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난 대통령

이명박 순방외교에 황석영 대동의 含意


바람기있는 분별없는 남편의 處身과 같다

이주천 원광대 교수


이명박의 중앙아시아 순방외교에서 황석영 대동의 함의(含意)

. 문제의 제기

이명박 대통령의 순방외교가 잦아지고 있는데, 그 자체만을 나무랄 수는 없다. 성과만 좋으면 얼마든지 가도록 권장해야 할 것이지만, 갈등과 논란거리를 재생산해 내는 순방외교라면 재고해야할 것이다. 5월 10∼14일 이명박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2개국 국빈으로 방문하여 자원외교에 많은 성과를 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친북작가 황석영을 동행하면서 언론에 논란거리를 제공하였다. 정권교체에 공이 컸던 보수우파는 자원외교의 실질적 성과보다는 황석영을 동반한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수행 과정에 대한 분노감과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보수우익에 준 심리적 충격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일반인들이 잘 몰랐던 이명박-황석영 양자의 깊고 친밀한 우정관계(deep and intimate relationship)가 속속 밝혀지면서 보수우익은 충격의 심연(深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갑제, 지만원, 정창인, 김성욱, 조영환 등의 우파 논객들이 분석을 가미한 분노의 칼럼들을 부지런히 인터넷상에 올리고 있다. 소설가 복거일 씨는 인터뷰에서 황석영 씨를 동행시킨 것을 '배은망덕'으로 표현했다. 친북좌파도 역시 어제까지만 해도 흩어진 좌파세력을 결집을 약속한 황석영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하였다. 좌파 논객 진중권은 ‘금붕어’로 비유하면서 황씨의 변절을 폄하했다. 윤평중(한신대)교수는 “봉산탈춤의 창시자로 그려진 장길산처럼 광대에게는 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번 놀게 내버려두라”고 충고한다.

황씨 동행은 경제위기와 남북관계를 돌파하기 위한 이명박의 고육지책이냐? 아니면 20대에 한일회담반대시위였던 6.3사태에서 나타난 운동권 本色이라는 자기 색깔, 자기 본능으로의 復歸인가? 아니면 이명박이 골수좌파를 포석, 역이용하여 좌파진영의 분란을 일으키기 위한 고도의 책략인가?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는데, 이 글에서는 ①황석영을 끌어드린 동기와 배경, ②황석영의 역할과 대외정책(대북)의 변화 여부, ③보수와 향후 정국에 미칠 파장 등을 중심으로 논한다. 이 시점에서 보수가 주목해야 할 점은 황석영의 변질 여부보다는 황석영을 끌어드린 이명박 대통령의 변화가 내포한 대내외 정책의 향배다.

II. 황석영의 정체와 전향여부

문인인 황석영은 『장길산』의 저자로서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나, 80년대 후반기부터 친북좌익 성향을 노골화하여 평양을 방문하는 등 돌출행동으로 한국사회를 충격으로 빠트린 장본인이다. 다음 아래 글은 인터넷상에 유포된 황석영의 친북행각과 그의 정체에 대한 주요 부문만 발췌한다.

“황석영은 1989년 문익환, 서경원 등과 밀입북 한 이래 다섯 차례나 평양을 몰래 드나들면서 김일성을 일곱 차례나 만나고 공작금을 25만 $이나 받아 범민련을 통한 연방제적화통일 혁명투쟁에 앞장섰던 자로서 1993년 귀국 체포 복역 후 1998년 김대중에 의해 사면 복권된 전형적인 골수친북반역자이다.”

“1990년 6월 2일 北 조평통 부위원장 전금철이란 자는 베르린 범민련 대표접촉에 앞서 발표한 성명을 통하여 '범민련 참가 자격은 7.4 공동성명 평화통일 3원칙에 바탕을 두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위해 헌신한 개인 및 단체로 한다'라고 못 박았으며 황석영도 이런 기준에 의해 범민련활동에 참여 할 수 있었다.”

