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 대질 신문조서 - 2003년 6월13일

북한 아태재단 송호경 부위원장 - 『(한국정부에 현금으로 50억 달러 요구했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특검 진술조서(김충식 대질신문조사)

성명 : 이익치(李 益 治)
주거 : 서울 광진구 광장동
직업 : 무직(전 현대증권 대표이사 회장)
연령 : 59세

2003. 6. 12. 남북정상회담관련 대북비밀송금 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사무소 1510호 조사실에서 임의로 아래와 같이 진술하다.

1. 저는 위 주거지에서 처 이ㅇㅇ(55세)와 생활하고 있으며, 아들 ㅇㅇ(33세), 아들 ㅇㅇ(31세), 아들 ㅇㅇ(30세)은 결혼하여 따로 나가 살고 있습니다.

1. 2000. 3. 9. 싱가포르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한 남북당국간 회담에 정몽헌 회장을 수행하여 참여한 사실이 있으며, 북측과의 접촉에서 현대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4억불, 정부가 1억불을 부담키로 한 사실을 정몽헌 회장을 통하여 알게된 사실이 있으며, 2000. 6월경 현대가 부담할 자금조달을 위하여 정부에 (판독불능)으신다면 모든 것을 사실대로 진술하겠습니다.

이때 검사는 위 진술의 취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임의로 다음과 같이 문답하다.


문 : 진술인이 이익치 본인인가요.

답 : 예, 이익치 본인이 분명하며, 필요하시면 제 신분증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때 검사는 진술인이 제시하는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이를 사본하여 본건 조서말미에 첨부하다.


문 : 진술인의 학력 및 경력은 어떤가요.

답 : 경기고등학교 및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1969. 10. 현대건설(주) 일반사원으로 입사하였으며, 1978. 11. 1.자로 현대엔진공업(주) 이사로 승진되었으며, 1982. 5.경부터 현대엔진공업(주) 전무이사, 1987. 5.경부터 현대중공업(주) 전무이사, 1990. 2.경부터 현대해상화재보험(주) 제2영업본부장 전무이사, 1993. 6.경부터 현대해상화재보험(주) 부사장, 1996. 1.경부터 현대증권(주) 대표이사 사장, 1999. 1.부터 2000. 9. 3.까지 현대증권(주)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직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이 현대증권(주) 대표이사 사장 및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판독불능)

답 : 1989. 1. 24. 정주영 명예회장의 방북을 시작으로 대북사업을 추진하였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고, 정몽구 회장측의 현대정공에서 차정식 전무를 앞세워 겨우 화차 임가공 등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를 불만스럽게 생각한 정주영 명예회장이 1998년초에 이르러 정몽헌 회장에게 대북사업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정몽헌 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한측과 1998. 1.경 회담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정몽구 회장측의 차ㅇㅇ 전무가 북한측에 ‘정몽헌 회장이 현대측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통지문을 보내는 바람에 위 회담약속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틀어지게 되자 현대그룹은 그룹종합기획실 박세용 사장을 대표로 1998. 2. 9. 김윤규, 차ㅇㅇ, 본인(이익치) 등과 함께 중국 베이징(북경)에서 북한측을 만나 제1차 회담을 가졌고, 그 회담에서 대북창구를 김윤규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단일화 시키게 되었던 것이며, 그 이후 같은 해 6. 28. 김윤규를 단장으로 ‘현대 대북사업단‘을 발족하고, 1999. 1.경에는 현대 그룹사들의 공동출자로 주식회사 아산을 설립하여 대북사업의 창구를 맡기고 대북협상과 사업을 주관케 하였던 것으로서 제가 정주영 명예회장님이나 정몽헌 회장을 수행하고 여러차례 북한을 방문한 사실(판독불능)


문 : 대북사업의 창구 역할 및 주관은 누가 하였는가요.

답 : 1998. 2. 9.부터 김윤규 현대건설 부사장, 1998. 6. 27.부터는 현대 대북사업단(단장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1999. 1.경부터는 (주)아산?현대아산(주)(회장 정몽헌?사장 김윤규)이 그룹종합기획실의 대북업무분담 기획?조정에 따라 실무적으로 대북관계의 창구로 결정되어 직접 북한 인사나 기관을 접촉하고, 사업?비용?송금 등을 협상하고 대북사업을 주관하였습니다.


문 :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대복사업을 위하여 북측과의 접촉을 시도해 보라는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1998. 1월경 정몽헌 회장이 그룹회장으로 취임한 후, 정몽헌 회장은 그 동안 명예회장이 이루어 놓은 대북사업이 침체국면에 처해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대북사업을 위해서는 다시 북측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면서 저에게 북측과의 접촉을 모색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를 하였으며, 저는 YS정부 당시 YS와 친분이 있고, 한국주재 일본특파원으로 있다가 귀국하여 일본 규슈대학교수이던 일본인 ‘고바야시‘가 북한 김용순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중재를 요청하였고, 고바야시의 중재로 1998. (판독불능) 전무가 북한측에 정몽헌 회장이 현대측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통지문을 보내자, 북한은 현대의 대북창구는 정확히 누구냐면서 일방적으로 만남을 취소시키게 이르렀습니다.
이 사실을 명예회장께서도 알게 되었으며 명예회장이 친서를 작성하여 그룹종합기획실 박세용 사장을 대표로 1998. 2 9. 김윤규, 차정식, 본인(이익치) 등을 중국 베이징(북경)으로 보내 북한측과 만나게 하여 앞으로 현대를 대표하는 사람은 김윤규, 북경을 대표하는 자는 현대종합상사 북경지사장 김ㅇㅇ이 담당하기로 하였다는 사실을 북한측에 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참 후에 고바야시를 통하여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당시 고바야시는 김용순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황이라서, 고바야시가 1989년 명예회장과 김윤규 사장이 처음 북한을 방문할 때 연결 역할을 하였던 한국계 일본인 ‘요시다‘를 통하여 북측과의 연결을 시도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 : 고바야시와 요시다는 어떤 인물들인가요.

답 : 고바야시는 김영삼 정부시절 한국주재 일본특파원으로 근무를 하였으며, 귀국 후에 일본 규슈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명예회장님이 전경련회장을 하실 때 서울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였던 (판독불능) 요시다는 1989년 명예회장께서 북한을 처음 방문한 때 이 사람이 연결을 하였다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요시다의 아버지가 김일성과 친분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시다는 북한측에서 잡은 꽃게와 같은 물건을 넘겨받아 직접 일본으로 판매를 하는 일종의 무역중개업을 오랫동안 하면서 북한측과는 상당한 친분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제가 요시다와 직접적인 친분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 :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하여 북측과 접촉하도록 지시 받은 사실이 있었는가요.

답 : 예,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문 : 그러한 지시를 받은 것은 언제쯤인가요.

답 : 제가 기억하기로는 1999. 12월 하순경쯤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 : 현대가 남북정상회담개최를 추진하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1998. 2.경 중국 북경에서 현대와 북측과의 접촉이 시작된 이후 그해 10월과 1999. 10월 두 차례에 걸쳐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현대는 대북사업에 더 많은 기대를 갖게 되면서 여러 가지 사업계획을 구상하게 되었으며, 정몽헌 회장도 향후 대(판독불능)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게 된다면 앞으로 대북사업에서 현대의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저에게 남북정상회담 추진이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문 :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검토하라고 하던가요.

