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특검 신문조서
성명 : 정몽헌(鄭夢憲)
주민등록번호 : 480914-0000000
위 사람에 대한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위반 등 피의사건에 관하여 2003. 6. 23. 남북정상회담관련대북비밀송금의혹사건등의진상규명을 위한특별검사사무소 1510호 조사실에서 검사 이00은 피의자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신문한다.
문 : 피의자의 성명, 연령, 생년월일, 직업, 본적, 주거를 말하시오.
답 : 성명은 정몽헌 호주는 본인 연령은 55세 생년월일은 1948. 9. 14.생 직업은 현대아산(주) 이사회 회장 직장 전화번호는 02-733-0000 본적은 서울 중구 장충동 주거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 전화번호는 02-000-0000 휴대폰 번호는 없음 입니다.
검사는 피의사건의 요지를 설명하고 검사의 신문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규정에 의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구속영장이 청구될 경우 형사소송법 제201조의2 제1항에 따라 판사의 심문을 신청할 수 있으며 심문을 받는 경우에는 범죄사실과 구속의 사유에 대하여 변명을 할 수 있음을 알려준 즉, 피의자는 신문에 따라 진술하겠다고 대답하다.
문 : 처벌받은 (판독불능)
답 : 1991년경 서울지방법원 특경법위반(횡령) 등으로 징역 4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아 확정된 이후, 사면을 받았습니다.
문 : 피의자의 학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답 :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 경영대학원(석사)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마쳤습니다.
문 : 경력은 어떠한가요.
답 : 1975. 11. 1.부터 1977. 1. 31.까지 현대중공업(주) 차장
1977. 2. 1.부터 1981. 1. 31.까지 현대건설(주) 이사
1981. 2. 1.부터 1988. 2. 29.까지 현대상선(주) 대표이사 사장
1984년부터 1992년까지 현대전자산업(주) 대표이사 사장
1992. 1. 1.부터 현대전자산업(주) 대표이사 회장
1988. 3. 1.부터 1995. 12. 31.까지 현대상선(주) 대표이사 부회장
1989. 8. 1.부터 1992. 12. 31.까지 현대엘리베이터(주) 대표이사 회장
1993. 8. 18.부터 1998. 12. 31.까지 현대정보기술(주) 대표이사 회장
1996. 1. 1.부터 1998. 1. 13.까지 현대그룹 부회장
1996. 1. 1.부터 1998년까지 현대건설(주), 현대상선(주) 대표이사
1997. 1. 1.부터 1998. 1. 12.까지 현대종합상사(주) 대표이사 회장
1997. 1. 1.부터 1999. 6. 30.까지 현대엔지니어링(주) 대표이사 회장
1997. 1. 1.부터 1999. 3. 27까지 (주)금강기획 대표이사 회장
1998. 1. 13.부터 같은해 3. 31.까지 현대그룹 회장
1998. 4. 1.부터 2000. 6.까지 현대경영자협의회 회장
2000. 12.부터 현재까지 현대건설(주) 이사회 회장
2000. 6.부터 현재까지 현대아산(주) 이사회 회장 및 2003년초경부터 현재까지 현대상선(주) 이사회 이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문 : 가족사항은 어떤가요.
답 : 처 현00(48세), 딸 00(25세, 대학원생), 딸 00(18세, 고등학생), 아들 00(17세, 고등학생) 등과 함께 위 주거지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문 : 재산 및 생활정도는 어떤가요.
답 : 재산은 제 명의로 된 현대상선 주식 500만주 150억원 가량, 부동산은 현재 살고 있는 주택 400평가량 시가로 20억원 가량 등이 (판독불능)
문 : 병역관계는 어떤가요.
답 : 육군 상병으로 만기전역하였습니다.
문 : 훈장이나 표창을 받은 일이 있는가요.
답 :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문 : 건강상태는 어떤가요.
답 : 건강합니다.
문 : 술, 담배는 어느 정도 하는가요.
답 : 술은 1회 소주 반병정도 마시고, 담배는 전혀 피우지 않습니다.
문 :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가입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신봉하는 종교가 있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피의자가 현대그룹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피의자가 관리하던 계열사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는가요.
답 : 현대상선주식회사, 현대건설주식회사, 현대전자산업주식회사,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종합상사가 계열회사로 있었으며, 현대상선에 대하여는 지분만 보유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계열회사에 대하여는 대표이사 겸 이사회 회장직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문 : (판독불능)
답 : 그 당시 정몽구 회장과 공동회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서비스, 현대정공 등의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저는 2000. 5. 31. 및 6. 1.자로 현대계열에 대한 경영에서 모두 물러났습니다.
문 : 피의자가 회장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현대계열에 대한 지분은 어느 정도를 보유하고 있었는가요.
답 : 저는 현대상선, 현대전자,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종합상사에 대한 개인지분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씩을 보유하고 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으며, 현대건설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께서 가장 많이 가지고 계셨습니다.
문 : 피의자가 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대북경제협력사업(이하 ‘대북사업‘이라 한다)을 추진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1989. 1.경 고 정주영 명예회장께서 북한을 처음 방문하셨던 시점부터 기본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사실상 대북사업이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1998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대북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문 : 본격적인 대북사업을 추진하게 된 경위는 어떤가요.
답 : (판독불능) 대북사업을 계속하여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지시를 하였으며, 이익치 회장이 한국계 일본인 ‘요시다‘라는 사람을 잘 아는데 이 사람을 통하여 북한과 연결이 가능할 것이다 라고 하였으며, 그 당시 남북교류협력법이 그룹 총수가 직접 북한측을 접촉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저는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으로 하여금 대북사업의 추진에 대하여 협의를 지시하였던 것이며, 이익치 회장과 요시다가 만나서 현대의 대북사업과 관련된 협의를 하면서 그해 1월말경 싱가포르에서 북측 인사와 접촉을 시도하였으나, 당시 남북교류협력법상의 문제로 무산되었다가 2월 하순경 북경에서 이익치 회장, 요시다가 북측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라 한다) 부위원장 송호경, 황철 참사를 만났으며, 이때 저희측이 금강산관광사업을 북측에 제의하니까 북측은 물자지원요청을 하였습니다. 저희는 비료정도는 지원이 가능하다고 하였으나, 북측은 다른 물자까지 지원요청하여 우리가 부담할 성질이 아니다고 하여, 결렬위기에 있었으나 북측이 결국 저희의 금강산관광사업 제의를 받아들여 이때부터 대북사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문 : (판독불능) 이유라도 있었는가요.
답 : 제가 개별적으로 이익치 회장에게 북측과 접촉할 수 있는 루트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니까, 한국계 일본인 요시다와 자신이 잘 알고 있는데, 그 사람 정도면 우리와 북측을 중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하여 이익치 회장에게 추진을 맡겼던 것입니다.
문 : 그 당시 구체적인 협의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그 당시 국내의 일부 기업들도 금강산관광사업을 추진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기업들은 중국을 통한 우회 관광을 제의하였던 것이고, 저희는 배(선박)를 이용한 금강산관광사업을 할 경우 숙박 문제 등 여러 가지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제의를 하였으며, 그 제의가 북측의 호응을 얻어 추진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 : 현대의 대북사업을 이익치 회장이 전적으로 담당하였는가요.
답 : 1998. 2. 9.부터 현대에 대북사업을 담당할 마땅한 전담부서가 없어서 1989년경부터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2001. 3. 21. 사망)을 수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대북사업에 관여하였던 현대건설 김윤규 부사장으로 하여금 실무를 담당하게 하였으며,
1998. 6. 27.부터는 현대 ‘대북사업단‘을 만들어 현대건설 사장 김윤규가 단장으로서 대북사업을 전담하게 하였고, (판독불능)(이사 김윤규)을 설립하여 대북사업을 담당하게 하는 등 실무적으로 김윤규가 전담을 하였습니다.
문 : 대북사업과 관련된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집행이 되었는가요.
답 : 1998년초경 요시다를 통하여 사업가능성을 타진한 이후에 정 명예회장에게 중요사항에 대하여는 보고를 드렸지만 실무적인 문제에 대하여는 저와 김윤규 사장이 협의하여 처리를 하였으며, 대북사업에 대한 긴밀한 협조나 새로운 사업계획이 필요할 때는 이익치 회장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습니다.
문 : 현대가 추진하고 있던 대북사업과 관련하여 북한측과 구체적으로 체결 또는 합의된 사업이 있었는가요.
답 : 1989. 1. 31. 정 명예회장께서 북한을 방문하여 대북사업과 관련된 ‘의정서‘를 체결하면서 대북사업에 대한 기본 골격이 갖춰졌으며,
1998. 6. 22. 기본합의서를 구체화시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였으며,
1999. 10. 1. 북측에 공단건설을 추진하자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였고,
2000. 8. 22. 현대가 북측과 북한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시설 건설 및 기간산업 투자를 위한 ‘7대 경협사업‘에 합의하면서 30년간 사업독점권을 확보키로 하였습니다.
문 : 그 당시 현대와 북측간에 체결되었던 합의서들인데 맞는가요.
이때 검사는 5건의 의정서 및 합의서 사본을 피의자에게 제시하고,
답 : 예, 모두 맞습니다.
문 : 2000. 8. 23. 이전까지의 대북사업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고 있었는가요.
답 : 1998. 10. 30.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1차 면담에서 금강산 관광사업, 전력사업, 통천 비행장 건립, 북측 부존석유 개발 및 남측으로의 수송 및 공급, 공단개발, 실내체육관 건립과 같은 사업추진을 논의하였으며,
1999. 10. 1. 2차 면담에서는 공단개발, 해외동포 및 외국인관광(금강산), 금란공항 건설, 통천공단(경공업) 개발, 실내체육관 건립, 남북체육교류사업(농구, 민속경기 등), 댐 건설 및 물공급, 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의 추진 등에 대하여 논의가 있었고, 체육교류사업과 같은 교류사업은 있었지만 금강산관광사업 외에 경제적인(판독불능)
문 : 현대가 남북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측과의 협의절차를 진행한 것이 있는가요.
