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연습장―노사분규
최근에 발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거의 예외없이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지적된 것은 노사문제였다. 그동안 정부는 저임금을 국제경쟁력의 원천으로 삼고 대기업 중심의 수출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공권력으로써 통제하여 왔다. 지난 87년의 6·29선언으로 이 통제력이 약화되자 눌려진 용수철이 튀어오르듯 무서운 반동으로써 노사분규가 전국적으로 확산, 심화되고 있다. 노사분규는 민주화시대 한국인의 가장 큰 공통체험이 되고 있다. 임금인상이란 고유목적뿐 아니라 사내 민주화, 경영권에의 도전, 사회민주화, 정치 투쟁, 계급투쟁 등 다양한 양상들이 뒤섞여 현대중공업의 예에서 보듯, 노사분규를 한국 사회 갈등의 축도판이자 민주주의의 연습장으로 만들고 있다.
총론에 해당하는 정치 민주화가 6·29선언, 12·16 대통령선거, 4·26 총선으로 한 고비를 넘겼다면 각론에 해당하는 사회민주화는 노사분규를 축으로 하여 이제 막 시작된 느낌이다. 정치 민주화의 단계에서는 억압 정권을 향해 민주화를 요구하기만 했으나 사회민주화의 단계에서는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사분규를 통해 민주주의의 실습을 하고 있고, 비로소 민주주의를 하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독재시대의 타율적인 삶보다 민주시대의 자율적인 삶이 떳떳한 대신에 광장한 인내심과 자기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을 느껴가고 있는 과정인 것이다. 문제는 노사분규의 부작용―인간관계의 손상, 기업 생산성의 저하, 법치주의의 위기를 어떻게 제어하여 발전적 방향으로 유도하느냐일 것이다. 지난 87년 7월부터 불붙기 시작한 노사분규는 2년도 채 안된 기간에 수많은 묵은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직종간, 업종간 격차 줄어
지난해 1∼7월중의 전산업 명목 임금은 87년 같은 기간에 비해 16·5%가 올랐다. 소비자 물가상승률 7·7%를 고려하면 실질임금 상승률은 8·2%였다. 이 임금은 미국 노동자의 7·5분의 1, 일본의 6·2분의 1 수준이며 대만, 싱가포르, 홍콩과는 거의 같은 수준이다. 한국사회의 소득격차를 조장한 큰 요인은 블루칼러와 화이트 칼러간의 임금격차였다. 노사분규는 이 문제를 자연스럽게 풀어가고 있다.
1987년 8월∼88년 7월 사이 생산직의 임금 상승률은 26·7%로서 관리·사무직의 16·3%를 훨씬 웃돌았다. 관리·사무직의 임금을 1백으로 잡았을 때 생산직 임금은 1980년엔 49·8, 1986년엔 56·2였고 1988년 7월엔 62로 올라가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산업별 임금상승률을 봐도 저임금산업 부문에서 인상률이 높아 평준화의 길로 가고 있다. 전산업 평균임금을 1백으로 잡았을 때 금융·보험업은 1970년에 2백8이었는데 지난해 7월에는 1백52로 떨어졌고, 제조업은 1970년에 80이었으나 지난해 7월엔 87로 올라갔다.