답 : 1999. 1.경 현대아산이 설립된 이후에 한국계 일본인 요시다의 북한내에서의 영향력을 인정하여 현대아산의 고문으로 임명하였는데, 정몽헌 회장이 저에게 ‘이런 일은 보안을 요하는 사안이니까 이회장께서 살짝 요시다를 만나서 북측의 의사를 타진해 보도록 해 보라‘는 지시를 하였습니다.


문 : 그 당시 대북사업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진술인에게 이러한 지시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김윤규 사장이 실무적인 일을 담당하고는 있었지만, 이러한 일은 보안을 요하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정몽헌 회장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김윤규 사장이 아닌 저에게 요시다와의 접촉을 지시하였던 것 같습니다.


문 : 요시다를 만났는가요.

답 : 예,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데, 무슨 일 때문에 요시다가 국내에 들어왔을 때 요시다를 만나서 ‘정몽헌 회장님께서 남북정상 (판독불능) 얼마후 요시다로부터 ‘가능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때 요시다가 ‘저쪽의 조건이 안기부 사람을 대표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에게 보고를 하였는가요.

답 : 제가 정몽헌 회장에게 “저쪽에서 가능하다고 하는데, 조건으로 안기부 사람을 대표로 해서는 안된답니다“라고 하자, 정회장께서 ‘그럼 임동원 장관은 안되겠구만‘하시면서 ‘박장관한테 말씀을 드려봐야겠구만‘이라고 하셨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이 임동원 원장과 친분이 있었는가요.

답 : 대북사업 때문에 정몽헌 회장과 김윤규 사장은 임동원 국정원장을 자주 만나기 때문에 친분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저희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회담이라면 당연히 남측 대표로 국정원장이 나설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북측이 안기부 사람을 대표로 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내세워서 국정원장이 대표로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문 : 박장관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요.

답 :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도 재직하셨고, 그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재직하시고 계시던 박지원 장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 : (판독불능) 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그 당시 저희 현대의 금강산 관광선운항사업이 문화관광부장관 소관이었고, 정회장께서는 금강산 관광선운항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국인이 많이 타야 하는데, 그러려면 카지노와 면세점이 있어야 한다고 항상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고,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이 문화관광부였기 때문에 아마 한 두 차례 뵈었다는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국정원장이 안 된다고 하니까 박장관을 이야기하였던 것 같고, 덧붙여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하는 것이 눈에 띄더라도 자연스럽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서 자신이 박장관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이 직접 박지원 장관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였는가요.

답 : 그로부터 며칠 후 정몽헌 회장이 저를 불러서 ‘박장관쪽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대표를 자기가 하기로 했으며, 어르신(대통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임)으로부터도 결재를 받았으니, 일정을 잡아보라‘는 통보를 받았으니, 요시다를 통하여 구체적인 일정을 잡아보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문 : 요시다를 통하여 일정을 잡았는가요.

답 : (판독불능) 접촉한 일시와 장소를 잡아 보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문 : 이 시기가 언제쯤으로 보면 되는가요.

답 : 2000. 2월경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문 : 요시다로부터 연락이 왔는가요.

답 : 예, 2월 하순경 요시다로부터 2000. 3. 9. 싱가포르에서 예비접촉을 갖자는 북측의 제의가 있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문 : 정몽헌의 진술에 의하면 2000. 3. 2.부터 11.까지 김대중 대통령의 유럽순방을 수행하기 위해 프랑스에 머물고 있을 때 진술인으로부터 예비접촉 통보를 받았으며, 그 통보를 받고서 3. 8. 바로 싱가포르로 향하였으며, 박지원 장관에게는 진술인으로 하여금 통보하도록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렇지는 않습니다. 북측이 접촉을 제의할 때는 통상 2주전쯤에 연락을 주는 것이 관례였고, 제가 알기로 김대중 대통령 유럽순방길에 박지원 장관이 수행을 않고, 국내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2월 하순경쯤 북측으로부터 이러한 통보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정몽헌 회장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 : (판독불능)

답 : 그렇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당국자간 접촉은 모두 몇 차례나 이루어졌는가요.

답 : 2000. 3. 9. 싱가포르에서 예비접촉이 있었으며, 같은 달 17~18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제1차 회담, 같은 달 23. 중국 베이징에서 제2차 회담, 같은 해 4. 8. 중국 베이징에서 제3차 회담까지 모두 4차례의 접촉이 있었습니다.


문 : 남북당국간 회담에 현대도 함께 참여를 하였는가요.

답 : 남북당국간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 제가 정몽헌 회장을 수행하여 회담장 주변에 있었지만 남북당국간 회담에 현대가 직접 참여한 사실은 없고,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끝난 이후에 현대측 정몽헌 회장과 북측 아태 송호경 부위원장간에 별도로 협상이 이루어졌습니다.


문 : 회담장 구성은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남북당국간 회담장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으나, 현대와 아태와의 접촉은 정몽헌 회장 방을 스위트룸으로 잡아서 정몽헌 회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이 독대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저 (판독불능)


문 : (판독불능) 남북 당국자간 예비접촉이 이루어졌는가요.

답 : 예, 2000. 3. 9. 싱가포르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당국자간 예비접촉이 이루어졌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당국자간 예비접촉이 이루어진 과정은 어떤가요.

답 : 그 당시 정몽헌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유럽순방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3. 8. 프랑스에서 싱가포르로 바로 이동을 하고, 저는 국내에서 혼자서 싱가포르로 이동한 후, 정몽헌 회장, 요시다와 합류를 하였습니다.


문 : 요시다가 예비접촉 장소에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 자체를 요시다가 중개하여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처음 상대방을 소개하는 자리라서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예비접촉에 참석하였던 사람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현대측에서는 제가 정몽헌 회장을 수행하고, 중개인 요시다가 참석하였고, 남측에서는 박지원 장관, 국정원 김보현 국장이, 북측에서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 황철 참사가 예비접촉 장소에 나왔습니다.


문 : (판독불능) 국정원의 김보현 국장이 참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사실 이러한 협상은 국정원이 나서야 할 사안이었으나, 북측이 대표자로 안기부 사람을 배제하는 바람에 직접 전면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박지원 장관은 북측과의 접촉에 전혀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국정원이 박지원 장관을 실무적으로 보좌할 수 있는 국정원 국장을 딸려 보낸 것으로 알고 있으나, 협상 과정에서 김보현 국장이 국정원 직원이라는 신분을 숨겼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임동원 원장은 김보현 국장을 통하여 회담 내용을 국내에서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남북당국자간 예비접촉을 위해서 현대와 남측 대표와 사전협의를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정부측과의 접촉은 정몽헌 회장이 직접 하셨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문 : 그 당시 남북당국자간 예비접촉은 3. 9.로 예정이 되어 있었는데, 진술인은 2000. 3. 6. 출국하고, 그 다음날인 3. 7. 국가정보원 김보현 국장이 대통령 특사인 박지원 장관을 보좌하기 위해 미리 (판독불능)


문 : (판독불능) 사전협의를 거쳤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문 : 먼저 나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홍콩에 있는 거래 고객을 만나기 위해서 먼저 출국을 하였던 것이지 정부측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서 나갔던 것은 아닙니다.


문 : 예비접촉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고 있는가요.