답 : 1998. 9. 7.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제17조 규정에 의하여 통일부로부터 남북협력사업승인을 득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해운법에 의거 남북운항사업면허를 얻어 관광선 3척과 쾌속선 1척 등을 이용하여 금강산 관광유람선업을 영위하였습니다.
문 : 남북협력사업승인을 한번 득한 이후에 발생되는 사업에 대하여는 승인이 필요하지 않는가요.
답 : 매 사업마다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승인을 얻은 사업의 내용을 변경하고자 할 때도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문 : 금강산관광사업에 대한 대가는 어떻게 하기로 하였는가요.
답 : 금강산관광사업에 대하여는 관광객 인원을 계산하여 1인당 얼마씩 대가로 지급하기로 하였으나, 북측에서 5년간에 걸쳐서 분할하여 9억 4천만불을 지급하는 것으로 협상을 변경하자는 조건을 제시하여 저희는 남-북간으로는 동해군사분계선(해금강)에서 원산까지 100킬로미터로 하고, 동-서로는 내륙 20킬로미터까지 개발을 하되, 관광에 대한 독점권을 30년으로 보장해 줄 것을 협의하였(판독불능)
문 : 현대가 대북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추진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예,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개최 추진을 위한 이야기는 언제부터 나오게 되는가요.
답 : 1999. 12월말경 처음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개최 추진은 정부측의 의견이 반영된 것인가요.
답 : 아닙니다. 저희쪽이 먼저 북측에 의사를 타진하였던 것입니다.
문 : 정부측의 제의도 없었는데, 현대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가요.
답 : 1999. 12월 하순경 서울에서 남북농구대회가 성공리에 개최되었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취임시부터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역설하시면서 언제라도 남북정상회담에 응할 수 있다는 말씀을 여러 자리에서 하셨고, 남북정상회담 성사로 남북관계의 긴장완화가 이루어질 경우 저희가 추진 중이던 대북사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남북정상회담성사 가능성을 저희쪽이 타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 : (판독불능)
답 : 그 당시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이 담당을 하였습니다.
문 : 현대측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게 된 경위는 어떤가요.
답 :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저희의 대북사업을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긴장완화가 필요하였으며,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남북간 정상회담의 개최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서, 1999. 12월 말경 1998년부터 대북사업을 위해 북측과 접촉을 하였던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에게 우리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였으며, 이익치 회장이 한국계 일본인 요시다의 중개로 다시 북측의 아태 부위원장 송호경과 접촉을 하였으며,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북측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대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문 : 이 내용에 대하여 정부측에 의사를 전달되었는가요.
답 : 2000. 1월초경 제가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장관을 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롯데호텔에서 만나서 “이번에 북측에 남북간 정상회담을 개최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해 보니 저쪽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니까 박장관이 즉석에서 답변을 하지 못하고 ‘내가 한번 알아보겠다‘라고 하였습니다.
문 :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판독불능)말씀드린 것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으니까, 박장관이 ‘한번 추진해 보라‘고 하여, 제가 “이 일은 누가 맡으시겠습니까“라고 하니까, 박장관께서 ‘이 일은 내가 맡기로 했다‘라고 하여, 제가 “그럼 일정을 다시 확인해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문 :2000. 1월 하순경에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정부측의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한 공식입장을 전달받은 것으로 보면 되는가요.
답 : 예, 그렇습니다.
문 : 정부로부터 남북정상회담개최 문제를 추진하라는 입장을 확인한 후에 어떻게 하였는가요.
답 : 제가 다시 이익치 회장에게 북측에 연락을 해서 이쪽에서도 좋다고 하니까 남북간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도록 지시를 하였으며, 저쪽(북측)에 날짜와 장소를 확인해 보도록 하였습니다.
문 :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2000. 3월초에 김대중 대통령 유럽순방을 수행하기 위해서 제가 프랑스에 가 있을 때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북측에서 3. 9. 싱가포르에서 남북당국자간 예비접촉을 갖기로 하자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문 : 남북당국자간 접촉을 갖자는 제의에 대하여 정부측에 어떻게 전달이 되었는가요.
답 : 제가 이익치 회장에게 박장관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문 : 이익치 회장도 남북정상회담추진에 대하여 피의자와 박지원 장관이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요.
답 : 아, 예. 이익치 회장에게도 정부측에서 박지원 장관이 이 일을 맡아서 하기로 했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을 만나서 이 문제를 협의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가요.
답 : 저희 대북사업의 주관부서는 통일부였지만 금강산관광사업과 관련하여 박지원 장관을 접촉할 기회가 자주 있었고, 박 장관이 당시 정부의 실세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국민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박장관에게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 : 박지원 장관 이외에 다른 정부관계자와 이 내용을 협의한 사실이 있었는가요.
답 : 박지원 장관 이외의 다른 정부관계자와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판독불능)
문 : 박지원 장관에게 북측이 정상회담 협의에 응할 의향이 있다는 보고를 한 이후, 국정원 또는 정부기관으로부터 그에 대한 구체적인 문의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남북당국자간 첫 접촉이 이루어진 시기는 언제쯤인가요.
답 : 2000. 3. 9. 싱가포르에서 남북당국자간 예비접촉이 처음 이루어졌습니다.
문 : 예비접촉을 하자는 통보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받았는가요.
답 : 2000. 2월 하순경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북측이 2000. 3. 9. 싱가포르에서 접촉을 갖자는 제의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으며, 제가 바로 박지원 장관께 그 사실을 알려드렸으며, 박지원 장관께서 그 날짜에 접촉을 하기로 하였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문 : 피의자는 전회 진술에서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유럽순방을 위해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던 3월초경 이익치로부터 예비접촉을 갖자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였었는데, 금일은 그 이전에 예비접촉 통보를 받았다는 말인가요.
답 : 제가 프랑스에서 싱가포르로 직접 갔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 이익치 회장과 박지원 장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판독불능) 있었던 것으로 보아 2월 하순경 예비접촉 통보를 받은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당국자간 접촉은 모두 몇 차례나 이루어졌는가요.
답 : 2000. 3. 9. 싱가포르에서 예비접촉이 있었으며, 같은 달 17~18.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제1차 회담, 같은 달 23. 중국 베이징에서 제2차 회담, 4. 8. 중국 베이징에서 제3차 회담까지 모두 4차례의 접촉이 있었습니다.
문 : 남북당국자간 접촉시에 현대측도 함께 참여를한 것인가요.
답 : 예비접촉과 1차 회담에서는 제가 양쪽을 소개해 주고, 끝날 때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으며,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끝난 이후에 저희측과 북측간에 별도로 만나서 협상을 하였으며, 남북당국자와 현대측 3자가 동시에 회담에 참석한 적은 없었습니다.
문 : 북측과의 4차례의 협상시 현대측은 누가 참여를 하였는가요.
답 : 예, 저와 이익치 회장이 4차례 접촉이 있을 때마다 참석을 하였습니다.
문 : 2000. 3. 9. 남북당국자간 예비접촉이 이루어졌는가요.
답 : (판독불능) 예비접촉이 이루어졌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당국자간 예비접촉이 이루어진 과정은 어떤가요.
답 : 저는 대통령 유럽순방길에 프랑스까지만 수행을 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2000. 3. 9. 싱가포르에서의 예비접촉을 위해서 3. 8. 프랑스에서 싱가포르로 저 혼자 이동하여 이익치 회장, 요시다와 합류를 하였고, 다음날 리츠칼튼호텔에서 남북당국자간 예비접촉이 이루어졌습니다. 저와 이익치 회장, 요시다가 참석하여 양측을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도록 하는 정도에서 일단 저희는 물러나왔습니다.
문 : 예비접촉에 참석하였던 사람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현대측에서는 저와 이익치 회장, 요시다가 참석하였고, 남측에서는 박지원 장관, 국정원 김보현 5국장이, 북측에서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 황철 참사가 예비접촉 장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측과 북측에서 수행원 2명 정도씩이 왔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가 양쪽을 소개하는 자리에는 수행원들은 없었습니다.
문 : 남북당국자간 예비접촉을 위해서 현대와 남측 대표와 사전협의를 했나요.
답 :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문 : 현대의 북측과의 접촉내용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저희는 소개를 하고 나왔으며, 예비접촉이 끝난 이후에 저희가 박장관 숙소를 찾아가서 어땠느냐고 물으니까 박장관이 ‘서로 덕담이나 하고, 앞으로 잘 추진해 보자는 정도의 간단한 이야기만 했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문 : 예비접촉에서 다음 회담 날짜와 장소를 정하지는 않았는가요.
답 : 북측에서 다음 접촉은 2000. 3. 17.~18.까지 중국 상해에서 갖자고 제의하였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당국자간 본회담이 개최되었는가요.
답 : 예, 2000. 3. 17.부터 같은 달 18.깔지 중국 상하이에서 제1차 회담이 개최되었습니다.
문 : 1차 회담에 참가한 정부측과 현대측 관계자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정부측에서는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 국정원 김보현 5국장, 북측에서는 아태 송호경, 황철 참사, 권민 참사 등이 참석을 하였으며, 현대측에서는 저와 이익치 회장이 참석을 하였습니다.
문 : 제1차 회담에서 상의된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그 자리에 저희가 있지 않았으니까 모르겠는데, 남북당국자간 정상회담이 잘 되면 비료든지 쌀이든지 지원할 수 있고, SOC(사회간접자본시설)사업을 하는데 남측이 도와 줄 수 있다‘는 제의를 했다는 말을 해주었고, 다음 회담은 ‘2000. 3. 23. 중국 북경에서 갖기로 하였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문 : 베를린선언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가요.