“황석영과 金日成의 끈끈한 인연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북한 체류 당시 金日成으로부터 『재간둥이』라는 격찬을 받고, 金日成이 빨치산 시절부터 즐겨 먹었다는 「언 감자국수」를 함께 먹었다. 북한 대남공작기관 「칠보산연락소」에서 일했던 전향간첩 吳吉南 박사는 『언 감자국수는 외부인에 대한 최고의 대접』이라고 말한다. 宋斗律도 91년 5월 묘향산초대소에서 金日成을 친견한 뒤 「언 감자국수」를 같이 먹었었다. 황석영은 방북 이후인 《노둣돌》이라는 잡지의 1992년 창간호 인터뷰에서 『金日成은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과 같은 위인』이라고 평가했다”(출처: 조갑제닷컴 www.chojabje.com).

“국가안전기획부는 1993년 5월 6일, 작가 황석영씨가 지난 89년 3월 20일 처음 북한에 들어간 이래 모두 5차례에 걸쳐 방북했고 김일성 주석을 7차례 만나 고려연방제 등을 논의했으며, 북한의 대남 공작기구인 통일전선부의 활동지침에 따라 조국통일 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을 주도하고 그 전위조직으로 활동하는데 앞장서 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안기부는 4월 27일 미국에서 입국한 황씨를 구속한 뒤 1차 구속기간이 이날 만료됨에 따라 서울형사지방법원으로부터 구속기간 연장을 허가받아 그의 방북 행적 및 조국통일 범민족연합(범민련) 가담 활동내용 등을 계속 조사했다. 서울형사지법 합의25부(재판장 량삼승부장판사)는 5월 25일 수차례 북한을 방문,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범민련 해외본부 결성을 주도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무기징역이 구형된 소설 장길산의 저자 황석영피고인(49. 본명 황수영)에 대해 이례적으로 형량을 낮춰 징역 8년에 자격정지 8년을 선고했다(출처:www.system.com).

“지난 100년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북미관계의 변화를 통해 동북아시아가 경천동지할 상황이고 한반도의 역사를 변화시킬 계기가 왔는데 일부에서는 햇볕정책 이전의 대결적 상황으로 돌아가자는 반북적 시각을 갖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남쪽에 운하나 파겠다고 하는 반역사적, 반현실적 인식을 가진 분들이 있다. 이번 대선은 해방 이후, 민주세력의 정권 교체 이후 겨우 정착된 민주주의가 내용적으로 선진화할 기회다.”(박형숙의 대선진맥 25: 총대 민 황석영 「연합정부 전제로 후보단일화해야」『오마이뉴스』, 2007. 11. 22).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상기의 화려한 친북행각의 경력으로 볼 때, 황씨는 친북좌파의 이념적 정신적인 지주일 뿐만 아니라, 북한을 위해 일하는 ‘1급 일꾼’으로 인식될만한 巨物이다. 황씨는 김일성이 묘향산에서 함께 국수까지 먹으면서 애지중지한 남한 인사중에서 손까락에 꼽는 인물로서 송두율과 비견될 수 있는 친북인사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인해 5년간 복역하였으니, 그의 MB로의 접근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라고 볼 수 없다.

황석영씨가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서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전향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불쑥 이명박 대통령일행과 동행하게 된다. 국가정보원은 황석영의 신원조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청와대의 동행주문에 반대하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일손을 놓고 있었으니 국가정보기관으로서 중대한 직무유기죄를 저질렀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렇게도 대한민국에는 인재가 없어서 북한을 몇 차례나 안방처럼 들락날락하면서 김일성과 국수를 먹고, 국가보안법에 의해 5년간 감방에 복역했던 사상범을 다시 기용했어야했나? 더구나 황씨는 얼마 전까지만해도 反MB의 선봉장에 섰던 핵심 인물이 아닌가? 그렇다며 과거 김대중-노무현 좌파정부하에서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여 정권교체를 위해 온갖 희생을 감내했던 보수우익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꼴이 되고 말았지 않나?