답 : 정몽헌 회장이 박지원 장관과 송호경 아태 부위윈장 사이를 서로 인사시켰으며, 수행하였던 저와 김보현 국장, 북측의 황철 참사 등도 서로 인사를 시켰습니다.


문 : 회담장소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호텔에서 회의실 하나를 빌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 : 예비접촉에서는 어떤 사항들이 논의되었는지 알고 있는가요.

답 : 정몽헌 회장이 서로를 인사시키고 난 후, 몇 마디 덕담을 하고서 정몽헌 회장과 저만 빠져 나왔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논의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문 : 남북당국간 예비접촉이 끝난 이후 현대와 아태측간에 접촉이 있었는가요.

답 : 그때는 접촉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문 : (판독불능) 정부측과 사전에 논의한 사항이 있었는가요.

답 : 그것도 역시 정몽헌 회장이 어떻게 하였는지 모르지만, 제가 직접 정부측 관계자를 만나서 상의하거나 한 것은 없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준비회담은 언제 개최되었는가요.

답 : 2000 3 17.부터 18.까지 중국 상해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문 : 1차 회담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석하였는가요.

답 : 예비접촉에 참석하였던 사람들과 동일하였습니다.


문 : 회담장소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본 회담부터는 남북당국간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으나, 이때부터 현대측은 정몽헌 회장방을 스위트룸으로 잡아 놓고서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과의 협상은 그곳에서 이루어졌으며, 협상은 정회장과 송 부위원장간 독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문 : 1차 회담에서는 어떤 내용들이 논의되었는지 알고 있는가요.

답 : 모릅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끝난 직후에 현대와 북축 아태 송호경 부위원장간에 접촉이 있었는데, 그때 송호경 부위원장이 ‘남측에서 베를린선언을 이야기하면서 정상회담이 잘 되면 비(판독불능) 하는데 남측이 도와 줄 수 있다‘는 제의를 했다는 말을 해주었고, 다음 회담은 ‘2000. 3. 23. 중국 북경에서 갖기로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진술인도 이런 내용을 들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그날 회담에서 2차 회담을 2000. 3. 23. 중국 북경에서 갖기로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남북당국자간 회담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문 : 제2차 회담은 언제 이루어졌는가요.

답 : 2000. 3. 23. 중국 베이징(북경)에서 2차 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문 : 정부측과 현대측의 회담 참여자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정부측에서는 박지원 장관, 김보현 국정원 국장이 참석하였으며, 북측에서는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 황철 참사가, 현대측에서는 제가 정몽헌 회장을 수행하여 참석을 하였습니다.


문 : 현대가 남북당국간 회담에 직접 참석한 것인가요.

답 : 저희가 남북당국간 회담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고, 남북당국간 회담이 끝나면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이 정몽헌 회장 방으로 와서 협상을 하였던 것입니다.


문 : 이날 회담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판독불능)액은 모르겠고, 우리측에게도 10억불을 요구하였다는 이야기를 정회장이 해주었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끝난 직후 송호경 부위원장에게 ‘어떤 협의가 있었습니까‘라고 물으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이 ‘그냥 뭐 남쪽에서 비료든, 쌀이든 인도적인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였고, 잘 되면 SOC사업을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하였다면서, 남측이 ‘향후 잘되면 10억불이든 20억불이든 몇 년에 걸쳐서라도 지원해 줄 수 있다‘라고 하더라는 말을 듣고서, 그래서 당신들은 뭐라고 했느냐고 물으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이 ‘캐쉬(현금)를 요구를 했다‘라고 하여, ‘얼마나 요구했느냐‘라고 하니까 ‘캐쉬로 5억불을 요구했다‘라고 하여, 저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정부가 어떻게 돈을 줄 수 있겠느냐. 그것은 불가능 할거다“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는가요.

답 : SOC사업 이야기도 있었고, 북측이 정부에 돈을 요구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확한 금액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문 : 그러면서 송호경이 정몽헌 회장에게 ‘그 동안 논의되어 오던 사업권을 줄 테니 그 대가로 10억불을 내놔라‘라고 요구하여, 정회장은 ‘무슨 소리냐 그 동안 논의되어 왔던 사업권의 가치를 따져 보더라도 2(판독불능) 말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정회장으로부터 들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정회장으로부터 북측이 현대에 10억불을 요구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문 : 2차 회담에서 다음 회담기일이 잡혔는가요.

답 : 제가 기억하기로는 2000. 4. 8. 중국 북경에서 갖기로 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2차 회담은 북측의 대가성 요구로 결렬되었으며, 차기 회담일정도 잡지 못한 채 끝났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정확한 기억이 없습니다.


문 : 진술인과 정몽헌 회장은 2000. 3. 29.부터 30.까지 중국 북경을 다시 방문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맞는가요.

답 : 저와 함께 정몽헌 회장이 출국한 것으로 되어 있는가요. 그렇다면 맞겠지요.


문 : 이날 어떤 이유로 출국한 것인가요.

답 : 정몽헌 회장이 송호경 아태위원장을 만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문 : 2000. 3. 23 남북당국간 회담이 결렬된 상태였는데, 다시 송호경을 만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판독불능)


문 : 정몽헌 회장은 이날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이 다시 지난번 언급하였던 10억불을 요구하여, 정회장은 송호격에게 ‘그것은 솔직히 말도 안되는 요구다‘라고 거절을 하자, 송 부위원장이 ‘그럼 7억불은 가능하겠느냐‘라고 하였으나, ‘그것도 많다‘면서 잘라 말해 버리자 더 이상의 말이 없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나서 정회장이 송호경에게 ‘그럼 이제 더 이상 회담을 하지 않을거냐‘라고 하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은 ‘더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는 여운을 남기 이에 ‘그럼 내가 돌아가서 정부측의 입장을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라고 한 후에 귀국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하는데, 이런 내용에 대하여 기억하는 것이 있는가요.

답 : 협상내용을 보면 3. 23. 결렬된 남북당국간 회담을 연결시키려는 흔적이 보이기는 한데,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하여는 기억이 없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이 북측이 10억불을 요구하다가 이번에 7억불을 요구하더라는 말을 하지는 않던가요.

답 :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은 없습니다.


문 : 접촉결과를 보면 북측이 협상을 재개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한 것 이외에 특별히 합의된 사항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이는 현대 또 (판독불능) 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정몽헌 회장의 진술내용을 들어보면 그렇습니다.


문 : 북측의 회담 재개 의사가 있음을 확인한 결과에 대하여는 3. 30. 정몽헌 회장이 귀국한 직후 박지원 장관을 만나서 전달되었으며,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한 번 만나 보기로 했으니까, 그쪽에 연락을 해서 일정을 잡으라‘라는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 진술인도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는가요.