답 :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준비가 되어 있으며,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농업구조 개혁에 대한 북한 당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고, 성의와 인내심을 가지고 당국간 대화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그 당시 현대와 북측간에는 어떤 협의가 있었는가요.
답 : 송호경이 당국자간 회담이 끝나고 난 다음 저희들에게 ‘남측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베를린선언을 언급하면서 북측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이야기를 하여 자신들은 듣는 입장이었다‘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고, 그 날 저희들과의 접촉에서 그런 이야기 외에는 별다른 협의는 없었습니다.
문 : 이때 구체적인 대북지원 방법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었는가요.
답 : (판독불능)
문 : 제2차 회담이 이루어졌는가요.
답 : 2000. 3. 23. 중국 베이징(북경)에서 2차 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문 : 정부측과 현대측의 회담 참여자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정부측에서는 박지원 장관, 김보현 국정원 5국장이 참석하였으며, 북측에서는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 황철 참사, 권민 참사가, 현대측에서는 저와 이익치 회장이 참여하였습니다.
문 : 이날 회담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이날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끝난 직후에 북측과 현대측간에 접촉이 있었으며, 제가 송호경 부위원장에게 “어떤 협의가 있었습니까“라고 물으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이 ‘그냥 뭐 남쪽에서 비료든, 쌀이든 인도적인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였고, 잘 되면 SOC사업을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하였다면서, 남측이 ‘향후 잘되면 10억불이든 20억불이든 몇 년에 걸쳐서라도 지원해 줄 수 있다‘라고 하더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뭐라고 했느냐“라고 하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이 ‘캐쉬(현금)를 요구를 했다‘라고 하여, “얼마나 요구했느냐“라고 하니까 ‘캐쉬로 5억불을 요구했다‘라고 하여, 저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정부가 어떻게 돈을 줄 수 있겠(판독불능) 대가로 10억불을 내놔라‘라고 하여, 저는 “무슨 소리냐 그 동안 논의되어 오고 있는 사업권의 가치를 따져 보더라도 2억불 정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줄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았으며, 제가 “다음 회의는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라고 하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이 ‘3. 29. 베이징에서 갖기로 했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문 : 북측의 현금 5억불의 요구에 대하여 남측이 무엇이라고 하였다고 하던가요.
답 : 남측의 정확한 입장에 대하여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문 : 이날 회담을 마치고 박장관과 회담내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않았는가요.
답 : 예, 그날 회담을 마치고 박지원 장관을 만나서 회담내용을 들어본 사실이 없습니다.
문 : 그 당시 남측 박지원 특사를 보좌하여 회담에 참여하였던 김보현 국정원 국장(현 3차장)의 진술에 의하면, 회담이 결렬된 직후 자신과 박지원 장관이 피의자와 이익치 회장을 불러서 박지원 장관이 ‘일국의 장관을 협상테이블로 모셔다놓고 이럴 수가 있느냐(판독불능)
답 :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다.
문 : 그런데 피의자는 지금까지 회담 직후 남측 대표단과 접촉한 사실이 없다라고 하였는가요.
답 : 그 당시 이유까지는 말씀은 없으셨고, 결렬되어서 화를 내었던 것 같습니다.
문 : 그때 5억불 요구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는가요.
답 : 예, 그런 구체적인 금액까지는 이야기가 없으셨습니다.
문 : 2차 회담이 결렬된 이후 차회(3차)의 회담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박지원 장관이나 정부측과 회담내용에 대하여 협의를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습니다.
문 : 이날 북한이 현대측에 10억불을 요구한 것에 대하여 회사차원에서 검토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저희 입장에서는 북한이 요구한 10억불을 듣고 흘려버리는 정도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검토하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
문 : 10억불이라면 우리나라 돈으로 1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거액인데, 북측의 이런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답 : 향후 대북사업에서 저희가 (판독불능)얻을 수 있는 이익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 자금을 바로 달라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북사업을 추진하면서 처리하면 될 것으로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문 : 2000. 3. 29.부터 30.까지 피의자와 이익치가 중국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되는데, 이때는 무슨 이유로 중국을 방문한 것인가요.
답 : 북측의 아태 송호경 부위원장의 요청으로 북측과 현대간의 대북사업을 위한 협상을 위해 갔던 것입니다.
문 : 이날 접촉에서는 어떤 문제를 논의하였는가요.
답 : 이날도 송호경 부위원장이 지난번 접촉에서 언급하였던 10억불을 요구하였으며, 저는 “그것은 솔직히 말도 안되는 요구다“라고 하니까, 송 부위원장이 ‘그럼 7억불은 가능하겠느냐‘라고 하여, 저는 “그것도 많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등 같은 이유로 협상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그럼 이제 더 이상 회담을 하지 않을거냐“라고 하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은 ‘더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면서 여운을 남겨, 제가 “그럼 내가 돌아가서 정부측의 입장을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라고 하고 그날 협상을 종료하였습니다.
문 : 2000. 3. 23.부터 25.까지 박지원 장관이 일본을 방문하였던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 이때 박지원 장관을 만나서 결렬된 회담을 재개할 수 있도록 부탁을 받고서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과 접촉하였던 것은 아닌가요.
답 :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그런 부탁을 받은 사실은 없고, 하여튼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이 먼저 접촉을 제외하였으며, 그 자리에서 회담재개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던 것으로 봐서 북측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접촉하자고 하였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3. 29. 송호경으로부터 남북당국간 회담을 재개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한 후, 어떻게 하였는가요.
답 : 그 다음날인 3. 30. 일본으로 가지 않고, 바로 귀국하여 박지원 장관에게 연락하여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여 몇호인지 모르겠지만 롯데호텔 객실에서 박지원 장관을 저 혼자서 만났습니다.
문 : 이때 어떤 이야기를 하였는가요.
답 : 제가 박장관에서 “결렬되었다고 하는데, 그쪽에 대고 다시 한번 해볼 용의가 있다고 하느냐고 하니까, 더 할 용의가 있다고 하는데, 장관님 생각은 어떠십니까“라고 하니까 바로 대답을 하지 않(판독불능) 그래서 제가 “다시 제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고 되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몇일 후에 제가 다시 박장관님께 전화를 드리니까 박장관께서 ‘한 번 만나 보기로 했으니까, 그쪽에 연락을 해서 일정을 잡으십시요‘라고 하였습니다.
문 : 북측에 통보를 하였는가요.
답 : 제가 돌아와서 이익치 회장에게 정부측에서 다시 한번 만날 용의가 있다고 하니 저쪽에 연락해서 일정을 잡아보라고 지시를 하였으며,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2000. 4. 8.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을 갖기로 협의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문 : 정부측에 결과 통보를 하였는가요.
답 : 예, 제가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바로 박지원 장관에게 전화를 하여 회담 날짜와 장소에 대하여 보고를 하니까, ‘알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문 : 다른 이야기는 없었는가요.
답 : 저는 일정만을 말씀드렸으며,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문 : 2000. 4. 8.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개최되었는가요.
답 : (판독불능) 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문 : 이때 참석하였던 정부측과 현대측 관계자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그때까지 회담에 참석하였던 동일한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였으며, 역시 저와 이익치 회장이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문 : 이때 피의자는 국내에서 출국한 것인가요.
답 : 아닙니다. 일본에 체류하고 있다가 회담일정에 맞춰 중국 베이징을 들렀던 것입니다.
문 : 이날 회담에서는 어떤 내용이 논의되었는가요.
답 : 이날 회담은 중국 베이징 차이나월드 호텔 객식을 정부측과 저희가 따로 잡고서 회담에 임했으며, 남북당국자간 회담은 저희가 머물고 있는 같은 층의 다른 객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남북당국자간 회담을 일단 종료한 후에 송호경 부위원장이 제가 기다리고 있는 객실로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남측의 입장이 지난번과 바뀐 것이 없어서 더 이상 회담을 진행할 수 없어 끝내고 왔다‘면서 사실상 회담이 결렬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다시 대북사업권에 대한 대가 10억불 이야기를 꺼내 놓았습니다. 송 부위원장은 저희에게 7억불을 요구하였으나, 저는 “지금 우리도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서 제가 “정 그렇다면 우리가 3억불까지는 줄 수 있다“라고 하였으나, 송 부위원장은 5억불을 고집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서로 양보를 하지 않으려고 실랑이를 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4억불에 합의를 하였습니다.
4억불을 주기로 합의를 하고 나니까 다시 북측은 이 자금을 언제까지 줄 것인지를 놓고 다시 논의를 하였는데, 북측은 4억불을 회담 전까지 달라고 요구하여, 저는 “회담 전까지 4억불을 주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니까, 송 부위원장이 ‘그럼 정상회담추진을 그만두겠다‘면서 지급 시기를 회담 전까지로 못을 박으려고 하였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이왕 4억불을 주기로 하는 마당에 정상회담은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럼 회담 전에 이 자금을 주면 우리 정부측과 계속 협의를 하겠느냐“라고 하니까, 송 부위원장도 ‘그렇게 약속을 한다면 계속하겠다‘라고 하여, 저희는 한발 더 나아가 이 돈을 회담 전까지 주는 대신에 4억불중 5천만불은 물건대금 등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3억 5천만불을 현금으로 지급키로 제의하여 그 부분까지 합의가 이루어져 그날 결렬되었던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재개되었고, 그때가 새벽 무렵이었습니다.
문 : (판독불능)을 하고 있었는가요.
답 : 그것은 모르겠으며, 회담 재개도 북측이 남쪽 대표단에게 연락을 취해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재개된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송호경이 남북당국자간 회담을 재개하면서 한참 시간이 흘러서 저희가 머물고 있는 객실로 다시 찾아와서 ‘남측이 한 장(1억불)을 주기로 했다‘면서 ‘남측이 안줄 경우 너희가 대신 지불하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부가 주겠다고 했으면 그쪽에서 줘야지 어떻게 우리가 대신 내놓느냐‘라고 하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이 ‘그럼 당신들이 보증을 서라‘고 하여, 제가 “그건 거기(정부)꺼고, 우린 우리껀데, 어떻게 우리보고 책임을 지라고 하는 거냐“면서 거절을 하니까 송호경이 ‘정부의 보증이 되지 않으면 정상회담도 할 수 없다‘면서 강경입장을 보였습니다.