III. 이명박과 황석영, 동행동기는 이해관계의 일치

여러 가지 풀리지 않은 의혹 중에서, 우선 이명박 대통령은 언제 어떻게 해서 황석영을 알게 되었으며 누가 먼저 연락했는가? 황씨의 기자회견에 의하면, 이것은 청와대의 초청이고 이 대통령의 직접 지시사항이라고 한다. 황씨는 이번 순방에 동행한 것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과 자신의 생각이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라고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10여년 전부터 몽골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남북한을 통합하는 '몽골+2코리아'론을 주장해왔는데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같은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황석영 씨 본인은 이 대통령과는 친한 사이라고 고백했다. 자신이 1993년과 1994년 공주교도소에 복역 중일 때 이명박 대통령이 두 번이나 면회를 와 그 때부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이-황 양자의 관계가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친밀하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인 발언이다. 이 대통령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황석영 동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앙아시아 순방 이전의 험악한 국내외정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집권 2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苦戰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연차뇌물사건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일가가 줄줄이 검찰에 구속당하면서 급기야 여야 중진의원들이 소환되었고, 부추길과 천신일 등 MB의 직계에도 검찰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과 한나라당의 0 대 5 참패로 인해 국민적 지지도가 무너지고 친이와 친박연대로 분열되어 여당내의 분란이 그치지 않는 점, 개성공단을 통한 북측의 대남협박으로 인해 남북문제가 날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여의도정치는 형님 이상득 의원에게 일임했는데, 4월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자 이상득의원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칩거에 들어갔으니, 국정운영에 마음을 터놓고 상의할 인물이 없다. 특히 북한문제가 꼬일대로 꼬이므로 이명박의 초조함은 불면증으로 이어지고 결국 내친 김에 황석영 카드를 내 보이게 된다.

그래서 국내에서 추락된 인기를 만회하고 남북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대외순방길로 정국타개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략이 청와대에서 수립되었을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초청이지만, 한국정부가 요청했을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올해 3월에 발표된 MB의 ‘신아시아외교구상’은 현존의 미중러일 등 4강외교를 중심으로 하여 그 외곽에 중앙아시아와의 자원경제협력을 통해서 한국이 아시아 경제문제를 보다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타개하려는 노력의 야심찬 일환이다. 미국발 경제금융위기가 가중되면서 미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여 나가야하고 다른 아시아지역과의 자원·에너지 협력이 중요 과제로 부각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황석영씨가 오래전에 주장한 ‘알타이 연합론’과 유사하다. 그 내용은 “남북한+중앙아 6국+중국+일본”을 유럽의 EU처럼 하나로 묶어 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이 포함된 점에 주목해야한다.

즉 이 신아시아 구상은 대통령이 남북문제를 우회(迂回)하여 타개하려는 고육지책의 일환으로서 볼 수 있다. 북한과의 소통은 판문점을 통해서가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통한 간접 접근을 시도하겠다는 의도이다. 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황씨가 이용가치가 많은 인물이다. 특히 중앙아시아와 중국과 몽고, 북한 등 외국에 많이 돌아다녀서 견문이 넓고 그 지역에 지인들이 많기에 황씨의 인맥을 활용하여서 중앙아시아 고위급 인사와의 접촉이 훨씬 원활했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을 수차례 왕래한 황씨의 대북정보망과 북한인맥을 활용한다면 장차 북한인사들을 설득하여 개성공단의 돌파구도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이 대통령은 황씨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국립대한민국관을 위한 건립위원으로 임명하였다.