지난해 상반기의 전산업 월평균 노동시간은 87년에 비해서 약 7시간이 줄어든 220·7시간이었다. 초과근로시간이 많이 짧아졌다. 소득증가에 따라 노동자들이 여가시간을 더 원하고 있기 때문인 듯. 그래도 한국의 주평균 노동시간(54시간)은 미국과 일본의 41, 서독의 40, 대만의 48·1시간 보다 긴 세계최장 근로시간으로서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노사분규의 이런 긍정적 결과에는 대가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노동생산성아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87년부터 임금인상률이 노동생산성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단위 제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노동 비용은 지난 80∼86년 사이 감소하였다. 지난 87년 하반기부터는 단위 노동비용이 늘기 시작했다. 제조업의 경우, 87년 상반기에는 그 전년동기에 비해 단위 노동비용이 4·3%가 줄었으나 하반기에는 4·4%, 88년상반기엔 7·3%나 증가하였다. 이것은 제품원가 상승요인이 돼, 국제경쟁력을 약하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사분규로 사내규율이 해이해지면서 불량률도 늘고 있다. 노동의 질과 양이 저하되고 임금이 는다는 것은 한국경제의 큰 덩어리로 볼 때는 생산효율성의 약화라는 적신호가 되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말까지의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1천6백86건으로서 87년의 3천7백49건에 비해서는 크게 줄었다. 그러나 분규일수는 87년의 건당 5·3일에서 88년에는 10일로 길어져 1건당 경제적 손실은 더 늘었을 것이다. 88년 분규의 양상은 작업거부 38·6%, 농성 60·4%, 시위 0·2%로 87년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기업규모가 클수록 쟁의 발생률도 높아 종업원 1천명 이상의 기업체 중 34·4%인 1백29개 업체에서 분규가 있었다. 5백∼1천명 미만 규모에서는 18%, 3백∼5백명 미만 규모의 기업체 가운데서는 14·6%의 분규발생률을 기록하였다.
노사분규가 기간산업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 기업에서는 임금 교섭이 타결된 뒤에 노동자들이 또 추가 인상을 요구, 쟁의가 재차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24일 현재 이런 쟁의가 1백26건에 이르렀다. 현대중공업이 이런 경우다. 한구노동연구원은 「이런 현상은 노동조합 신규설립시, 노조간부교체시, 어용노조 시비로 인한 조직분규시 및 해고자 복직 요구시에 근로자의 호응도가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조건에 포함하는 경향과 일단 임금 교섭이 타결되더라도 동종 및 유사업종 기업에서의 임금 인상률이 더 높을 때 동일 수준의 임금을 획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협상과정에서 노·노분열 많아
노동조합 설립 투쟁 때는 노동자들이 단결하지만 일단 노조를 만든 뒤 회사와의 단체 교섭이 시작되면 노조안에서 강경, 온건 대립의 내분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회사측의 노조 어용하기도, 재야의 개입에 의한 소수강경파 득세, 파당의식 등이 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경우처럼 일단 파업에 들어가면 파업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노조안에 이견이 나타나 분열되는 수가 많다. 삼성조선소와 현대중공업의 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회사측이 노조설립에 방해하고 이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싸우다가 일단 노조나 노사협의회가 탄생하면 그 내부에서 다수의 온건파와 소수의 강경파로 갈라져 노·노 분쟁으로 변질된다는 점이다.
강경파는 재야세력과 협동하여 노사분규를 그 회사만의 차원이 아닌 그룹차원, 또는 정치투쟁의 차원으로 확대시키며, 농성·파업 등 격렬한 행동을 보인다. 그런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는 다수의 온건파는 「일하면서 싸운다」로 나아가고, 강경파에서는 온건파를 어용으로 매도한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경우에는 온건 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노총에 의한 삼성제품불매운동에 격분, 애사심(?)을 보이고 있어 노사분규의 복잡한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올 봄에는 재야세력과 연결된 일부 노조들이 지역별로 연대하여 정치적 투쟁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오늘의 노사분규는 긍정적이며 필연적이다. 과제는 후발국의 이점을 살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한 관변측 경제전문가는 『좌경·용공세력은 한국을 지탱하는 조직을 군부와 대기업으로 규정, 군부에 대해서는 선전공세를, 대기업에 대해서는 노사분규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경제학자는 『노사분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노동자의 일할의욕과 기업인의 사업의욕이 타격을 받는다는 점이다』고 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李錫采씨는 『우리가 오늘과 같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해방 뒤 정부가 줄곧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지켜왔던 데 힘입은 바 크다』면서 오늘의 노사분규가 경제의 기본질서를 위협한다면 결국은 정치민주화에까지 타격을 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노사분규가 잘 진행되면 노사간의 종속적 인간관계를 수평적이고 떳떳한 인간관계로 바꾸어 인간답게 살 만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진행될 때 전통적인 서열의식이 무너지고 인간관계의 근본이 손상을 입기도 한다.