답 : 아, 이제 기억이 납니다. 그때 2차 회담에서 3차 회담 날짜를 잡지 않았고, 나중에 요시다를 통하여 다시 일정을 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차후 회담일정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서 바로 진술인에게 북측의 의사를 타진해 보도록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렇습니다. 정몽헌 회장이 저에게 다시 차후 회담일정을 잡아보라는 지시를 하였고, 그때서야 2000. 4. 8. 중국 북경에서 3차 회담을 갖자고 한다는 북측의 제의를 요시다로부터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문 : 북측이 우리 정부측 입장을 받아들여 3차 회담을 재개하자고 하였다면 이미 2차 회담에서 5억(판독불능) 명해 보이는 바, 이 부분에 대하여 정부측에서 현대와 대책을 협의하였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모릅니다. 정부쪽은 정몽헌 회장이 직접 상대를 하였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문 : 또한, 현대측 입장에서도 이미 10억불 요구를 받은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향후 북한의 접촉에 있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최소한 정몽헌 회장과 진술인간에 협의는 있었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정몽헌 회장이 ‘그 친구들이 엉뚱한 금액을 요구하는데 참 어려워‘라는 말을 하였으나, 그 부분에 대하여 저와 어떻게 하자느니 하는 협의를 한 적은 없습니다.


문 : 결국 3차 회담의 결과를 보더라도 우리 정부에 요구한 5억불, 현대에 요구한 10억불 모두 쟁점으로 거론되었으며, 장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이 문제가 해결되자 곧바로 남북정상회담개최 합의문이 작성되게 되었던 것으로 보아 정부와 현대도 사전에 이에 대한 충분한 의견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정부와의 조율에 대하여는 저는 모르겠으나, 정몽헌 회장과 제가 10억불에 대하여 협의한 사실은 없습니다.


문 : (판독불능) 5. 진술인과 정몽헌 회장이 함께 일본으로 출국을 한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가요.

답 : 예, 그것은 정주영 명예회장님의 손님과 일본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그때 정몽헌 회장, 저, 김윤규 사장, 명예회장 주치의 등이 함께 출국하였다가 저는 4. 7. 명예회장을 모시고 돌아왔으며, 저는 귀국하였다가 다음날인 4. 8. 중국 북경으로 가고, 정몽헌 회장은 일본에서 바로 북경으로 왔었습니다.


문 : 예비접촉에서부터 3. 29. 북측과의 접촉에 단 한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던 김재수 현대그룹 재정본부장이 4. 8. 중국으로 출국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제가 알기로 김재수 사장은 중국 상해로 간 것으로 알고 있으며, 중국에서 세계최대 곡물회사인 ‘카길‘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나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2000. 4. 8. 중국 베이징에서 3차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개최되었는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이때 참석자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박지원 장관, 김보현 국장,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 황철 참사 등 (판독불능) 제가 참석하였습니다.


문 : 회담장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요.

답 : 이날 회담은 같은 호텔에 남측 대표단도 투숙하였으며, 같은 호텔 내에서 회담이 이루어졌으나, 회의장이었는지 객실을 이용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와 아태와의 접촉은 정몽헌 회장의 스위트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문 : 3차 회담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새벽 늦게까지 정몽헌 회장과 송호경 회장이 회의를 하여, 협상을 마쳤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남북당국간 회담이 북측이 요구한 대가에 대하여 합의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결렬된 이후, 정몽헌 회장과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간에 다시 협상이 진행되었으며, 이때 송호경이 현대에 7억불을 요구하였으나 정회장과 장시간의 협상 끝에 4억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3억 5천만불은 현금, 5천만불은 그동안 북에 넘어가 있는 물건대금 등을 포함하여 현물로 처리하기로 하였다면서, 제 의견을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런 결정에 대하여는 회장님께서 하시겠다면 하시는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정회장께서도 ‘해야되겠지, 하는 것이 낫겠지‘라는 (판독불능)


문 : 그때 남북당국간 회담이 결렬된 상태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가요.

답 : 정몽헌 회장이 송호경이 우리 정부와 협상이 잘 안되서 돌아왔는데, 우리가 4억불을 정상회담 전까지 해결해 주기로 하니까 다시 정부와 협상 테이블로 돌아갔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문 : 그 이후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요.

답 : 송호경이 남측 대표단과의 협상테이블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와 정몽헌 회장과 협상을 시작하였는데, 협상을 마치고 정몽헌 회장이 저에게 간략한 합의서 한 장을 보여주었는데, 정몽헌 회장과 송호경이 서로 서명한 것이었습니다. 얼핏 기억되는 내용이 SOC 사업권과 몇 가지 사업권이 언급되었고, 특히 기억나는 것은 독점권이라는 말이 들어 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가와 관련하여 정확하지는 않지만 4억불이라는 금액이 기재되어 있는 약식 합의서였습니다.


문 : 이때 정부가 1억불을 지급키로 한 것에 대하여 현대가 보증을 서기로 하였다는 말을 하지는 않던가요.

답 : 1억불을 정부가 부담키로 하였다는 말을 들었지만, 현대가 이를 보증하기로 하였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문 : (판독불능) 정몽헌 회장이 머물고 있는 객실로 찾아와 남측이 한 장(1억불)을 주기로 했으며, 남측이 안줄 경우 너희가 대신 지불하라‘는 요구를 하면서 ‘정부에 대한 보증이 없다면 남북정상회담도 없다‘는 식으로 나오기에 한발 물러서는 척 하면서 ‘남측 정부가 못줄 경우 우리가 책임을 지는 대신에 우리에게 주기로 한 사업권에 통신사업을 추가하여 포함시키고, 독점권까지 넣어달라‘라는 요청을 하자 수락을 하였던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정부가 1억불을 부담하고, 우리가 4억불을 부담하여 모두 5억불을 주기로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문 : 이 자금은 모두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북측에 교부하기로 합의된 것이었는데,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었는가요.

답 : 정몽헌 회장이 4억불을 정상회담 전까지 주기로 하였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때 검사는 진술인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 후, 차후에 다시 진술을 계속하기로 하다.(2003. 6. 13. 02:40)
2003. 6. 13. 오전 10:18분에 다시 조사를 계속하다.


문 : 현대가 북측에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4억불을 지급키로 한 이후, 이건 자금은 어떤 방법으로 조달하려고 하였는가요.

답 : (판독불능) 정몽헌 회장은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서 4월 중순경 귀국을 하였으며, 그 직후에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을 회장실로 불러서 ‘우리가 북한에 사업을 하는데 4억불 정도가 나가야 할 것 같으니까 준비를 해 보라‘는 지시를 하자, 김재수 본부장이 ‘아, 그거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잖아도 4월 초순경 북경에서 미국 카길 곡물회사 관계자를 만났는데 돈을 끌어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문 : 그럼 이미 김재수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4억불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하여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답 : 그런 것이 아니고, 카길은 세계최대의 곡물회사로서 중국에 아시아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입니다. 현대의 대북사업이 성공할 경우 카길에게 북한에 곡물을 판매할 수 사업권을 주는 대신에 어느 정도의 투자금을 유치할 목적에서 김재수 본부장이 접촉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런 논의가 진행중에 있었기 때문에 4억불 정도의 자금동원이 가능할 것 같다는 식의 보고였던 것 같습니다.


문 : 그 외에 다른 구체적인 자금동원 방법을 모색하지는 않았는가요.

답 : 2000. 4. 26. 현대투자신탁 환매사태가 발생하면서 주식시장이 (판독불능) 사재를 출자하기로 하면서 현대증권 주식 및 투자신탁운용의 매각을 지시하여 저는 그 일에 매달리게 되었으며, 다른 한팀에서는 대북사업 4억불 송금관련 자금조달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제가 알기로 일본에서도 대북사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현대에서는 일본측 관계자들을 접촉하여 대북사업에서의 우선권 등을 조건으로 투자금을 유치하여, 동 자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2000. 5. 3. 중국 베이징에서 현대아산(주) 김윤규와 북측의 아태 서기장 강종훈과의 사이에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서(이하‘7대 경협사업권‘이라 한다)‘에 잠정합의를 하게 되는데 알고 있는가요.

