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사건 犯人 3人의 運命

한 명은 사살되고 두 사람은 생포되어 한 명은 처형, 다른 한 명은 복역중 한국에 갈 의향을 비쳤으나...
아웅산 테러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허락을 받아 인민군 정찰국 산하 특수 8군단 소속 특공부대 강창수 소장에게 지령하여 일으킨 사건이다. 강창수는 6.25 남침 때 戰死한 강건 장군의 아들. 폭파임무를 맡은 3人1組의 組長은 진모 소좌(생포 후 사형), 組員은 강민철(최근 옥사), 신기철(체포과정에서 사살됨) 상위였다.

세 사람을 태운 배 愛國동건호는 1983년 9월9일 밤 황해도 옹진항을 출항, 8일만인 9월17일 오후 미얀마 랭군항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내린 세 공작원은 駐 미얀마 북한 대사관 전창휘 참사관의 집에 도착하였다. 세 사람은 이곳에서 2주일간 머물면서 테러 실행 계획을 세웠다. 폭약과 조종장치는 다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 정보기관은 애국동건호가 입항,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미리 탐지, 본부에 보고하였다. 盧信永 안기부장은 全斗煥 대통령에게 미얀마 방문 취소를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월6일 테러범들은 숙소를 나와 전 참사관의 안내를 받으면서 아웅산 묘소를 정찰하였다. 다음날 새벽 세 사람은 全斗煥 대통령 일행이 참배할 아웅산 묘소 건물의 천장에 폭발물(폭탄 3개)을 설치하였다. 강민철과 신기철이 천장으로 올라가 설치하는 사이에 진모는 밑에서 망을 보았다.

이 폭탄들은 1~2KM 이내에서 원격조종으로 터지도록 했으며 유효 살상 범위는 80m 내였다. 세 사람은 이틀간 묘소 주변 숲속에서 잤다.

10월9일 오전 범행에 성공한 세 사람은 항구로 탈출, 북한 선박편으로 귀환하기로 하고 흩어졌다. 組場 진모는 10월10일 저녁 강을 헤엄쳐 바다로 향하다가 주민들에게 발각되었다. 주민들이 포위망을 압축해오자 수류탄을 터뜨렸다. 그를 건져냈더니 살아 있었다.

강민철과 신기철은 11일 어선에 편승, 항구로 가려다가 수상하게 여긴 어부들의 신고로 경찰관들에게 연행되었다. 경찰이 초소로 끌고 온 두 사람을 수색하려 하자 두 사람은 수류탄을 던지고 응사하면서 탈출하였다. 신기철은 경비병에 의하여 현장에서 사살되고 강민철은 도망쳤다가 다음날인 12일 군인들에게 붙들리기 전에 수류탄을 터뜨렸다. 왼쪽 팔뚝이 날아갔으나 목숨을 건졌다.

강민철은 수사에 협조하였고 진모는 거부하였다. 두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았고 진모는 사형이 집행되었다. 강민철은 협조한 점이 참작되어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강민철은 복역중 한국측 인사를 만나 "한국에 귀국하여 살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강민철이 몇달 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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