노조운동의 한계
한국의 노사분규가 극단으로 흐르는 것을 제어할 수 있은 두가지 힘을 우리사회의 유교적 인간관계와 자본주의 경제질서라고 지적한 전문가들이 많았다. 지난해 한국의 언론노조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편 것은 경향신노조였다. 이 노조는 편집권 독립뿐 아니라 회사의 경영형태 전환 등 경영문제에도 적극적인 발언권을 행사했다.
럭키―금성그룹은 적자를 보는 경향신문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①경향의 영업권 가액 1백50억원 평가 ②자본금 1백50억원 출자 ③주식비율은 경향 20: 럭키 금성그룹 80」을 제시, 경향의 경영진과 거의 합의하였다. 경향노조는 이 합의를 거부하고 「①사장 및 관선사단법인 퇴진 ②경영진단 후 합리적인 회사전환방안 마련」등을 요구, 파업 일보직전까지 갔다. 럭키금성 그룹은 인수 교섭을 중단했다.
그 뒤 편집국기자들 사이에서 노조가 너무 공무국 등 타국중심으로 운영되고 강경일변도라는 여론이 일어나 노조집행부가 교체되었다. 경영사정이 악화돼 상여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향노조는 최근 그 활동이 주춤해졌다. 경향에서는 아직도 인수선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이 사례는 노조가 경영권에 간여하고, 회사가 적자를 보게 될 때 노조의 활동에는 어차피 한계가 설정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빚덩어리인 대우조선의 일부 노동자들이 최근에는 구사운동을 펴고 있는 것도 그런 경우다.
한국기독교 농민회총연합이 발행하는 지난해 11월4일자 농민신문은 고추1근당 2천5백원씩 계산하여 고추로써 농협부채를 갚는 「현물상환투쟁」을 전개하자고 했다. 도시빈민 공동투쟁위원회집행위는 지난해 10월19일에 나눠준 자료에서 「노점상 양성화에 관한 법안」을 반대한다고 했다. 이자료는 「이러한 우회적 개량조치는 철거민, 노점상들로 하여금 분열을 야기시킴으로써 문제의 근본을 은폐하려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단정했다. 도시지역 의료보험 확대실시 계획(올해 7월1일부터 시행)은 도시빈민의 의료비증가 위협이 되고 있다고도 했다. 전국 도시노점상 연합회는 회지 「가로수」(지난해 10월31일자)를 통해서 「노점상의 합법화, 현자리 고수, 신고제, 노점상의 의료·교육·주택문제에 대한 국가지원, 연합회의 자율권과 대표성인정」을 요구했다.
자본주의 논리에 도전장
지난해 10월24일 서총련 선전국이 낸 자료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반미항전 44년 하반기에 화력과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투쟁의 좌표는 노태우 식민지 파쇼통치의 안정·공고화책동을 저지하고, 그 사회정치적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과업이다. 다기다양한 적의 음모를 가장 효과적으로 저지, 파탄시켜 구국투쟁의 일보도약적 진군을 기약할 수 있는 핵심적 매개가 전·이 구속처별 및 학살원흉·부정비리공범자 노태우 퇴진투쟁을 출발점으로 하는 반군정 민주화 투쟁이다…광주학살 원흉처단과 관련한 선전선동으로 사망자수 2천5백명, 부상자수 1만5천7백명이라는 점… 등들 선전하여 현정권과 제5공화국은 일란성 쌍동이라는 사실을 낙인찍어야 한다」 제주도 송악산 공군기지 설치결사반대 도민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0월15일 성명서에서「송악산 군사기지화 결정은 국방부의 권력남용에 의한 위헌」이라고 규탄했다.
평민당보인 「평민신문」(1월1일자)은 농어민부채 5조원 탕감정책과 관련하여 이런 문답식 기사를 실었다.
문: 농어촌에서 농·수·축협의 대부를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은 중농이상의 친여적 사람이 대분분이다. 대부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했던 영세농은 또 한번 차별을 받는 게 아닌가?
