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본의 헌법 기념일이다. 자민당 등 우파는 오늘을 맞아 헌법개정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공산당과 노조를 비롯한 좌파는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도쿄의 히비야 공원에서 대중집회를 가진 좌파가 긴자(銀座)부근에서 가두시위를 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일본 공산당, 노조, 기독교 단체, 평화운동 단체, 환경단체, 사회당 등이 참여한 시위는 지종일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행인과 차량에 전혀 폐를 끼치지 않는 도심 시위였다.
경찰은 이들 시위대에 人道와 한 車線을 내어주었다. 시위대는 가로로 두 세 명이 서서 행진하였다. 한 사람도 차선을 넘지 않았다. 배치된 경찰관은 시위대 100m 당 한두 명이었다. 긴 곤봉을 찬 진압경찰이 드문드문 보였다. 시위대의 중간 중간에서 마이크를 장치한 차량이 구호를 선도하였다. 시위대는 男女老少가 고루고루 섞여 있었다.
'헌법을 지키자' '힘을 버리고 사랑으로 평화를' '헌법 9조 개정 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걸어가는 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졌으나 살벌하지도 추잡하지도 않았다.
시위대의 표정도 놀러 나온 사람들처럼 밝고 여유가 있었다. 한국의 친북좌익이 보여주는 증오와 원한 어린 표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선창하는 사람은 전부가 여성이었다. 앙칼진 목소리가 아니고 교양 있는 목소리였다. 사람들을 격앙시키기보다는 호소하는 스타일이었다. 경찰은 골목에서 마이크를 들고 선동하는 두 사나이를 에워싸고 지켜보기만 하였다. 두 사람은 연신 경찰관들에게 절을 하면서 구호를 외치곤 하였다.
시위대를 구경하는 行人은 많지 않았다. 서양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정도이고, 보도진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일본이지만 1960, 70년대의 시위는 지금의 한국만큼 과격하였다. 월남전 반대를 명분으로 내걸고 극좌파들이 폭력시위를 하고 나중에는 기업체를 폭파시켰으며 내부 투쟁으로 피비린내 나는 살육극을 벌이기도 하였다. 도쿄대학은 극좌파의 시위로 학교 기능이 마비되어 1년간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기도 하였다.
과격하던 시위가 온순하게 된 데는 언론과 여론의 외면과 엄격한 처벌, 그리고 공산권의 몰락 등 여러 이유가 있었다. 일본 시위대가 한국에서처럼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관을 때렸다가 구속기소되면 판사들은 징역 3~5년을 예사로 선고한다. 한국의 촛불난동 재판 담당 판사들은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된 폭력시위자들을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경우가 많다.
한국 좌익들의 폭동 버릇도 시간이 가면 그렇게 고쳐질 것인가?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선진국처럼 폭력시위를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길만이 빠른 淳化(순화)의 길이다.
*일본의 헌법 9조는 '國權(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武力에 의한 위협 혹은 武力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선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고 되어 있어 自衛權(자위권)도 없다는 해석이 강하다. 여당과 우파는 이 조항을 고쳐 자위권을 명시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아무한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일본 좌파의 도심시위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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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03,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