문 : 그래서 어떻게 하였는가요.
답 : 북측이 강경하게 나오기에 저는 한발 물러서는 척 하면서 “좋다. 남측 정부가 못줄 경우 우리가 책임을 지겠다. 그렇다면 당신들도 우리에게 주기로 한 사업권에 통신사업을 추가하여 포함시키고, 독점권까지 넣어 달라“라고 하니까. 북측에서도 자기들 쪽에 (판독불능) 습니다.
그리고 다시 남북당국자간 테이블로 돌아갔으며, 그 이후에 남북정상회담개최에 대한 ‘합의문‘을 작성하였습니다.
문 : 통신사업권과 독점권을 포함하여 요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그 동안 저희와 북측의 대북사업 협상에서 북측이 통신사업과 독점권에 대하여는 협상에서 자꾸 제외시키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는 정부의 보증을 책임지는 대신에 통신사업권 및 독점권을 포함시키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문 : 독점권은 어떤 사업에 대한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답 : 저희가 북한으로부터 취득하는 사업권 전체에 대한 독점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 : 이 당시 구체적인 사업권에 대한 체결이 이루어진 것이 있었는가요.
답 : 그 동안 대북협상에서 저희가 진출할 수 있는 사업분야 정도까지는 논의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사업권을 취득하거나 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번 기회에 보다 구체적인 사업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북측과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문 : (판독불능)과 관련하여 이를 입증하기 위한 계약서 내지는 문서를 작성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대한 ‘합의문‘까지 작성된 이후, 남측 대표단과 접촉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합의문의 주된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제가 정부의 지급보증을 하겠다고 하여 회담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북측 사람들에게 “어떻게 합의를 할거냐“고 물으니까 ‘북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명시하지 않기로 하고, 남측은 명시를 요구하는 문제를 놓고 협상에 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남측에서는 당신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해 준 기억이 있으며, 결국 북측은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에 의해서, 남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에 의하여‘라는 문구로 합의문을 작성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기간은 2000. 6. 12.부터 14.까지 2박 3일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내용의 합의문이었습니다.
문 : 정부측이 북한에 지급키로 한 1억불도 결국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판독불능)
답 : 남북정상회담 성사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회담 전까지 지급키로 하였을 것입니다.
문 : 정부의 1억불에 대하여 현대가 지급보증을 한 것인데, 그 당시 피의자는 정부가 이건 1억불을 북측에 지급할 것으로 생각하였는가요.
답 : 1억불에 대하여는 정부 당국자가 북측과 직접 협의를 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지급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저희는 그 당시 정부측으로부터는 1억불을 북측에 지급키로 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전혀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문 : 그 당시 협상에 참여하였던 이익치 회장도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는가요.
답 : 협상은 저와 송호경 부위원장간에 직접 이루어졌고 협상과정에 이익치 회장이 참석하지는 않았으나 제가 송호경 부위원장과의 협상 진행 내용에 대해서 이익치 회장에게 설명하여 주면서 이 정도로 합의하는 것이 어떠하냐고 상의를 하였더니 이익치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문 : 정부가 북측에 지급할 1억불에 대하여 지급보증을 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해주었는가요.
답 : (판독불능) 정부가 북측과 비밀리에 결정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개최와 관련된 합의문을 어떻게 발표하게 되는가요.
답 : 2000. 4. 10. 10:00경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2000. 6. 12.부터 14.까지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개최를 합의하였다‘는 내용의 합의문 발표를 하게 됩니다.
문 : 2000. 4. 10. 합의문 발표이후 정상회담까지는 2개월 남짓 기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현대는 어떻게 하였는가요.
답 : 제가 협상을 마치고 일본에서 김윤규 당시 현대아산(주) 사장에게 전화를 하여 ‘우리가 이번 북측과의 협상에서 그동안 추진해 왔던 사업뿐만 아니라 통신사업을 추가하고, 사업에 대한 독점권까지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이야기가 되었으니, 이번 기회에 사업을 좀더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사업권을 확보할 수 있는 준비를 하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문 : 김윤규 사장에게 3억 5천만불을 정상회담 전까지 북측에 지급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는가요.
답 :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신속히 대북사업 (판독불능)을 지시하였습니다.
문 : 현대가 추진하고 있던 사업과 관련하여 북측과 구체적으로 합의(판독불능)
답 : 2000. 5. 3. 중국 베이징에서 현대아산(주) 김윤규와 북측의 아태 서기장 강종훈과의 사이에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서(이하 ‘7대 경협사업권‘이라 한다)‘에 잠정합의 하였습니다.
문 : 이건 합의서를 작성하는 자리에 피의자도 참석을 하였는가요.
이때 검사는 2000. 5. 3.자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서‘를 피의자에게 제시하고, 이를 사본하여 본건 조서말미에 첨부하다.
답 : 김윤규 사장과 실무자들이 북측 관계자들을 접촉하여 작성하였던 것입니다.
문 : 이건 합의서를 잠정합의서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북한과 대북사업 관련된 계약을 할 때 통상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용되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저희가 경험상 느낀 바에 의하면 북한측과 어떤 합의에 도달하여 합의서를 작성한다고 하더라도 합의서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승인하였다‘는 문구가 포함되지 않을 경우 정식 계약서로 인정받지 못하였는데, 2000. 8. 22. 작성된 ‘합의서‘는 이건을 보완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허용‘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정식 합의서라고 보는 것이고, 이건 합의서는 그러한 문구가 없기 때문에 잠정합의서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판독불능)
문 : 2000. 8. 22.자 합의문을 이야기하는 것인가요.
이때 검사는 2000. 8. 22.자 ‘합의문‘을 피의자에게 제시하고,
답 : 예, 그렇습니다.
문 : 7대 경협사업권을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답 : 북측이 현대의 자체적인 재원조달로 시행되거나, 남측이나 제3국의 당국, 단체, 특정기금 또는 국제기구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 시행되는 모든 사회간접자본시설(SOC)과 기간산업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개발, 건설, 설계, 관리 및 운영과 이에 따른 무역 등 모든 사업권을 북측 당국의 위임에 따라 30년간 현대에게만 부여하겠다는 내용이며, 구체적으로는 그동안 협의해온 철도, 통신, 전력, 통천공업지구, 통천비행장, 금강산저수지 물 이용, 관광사업에 대하여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문 : 잠정합의 당사자는 누구였는가요.
답 : 저희쪽은 대북사업의 주체인 현대아산주식회사를 대표하여 사장 김윤규, 북측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를 대표하여 강중훈 서기장이 서명하였습니다.
문 : 이건 ‘경제협력사업에 관한 합의서‘의 주사업자는 현대아산(주)이 (판독불능)
답 : 서류상은 그렇습니다.
문 : 이건 잠정합의서에 4. 8. 합의된 3억 5천만불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는가요.
답 : 통상적으로는 기재가 되어야 마땅한 내용인데, 그 당시에 합의내용 자체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던 것도 아니고, 북측은 이 자금을 남북정상회담과 연관시켜 요구하였던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협의 결과가 공개될 경우 정상회담의 대가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기 때문에 합의서 상에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별도로 정한 금액 조건 및 방법에 따라 아태에 지불한다‘라는 문구를 넣었던 것입니다.
문 : 대북송금전에 남북협력사업승인을 받았는가요.
답 : 받지 않았습니다.
문 : 남북교류협력사업법상 사업자가 북측에 사업자금을 송금하기 위해서는 통일부장관으로부터 협력사업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사업승인을 받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이건 합의서의 내용이 사업승인을 받을 정도로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문 : 이건 잠정합의서는 2000. 4. 8. 현대가 북측에 4억불을 지급하기 (판독불능) 급하기 전에 사업권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긴급하게 작성되었던 합의서라고 보면 되는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현대가 이건 현금 3억 5천만불을 송금하려고 하더라도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할 사항이 아니었는가요.
답 : 승인을 받아야 할 사항이었습니다.
문 : 그럼 정부측이 지급하여야 할 자금에 대해서는 정부측이 북측에 지급하였는가요.
답 : 아닙니다. 2000. 5월 중순경 박지원 장관께서 저를 보자고 하셔서 소공동 롯데호텔 객실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장관이 ‘정부에서 1억불을 보내야 하는데, 여의치 못하니 현대에서 대신 보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희도 자금 마련에 고심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니까, 박장관이 ‘정부도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어서 그럽니다‘라면서 현대가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저는 협조요청을 마냥 거절할 수만 없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저희도 자금이 여의치 못하니 자금지원을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니까, 박장관께서 ‘알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판독불능)
문 : 1억불에 대한 정부의 부담금을 떠 안게 된다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정부로부터 지원을 약속 받았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답 : 저희가 자금지원을 받는데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하였던 것입니다.
문 : 현대가 부담하여야 할 3억 5천만불의 자금지원을 받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하였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정부가 부담할 1억불까지 대신 지급하기로 하였는데 이에 대한 대가치고는 너무 미약한 것 아닌가요.
답 : 북측과 협상할 때 정부가 1억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저희가 책임지기로 하였던 것이고, 그 결과로 7대 경협사업 독점권을 30년간 행사하기로 하는 합의서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 : 2000. 5. 3. 북측과 7대 경협사업권에 대한 잠정합의를 한 이후, 정부에 이 사실을 보고하였는가요.
답 : 북측과의 접촉에 대하여는 접촉사실결과보고를 하여야 하기 때문에 통일부와 국정원에 합의사항을 보고하였을 것입니다.
