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야만 休戰의 날. 統一爭取는 이제부터」

名文/崔秉宇기자의 휴전 조인식 보도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휴전협정 조인식에 李承晩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표를 보내지 않았고 서명도 하지 않았다. 북한정권의 비겁한 기습남침으로 국토가 난장판이 되고 3년1개월간 피터지게 싸운 결과는 거의 원위치로의 복귀였다. 李承晩대통령은 다 이겨놓은 전쟁을 미국이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도저히 이 휴전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것이다.

이 휴전협정 조인식을 보도한 1953년 7월29일자 조선일보의 사회면 머리 기사 제목은「오고야만 休戰의 날. 統一爭取는 이제부터」였다. 그 아래에는 「五列봉쇄에 主眼」이란 제목으로 서울주변의 검문검색 강화 조치가 보도되었다. 원치 않던 휴전은 6·25전쟁이 이제는 모습을 바꾸어 진행될 것임을 예고했다. 열전에서 냉전의 형태로 바뀌어 지금껏 계속되고 있는 한국전쟁. 열전에서 300만 명이 죽고, 냉전에선 북한에서 300만 명이 餓死의 형태로 전사했다.

도발은 북한이 먼저 했지만 최종승리는 남한에서 거둘 것임이 거의 확실해진 오늘날, 전쟁 반세기 기념일에 즈음하여 읽어볼 만한 名文이 바로 7월9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에 실린 崔秉宇기자의 휴전협정조인식 참관기이다. 단순한 보도 기사라기보다는 역사적 순간을 서정적인 수필처럼 잡아내 萬感이 교차하게 만드는 名文이다. 崔秉宇기자는 그 뒤 한국일보로 옮겨 대만해협 위기를 취재하다가 타고 있던 함정이 침몰할 때 순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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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板門店 調印式場에서 崔秉宇 特派員發) 白晝夢과 같은 11分間의 休戰協定調印式은 모든 것이 象徵的이었다. 너무나 우리에게는 悲劇的이며 象徵的이었다. 學敎講堂보다도 넓은 調印式場에 割當된 韓國人 記者席은 둘뿐이었다. 「유엔」側 記者團만 하여도 約百名이 되고 參戰하지 않는 日本人 記者席도 十名을 넘는데 休戰會談에 韓國을 公的으로 代表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리하여 韓國의 運命은 또 한번 韓國人의 參與없이 決定되는 것이다.
二十七日 上午十時 正刻 東便入口로부터 「유엔」側 首席代表 「해리슨」 將軍以下 代表 4명이 입장하고 그와 거의 동시에 西便入口로부터 공산측 수석대표 南日 이하가 들어와 착석하였다. 악수도 없고 目禮도 없었다.『기이한 전쟁』의 終幕다운 기이한 장면이었다.

북쪽을 향하여 나란히 배치된 두 개의 탁자 위에 놓여진 각 18통의 협정문서에 교전쌍방의 대표는 무표정으로 사무적인 서명을 계속할 뿐이었다. 당구대 같이 퍼런 융에 덮인 두 개의 탁자 위에는 「유엔」기와 인공기가 둥그런 鍮器基盤(유기기반)에 꽂혀 있었다. 이 두 개의 旗 너머로 휴전회담 대표는 2년 이상을 두고 총계 1000시간에 가까운 격렬한 논쟁을 거듭하여 온 것이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의 세 가지 말로 된 협정문서 正本 9통 副本 9통에 각각 서명을 마치면 쌍방의 선임 참모장교가 그것을 상대편으로 준다. 그러면 상대편 대표가 서명한 밑에 이쪽 이름을 서명한다.

丁자형으로 된 220평의 조인식 건물의 東翼에는 참전 「유엔」 13개국의 군사대표들이 정장으로 일렬로 착석하고 있으며 그 뒤에 참모장교와 기자들이 앉아 있다. 西翼에는 북쪽에 괴뢰군 장교들 남쪽에 제복에 몸을 싼 중공군 장교의 一團이 정연하게 착석하고 있다. 양편의 수석대표는 北面하여 조인하고 멀리 떨어져 좌우에 착석한 양측 장교단은 동서로 대면하고 조인하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조인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유엔」전폭기가 바로 근처 공산군 陣地에 쏟고 있는 폭탄의 炸裂音이 긴장된 식장의 공기를 흔들었다. 원수끼리의 증오에 찬 政略 결혼식은 서로 동석하고 있는 것조차 불쾌하듯이, 또 빨리 이 억지로 강요된 의무를 긑마치고 싶다는 듯이 산문적으로 진행한다.

「해리슨」 장군과 南日은 쉴새없이「펜」을 움직인다. 각기 36번 자기 이름을 서명하여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의식에 따르는 어떠한 劇的 요소도 없이 講和에서 豫期할 수 있는 화해의 정신도 엿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停戰」이지 「평화」가 아니라는 설명을 잘 알 수 있었다. 각기 자기측 구미에 맞추어 가죽으로 裝幀하고 金자로 표제를 박은 협정부도 각3권이 퍽 크게 보인다. 그 속에는 우리가 그리지 않은 분할선이 울긋불긋 우리의 疆土를 종횡으로 그려져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곳이 우리나라인가?』 이렇게 의아한다.
그러나 역시 우리가 살고 죽어야 할 땅은 이것밖에 없다고 순간적으로 自答하였다. 10시12분 정각 조인 작업은 필하였다. 「해리슨」 장군과 南日은 최후의 서명을 마치자 마치 최후통첩을 내던지고 퇴장하는 듯이 대표를 데리고 나가 버린다.
南日은 훈장을 가슴에 대여섯 개 차고 있는 데 반하여 해리슨 장군은 앞젖힌 여름 군복의 경쾌한 차림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관례적인 합동기념 촬영도 없이 참가자들은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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