답 : 그 당시 저는 현대증권 주식 및 투자신탁운용사의 매각에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내용에 대하여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남북당국간 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우리측 정부가 북측에 지급키로 한 1억불을 현대가 부담해 줄 것을 요청한 사실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요.

답 : 정부가 1억불을 북측에 지급키로 한 사실에 대하여는 4. 8. 남북당국간 회담이 끝난 직후에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판독불능)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2000. 5월 중순경 정부측으로부터 이러한 요구를 받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2000. 5. 12.부터 18.까지 현대투신운용 매각 문제로 미국을 방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내용까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문 : 이날 정몽헌 회장이 정부가 부담하여야 할 1억불을 대신 부담키로 하면서 정부측에 ‘현대가 자금이 여의치 않으니 자금지원을 요청하였다‘라고 하는데 알고 있는가요.

답 : 그 당시 저희 현대계열의 자금사정이 정말 어려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문 : 위와 같이 현대가 정부의 부담금 1억불을 떠 안게 되었다면 정부로부터 그에 상응한 대가를 약속 받았어야 할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문 : 2000. 4월 하순경 내지는 5월 초경 사이에 박지원 장관은 이기호 경제수석에게 ‘현대가 대북사업을 통해서 남북정상회담합의에 기여를 했기 때문에 그 기여도를 높게 사서 어떤 방법으로든 보답이나 지원을 해 주어야 할 것 아니냐‘면서 현대의 지원을 지시하 (판독불능) 정부가 현대의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현대도 이러한 지원 또는 부담을 가늠해 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그런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문 : 현대의 대북송금 자금조달과 관련하여 진술인이 직접 박지원 장관 또는 정부측 관계자를 만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박지원 장관을 한번 만난 사실이 있었습니다.


문 : 그때가 언제쯤인가요.

답 : 2000. 6월 초경쯤 서울프라자호텔 로비에서 잠깐동안 박지원 장관을 만난 사실이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이 박지원 장관을 만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정몽헌 회장의 지시로 현대에 대한 자금지원을 요청하기 위하여 박지원 장관을 한 차례 만났습니다.


문 : 진술인이 박지원 장관을 만나게 된 경위는 어떤가요.

답 : 2000. 6. 1. 정몽헌 회장이 일본 출장을 위해 출국하기 전에 저를 불러서 하시는 말씀이 ‘현대투신운용 매각건 등의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느냐‘고 물으서셔, 제가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무자들과 잘 협의하여 처리하고 있고, 조만간 다시한번 미국을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는 말을 (판독불능)
그러나 정회장께서 다시 내가 대북송금 관계를 김윤규, 김충식, 박종섭 등과 상의하여 처리해오고 있는데, 이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아직까지 마무리가 되지 않고 있어 걱정이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5월 중순경 박장관에게 자금지원을 부탁해 놓은 것이 있는데, 사장들이 어렵다고 하면 박장관에게 연락을 드려서 내(정회장 자신)가 지난번 부탁드린 것에 도움을 부탁드린다‘는 요청을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문 :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그런 지시를 받은 직후에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이 저를 찾아와서 ‘정회장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는데, 지금 상선의 자금사정이 어렵습니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문 : 현대상선 김충식 사장의 진술에 의하면 2000년 5월말 또는 6월 초경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현대사옥 12층 회장실에서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급히 정부에 돈을 빌려주어야 한다. 자세한 것은 이익치가 얘기해 줄 거다. 매우 중요한 것이니 차질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는데, 김충식 사장이 정회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하였습니다.


문 : (판독불능)이 자신을 불러서 2억불을 급히 정부용도로 써야 한다. 이것은 정부에 빌려주는 돈이다. 대통령이 북한에 가는데 이거 안 하면 안 된다. 상선이 꼭 도와주어야 된다‘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고, 김충식 사장이 찾아와서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였던 것입니다.


문 : 김충식 사장을 불러서 대북송금에 대한 재차 지시를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제가 불러서 지시를 한 사실은 없고, 김충식 사장이 저를 찾아와서 상선의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보고를 하였던 것입니다.


문 : 이 부분에 대하여 김충식과 대질조사를 하여도 괜찮겠는가요.

답 : 예, 괜찮습니다.


이때 검사는 김충식을 입실케하여, 진술인과 나란히 앉게 한 후, 김충식에게 묻다.


문 : 진술인이 김충식인가요.

답 : 예, 제가 김충식 본인입니다.


문 : 진술인의 인적사항은 어떤가요.

답 : 제 이름은 김충식이며, 주민등록번호는 ××××-××××이며 주소는 (판독불능)


문 : 진술인은 옆에 앉아 있는 이익치를 아는가요.

답 : 예,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분입니다.


문 : 진술인은 2000. 6월 초경 정몽헌 회장이 해외출국하기 전에 대북송금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었다고 하였지요.

답 : 2000. 6. 1.경 정몽헌 회장이 미국으로 출장 가기 직전인데, 출국 당일인지 그 전날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위 출장 직전에 저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12층 회장실로 불러서 ‘급히 정부에 돈을 빌려주어야 한다, 자세한 것은 이익치가 얘기 해 줄 거다. 매우 중요한 일이니, 절대 차질 없게 하라‘고 하여, 제가 “현대상선의 자금 사정이 아주 어렵습니다“라는 말로 거절을 하자, 정몽헌 회장이 ‘걱정하지 마라, 정부에서 받아준다, 절대 차질이 나선 안된다, 이익치가 하라는 대로 차질 없이 하라‘라고 하였으나, “회사 자금사정이 정말 어렵습니다“라고 하고는 그냥 돌아왔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의 지시를 거절한 것인가요.

답 : 사실상 그렇습니다. 완곡한 표현으로 거절을 한 것입니다.


문 : 그 이후 이익치 회장의 부름을 받고 이익치 회장 방을 찾아간 사실이 있는가요.

답 : (판독불능)


문 : 그 경위를 진술해 보겠는가요.

답 : 2000. 6. 1. 정몽헌 회장님이 출국한 그 다음날 인가에 이익치 회장이 저를 계동 현대사옥 이익치 회장실로 불러서 갔더니 이익치 회장이 하는 말이 ‘2억불을 급히 정부용도로 써야 한다. 이것은 정부에 빌려주는 돈이다, 대통령이 북한에 가는데 이거 안 하면 안 된다. 상선이 꼭 도와주어야 된다‘고 하기에, 제가 “무슨 소리냐, 하루하루 부도 막기도 힘들다, 지금 상선 자금사정이 극도로 어려운 것은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느냐, 나는 절대로 못한다“라는 취지의 말을 하면서 “회장님 똑똑히 모십시오. 나는 절대로 못합니다.“라고 화를 냈더니, 이익치 회장이 ‘당신이 국가적 대사를 그르치려고 그래?, 분명히 바로 정부에서 갚아주는 돈인데, 왜 그래‘라고 하는 말을 한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국가적인 대사와 상선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왜 하필이면 상선입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여 거절하고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던 것입니다.


문 : 이익치 회장은 진술인이 먼저 찾아와서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이(판독불능) 자신이 먼저 진술인을 불러서 지시를 한 사실(판독불능) 는데 어떤가요.