문 : 이때 현대가 북측에 사업권의 대가로 3억 5천만불을 지급키로 하였다는 보고를 하였는가요.
답 : 그런 보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문 : 당시 박지원 장관이 ‘정부가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문제가 있다‘라(판독불능)
답 :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문 :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이기호의 진술에 의하면 2000. 5월 초순경 청와대 옆에 있는 국정원 별관에서 박지원 장관, 임동원 국정원장을 만났을 때, 임동원 국정원장이 ‘현대가 북한과 대북사업의 사업권 대가로 5억불을 잠정합의하였는데, 여기에는 정부부담금 1억불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을 하였으며, 그때 박지원 장관이 ‘정부 몫 1억불을 현대가 맡아서 처리해 줄 것 같고, 또 현대가 정상회담 성사에 큰 역할을 했으니 경제수석이 현대를 많이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하는데, 이미 정부도 현대와 북측간에 4억불을 대가로 지급키로 한 사실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제가 직접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국정원에 대한 대북사업 보고과정에서 김윤규 사장이 대가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을 수는 있습니다.
문 : 2000. 5월 초경 현대의 7대 경협사업권 잠정합의가 대가 및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측에 현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의 청와대 보고가 있었으며, 북측에 대한 송금지체가 공개적으로 처리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정부 관계자들간에 협의까지 있었다고 하는(판독불능)
답 : 그런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문 : 이건 잠정합의서에 따라서 북한에 대가를 지급한다는 내용에 대하여 정부가 파악하고 있었으며, 정부관계자들은 이건 송금이 실정법상의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북사업을 위하여 묵인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 부분에 대하여 당시 김대중 대통령도 이를 용인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 부분에 대하여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문 : 현대는 2000. 5. 3. 7대 경협사업권에 대한 잠정합의에 이르렀고, 그에 따른 대가를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지급하기로 이미 합의된 사항이었는데, 이 자금을 2000. 6. 9.에서야 송금한 이유라도 있었는가요.
답 : 저희가 대북사업을 추진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도 대북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일본측 관계자와 접촉을 통하여 알고 있었으나, 일본은 당시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과 북한의 대일청구권 등의 문제가 결부되어 독자적으로 대북사업을 추진하기에 부담을 느끼고서 남북간의 사업에 참여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일본을 참여시켜 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측과(판독불능) 달한다는 것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합의서를 근거로 정부로부터 남북협력사업승인을 받기 위해서 합의서를 제출하였으나, 통일부가 합의서의 내용이 사업승인을 해주기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등 몇가지 문제 때문에 송금이 지연되었던 것입니다.
문 : 결국 4억 5천만달러를 현대가 스스로 조달하여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였는가요.
답 : 그래서 제가 회장으로 있었던 현대상선 김충식 사장, 현대건설 김윤규 사장, 현대전자 박종섭 사장 등을 개별적으로 불러서 이건 송금액의 분담을 지시하였던 것입니다.
문 : 각 얼마씩을 부담하도록 하였는가요.
답 : 현대상선에 2억불, 현대건설에 1억 5천만불, 현대전자에 1억불 등 모두 4억 5천만불을 분담시켰습니다.
문 : 이런 지시를 한 때가 언제쯤인가요.
답 : 아마 2000. 5. 31.부터 6. 1. 사이에 각 사장들을 불러서 지시를 하였을 것입니다.
문 : 그 당시 현대계열이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현대계열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이건 자금 조달이 가능하였는가요.
답 : 당시 무리는 있었겠지만 제가 판단하기에 현대건설을 제외한 전자나 상선은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조달이 가능하리라는 판단을 했었습니다.
문 : 피의자의 대북송금 지시를 받은 사장들의 반대는 없었는가요.
답 : 사장들이 지시에 반대를 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문 : 현대가 정부가 지급하여야 할 1억불을 대신 지급키로 한 것이었다면 정부에 자금조달에 대한 편의를 요청하였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제가 해외출국을 하기에 앞서 사장들을 불러서 북한에 송금하여야 할 자금의 분담을 지시한 후에 이익치 회장에게 ‘각 사장들에게 대북 송금 지시를 해 두었는데, 사장들이 자금동원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박장관에게 이야기하여 협조를 얻어 송금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하고서 출국을 하였습니다.
문 : 이익치 회장도 이건 자금의 성격에 대하여 파악을 하고 있었는지요.
답 :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문 : 당시 현대상선(주)의 김충식 사장은 “2000. 6. 1. 피의자가 해외출장을 가기 직전 현대상선 김충식 사장을 불러서 ‘급히 정부에 돈(판독불능) 우 중요한 일이니 절대 차질 없이 하라는 지시를 하자 그 지시를 받은 김충식 사장은 현대상선의 자금조달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이에 대하여 피의자는 ‘걱정마라, 정부에서 받아준다. 절대 차질이 나선 안된다. 이익치가 이야기하는 대로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
문 : 정부에 빌려준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고, 제가 김충식 사장을 불러서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의 중요한 사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니까 어렵겠지만 2억불을 꼭 정상회담 전에 보내주라“는 지시를 하니까, 김충식 사장도 상당히 중요한 일이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는 듯이 ‘알았습니다. 다만 현대상선의 자금사정상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였으며, 제가 “혹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익치 회장에게 가보라“는 말을 하였지만, 정부에 빌려준다던지, 정부에서 받아준다던지 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문 : 피의자의 지시를 받은 이후 김충식 사장이 이익치 회장을 찾아가니까 이익치 회장이 “2억불은 북에 급하게 송금하여야 하는 돈이다. 대통령 가는데 이거 안하면 안된다. 상선이 좀 도와줘야겠다“는 구체적인 지시를 하였다고 하는데, 이익치도 이 자금이 정상(판독불능) 요.
답 : 2억불을 정상회담 전에 북에 송금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제가 해준 것인데, 김충식 사장이 이익치 회장에게서 직접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피의자가 출국에 앞서 이익치 회장에게 “사장들이 어렵다고 하면 박장관에세 이야기해서 도와주라“는 지시를 하였다는데, 사전에 박지원 장관과 이 부분에 대하여 협의가 되어 있었던 것인가요.
답 : 5월 중순에 박장관을 만나서 자금지원을 도와 달라는 이야기를 하였던 것 외에 직접 자금지원을 도와 달라는 부탁이나 협의를 한 것은 없었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도 정부가 부담하기로 한 1억불을 현대가 부담하기로 한 상황에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있어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그것은 그 분이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2000. 4. 8. 회담에서도 대가지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중간에 회담이 결렬되기까지 할 정도로 북측에서는 이건 대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회담 전에 이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판독불능) 장관 입장에서 이 자금이 어떻게든 북한에 송금되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 아닌가요.
답 : 그 부분에 대하여는 제가 뭐라고 말씀드릴 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문 : 이익치 회장이 박지원 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있었는가요.
답 : 이익치 회장에게 사장들이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박장관에게 이야기해 보라는 지시를 하고서 출국하였다가 저는 6. 8. 귀국하기까지 해외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이익치 회장이 박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그 당시 현대건설 부사장이었던 김재수 사장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이익치 회장이 현대상선 김충식 사장에게 산업은행이 대출을 해주기로 했으니 찾아가면 될 것이다라고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는 바, 이는 이익치 회장이 박지원 장관에게 협조요청을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문 : 이익치 회장은 현대그룹의 대북사업과 송금은 그룹총수인 정주영 명예회장과 그 승계인인 정몽헌 그룹회장 등 그룹 총수에 의해 (판독불능) 이 지시에 따라서 그룹 종합기획실(IMF이후 구조조정본부로 변경)이 이를 조정하고 기획하여 그룹내 개별사에게 역할 및 비용을 분담시켰던 것이고,
대북사업 비용부담 기획조정에 따라 그룹내 개별사에게 분담된 역할·비용은 각 개별사인 현대상선,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의 회장·사장 등 임원들이 최종적으로 이행되었기 때문에 자신은 대북사업 송금과 관련하여는 자신이 관여하였거나 아는 바가 없다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회담을 할 당시 현지에 있었기 때문에 이건 대북송금 등에 대하여는 알고 있었을 것이고, 제가 출국하면서 사장들의 어려움을 박장관을 통하여 해결해 주라는 지시까지 하였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 : 4억 5천만불을 3개사 사장들에게 분담을 지시하였는데, 이들 회사가 자금을 조달한 경위에 대하여 보고를 받았는가요.
답 : 2000. 6. 8. 귀국한 후 제가 각 사장들에게 송금 여부를 물으니까 다들 문제가 없다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문 : 이건 송금은 해외에 투자자금으로 외화를 송금하는 것으로 이럴 경우, 그 송금사실을 재경부장관에게 신고하도록 외국환관리법 상 (판독불능)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이건 송금사실에 대하여 재경부장관에게 신고한 사실도 없고, 대외적으로 보안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신고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문 : 대북 송금을 지시받은 각 사장들은 어떤 방법으로 송금을 하였다고 하던가요.
답 : 그런 보고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문 : 2000. 6. 7. 현대상선은 자신들이 북에 송금하여야 할 2억불을 마련하기 위하여 산업은행을 통하여 4,000억원을 대출 받은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저는 자금이 북에 송금되었는지만 확인하였을 뿐이고, 그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였는지에 대하여는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문 : 그럼 그 사실을 언제쯤 알게 되었는가요.
답 : 2000. 10월 내지 11월경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았다는 내용의 보고를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문 : 2000. 3월 일명 ‘왕자의 난‘ 이후 현대계열에 대한 급속한 유동성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4억 5천만불이라는 천문학적 (판독불능) 요.
답 : 외부적으로 볼 때 그렇게 볼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저희 자체적으로 조금 어려움이 있었을 뿐 저희 회사의 규모로 볼 때 그 정도의 자금은 감당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문 : 그 당시 현대상선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체 유동성 부족으로 2000. 5. 18. 산업은행으로부터 유동성 부족을 원인으로 1,000억원을 긴급지원 받기에 이르는 등 현대계열중 그래도 건실하다고 한 현대상선이 이 정도였는데, 피의자도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는가요.
