 일순 표정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계속했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탈세를 했다고 부정 축재자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러나 현행 세법은 수익을 훨씬 넘는 세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 戰時(전시) 비상사태하의 稅制(세제) 그대로입니다. 이런 세법하에서 세율 그대로 세금을 납부한 기업은 아마 도산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만일 도산을 모면한 기업이 있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박 부의장은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태도를 보여 주었다.

“액수로 보아 1위에서 11위 안에 드는 사람만이 지금 부정 축재자로 구속되어 있지만 12위 이하의 기업인도 수천, 수만 명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 사람들도 똑같은 조건하에서 기업을 운영해 왔습니다. 그들도 모두 11위 이내로 들려고 했으나 역량이나 노력이 부족했거나 혹은 기회가 없어서 11위 이내로 들지 못했을 뿐이고 결코 사양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선을 그어서 죄의 유무를 가려서는 안 될 줄 압니다.

사업가라면 누구나 이윤을 올려 기업을 확장해 나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업을 잘 운영하여 그것을 키워 온 사람은 부정 축재자로 처벌 대상이 되고 원조금이나 은행 융자를 배정받아서 그것을 낭비한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고 한다면 기업의 자유경쟁이라는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부정 축재자 처벌에 어떠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어디까지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박 부의장은 “그렇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업하는 사람의 본분은 많은 사업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그 생계를 보장해 주는 한편, 세금을 납부하여 그 예산으로 국토방위는 물론이고 정부 운용, 국민 교육, 도로 항만 시설 등 국가 운영을 뒷받침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부정 축재자를 처벌한다면 그 결과는 경제 위축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장 稅收(세수)가 줄어 국가 운영이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오히려 경제인들에게 경제 건설의 일익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국가에 이익이 될 줄 압니다.”

박 부의장은 한동안 내 말을 감동 깊게 듣는 것 같았으나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국가의 大本(대본)에 필요하다면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이 정치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동안 실내는 침묵에 빠졌다. 잠시 후 미소를 띤 박 부의장은 다시 한 번 만날 기회를 줄 수 없겠느냐고 하면서 거처를 물었다. 메트로호텔에서 연금 상태에 있다고 했더니 자못 놀라는 기색이었다. 이튿날 아침 이병희 서울분실장이 찾아오더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다른 경제인들도 전원 석방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나와 친한 사람들일 뿐 아니라 부정 축재자 1호인 나만 호텔에 있다가 먼저 나가면 후일에 그 동지들을 무슨 면목으로 대하겠는가. 나도 그들과 함께 나가겠다”고 거절했다>(《호암자전》)

朴正熙는 최고회의 법사위원장 李錫濟를 불렀다.

“경제인들은 이제 그만했으면 정신 차렸을 텐데 풀어주지.”

“안 됩니다. 아직 정신 못 차렸습니다.”

“이 사람아, 이제부터 우리가 권력을 잡았으면 국민을 배불리 먹여 살려야 될 것 아닌가. 우리가 이북만도 못한 경제력을 가지고 어떻게 할 작정인가. 그래도 드럼통 두드려서 다른 거라도 만들어 본 사람들이 그 사람들 아닌가. 그만치 정신 차리게 했으면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국가의 경제 부흥에 그 사람들이 일 좀 하도록 써먹자.”

이석제는 朴 부의장의 이 말에 반론을 펼 수 없었다. 다음날 이석제는 최고회의 회의실에 석방된 기업인들을 모아 놓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차고 있던 큼지막한 리볼버 권총을 뽑아들더니 책상 위에 꽝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놓고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여러분들을 석방시키는 일에 반대했습니다. 그런데도 朴 부의장께서 내놓으라고 하니 내놓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원조 물자, 국가 예산으로 또 다시 장난치면 내 다음 세대, 내 후배 군인들 중에서 나 같은 놈들이 나와서 다 쏴죽일 겁니다.”