답 : (판독불능) 그날 저녁 잠도 못자고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전화로 들어오라는 지시를 받고서 무척 화가난 상태였으며, 저는 이익치 회장이 부르지 않기를 바랬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부러 찾아갈 이유가 없었지요. 그리고 그 당시 상선의 자금사정으로 봐서 그런 자금을 조달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문 : 어느 정도로 어려움이 있었는가요.

답 : 그 당시 금융시장의 분위기는 1999년 대우부도사태, 현대건설 등 현대그룹의 자금난, 소위 ‘왕자의 난‘ 등으로 ‘대우 다음에는 현대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좋은 현대상선도 날로 적자폭이 증가한 금강산 관광사업 때문에 종국에는 어려워 질 것‘이라는 시각이 점증하는 상태에서, 특히 김재수 구조조정 본부장이 ‘상선은 유동성 문제가 없다‘라고 발표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오히려 역으로 ‘상선도 어렵다‘라고 인식이 팽배해져 현대계열사는 물론이고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금을 금융기관이 급속도로 회수하고 있었으며, 삼성생명에서 일시에 2천억을 회수한 후 연쇄적으로 2000. 6.까지 2.700억원 상당의 대출금을 회수해 감에 따라 매일 1천억 정도의 차입금이 만기 도래하는 등 급박한 상황이었으며, 또한 현대상선은 그룹의 지주회사로서 (판독불능)과 해운 시장의 장기불황의 가속화, 계속적인 대규모 신규투자, 1조7,000억원에 달했던 보유 유가증권 가액이 수천억원대로의 급락 등으로 인한 재무구조 악화로, 금융권으로부터의 신규자금 차입이 어려워짐에 따라, 1~2년 전까지는 상선의 운전자금차입금 5,000억원선에 불과하던 것이 2000. 6. 당시 운전자금차입금규모가 2조9,000억원선으로 급증함에 따라 채권기관이 경쟁적으로 상환을 요구하여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따라서 차입금규모가 40억불선인 선박금융계약서상에 ‘약정조항(Covenant)‘상의 재무비율위반으로 ‘채무상환불능상태(The event of default)‘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구체적으로 선박금융선이 회사를 방문하여 재무상태를 확인하는 등, 상선의 재정악화 사실이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는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산은 대출금 중 2,300억원은 정부에서 받아야 갚는 것이고 나머지 상선자체 운전자금으로 사용한 1,700억원도 당장 상환할 여력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검사는 이익치에게 묻다.


문 : 김충식의 진술을 들어보니 어떤가요.

답 : 저는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지시를 받길 사장들에게 이야기를 해두었는데, 혹시 사장들이 어렵다고 하면 박장관에게 연락해서 도(판독불능)서 구체적인 지시를 하라는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김충식 사장이 먼저 찾아와서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말을 하기에 정몽헌 회장의 지시에 의해서 박장관에게 연락하여 만났던 것입니다.


문 : 정몽헌 회장도 김충식 사장에게 지시할 때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 바, 진술인에게 사장들이 어렵다고 하면 도와달라고 하였던 것이 구체적으로 상선이 어렵다고 하니, 도와주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요.

답 : 그런 이야기를 없었습니다.


문 : 김충식 사장에게 구체적으로 2억불을 언급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돈을 정부에 빌려준다는 말을 한 기억은 있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김충식 사장이 송금지시를 거절하였던 기억은 있는가요.

답 : 못한다는 이야기는 없었고, 자금사정이 어렵다면서 자금지원 요청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김충식 사장이 정회장에게는 어려워서 못하겠다는 말을 하였으나, 당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정몽헌 회장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어서 저를 찾아와서 자금지원 요청을 하였던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 : 이익치 회장은 진술이 맞는가요.

답 : 정몽헌 회장께서 처음 지시할 때 2억불이란 말씀을 하셨다면 그 자리에서 분명히 거절하였거나, 제가 그만두거나 양자택일을 했을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그 당시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그 날로 회사는 파산 절차로 들어갈 상황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회장님에게 불려가서 그 자리에서 비로소 2억불이란 이야기를 듣고서 그 자리에서 흥분이 폭발하여,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속된말로 이회장에게 대들다시피 하니까 ‘당신이 국가적 대사를 그르치려고 그래?, 분명히 바로 정부에서 갚아주는 돈인데, 왜 그래‘라고 하는 말을 한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국가적인 대사와 상선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왜 하필이면 상선입니까“면서 나와 버렸던 것입니다.


문 :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2000. 6. 5. 아침 출근 직후에 이익치 회장이 저를 계동 사옥으로 불러서 갔더니, 이회장이 ‘청와대에서 산업은행에 이야기가 다 됐으니, 산업은행 빨리 가라, 그러면 당신이 달라는 대로 줄거야‘그러시면서 ‘이것은 급박하게 정부에게 상선계좌와 이름만 빌려주는 거야, 걱정하지마, 금방 들어와‘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지금 빨리 가서 산은총재를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문 : (판독불능) 이기호 경제수석을 만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저는 지금까지 이기호 수석을 만나본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다시 이익치에게 묻다.


문 : 김충식 사장에게 산업은행 총재를 찾아가 대출신청을 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제가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상선의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정몽헌 회장의 지시에 의하여 박지원 장관을 찾아가 자금지원 요청을 하였으며, 이기호 경제수석을 만나라는 통보를 받고서 김윤규 사장이 경제수석과 평소 접촉이 잦았기 때문에 김윤규에게 이기호 수석을 만나서 자금지원 요청을 해 보라고 하였으며, 김윤규 사장이 이 수석과 만나 협의를 하였는데 협의결과 ‘산업은행에서 자금지원을 해주기로 결정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김윤규 사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후, 제가 김충식 사장에게 전화하여 ‘정회장님께서 지시한 것은 산업은행에서 해주기로 했으니 가보라‘는 연락을 해주었습니다.


문 : 김충식 사장을 직접 불러서 그런 통보를 한 것이 아닌가요.

답 : 저는 처음 김충식 사장이 제 방을 찾아와서 자그사정이 어렵다는 보고를 하였을 때를 빼고는 김충식 사장이 제 방을 찾아왔던 기억은 없습니다.


문 : (판독불능) 찾아가서 대출신청을 하라는 지시를 하고 있을 때, 현대건설 김재수 부사장도 진술인의 부름을 받고 들어가니까 진술인과 김충식 사장이 산업은행 대출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며, 현대건설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있어 상선이 대출 받는데 자신들이 필요한 자금도 얹어서 신청해 줄 것을 요청하니까, 진술인이 옆에서 ‘건설도 돈이 없다고 하니 하는 김에 같이 하지‘라는 말을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런 적이 없고요, 그냥 박장관이 조치해 놨다고 하니까 김윤규 사장을 이기호 수석에게 보낸 것이고, 김윤규 사장으로부터 산은쪽으로 조치되었다고 하여 김충식 사장에게 전화를 해서 산은쪽으로 가보라고 한 것이 전부입니다.


다시 김충식에게 묻다.


문 : 이익치의 진술을 들어보니 어떤가요.