답: 농촌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중농이 먼저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농지 1헥타르 미만의 영세농가에게는 사채까지도 해결토록 했다.
문:개인적인 사치·낭비로 진 빚까지 갚아준다는 것은 공평치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답: 부락별로 구성되는 심사위원회의 공정한 심사로써 정리대상에서 제외토록 하고 있다.
1987년의 경제기획원 통계에 따르면 농촌가구당 평균 부채는 2백39만 원이다. 60·5%는 농업기계화· 비닐하우스 설치 등 생산성에 투자되었고 22·3%는 교육비·의료비·가전제품 구입 등 소비성이며 17·2%는 부채를 갚기 위한 빚이었다고 한다. 기획원에선 부채탕감은 『무작정 빚 많이 얻어 쓴 사람에게만 이득이 되고 알뜰한 가계운영으로 빚이 없는 사람에겐 오히려 불리하다』면서 정부가 이미 86∼87년간 두 차례 금리인하, 사채대체자금 공급 등으로 8천억 원의 농가부담을 경감한 바 있음을 상기시켰다. 한 경제학자는 『우리 경제를 가장 확실하게 망하게 하는 방법이 농어촌 부채탕감이다. 어제까지 빚을 성실하게 갚은 사람은 어떻게 되나 도시빈민은 가만히 있겠는가. 가난이 수치가 아니라 떳떳함과 염치없음의 근거가 되면 자본주의 윤리는 끝장이다. 공산국가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이런 정책이 어떻게 공당의 정책이 될 수 있는지 놀랄 뿐이다』고 했다.
언론의 보수회귀?
「새해 주제―더불어 사는 사회」「민주시대 공존이론」「다양화 사회」「공동체의식·갈등의 벽 허물자」「이데올로기의 벽이 무너진다」「민주거목의 뿌리 이렇게 가꾼다―세계지자제 실태」 이것은 올해 주요일간지의 신년호 특집기사 제목이다. 한국사회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올해 신년초에 전반적인 주제였다. 한 언론인은 『언론과 여론이 이제 보수회귀를 시작한 느낌이 든다. 지난해 12월부터 신문의 논조가 달라지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어차피 언론은 반정부적일 수는 있어도 반체제적일 수는 없다』고 했다.
언론노조가 한국언론을 진보적인 방향으로 잡아둘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정가에서는 교차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노조가 조합원의 임금·복지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 것만큼 화면과 지면 변화에는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와진 환경하에서는 기자들이 스스로 잘하자고 다짐하는 것 이외에는 별로 바꾸어놓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임금이 우리 사회의 최고 수준이고, 그들이 시내버스보다는 승용차의 주차난, 연탄보다는 도시가스 기사를 더 즐겨 쓰고 아파트 재산세 인상에 발끈하는 계층의식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한국언론이 왼쪽으로 기우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지난 연말의 언론청문회는 언론경영진의 위기의식을 깊게 하였고 편집국 간부들의 상황인식도 방어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언론은 지난 2년간 우리 사회·정치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청문회중계를 통해서는 한국인의 정치의식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기도 하였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여론조사전문학자와 한 청와대 비서관은 꼭 같은 이야기를 했다. 『신문이 한국사회에서 가치판단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신문이 판단을 유보한 상황에서 여론조사를 해보면 뚜렷한 견해가 잡히지 않은데 신문이 가치판단을 한 뒤 조사해보면 신문에 따라가는 방향으로 여론이 형성되더라』 이런 언론이 88년에 5공비리 폭로에 열중했었지만 89년에는 사회의 안정을 추구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징조가 신년호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서울고법의 판사는 결코 친정부적 인물이 아닌데도, 최근의 학생시위와 노사분규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현상을 개탄하였다. 그는『지금의 법은 도덕적·합법적정통성을 다 갖추고 있다. 더구나 악법을 고칠 힘을 야권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지금이야말로 악법도 고칠 때 까지는 지켜야하는 것이다』면서 『사법부의 분위기는 실정법 위반에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는 쪽이다』고 했다. 이각범(李珏範)교수(서울대·사회학)는 전통사회의 보호와 복종의 윤리를 대체하는 근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기초이자 한국사회의 갈등해소를 위한 근본 처방은 「경기규칙의 확립」이라고 말했다. 올바른 경기 규칙의 최소치는 법이다. 그러나 법을 전면에 내세워 경기를 진행시키는 사회는 각박할 수밖에 없다. 경기 규칙의 최대치는 민주시민의 양식이다. 이 민주시민의 양식을 계도하는 역할을 언론에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법과 언론을 맡고 있는 세력이 올해에는 민주시민의 책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 같고, 이것은 1989년 한국사회의 안정쪽으로 작용할 것이다.