답 : 그런 기억이 안납니다.
문 : 산업은행 관계자도 현대상선이 2000. 5. 18. 1,000억원을 유동성 자금 명목으로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유동성 부족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는데, 같은 해 5월 말경 갑자기 현대상선으로부터 이건 4,000억원의 여신지원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서 실무자는 현대상선의 유동성 부족을 인정할 수 없어서 여신지원을 거절하기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런 내용에 대하여 보고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그런 보고를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문 : (판독불능) 자금을 지원받지 못하더라도 현대상선의 유동성 확보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던 것이고, 이건 4,000억원은 순전히 피의자의 지시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았던 것이라면서 당시 현대상선의 유동성 부족 문제는 심각하지 않았었다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런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문 : 2000. 6월 초경 피의자으로부터 대북송금 지시를 받은 이후 김충식 사장이 이익치 회장을 찾아갔을 때 ‘2억불을 북에 급하게 송금하여야 하는 돈이다. 대통령 가는데 이거 안하면 안된다. 상선이 좀 도와줘야겠다‘라고 했을 때, 현대상선의 자금사정의 어려움으로 안되겠다고 거절하였다가, 다시 이익치 회장이 불러 찾아가니까 ‘청와대에서 다 해가지고 그거 산업은행 통해서 하기로 했다‘면서 정부측과의 협상이 있었음을 이야기하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익치가 현대상선의 자금사정의 어려움을 알고서 정부측 누군가와 협의를 하였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피의자와도 협의가 이루어졌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답 : 제가 출국하기에 앞서 이익치 회장에게 사장들이 어려움이 있으면 박장관에게 이야기해 보라는 말을 하기는 하였지만, 실제 그쪽을 통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판독불능)로 관련이 있는가요.
답 : 전혀 없었습니다.
문 : 2000. 6. 5. 이근영 당시 산업은행 총재는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현대상선 김충식 사장이 갈 것이니 서둘러서 대출을 처리해 달라‘는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는데, 4,000억원 대출과 관련하여 정부나 이기호 수석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거나 협의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이때 저는 해외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듣거나 협의한 사실이 없습니다.
문 : 2000. 5월말 내지 6월 초경 이기호 산은 부총재 박상배에게 전화하여 ‘현대상선에 자금지원이 정말 불가능하냐‘고 물어서 박상배는 ‘동일인 신용공여한도초과되어 있고, 이미 현대상선에 1,000억원의 자금지원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이어서 총재의 지시 없이 본부장인 내가 추진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꼭 성사를 시키려면 총재의 결심을 받아라. 그리고 이건은 동일인 신용공여한도초과가 걸려 있기 때문에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다치지 않아야 한다‘라고 답변까지 하였으며, 이후에 이근영 총재로부터 대출지시를 받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정도로 정부측의 (판독불능)였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답 : 그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문 : 그 당시 현대에서 정부의 협조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였다고 보는가요.
답 : 저는 이익치 회장에게 사장들로부터 자금지원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 박지원 장관에게 이야기를 해 보라는 지시를 하고서 출국하였기 때문에 이익치 회장이 협조를 구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북측에 4억 5천만불을 지급하기로 하였는데, 이 자금은 어떤 방법으로 지급하기로 하였는가요.
답 : 2000. 5. 23.부터 25.까지 금강산에서 부두기공식이 있어서 저와 김윤규 사장이 참석을 하였는데, 이때 아태 재정담당이라고 하는 사람이 저를 찾아와서 부위원장의 심부름이라고 하면서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봉투안에 ‘돈자리(계좌번호)‘라고 적힌 몇 장의 서류가 들어 있었으며, 재정담당이라고 하는 사람이 돈자리로 돈을 보내 달라고 하였다는 말을 함께 전해 주었습니다.
문 : 팩스로 수신된 것으로 보이는 이건 ‘돈자리‘의 상단을 보면 ‘00年 06月04日(日)‘이란 문자가 기재되어 있는데, 피의자가 이건 서류를 건네 받은 것은 5. 23.부터 25. 사이라는 말인가요.
이때 검사는 (판독불능)
답 : 예, 그렇습니다. 이런 서류를 팩스로 건네 받는다는 것도 이상한데요.
문 : 이 서류를 보면 2000. 6. 4. 누군가 팩스를 이용하여 주고 받았다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북측으로부터 받아 온 서류 봉투를 보관하고 있다가 2000. 6. 1. 해외출국을 하면서 김윤규 사장을 불러 각사 사장들에게 전해줘서 송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문 : 김윤규 사장은 피의자으로부터 건네 받은 이건 돈자리를 그대로 김충식 사장에게 건네주었으며, 김충식 사장은 그 당시 서류를 보관하고 있다가 이번 수사에서 제출한 것이라고 하는 바, 그렇다면 이건 서류는 2000. 6. 4. 시점에서 건네 받은 것으로 보여지고, 출입국조회상 2000. 6. 4. 일본에 체류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때 받았던 것은 아닌가요.
답 : 아닙니다. 그런 문서를 팩스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문 : 돈자리는 그야말로 계좌번호에 불과한데, 팩스로 받지 못할 이유도 없어 보이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5. 23.부터 25.까지 금강산에 갔을 때 그곳에서 받았습니다.
문 : 2000. 6. 7.부터 8.까지 김재수가 일본을 다녀오게 되는데 이때 (판독불능)
답 : 아닙니다.
문 : 김충식 사장의 진술을 보더라도 2000. 6. 8. 오전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김윤규 사장과 함께 국정원 직원을 만나고 돌아온 이후에 김윤규 사장으로부터 이건 ‘돈자리‘ 건네 받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건 돈자리는 6. 4. 이후 현대측에 건네졌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전혀 모르는 내용입니다.
문 : 또한 이건 돈자리 하단부에 페이지가 (13)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13매의 서류를 받은 것 같은데, 김충식이 제출한 자료는 7매에 불과한데 나머지 서류는 어떻게 된 것인가요.
답 :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제가 받아온 서류는 모두 김윤규 사장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문 : 이건 서류를 정부측 관계자나 국정원 관계자에게 교부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문 : 북측은 남측 정부가 1억불을 정상회담 대가로 지급하기로 상호 협의가 이루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소한 송금할 수 있는 계좌번호 정도는 정부측에 교부를 하였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면 (판독불능)
답 : 5월 중순에 제가 박지원 장관을 만나서 정부가 부담하여야 할 1억불을 현대가 대신 부담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금강산에서 북한측 아태 재정담당을 만났을 때 우리가 4억 5천만불을 전부 송금하겠다는 말을 부위원장에게 전해 주도록 부탁하였습니다.
문 : 현대상선의 2억불의 송금과정을 보면 2000. 6. 7. 4,000억원을 대불 받은 자금중 현대건설에 1,000억원을 CP매입자금 형식으로 지원하게 되고, 나머지 2,235억원(2억불)을 6. 9. 국가정보원을 통하여 북한측 계좌로 송금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는데 이 과정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요.
답 : 모릅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에서부터 최종합의까지 김보현 국정원 5국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담내용에 대하여는 국정원도 인식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여지는 바, 그렇다면 이건 송금에 대하여도 처음부터 국정원이 개입하기로 협의가 되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송금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모르는 내용입니다.
문 : 이익치 회장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남북당국자간 회담시에 함께 하였던 사람으로서 피의자 못지 않게 이 자금의 성격에 대하여 (판독불능) 직접적인 협조요청이 이루어질 수 있는 관계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잘 모르겠습니다.
문 : 피의자가 2000. 6. 8. 해외 출장에서 귀국하였으면, 그 다음날인 6. 9. 현대사선 김충식 사장을 통하여 국정원 명의로 북한측 계좌에 2억불을 송금하였다는 내용 정도는 보고를 받았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답 : 송금 과정에 대하여는 보고를 받지 않았습니다.
문 : 그 당시 현대건설 김윤규 사장이 국정원측과 업무협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었는가요.
답 : 예, 저희가 북측 사람들을 접촉하고 난 후에는 주로 김윤규 사장이 통일부나 국정원에 접촉결과보고를 하였기 때문에 현대측에서는 국정원과 가장 많이 접촉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 : 2000. 6. 7. 현대건설 김윤규 사장이 국정원 김보현 5국장에게 환전편의 제공을 요청하였다고 하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모릅니다.
문 : 2000. 6. 7.경 임동원 국정원장이 기조실장에게 현대의 2억불 송금에 대한 환전편의를 제공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그 이전에 김(판독불능) 하지 마십쇼, 잘 되고 있습니다. 김윤규 사장을 보내겠습니다‘라고 말을 하였던 것으로 보아 현대와 국정원간에 송금과 관련하여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그건 모르겠습니다.
문 : 2000. 6. 8. 오전 김윤규와 김충식 사장이 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재 서울교육문화회관 커피숍에서 국정원 직원을 만나서 이건 2억불 송금에 대하여 업무협의를 하였으며, 이때 2억불 송금을 국정원이 직접 처리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하여는 알고 있는가요.
답 : 모르겠습니다.
문 : 7개 경협사업의 대가로 북측에 현대가 3억 5천만불, 정부가 지급키로 한 1억불을 포함한 4억 5천만불은 누구의 명의로 송금이 되어야 하는가요.
답 : 현대측 명의로 송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 : 그런데 이 자금이 현대측 명의가 아닌 국정원이 송금한 것으로 처리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가요.
답 : 그런 내용은 모릅니다.
문 : 나중에라도 그런 사실에 대하여 보고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판독불능)
문 : 어떤 경위로 누구로부터 들은 것인가요.
답 : 특별한 상황은 없었던 것 같은데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그때 자금이 국정원 명의로 송금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문 : 피의자가 4억 5천만불의 송금이 처리되었다는 보고는 언제쯤 받게 되는가요.