답 : 그 당시 이익치 회장이 거의 매일같이 저를 불러서 대출관련 일을 챙겼었는데, 산은에 가서 대출 허락을 받은 그 다음날인지 아니면 대출이 실제로 이루어진 다음날인지 정확하게 날짜가 기억나지는 않는데 이익치 회장을 찾아가 대출이 성사되었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런 보고를 하는 와중에 이익치 회장이 핸드폰을 2~3개 가량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국정원장에게도 전화를 하기도 하고, 받기도 했으며, 샌프(판독불능) 당시 전화기 목소리가 크게 들려서 저에게까지 들릴 정도였고 또 통화내용이 ‘걱정하지 마십쇼, 잘 되고 있습니다. 김윤규 사장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등등의 통화내용이었습니다. 그날 아침에 국정원장과 약 3번 정도의 통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당시 비서가 전화기를 들고 들어오면서 국정원장님 전화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되고 또 통화를 하면서도 원장님이라고 호칭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국정원장과 통화를 하면서 이익치가 산은 대출건은 잘되었다면서 자금전달에 관하여 국정원장과 협의를 하였습니다. 당시 국정원장이 국정원측에서 실무를 처리할 어떤 직원을 알려준 것 같고 그래서 이익치 회장이 김윤규 사장에게 그 국정원 직원을 만나도록 지시하였으며, 김윤규 사장이 국정원의 직원과 통화하여서 약속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그 날인가, 그 다음날인가에 교육문화회관에서 만났습니다.


다시 이익치에게 묻다.


문 : 김충식의 진술을 들어보니 어떤가요.

답 : 저는 국정원장과 통화를 해 본 사실이 없습니다.


문 : 국정원측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 결과 2000. 6. 7. 실무자들은 임 (판독불능)실무자에 대한 메모를 건네주었으며, 그날 오후에 현대측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다음날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으로 확인되는 바, 이는 지금까지의 김충식 사장의 진술과도 부합되는 내용으로서 진술인이 무작정 아니라고 할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모르겠습니다. 대북사업과 관련된 창구는 김윤규 사장이 하였기 때문에 저는 모르겠습니다.


문 : 이건 2억불의 송금건은 통상적으로 진행되어 왔던 대북사업과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6. 7. 4,000억원이 대출된 이후, 정상회담 전까지 급히 북측에 송금되어야 할 자금으로서 송금 방법이 제일 문제였던 것으로 보여지고, 그랬기 때문에 국정원도 원장이 직접 나서서 실무자를 확인하였던 것으로 보여지는 바, 현대측에서는 김윤규가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정말 모르는 부분입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이 각 사장들에게 얼마씩의 부담을 지시하였는지 알고 있는가요.

답 : 모릅니다.


문 : 현대상선이 2억불을 부담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은 알고 있는가요.

답 : (판독불능)


문 : 정몽헌 회장은 자신이 출국하기 직전인 2000. 5. 31.부터 6. 1.사이에 각 사장들을 불러서 현대상선에 2억불, 현대건설에 1억 5천만불, 현대전자에 1억불 등 모두 4억 5천만불을 분담시켰다고 하는데,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잘 모르겠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이 출국하기 앞서 진술인에게 ‘각 사장들에게 대북송금 지시를 해 두었는데, 사장들이 자금동원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박장관에게 이야기하여 협조를 얻어 송금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에서 현대상선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보고를 받고는 어떻게 하였는가요.

답 : 박지원 장관을 만나서 자금지원 요청을 하였습니다.


문 : 그때가 언제쯤인가요.

답 : 2000. 6월 초경 서울프라자호텔 1층 로비 한쪽에서 박지원 장관을 잠깐 만났던 것입니다.


문 : 박지원 장관을 만나서 자금지원 요청을 하게 된 경위는 어떤가요.

답 :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보고를 받고난 후, 정몽헌 회장님의 지시에 따라서 제가 직접 박지원 장관께 연락을 드려서 ‘정회장님께서 해외출장을 가셨는데, 회장님께서 직접 뵙(판독불능)라고 하니까, 박장관께서 오늘 저녁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식사약속이 있으니까 그곳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며, 시간은 오후 6~7시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날 프라자호텔에서 박지원 장관을 만나 ‘정몽헌 회장께서 해외출국하셨는데, 정회장님께서 이전에 장관님께 부탁해 놓은 것이 있으니, 자금조달이 어려울 경우 장관님을 직접 찾아 뵙고 도움 요청을 하라는 말씀이 있으셨는데, 대북 송금자금 조달에 어려움에 있어 이렇게 장관님을 찾아뵈었습니다‘라고 하니까, 박장관께서 무슨 의미인지 아시는 듯 ‘알았습니다. 내가 다시 연락을 드리죠‘라고 하고, 바로 헤어졌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는가요.

답 : 예, 그 다음날 아침에 박지원 장관께서 직접 제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셔서 ‘경제수석과 이야기가 되었으니, 경제수석에게 가면 도와 줄 것이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문 : 다른 이야기는 없었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이러한 연락은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가요.

답 : 제가 알기로 박지원 장관께서 여러대의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계(판독불능) 통화를 하는 전화가 따로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의 휴대전화기로 제 휴대폰으로 전화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나서 어떻게 하였는가요.

답 : 그 당시 김윤규 사장과 이기호 경제수석이 현대창구로 서로 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윤규 사장을 불러서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요청을 받고서 내가 정부측에 요청을 해보니까 경제수석을 찾아가면 도와줄 것이라고 하니까, 당신이 경제수석과 잘 아니까 혼자 가든지 김충식 사장을 데리고 찾아가서 만나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문 :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이기호의 진술에 의하면 2000. 5. 31.경 임동원 국정원장과 김보현 5국장, 박지원 특사를 청와대 옆에 있는 국정원 별관에서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임동원 국정원장과 박지원 특사가 ‘현대가 유동성문제로 대단히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는데, 현대가 어렵게 되면 대북사업 추진도 어렵게 되고, 특히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상회담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 그러니 현대에 대한 대출지원을 검토해 보라‘는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제가 박지원 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던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판독불능) 임동원 원장은 현대 대북사업에 정책적으로 가장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이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셨을 수 있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과 임동원 국정원장의 이러한 강력한 요청에 의하여 2000. 6. 3. 조찬간담회에서 이기호 수석은 이근영 당시 산업은행 총재에게 ‘현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특히 현대건설의 단기 유동성에 문제가 많다. 현대에 대한 대출이 반드시 되어야 하며 그러지 않아서 현대가 부도가 나면 앞으로 추진할 대북사업 추진에도 영향을 주고, 그렇게 되면 정상회담에도 영향이 갈 수가 있기 때문에 산업은행이 반드시 대출을 해 주어야 되겠다‘면서 사실상 현대에 대한 대출지시를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충분히 예견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문 : 그 당시 현대건설 부사장 겸 구조조정 본부장이었던 김재수는 2000. 5. 30.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1억 5천만불 대북송금 지시를 받았으나 이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같은 해 6. 5. 오전경 계동빌딩 진술인의 사무실으로 자신을 불러서 가보니 진술인이 김충식 사장에게 ‘산업은행에 조치를 취해 놓았으니, 달라는 대로 줄 것이다‘라는 취지로 말을 듣게 되었으며, 그 말을 듣고 김충식 사장에게 자신들이 조달하여야 할 자금 중 1,000억원을 함께 대출(판독불능) 장에게 건설도 돈이 없다고 하니 하는 김에 같이 하지‘라면서 김재수를 거들어 주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답 :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문 : 김재수의 진술에 의하면 자신이 진술인이 먼저 찾기 전에 자신이 찾아간 적이 없었으며, 그 날도 진술인이 불러서 찾아가니까 김충식을 불러서 산업은행 대출건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그 자리에서 현대건설의 필요자금까지 얹어서 대출해 달라고 하자 진술인도 옆에서 거들었던 것으로 보아 현대건설의 자금사정도 어렵다는 것을 알고서 일부러 김충식 사장과 함께 불러서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시 함께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문 : 김충식 사장에게 산업은행에 대출관련 협조가 다 되어 있으니 산업은행 총재를 만나서 대출협의를 하여 보라고 지시를 한 사실은 있는가요.