6월 29일 아침 李秉喆 사장이 묵고 있던 메트로호텔을 찾아온 이병희 정보부 분실장은 기업인들이 전원 석방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이병철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박정희의 유연한 정신세계와 겸손한 자세, 그리고 사심이 적은 태도가 그로 하여금 단기간에 경제의 본질을 배우게 했다. 실천력을 중시하는 박정희는 이론에 치우치는 학자나 신중한 관료들보다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기업인들과 더 잘 호흡이 맞게 된다.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지낸 적이 있는 金立三은 1961년 6월 하순에 있었던 박 의장과 기업인들의 만남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한국경제신문 연재 《김입삼 회고록》).

<박정희 부의장은 유원식 최고위원을 통해서 金容完(김용완) 경성방직 사장(뒤에 전경련 회장), 全澤珤(전택보) 천우사 사장, 鄭寅旭(정인욱) 강원산업 사장을 최고회의로 불렀다.

“경제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견을 듣기 위해서 뵙자고 한 것입니다. 순서 없이 평소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말씀 해주시지요.”

정중하고 공손한 말투였다. 전택보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1947년에 홍콩에 갔을 때 목격한 일입니다. 모택동 군에 쫓겨 홍수처럼 밀려온 피란민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물까지 수입해서 마시는 홍콩에서 수백 만의 피란민들이 직장을 갖고서 활기차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그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바로 ‘보세가공’을 해서 먹고살고 있더군요. 홍콩에 비교해서 우리 여건은 유리하다고 봅니다.” >

전택보가 실감 있게 설명해가도 박정희는 확실한 감을 잡지 못했다고 한다. ‘보세가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박정희는 “미안하지만 내일 또 시간을 낼 테니 다시 오셔서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했다. 이튿날에도 경제 강의 같은 기업인들의 설명이 계속 되었다고 한다.

김용완 사장은 “대학이 너무 많다. 4년제 대학의 반은 기술 전문대학으로 개편하여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김 사장은 또 “부정축재혐의로 구속된 기업인들을 풀어주십시오. 기업인이란 개미처럼 죽을 때까지 일할 운명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일할 수 있는 기업인을 양성하는 데는 20~30년이 걸립니다”라고 했다.

정인욱 사장은 “우리나라에선 지하 30m 이하의 심층에는 어떤 광물이 있는지 탐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를 탐사하여 실업자에게 일터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경제정책에 목말라하고 있던 박정희는 이런 충고를 너무나 진지한 자세로 경청하여 기업인들은 오히려 긴장감을 느낄 정도였다는 것이다.

박정희와 이병철 등 기업인의 만남은 조국 근대화를 꿈꾸던 한 혁명가가 기업인들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뜨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가난한 농민 출신이고 질박한 생활이 몸에 밴 박정희는 부자들에 대해서는 생래적인 거부감을 가졌으나 그의 실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는 그런 기업인들을 부려서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쪽으로 선회하게 만들었다.

박정희는 그러나 대기업이 대자본을 바탕으로 하여 권력에 도전한다든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드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박정희 시대의 정경유착은 국가가 철저히 대기업을 통제하여 국가의 방향대로 몰고 가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후대의 정경유착과 성격이 다르다.


1961년 7월18일에 CIA가 중심이 되어 미국의 여러 정보기관들이 작성한 ‘한국의 현 정권에 대한 특별 정보 판단서’는 ‘한국 군사 정권의 성격과 의도’를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혁명이 성공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미국 정부는 박정희 정권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어느 방향으로 나라를 끌고 가려는지에 대해서 끊임없는 의문을 던지고 답을 내고 있었다.

이 판단서는 ‘지금 한국을 통치하고 있는 군인들은 완강하고 민족주의적이면서 야심찬 집단이다’고 했다. ‘그들은 성인으로서의 삶을 거의 모두 군대에서 보냈고 많은 전투 경험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이 일하는 방식은 지식인이나 직업 정치인들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들은 조직의 중요성과 정치 통제 기술을 잘 알고 있는 행동가들이다. 그들은 정부와 군부의 기득권층이 무능하고 부패한 데 대해서, 그리고 문민정부 아래서 발전이 더딘 데 대해서 오랫동안 절망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권위주의적인 국가관을 갖고 있으며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질병을 치료하는 데는 公衆(공중)의 기율과 확고하고도 중앙집권적인 정부 통제가 필요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한국의 새로운 지배층은 한국인들의 삶에 새로운 질서와 규율을 주입시키고 대대적인 경제 개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를 희망하고는 있지만 국내 문제는 독자적으로, 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이끌어나가려 한다. 머지않은 장래에 정권을 민간인들에게 이양할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당면한 문제의 복잡성과 그것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기 시작했다>

1961년 10월28일 새뮤얼 버거 駐韓 미국 대사가 국무부에 보고한 電文은 혁명 정부에 대한 극찬이었다.