답 : 2000. 6. 9. 오후쯤에 각사 사장들로부터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 : 대북송금 과정을 보면 현대건설과 현대전자는 해외에서 자금을 북한측 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확인되고, 현대상선만이 국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아 송금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요.
답 : 그런 구체저인 조달 방법까지는 보고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문 : 현대상선이 조달한 2억불의 송금과정을 보면 국정원이 송금의 주체인 것으로 하면서 국정원 직원의 개인실명을 이용하였으며, 미국 등 북한과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에 자금이동이 노출될 것을 염려하여 자금흐름이 파악되지 않도록 하면서 6. 9.중으로 송금되도록 국정원과 관계은행인 외환은행의 긴밀한 협조까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 바, 이는 이건 송금에 정부차원에서도 극도의 보안사안인데 어떤가요.
답 : 송금 자체가 보안을 요하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문 : 상선은 6. 7. 이미 4,000억원을 대출받음으로써 송금 준비가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6. 9. 오후 2시가 되어서야 국정원에 돈을 건네주어 송금절차를 밟도록 하여 결국 은행마감시간이 임박하여 어렵게 송금이 완료되는 등 상당히 급하게 돌아갔던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시점까지도 송금방법에 대하여 결정하지 못하고 현대와 국정원 등 정부관계기관이 고심하였던 것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피의자도 이에 대한 보고 정도는 받았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답 : 그런 보고를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문 : 송금된 자금중 일부가 잘못 송금된 사실에 대하여 보고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북측과의 합의는 6. 12.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4억 5천만불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이었으며, 2000. 6. 9.은 금요일로서 해외은행은 토요일 휴무인 관계로 6. 9. 당일중으로 송금이 완료가 되어야만 (판독불능) 기간 내에 처리하려고 하였던 것인데, 송금이 잘못 처리되었을 경우 정상회담개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송금이 잘못된 부분에 대하여 전혀 몰랐었다는 말인가요.
답 : 남북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고서 저도 송금에 무슨 문제가 있지 않느냐 해서 3개사 사장들에게 확인을 하니까, 모두 차질없이 보냈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 연기통보는 6. 10. 오후였고, 송금이 잘못된 사실이 확인된 것은 같은 날 오전으로서 이미 차질이 발생했는데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말인가요.
답 : 제가 분명히 상선, 건설, 전자 사장들에게 송금에 문제가 있는지 물었을 때,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문 : 정상회담이 연기되었다는 사실은 어떤 경로로 접하였는가요.
답 : 6. 11. 오전에 청와대가 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문 : 언론에 보도되기 이전에 정부측으로부터 전해 듣거나 북측으로부터 직접 전해 들은 것은 아닌가요.
답 : 아닙니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문 : 북측으로부터 송금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으니 정상회담을 연기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던 것은 아닌가요.
답 : 저희가 그런 연락을 받은 사실은 없습니다.
문 : 송금이 잘못된 결과에 대하여는 어느 쪽으로 통보가 되어야 하는가요.
답 : 현대가 보낸 것이라면 현대쪽으로 잘못된 결과를 보내와야 하겠지요.
문 : 당시 송금을 담당하였던 외환은행은 국정원쪽으로부터 수취인이 잘못 기재되었다는 사실을 통보 받았으며, 현대 김충식 사장도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송금이 잘못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으로 보아 이건 송금결과에 대하여는 국정원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글쎄요, 그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김충식 사장도 저에게는 잘못되었다는 보고를 한 사실이 없었습니다.
문 : 이건 송금이 잘못 처리되었다는 부분에 대하여는 국정원이 내용을 파악하고 신속하게 수습을 시도하였지만, 6. 10.이 토요일이었던 관계로 6. 12. 월요일에야 정정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정상회담은 6. 12. 보다 하루 늦은 13. 개최되게 되고, 이는 이건 송금지연에 따른 결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그런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문 : (판독불능)원 직원인 김주경 명의로 B.O.C 마카오 지점, 계좌주 DAESUNG BANK로 송금한 4,500만불이 실제 계좌주인 ‘DAESUNG BANK-2‘과 일치하지 않아서 송금처리 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 이에 대한 보고가 전혀 없었다는 말인가요.
답 : 그런 보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문 : 2003. 1. 30.자 내일신문에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북한 개발권 대가로 2000. 6. 남북정상회담 직전 싱가포르에 있는 북한측 계좌로 5억달러를 넣었다‘라고 언급」하면서, 정 전 명예회장은 「2000. 6월 남북정상회담이 당초 일정보다 늦어진 것도 ‘같은 해 6. 11.까지 5억달러중 4억달러만 북측에 지급해, 북측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들어올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래서 다음날(6. 12.)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긴급하게 북경으로 가서 사태를 해결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어떤가요.
이때 검사는 2003. 1. 30.자 내일신문 1면을 피의자에게 제시하고,
답 : 정 명예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대북송금 관련 내용을 아시지도 못하셨을 뿐만 아니라, 저는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송금이 잘못 처리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문 : 2000. 6. 11.부터 12.까지 김윤규 당시 현대건설 사장 겸 현대아산(주) (판독불능) 방문하였던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요.
답 : 김윤규 사장이 무슨 일로 중국을 방문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랬을 수는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을 수행하여 평양에 가게 되었기 때문에 중국을 통하여 평양으로 들어올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 : 그러나 6. 13.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을 때 김윤규 사장은 평양으로 가지 않고서 귀국하였던 것을 본다면 그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답 : 그 부분은 김윤규 사장에게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문 : 2000. 6. 7.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000억원의 만기가 같은 달 30.이라는 사실을 보고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저는 상선이 어떻게 자금을 조달하였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문 : 2000. 6월 말경 북한을 방문한 사실이 있었는가요.
답 : 2000. 6. 28.부터 30.까지 저와 이익치, 김윤규, 김충식이 함께 평양을 방문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 : 이때 김충식으로부터 ‘대출금의 상환 시기가 임박하였으니 2억불을 받아 달라‘는 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2000. 6월말 대출금 4,000억원의 상환시기가 임박하여 김충식은 피의자에게 ‘대출금 상환시기가 임박하였는데, 2억불을 받아주셔야 합니다. 지금 기표도 못하고 있는데, 상환이 안되면 반기 결산도 못하고, 그렇게 되면 회사는 끝납니다‘라고 보고를 하니까, 피의자가 ‘알았다‘라고 하였다는데 어떤가요.
답 : 2,000억원을 어떻게 받습니까. 상식적으로……
문 : 현대상선이 2000. 8. 14. 작성한에서 2000년 반기사업보고서(2000. 1. 1.~6. 30.)에 첨부된 재무제표를 보면 산업은행 일반차입금 900억원(만기 2000. 12. 29.), 산업은행 당좌차월 1,000억원(2000. 5. 18. 최초 여신, 만기 2000. 12. 29.)만 포함되어 있고, 이건 대출근 4,000억원 중 3,000억원은 누락되어 있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어떤가요.
*
답 : 그 내용에 대하여는 잘 모르겠습니다.
답 :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차입한 4,000억원중 정부에 빌려준 2,235억원과 현대건설 CP매입자금 1,000억원은 현대상선이 변제할 자금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반기보고서에 누락하였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그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문 : 김충식은 2억불이라는 자금이 국가에 빌려준 돈으로서 회수가 되지 않을 경우 현대상선의 회계상 기표를 할 수 없어 반기결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피의자에게 호소하여 이 돈을 받아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이 자금의 회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결국 2000년도 상반기 결산보고서상 이 자금을 누락하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3,000억원이 어떻게 누락되는지 모르겠는데, 상식적으로 어떻게 받겠습니까.
문 : 2000. 5월 중순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1억불을 현대가 부담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정부로부터 자금을 회수할 생각이 없었다는 말인가요.
답 : 저희가 부담을 하게 된다면 상식적으로 정부로부터 이 돈을 받은 방법이 없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 : 2000. 8월 중순경 산업은행 총재로 취임한 신임 엄낙용 총재가 ‘이건 4,000억원 대출금에 대하여 성의 있는 상환스케줄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상환연기가 불가하다‘라고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 내용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요.
답 : 그 내용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문 : 김충식은 엄낙용 신임 산은 총재로부터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서 피의자를 찾아갔는데, 마침 이익치 회장과 함께 있었으며, 산은측이 위와 같이 요구한다는 보고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상의를 구하자, 피의자가 화를 내면서 이익치 회장과 그냥 나가 버리길래 엘리베이터까지 쫓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다시 물으니까 피의자가 ‘산업은행 보고 정부에 가서 받으라고 그래‘라고 하여, 김충식이 ‘그렇게 하면 엄총재가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하니까, 피의자와 이익치 회장이 함께 화를 내면서 ‘그렇게 하라고 그래‘라고 하여, 그 말을 들은 김충식은 바로 엄낙용 산은 총재를 찾아가서 ‘그 돈은 우리가 쓴 돈이 아니다. 우리가 받아야 갚을거 아닌가, 우리가 쓰지 않은 돈을 어떻게 갚으라고 하느냐, 못 갚겠다, 맘대로 해라‘라는 취지로 말을 하고 돌아왔던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제가 그런 보고를 받고서 짜증을 냈을지 모르지만 제가 정부에 가서 받으라는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문 : 그렇게 돌아온 이후에 이근영 전임 산은총재가 김충식에게 전화를 하여 ‘엄낙용 산은 총재가 청와대에서 자신과 이기호 수석, 진념 재경부장관이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현대상선이 이 자금을 갚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부도를 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해서 한때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었다‘면서 ‘내가 지금 엄총재에게 전화를 할 터이니 가서 잘 사정해라‘는 전화를 받았으며, 김충식이 다시 엄낙용 총재를 찾아가니까 ‘상선을 부도낼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조금씩이라도 갚는다는 성의를 보여주시오‘라고 하였다는데 그런 내용을 알고 있는가요.