황씨의 구상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지난 참여정부의 동북아론에 매몰되는 것을 탈피해 남북한을 포함한 몽골과 중앙아시아 등 알타이어권의 대연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자는 것이다. 황씨는 “분단 현실 속에서 한국자본주의는 1인당 소득 2만 달러가 한계라고 생각한다”며 “자원의 보고인 광활한 몽골로 눈을 돌리면 북한과의 문제도 풀어내고 중앙아시아까지 벨트를 구축하는 거대한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석영 자신의 동행 수락의 동기는 추정해 보건대, 다음과 같은 책략적 고려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① 정치적 차원에서 볼 때, 권력의 핵심부에 좌파의 기댈 언덕을 마련함으로써 몰락해가는 좌파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②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인생의 황혼길에서 찬밥의 陰地에서 따뜻한 陽地로 가서 마지막 여생을 좀 더 편안하게 지내고 싶은 심정이 꿀떡같을 것이다. ③ 대북정책의 차원에서는 이명박의 지근거리에서 조언하면서 이명박 정부를 명실상부하게 실질적 중도정권으로 유도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PSI 참여가 남북관계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남북연방제가 평화적으로 한반도통일로 가는 유일한 방안임을 꾸준하게 설득하는 것이다. 또 미북간의 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 유도하여 미국이 북한을 무력공격하지 못하도록 한다. ④ 임무의 핵심은 고립무원에 처한 북한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서방과 남한의 대북압박 포위망을 풀면서 남한의 기술과 자본+북한의 노동력⇒중앙아 결제협력 등식이란 삼각경제협력을 통해서 남한정부의 지원을 얻어내는 일이다. ⑤ 최종적으로는 남북한의 교착상태를 뚫는 대북밀사 역할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임하게 되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여론의 추이를 보면서 시기가 도래하면 황석영에게 남북관계에서 중대 임무를 부여할 수 있다.

황씨가 기자회견에 밝힌 내용을 보면 황씨 자신의 심정적 변화가 곳곳에 눈에 띄인다. 광주사태와 같은 경우는 영국과 프랑스와 다른 선진 국가에서 발생했었다는 것에 대한 언급이라든가, 한국의 좌파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이라든가, 중앙아시아를 돌파구로 해서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하여 대결관계를 풀고 아시아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자는 황씨의 제안에서는 MB에 대한 립서비스 차원의 발언도 있었지만 참신한 듯한 측면도 전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쨋든 이명박의 중앙아시아 순방길에서 황씨의 동행은 양자 이해관계의 일치가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이명박은 중앙아시아에 투자한 황석영의 정보와 인맥을 원했고, 황석영을 이를 기회로 삼아 MB의 신대북정책이 김정일을 너무 코너로 몰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부수적으로 황씨는 언론매체를 타면서 특별한 광고비 지출없이 창고에 처박혀서 낮잠자던 자신의 수많은 在庫 저서들을 선전·홍보하는 짭짤한 광고효과를 얻어내었으니, 북세일즈맨으로서도 탁월한 능력이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황씨는 이명박 정부를 중도로 규정했으며, 북한에 대해서 열린 자세가 되어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문제에 대해 현 정부가 대단히 전향적으로 유보한 것은 참 지혜로웠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황씨는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실용”이라면서 “개인적으로 사담을 나눈 적이 있고, 앞으로의 계획이나 대북관계로 볼 때 전향적으로 열려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황씨는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도록 하는데 우리가 노력하고, 북한하고도 평화조약 및 상호 불가침조약을 맺으면 그 많은 병력들을 동몽골로 데리고 가 광활한 땅을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左派 本色과 社會主義 夢想家의 동시에 모습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의 고민은 막힌 남북관계를 은밀하게 뚫을 수 있는 밀사역할을 할 인물을 보수쪽에서는 찾기 어렵다는데 있었다. 그래서 長考 끝에 나온 카드가 황씨다. 대내적으로는 추락한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서 이명박은 이번 황씨의 동행을 통해서 단순히 ‘경제대통령’이 아니라 ‘문화대통령’이란 이미지를 구축하여 좌우익을 아우르는 ‘통합리더쉽’의 상을 과시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대북화해제스쳐를 전달한 것이다. 황석영의 향후 역할은 형식적으로는 유라시아 특임대사지만, 장기적으로는 대북밀사적 성격이 짙다. 70년대초에 헨리 키신저 박사가 몰래 중공을 방문하여 1972년 미중수교의 다리를 놓는 밀사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황씨가 대북밀사 역할을 하려면 세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이 대통령으로부터 막강한 信任을 얻어야하고, 둘째로 청와대내에서 황씨의 역할에 힘을 실어주는 은밀한 지원세력이 형성되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셋째로 황씨는 실적(實積)을 중시하는 MB에게, 진돗개같은 충성심을 보여야하고 또 중앙아시아에서 한 두건의 실적을 쌓아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과연 황씨는 과거 정권시절에 대북밀사 역할을 했던 박정희의 이후락, 전두환의 박철언, 김대중의 박지원, 노무현의 김만복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IV. 함의: 참모보좌의 헛점과 잘못된 시그널

이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2개국 순방외교는 자원의 일환으로서 그동안 한국외교가 미중일러을 중심의 4강외교의 지평선을 넓힌 점에서 나름대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해야한다. 그런데, 외교수행과정에서 언론에게 논란거리를 제공함으로써 큰 성과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음은 심히 유감이다.

