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유럽총책으로부터 돈과 지령 받는 K씨"

미국 정보기관원 출신 L씨의 회고담. K씨는 지금도 유명 문화인이다.
토요일 기자와, 미국과 한국 정부기관에서 북한담당을 40년간 하였던 L씨는 서울역에서 기차에 올랐다. 두 시간 동안 車中(차중)에서 한국 현대사의 뒤안길을 훑는 대화를 나누었다. 70대 중반인 L씨의 기억력은 비상하다. 특히 시간과 인물에 대한 증언은 정확무비했다. L씨가 경험한 첩보전선의 이야기는 제임스 본드類(류)의 영화가 아니라 ‘제3의 사나이’ 같은 영화에 어울린다. 그의 이야기 속에선 ‘제3의 사나이’의 무대이기도 한 비엔나가 자주 등장한다. 비엔나는 냉전 시대 東西(동서) 첩보전선의 최일선이었다. 북한도 유럽공작의 사령탑을 비엔나에 두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인민무력부 정찰국에서 현역 소장 김대성을 비엔나 총책으로 보냈다. 김대성은 1977년 여름에 있었던 북한 공작팀의 백건우-윤정희 부부 납치 기도 때는 표면에 나서지 않았다. 이 납치사건을 직접 지휘한 것은 노동당 對外(대외)연락부 부장 정경희로서 이 여인은 비엔나에 와 있었다. L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이 사건은 영화광인 김정일이 윤정희씨를 납치해오라고 지령하여 일어났다. 우리는 미리 북한팀의 움직임을 파악했었다. 파리에 살던 이응노 화백의 부인 박인경이 白建宇 부부를 동행하여 유고 자그레브로 유인, 납치팀에 넘기려 했었는데, 방화자라는 여인이 선글라스를 끼는 바람에 실패했다.”

방화자는 비엔나주재 북한 대사관의 3등 서기관 이상준의 처. 그는 백건우씨 부부가 자그레브 공항에 내릴 때 선글라스를 쓰고 감시차 나갔다가 尹靜姬씨의 눈에 들어왔다. 尹씨는 “시골공항인데, 선글라스를 낀 동양인 여자가 보이고, 공항에 북한의 조선민항 여객기가 있어 긴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L씨는 “방화자가 선글라스에다가 북한식 짧은 치마까지 입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인경, 백건우, 윤정희 세 사람은 택시를 타고 박씨의 안내에 따라 자그레브 교외의 한적한 3층 건물에 도착했었다. 백건우씨가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북한공작팀이 뛰어나오는 것을 보고 택시로 돌아와 급히 미국 영사관으로 달려감으로써 납치는 실패했다.
L씨는 “박인경은 150% 공범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니 한국은 나라도 아니다”고 개탄했다. 미국 정보기관에서는 북한공작팀의 활동을 미리 알고 백건우씨 부부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도 취해놓았었다고 한다.
“납치 실무 책임자는 자그레브를 무대로 활약하던 허묵이란 공작원이었다. 이상준은 보조역할을 했다.”

납치 기도 석 달 뒤 유고 공산당은 북한대사관의 정광순 대사를 불러 납치기도에 대해서 엄중 경고했다. 정 대사는 순순히 납치 기도를 시인하고 사과했다. 5년 전에 공개된 유고 연방의 외교 문서에 따르면 정광순은 <유괴를 계획했던 것은 영사관 동지들이 아니라 평양에서 온 그룹이었다>는 변명까지 한다.
L씨는 기자의 흥미를 돋우는 말을 덧붙였다.
“북한의 유럽 총책 김대성으로부터 지령 받고 돈도 받은 한국인들 중에는 K도 있어요.”
K씨는 지금도 문화계의 유명인사이다.
“한국 정부에 통보했나요?”
“안했습니다. 정보소스를 보호하기 위하여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확인했지요?”
“말할 수 없습니다. 틀림없어요.”

(月刊朝鮮 2009년 1월호, '피신중인 김현희 접선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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