민주화 도운 전화보급망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업개발단장 서정욱(徐廷旭)씨는 『5공화국 시절의 전기 통신망 확충은 민주화에 기여한 면이 크다』고 했다. 인구 4명당 한 대꼴로 전화기(가입번호 기준)가 있는 상황에서는 독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재의 필요 조건이 정보의 독점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와 총선기간중에는 정치정보에 대한 욕구가 급증하여 통화량이 15%쯤 늘었다고 한다. 徐씨는 『통신할 수 있는 권리(Right to Communicate)는 이제 민주시민의 기본권이다』면서 북한의 전화보급대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한국의 10분의 1수준인 1백만 대에도 미치지 못 할 것이라고 했다. 1986년 국제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전화보급률은 18·1%(88년엔 255)로서 세계 24위였다. 소련(10·4%)보다 위였다. 랭킹 25위 안에 드는 나라 중에는 공산국가가 하나도 없었다. 공산국가에서는 경제여력이 있어도 전화가설에는 높은 우선 순위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제5공화국시절에 정부는 전기·통신망의 확충을 적극 뒷받침하였다. 1982년에 약 3백만 대이던 전화기가 6년 사이에 1천만 대 이상으로 늘었다.
徐단장은 『경제력과 정보욕구와 통신기술발달이 딱 맞아 떨어져 이 기간에 세계최고의 전화 보급률 상승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전화망은 팩시밀리, 컴퓨터 등 다른 전자·통신시설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종합 정보망의 기간조직이다. 이 전화망의 확대로써 최신의 동시성 정보가 순식간에 국내외로 전파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언비어의 소지가 점점 좁아지게 된다. 과장되고 왜곡된 정보는 이 광범위한 정보망을 한번 타게 되면 끊임없는 확인·검증을 통해서 여과돼 허위는 떨어져 나가고 끝내는 사실, 또는 사실과 가까운 모습이 남게 된다. 지금의 전자·통신 기술은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우려하였던 인간에 대한 감시역할도 하지만 인간을 이성적으로 만드는 데 더 기여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오도하고 있는 과장되고 왜곡된 말들과 그 거짓말들을 붙들고 연명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보사회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현대 문명에 의해 더 빨리 제거될지도 모른다. 사회의 큰 목소리, 즉 공론을 장악한 언론이 성숙하고, 작은 목소리를 교류시키는 통신 체제가 확대되면 진실만이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컴퓨터에 의한 개표조작설과 같은 중세의 신화가 21세기의 강대국을 바라보는 이 나라에서는 꼬리를 감추게 될 것이고, 한국사회는 진실된 나침반에 따라 순항할 것이다.
사건의 생활화
지난 1월1일 아침에 기자가 맨처음 탄 택시 운전기사는 살인사건의 피해자 가족이었다. 그 며칠전 당구장 주인인 자신의 매제가 집에서 잠을 자다가 10대로 보이는 세 강도에게 난자당해 즉사했고, 그 곁에 있었던 여동생은 실성한 상태로 병원에 누워있다는 것이었다. 시골에 있는 한 친척은 정미소를 경영하는데 전화로 이 비보를 듣고 놀라 무엇을 잡아당겼는데 위에서 물건이 떨어져 머리를 맞고 또 죽었다는 것이다. 지난해의 범죄건수는 87년보다 5·4%가 는 약 95만건이었다. 강도사건은 3천7백41건으로, 87년보다 14·3%나 늘었다.