이번 황씨 동행이 주는 첫 번째 함의(含意)은 청와대 참모 중에서 대통령에게 쓴 소리나 直言하는 인물이 없다는 점을 반증하기에 국정운영에서 MB의 실책을 미연에 방지할 시스팀의 不在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제2차 롯데월드 신축을 위해 초고층빌딩에 대한 허가건도 청와대 참모들이 제대로 반대의견을 개진하지 못하였는데, 이번 황씨 동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정길 비서실장도 MB에게 제대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지 못한다는 점이 그대로 입증되었다. 청계천 사업에 대성공으로 인정을 받고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MB가 자신감이 지나쳐서 독단이 강하다 보니, 자연히 참모들은 위축되고 모든 것은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 MB의 판단력에만 의존하게 된다. 충분한 토론 절차가 없기에 사전에 MB의 행동을 교정하기가 어렵다.

두 번째 함의는 이-황 동행이 국내 좌익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전달한 점이다. 골수좌익을 끌어안고 비행기를 탔으니 좌익들에게 “대통령은 우리 편”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을 공산이 크다. 친북좌익에게는 사기충천의 용기를 불러일으키면서 올해 폭동과 반MB 집단행동이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재현될 개연성도 있다.

신영철 대법관의 거취문제를 두고 전국적으로 번지는 사법부의 집단행동도 예사 일이 아니다. 작년 미국쇠고기-광우병 촛불시위가 불꽃이 각급 법원으로 옮겨간 징후가 도처에 발견되고 있다. 촛불시위의 판결에 대한 신영철대법관의 권고행위는 결코 사퇴의 건이 아니다. 대법관이 얼마든지 하부 사법기관에게 올바른 판결에 도움을 주도록 권고 내지 충고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집요하게 진돗개처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집단행동을 통한 중대 下剋上이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내부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사법부의 존엄과 권위에 도전하는 중대 害法行爲다.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여론몰이식 비판과 운동권식 집단행위가 사법부를 뒤흔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불법행위들이 현 정부에 대한 정면도전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청와대는 이것이 마치 사법부의 자체의 독자적 행위로서 치부하여 통치행위 영역밖의 일인양 오랫동안 방치하면서 작년 쇠고기-광우병 파동처럼 화근(禍根)을 키우고 있다.

좌파들의 폭력을 수반한 대정부투쟁도 이미 도를 넘었다. “2009.5.16일, 민주노총과 화물연대 6,000여 명이 5m짜리 죽창 1,000여 개를 들고 경찰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 104명의 경찰이 심한 부상을 당하고 국민세금으로 산 버스 99대를 파괴했다. 민노총 시위대 6천여 명은 대전 한밭대로 7차로를 점거해 7km를 행진한 뒤 사전 집회신고를 하지 않은 중앙병원∼대한통운 구간 1.7km를 더 가려다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했고, 대전동부경찰서에의 난입을 시도했다.” 청와대는 폭력시위대에 대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하도록 일선지휘관에게 명해야한다.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발을 동동 굴리는 표현은 국민들의 몫이지 청와대가 할 일은 아니다.