<군사 정권이 들어선 지 다섯 달이 되었다. 이 정권은 권위적이고 군사적인 면에서 對外的인 인상이 다소 나쁜 면이 있긴 하지만 정열적이고 성실하며 상상력과 의지력으로 꽉 차 있다. 이 정권은 일반 국민들로부터는 적극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고 대중적 지지 기반도 없지만 진정한 의미의 ‘위로부터의 혁명’을 시작하여 전면적이고 본질적인 개혁을 하고 있다. 前(전) 정부 하에서 토의되었거나 구상되었던 개혁 프로젝트들─은행 신용 정책, 무역, 실업자들을 위한 공공 공사의 확충, 탈세 대책, 농업과 노조 대책, 교육 및 행정 부문, 복지(교도소의 개혁, 윤락녀 재활 대책, 가족계획 사업, 상이군경과 유자녀 지원) 등이 실천되고 있다. 많은 개혁은 긍정적이고 상당수는 미국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들이다.

몇몇 개혁들은 뜻은 좋았지만 너무 급히 서두는 바람에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 혁명 정부는 그런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매점매석 행위, 뇌물, 정경유착, 밀수, 군사 물자 橫流(횡류), 깡패, 경찰과 기자들의 공갈 행위에 대한 군사 정부의 단속은 이미 효과를 내고 있다. 공산당의 침투 공작에 대한 사찰 활동과 반공 선전의 질과 양이 모두 증가했다.

군인 출신 장관들은 행정을 유능하고 효율적으로 지휘함으로써 우리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다. 과로로 인하여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아 문제이다. 송요찬 내각수반은 근 한 달간 건강이 좋지 않았다. 가장 유능한 장관 중의 한 사람인 정래혁 상공부 장관은 내각회의 중 쓰러졌다가 2주간의 휴식을 끝내고 현업에 복귀했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두 달간 휴식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박정희 의장도 과로 상태이다. 유능한 장관들의 효율성은 그러나 최고회의와 내각 사이에 기능과 책임의 분명한 구분이 잘 안 되어 있어 다소 약화되고 있다. 몇몇 최고회의 위원들은 내각의 결정을 뒤집고 간섭하며, 군인 출신 장관들 가운데는 내각수반을 제쳐놓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송요찬 내각수반은 최고회의의 기능을 입법 활동에 한정시키고 내각이 행정을 전담하도록 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는 쿠데타에 처음부터 가담한 사람이 아닌 데다가 이승만 정권 때의 경력과 야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심 때문에 명령이 잘 먹히지 않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의 태도는 방관자적이다. 이런 태도는 비관적인 태도와 구별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한국사람들이, 특히 지배층이 장기간에 걸쳐서 유능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뿌리 깊은 자신감의 결여 때문이다. 이 혁명이 어느 길로 갈지를 예측하기는 너무 이르다.

최고회의 안에서 고질적인 분파주의가 생기고 있다는 증거도 있다. 지난 9월에 가장 심각한 사건이 있었다. 즉, 김종필 정보부장과 대령급들이 함경도 출신 장성들을 거세하려고 했던 것이다. 박정희 의장은 그런 내부 권력투쟁을 막겠다는 뜻이 확고하여 상황은 안정을 되찾았다. 부정부패가 상부층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조짐도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박정희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 부정 사례를 공개하여 무자비하게 처리하겠다는 자세이다. 박 의장에게 많은 것들이 달려 있다. 그는 가장 냉정하고 믿음직하며 안정되어 있는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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