답 : 예 그런 사실은 있습니다.


문 : 그 경위는 어떤가요.

답 : 위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박지원 장관에게 자금지원 요청을 한 후,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이기호 수석을 만나보라는 통보를 받고 (판독불능) 협의를 하도록 지시하였는데, 김윤규 사장이 이기호 수석을 만나고 돌아와서 자금지원 건은 산업은행에서 대출을 해줄 수 있도록 조치가 다 되었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 보고를 받고 나서 제가 김충식 사장에게 전화를 하여 ‘청와대에서 산업은행에 통보가 되어 대출관련 협의가 다 된 것 같으니 당신이 잘 아는 이근영 총재와 협의를 하여 보라‘고 지시를 하였던 것입니다.


문 : 진술인은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얼마를 대출받았는지 알고 있는가요.

답 :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억원을 대출받았다는 이야기는 최근 문제가 발생된 이후에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중앙일보 기자가 찾아와서 4,000억 대출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박장관에게 자금지원을 부탁해서 이루어졌던 것이 산업은행을 통해서 나간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 : 북한으로 송금하려고 하였던 이 자금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송금이 가능한 자금이었는가요.

답 : 예, 대북사업과 관련된 자금은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판독불능) 있는 자금이 아니었습니다.


문 : 이 자금은 정상적인 사업의 대가로 지급되는 자금이 아닌 리베이트성 자금으로서 통일부나 재경부의 승인을 받아 송금될 수 없는 자금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대책없이는 송금자체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고, 이 자금은 6. 12.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북한에 송금하기로 사전에 약속되어 있었던 관계로 어떻게든 그 이전에는 송금완료가 되었어야 할 것인데 6. 7.에서야 대출이 이루어져 정상회담까지는 불과 몇일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송금방법이 가장 중요한 해결과제였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답 : 송금부문에 대하여는 100퍼센트 김윤규 사장이 처리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김윤규 사장이 대북사업창구의 실무적인 일을 담당하였고, 제가 박지원 장관에게 자금지원 요청을 한 이후, 이기호 경제수석을 만나서 지원요청을 해 보라는 지시를 한 이후에 발생된 일에 대하여는 전혀 아는바가 없습니다.


문 : 김충식 사장은 송금방법에 대하여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6. 7. 대출받은 이후 6. 8. 김윤규 사장을 따라 나가서 국정원 직원을 만났으나 별다른 이야기도 없어 얼굴 정도만 확인한 채 돌아왔고,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김윤규로부터 북한측 돈자리(계좌번호)를 건(판독불능) 나서 자기앞수표 2,240억원을 건네주니까 국정원 직원이 송금을 마치고서 영수증을 건네주기에 가져온 것이 전부라고 하는 바, 이는 사전에 현대측 누군가가 국정원과 송금방법에 대하여 상의를 하였다는 것인데 그 사람이 진술인과 국정원장이 아니었는가요.

답 : 저는 국정원장과 통화를 해본 적이 없으며, 국정원쪽 담당은 김윤규 사장이 담당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국정원의 송금과정을 보면 현대상선은 자금조달만을 담당하였고, 송금에 관하여는 국정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확인되는 바, 이는 현대측과 상당히 긴밀한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에 대하여 진술인은 어느 정도 관여를 하였는가요.

답 : 제가 송금에 직접 관여한 사실이 없습니다.


문 : 이건 송금과 관련하여 해외출장 중이던 정몽헌 회장과 통화를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데, 해외에 나가 있는 정몽헌 회장께서 제게 전화를 하여 자금마련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느냐고 물어서 이상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한 기억이 납니다.
(판독불능) 정몽헌 회장이 해외출국을 한 이후 어느 정도 연락을 주(판독불능) 있었지만, 그 외에 특별한 다른 전화를 없으셨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을 만나서 자금지원 요청을 하였다는 내용에 대하여 정몽헌 회장에 별도 보고를 하였는가요.

답 : 하지 않았습니다.


문 : 그 당시 북한에 송금되었던 현대상선 2억불인 2,235억원과 현대건설 1억 5천만불중 1천억원 등 모두 3,235억원이 결국 산업은행 대출로 이루어진 것이고, 이것도 정상회담 임박하여 갑작스레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아 진술인이나 정몽헌 회장 입장에서는 상당히 많은 고민하였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그 부분에 대하여는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어떠한 지시나 언급이 없으셨습니다.


문 : 정부 역시 3차 회담에서 1억불이라는 자금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가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고, 그 자금을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송금하되,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정상회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박지원 장관과 임동원 국정원장이 이기호 경제수석을 강하게 몰아세워 모든 시중은행이 현대에 대한 여신지원을 외면하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상대로 대출에 대한 외압까지 행사하여 4,000억원이라는 거액의 대출이 이루어졌던 (판독불능)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였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그런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문 : 2000. 6. 26. 현대건설이 사모사채 1,500억원을 발행하고, 이를 산업은행이 인수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모릅니다.


문 : 이 과정에서 박지원 장관에게 자금지원 요청을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저는 2000. 6. 20.부터 24.까지 미국 출장 중에 있었습니다.


문 : 사모사채 발행과 관련하여 김재수 현대건설 부사장에게 산업은행을 찾아가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그 당시 저는 미국 출장 중에 있었습니다.


문 : 2000. 7.경 진술인이 박지원 장관을 만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자금지원 요청할 때 빼고는 박지원 장관을 따라 만난 사실은 없습니다.


문 : 2000. 8.경 엄낙용 산업은행 신임 총재가 부임한 이후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000억원의 상환독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그 당시 저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증권, 현대전자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과 관련하여 금융감독원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시점이었(판독불능)


문 : 2000. 8. 9.경 신임 산업은행 엄낙용 총재가 김충식을 불러 ‘상환을 조금씩이라도 하고, 구체적인 상환계획을 내지 않으면 부도를 낼 수밖에 없지 않느냐‘면서 강력하게 상환독촉을 하여, 현대사옥 정몽헌 회장실로 찾아갔을 진술인이 함께 있었으며, 그 자리에서 정몽헌 회장에게 ‘산업은행 엄낙용 총재가 구체적인 상환 스케쥴을 내지 않으면 부도내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보고하니까, 정몽헌 회장이 대뜸 흥분하면서 ‘산업은행 보고 정부가서 받으라 그래‘라고 하여, 다시 김충식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엄총재가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더니, ‘그렇게 하라고 그래‘라고 하였다는데 진술인도 그런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가요.

답 : 전혀 모르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미 8월 하순경부터 회사를 나오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문 : 이상 진술이 모두 사실인가요.

답 : 예, 모두 사실대로 진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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