지난 한 달 사이 기자가 알고 있는 네 사람이 교통사고를 냈거나 당했다. 그 가운데 한 건은 교통순경을 치어 죽게 한 사고였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1만2백94명으로서 87년보다 무려 43%나 늘었다. 부상자는 강릉시 인구보다도 많은 21만여 명이었다.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한국보다 자동차대수가 약 17배나 더 많은 일본의 사망자수와 거의 같다. 주행거리 1억 km당 사망자수는 한국의 12명으로서 미국의 약 8배, 일본의 약 6배다. 우리 사회의 상류층임에 분명한 승용차 운전자들이 노상에서 보여주는 질서수준은 『민주주의 하기에는 아직…』이란 절망감마저 느끼게 한다.
지난해 부산에서 구속된 히로뽕 사범은 1천5백52명으로서 87년 구속자(5백86명)의 2·7배나 되었다. 지난 84년 1월에 기자는 일본의 히로뽕 문제를 취재하러 도쿄에 갔었다. 과학경찰연구소의 히로뽕 전문가 호시노 박사가 하던 경고를 잊을 수 없다. 『일본에서는 1970년 오오사까 엑스포를 계기로 하여 히로뽕이 급속도로 확산되었습니다. 엑스포가 몰고온 소비·향락 풍조와 관계가 있었지요. 한국도 올림픽 무드를 경계해야 할 것입이다』 한국에서의 히로뽕 확산은 이제 통상적 수사체제로서는 통제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히로뽕 분야에서조차 한국은 제2의 일본이 되려 하고 있다.
보사부에서 윤락여성문제를 오랫동안 맡았던 한 공무원은 『한국에서 몸을 팔아 생활하는 여자를 63만 명으로 추산한다』고 했다. 20대 여자 인구가 약 4백만 명이란 것을 고려한다면 그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라고 했다. 인신매매 조직을 경찰이 못 잡는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곳」을 출입하는 그들 자신이 바로 인신매매의 수요를 창출하는 공범이란 죄의식을 느끼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는 급속히 바뀌고 있다.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내년에 67%로, 2천년에 가면 68·8%로 늘어 난다. 연소인구와 노령인구의 비중은 줄어 부양부담률(생산연령인구 분의 연소+노령 인구)은 2천년에 가면 45(1980년엔 61)로 낮아진다. 학령인구의 비중도 지난 80년엔 전체 인구의 38%였는데 내년엔 30·9, 2천년에 가면 27·7%로 떨어진다.
민주시민으로 거듭 태어나야
이것은 우리사회가 부양과 교육의 짐을 줄여 많은 여유를 갖게 됨을 뜻한다. 이 여유를 향락적으로 탕진할 때 한국사회는 병들것이고 생산적으로 활용할 때 번영할 것이다. 범죄와 사고가 잦아 사건이 생활화된 듯한 느낌마저 주는 요사이 사회분위기는 민주화의 그림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범죄와 퇴폐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자포자기하는 것은 한국식 삶의 모색을 중단하고 미국식이나 일본식 삶을 따라가자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에서, 그리고 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은 이미 연구대상이 될 만한 독창적 방식을 보여주었다.
삶의 방식에서도 한국식이 나와야 할 것이고 그것은 선진국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그런 문화여야 할 것이다. 2차세계 대전 뒤 서독은 히틀러와 같은 선동가에게 다시는 넘어가지 않을 민주시민을 만들기 위하여 특별한 교육정책을 수립했었다고 한다. 민주질서를 순종하는 데 머물지 않고 비민주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개선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는 「행동하는 양식인」을 이상적인 시민상(像)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민주화는 이기심의 대폭발 현상을 보이고 있는 바, 나만의 편의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변질돼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 먼저 가려다가 오도가도 못하게 된 자동차 행렬에서 언제든지 확인할 수가 있다. 우리 스스로가 민주화시대에 맞는 건전한 시민으로 거듭 태어날 수가 있느냐의 여부가 한국사회의 장래를 좌우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문화대혁명(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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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7-07, 11: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