작년 근 100일동안 시청과 광화문 네거리가 촛불난동으로 불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비겁하게도 ‘아침이슬’ 타령으로 청와대에서 꼭꼭 숨어있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 죄 없고 불쌍한 수십명의 대한민국 경찰과 전경들은 폭력시위대로부터 엄청난 폭력행사를 당하면서 가락동 경찰병원에 실려가야했다. 그들 중 일부는 영원히 不具가 되었다. 올해도 이 대통령은 그렇게 몸을 청와대에 숨기고 경찰과 전경으로 하여금 폭력시위대들이 휘두르는 죽창과 쇠파이프의 처참한 밥이 되게 할 참인가? 폭력시위를 진압하는 일은 경찰과 전경들에게는 자신들의 生死가 걸린 문제다. 그들에게는 ‘국가브랜드 하락’이란 용어는 일종의 사치품이다. 골치 아픈 국내문제를 피하려고, 외교순방만 자꾸 할 때가 아니다. 법치주의의 확립을 방해하거나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거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와대는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내각제가 아닌 대통령 5년 임기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세 번째 함의는 황씨 동행으로 인해 북한에게 잘못 전달된 시그널은 더 심각하다. 북한의 김정일 공산집단에게는 한국정부가 대북강경책을 구사하지 못하고 협상테이블로 나올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심어주어서 더욱 남한에 대한 무력도발의 위협과 공갈협박, 무리한 요구 등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북한의 6.15-10.4공동선언문을 실천하라는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인데,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國制의 문제이다. 그런데 5월 18일, 통일부가 후원한 「21세기 한반도 정세변화와 통일비전」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온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를 포함해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 기존의 모든 남북간의 합의를 존중할 것”이라고 언급하여 6.15-10.4에 대해서 북측에 양보할 수도 있는 점을 암시하였다.

일반국민들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건강이 악화된 김정일은 사생결단식의 전투모드로 가는데, 기업정치인 출신 이명박은 내심으로는 김정일의 위협에 질렸는지 협상모드로 가려는 대북제스처처럼 보인다. 김정일의 대남강공책에 당황한 MB가 평양 김정일을 향한 러브콜이 시작된 조짐이 솔솔 감지된다. 황씨의 동행과 후속조치로서 현 통일부장관의 발언은 대북협상을 하면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이 대통령의 심리적 초조함의 발로(發露)가 아닐까? 그러나 김정일이 이 정도의 제스처로 OK할 위인은 결코 아님을 똑바로 알아야할 것이다.

V. 결론: 분별없는 잘못된 처신

이 대통령의 황씨 동행은 ‘바람기있는 분별없는 남편의 處身’과 같다. 마치 「本妻를 따돌리고 눈앞의 출세와 인기에 연연하여 공개적으로 공공연하게 외간 여자와 바람을 피운 철이 없는 남편 꼴」이 되고 말았다. 그 본처(보수우익)는 남편(이명박)을 성공(정권교체)시키기 위해 온갖 풍진세파에 시달린(근 10년간 아스팔트에서 좌파와 투쟁하면서 골병이 든) 조강지처(애국지사)다. 아!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이것은 마치 오로지 남편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뼈 빠지게 봉사했지만 오래된 남편의 외도(外道)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순진한 糟糠之妻의 마음상태이리라! 이 배신감을 어디에 호소할 것인가? 과거에 친했던 愛人(남북문제와 사상적으로 의기투합한 점)이지만 이제는 돌아선 관계(정치적 입장이 다른 관계)인데 굳이 다시 이런 식으로 불러들여야 했나?

이명박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더욱 가열될 것이고 지지세력인 보수의 자체 분열과 불신감은 한나라당의 무기력증에 대한 실망감을 추가하여 더욱 커질 것이다. 자칫하면 이명박 정부는 좌파와 우파의 협공에 샌드위치 정권이 될 수 있다. 4월 보궐선거 결과인 0 대 5의 참패에 말해주듯이, 한번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6.15찬성론자 인 원희룡의원의 쇄신특위 위원장 임명에 대한 보수의 불만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한나라당 인기가 동반 추락할 것이며, 보수우파내에서 대안정당과 정치세력의 교체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이번 중앙아시아 순방에서 황씨 동행은 일국의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국민들이 불안감을 가지게 되는 ‘깜짝쑈’ 하듯이 하면 안된다는 점과 또한 청와대 참모진의 보좌역량에 허점을 노출함으로써 중대 교훈을 남긴 바람직하지 못한 事例로 기록될 것이다. 2009/5/21 [이주천 국제현대사연구소장: www.leejuche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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