답 : 그런 내용은 모릅니다.
문 : 이와 관련하여 엄낙용 전 산은 총재는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이러한 상환거부 통보를 받고서 청와대 이기호 수석, 국정원 김보현 3차장을 만났을 때 ‘걱정하지 말아라,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 뒤로 현대상선으로부터 돈을 갚지 못하겠다는 말이 없었다고 하는데, 청와대 또는 국정원쪽으로부터 이와 관련하여 피의자가 연락을 받았거나, 김충식을 타이른 사실이 있는가요.
답 : 그런 사실이 없었습니다.
문 : 2000. 6. 7.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 여신지원을 본부장 전결로 처리하였던 박상배의 진술에 의하면 2000. 6. 27.경 김충식 사장이 자신을 찾아와 ‘이 돈은 우리가 갚아야 할 돈이 아니다‘라고 하여, 박상배가 ‘너희들이 가져간 돈인데 갚지 못하겠다는 이유는 무엇이냐‘라고 하니까 ‘대북사업을 하면서 발생된 손실금이기 때문에 정부가 납북경협기금에서 상환하여야 할 자금이다‘라고 하였다는데,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문 : 2000년 결산을 앞두고서는 결산 마감일, 30일전부터 디데이(판독불능) 피의자를 매일 같이 찾아가서 이 돈을 돌려 받는 것은 중요한 것이니까 이익치나 김윤규를 시키지 말고, 피의자가 직접 임동원과 박지원을 만나라고 종용하다시피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김충식 사장은 정상회담에 사용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정부로부터 그런 돈을 어떻게 돌려 받을 수 있겠습니까.
문 : 그래서 피의자가 박지원은 두 차례 정도 만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임동원측과도 만날 수 있도록 스케줄까지 잡았으니 임동원측이 김보현 국정원 5국장을 만나라고 하여 피의자가 김보현을 만났으며, 박지원과 김보현을 만나고 난 후에도 별 이야기 없이 투덜거리기만 했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정부가 지불하기로 한 1억불을 우리가 대신 지불하겠다고 한 것이고, 그 지불의 조건으로 저희가 사업권을 획득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돌려 달라고 하겠습니까.
문 :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산업은행으로부터 상환 독촉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바가 전혀 없었다는 말인가요.
답 : 2000. 10~11월경 김충식 사장이 ‘이 돈을 정부로부터 돌려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서 “그(판독불능) 않은 말인냐, 말 같지 않은 이야기 하지 말라“고 잘라 말해 버렸습니다.
문 : 김충식 사장이 이 돈을 정부로부터 돌려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봤는가요.
답 : 남 제가 김충식 사장에게 2억불 송금 지시할 때 정상회담과 관련해서 우리의 사업상 필요한 자금이니까 북한에 송금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김충식 사장 입장에서 이 자금이 정상회담의 대가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하고서 그렇게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문 : 당시 청와대 이기호 경제수석과도 피의자가 직접 전화도 하고, 만나기도 하고, 김윤규를 직접 보내서 몇 차례 만나기도 하였으나 모두 결과가 만족하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 분은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문 : 이 과정에서 피의자가 이익치 회장을 몇 차례 심부름을 보내기도 하였다는데 사실인가요.
답 : 이익치 회장이 자기 판단 하에 직접 접촉했을 수는 있겠지만 제가 심부름을 시켜서 간 것은 아닙니다.
문 : 김충식의 진술은 2000. 12. 초부터 디데이를 정하고 피의자를 조르기 시작하여 그때부터 위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하였으며, 맨 처음 접촉을 시도하였으나 바로 연락이 되지 않고 얼마 후 임동원이 피의자에게 연락하여 김보현 3차장을 만나보라고 하였고, 김보현은 이 문제는 ‘재정 문제이므로 이기호 수석과 이야기해 보라‘고 하여, 다시 이기호 수석과 접촉을 시도하여 수차례 전화를 한 끝에 결국 한번인가 만났으니 이기호도 협조적이지 않다면서 이기호와 임동원간에 핑퐁을 치듯이 서로 떠넘기려는 듯하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김충식이 직접 이기호를 만나려고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으며, 피의자가 마지막으로 접촉을 하였던 것이 박지원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제 스스로가 받을 수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돈을 어떻게 받으려는 노력을 하겠습니까.
문 : 2001. 3. 결산마감 전까지는 어떻게든 결산을 맞춰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서 직접 대통령을 만나라고까지 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박지영 상무로 하여금 직보를 하게 하였다는데 어떤가요.
답 : 박재영 상무가 찾아와서 ‘반기보고서에 누락된 2,235억원을 결산보고서에 반영을 하여야 하는데, 이를 반영할 경우 부채의 증가로 인하여 회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고를 하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는 보고를 하기에 제가 “그것은 (판독불능) 당신이 알아서 처리해야지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고 한 적이 있습니다.
문 : 이렇게 하여 박재영 상무가 피의자에게 2차례 정도 직대를 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하였으나 아무런 소득도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택한 것이 ‘구입하지도 않은 배를 구입한 것처럼 허위계약서를 만들어서 회계감사를 받기에 이른 것이다‘라고 하는데, 피의자도 이러한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구체적인 방법에 대하여까지는 모르겠으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회계처리를 하였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문 : 현대상선에 대한 제25기(2000. 1. 1.부터 2000. 12. 31.까지) 감사보고서 대차대조표상에 유형자산인 선박구입비 명목으로 2,170억원을 부풀려 과대계상하여, 대차대조표상 손익계산서의 당기순손실금 2,170억원을 과소계상하여 (-)310,467,580,529원으로 축소 기재함으로써 현대상선의 자산을 677,345,846,243원으로 부풀려 결국 2,170억원만큼 과다계상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어떤가요.
이때 검사는 현대상선(주)에 대한 2000. 12. 31. 현재 감사보고서의 대차대조표 및 손익계산서 해당 부분을 피의자에게 제시하고,
답 :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처리되지 않았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문 : 위와 같이 유형자산 2,170억원을 과다계상함으로서 1,454%이면 부채비율을 988.5%로 축소함으로써 재무구조가 양호한 것처럼 일반투자자 및 금융기관을 속인 것 아닌가요.
답 :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문 : 2000. 6. 9. 북한으로 송금된 2억불(2,235억원)은 2000. 10. 26. 65억원을 운항비로 가공하여 회계처리하고, 같은 해 11. 15. 902억원과 같은 해 12. 6. 598억원 및 670억원 등 2,170억원을 중고선박으로 취득한 것으로 가공하여 회계처리하였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렇다면 맞을 것입니다.
문 : 이건 2,170억원을 사업비가 아닌 선박구입으로 처리하여 투자자나 금융기관에게는 회사의 부채지급 능력이 양호한 것처럼 보여지게 하기 분식회계를 하였던 것은 아닌가요.
답 : 결과적으로 그렇습니다.
문 : 결국 위와 같은 회계처리는 투자자나 금융기관의 판단을 왜곡시키는 것이고, 이를 진실로 믿은 투자자나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호의적인 판단을 하게 하여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하거나, 금융기관 부채의 차환 등에 유리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가요.
답 : 당시,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 : 2001. 3. 14. 삼일회계법인이 이건 감사보고서를 작성하였으며, 같은 해 4. 12.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이용하여 공시되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렇게 되었다면 맞을 것입니다.
문 : 2002년도 현대상선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2000. 6. 9. 북한에 송금한 2,235억원에 대하여 제26기(2001. 12. 31. 현재) 대차대조표상 무형자산 중 사업권(204,050,021,090원)의 과목으로 소급 변경 처리하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미래 경제적 이익의 가능성 및 그 회수시기의 상당히 불확실성 때문에 동 사업권대가를 제27기(2002. 12. 31. 현재) 손익계산서에서는 전액 비용(223,500,236,249원) 처리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에 대하여 확인을 하였는가요.
이때 검사는 현대상선에 대한 2002년도 감사보고서를 피의자에게 제시하고,
답 : 최근에는 미처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문 : 현대상선은 대북사업권에 대하여 제26기 결산보고서 이전에 비용으로 처리하였던 19,498백만원을 전기오류수정이익의 과목으로 하여 영업외수익으로 처리하였으며, 또한, 비교표시된 제26기 재무제표는 유형자산 중 선박(취득원가 2,171억원, 감가상각누계액 130억원)에 계상된 상기 사업권(2,041)을 무형자산으로 분류하여 재작성하였다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2000년도 결산보고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문 : 2002년도 감사보고서 상에는 대북송금관련 담당자들의 해외체류 등으로 인하여 질문 등의 감사절차를 충분히 수행할 수 없어 대북송금과 관련된 감사범위의 제한으로 인하여 ‘한정의견‘을 표명하였는데, 대북송금과 관련된 것 이외에 추가적인 분식회계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요.
답 : 그 부분에 대하여는 확인한 바가 없습니다.
문 : 2000. 6. 26. 현대건설이 발행한 사모사채 1,500억원 상당을 산업은행이 인수한 사실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요.
답 : 그 당시에는 몰랐었는데, 최근 특검수사에서 이 부분에 대하여 언급되었다는 사실로 알게 되었습니다.
문 : 사모사채 발행이 누구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알고 있는가요.
답 : 사모사채가 발행되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누구의 결정으로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문 : 그 당시 현대건설이 발행할 사모사채는 국내 어느 금융기관도 인수할 수 없는 회사채로서 산업은행이 이건 사모사채를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청와대의 개입이 확인되고 있는 바, 이건 발행에는 현대건설 자체가 아닌 피의자 선에서도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어야 할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전혀 몰랐습니다.
문 : 2000. 6. 26. 산업은행이 현대건설 발행 사모사채 1,500억원 상당을 인수할 당시 현대계열에 대한 동일인 신용공여한도초과 문제로 인하여 더 이상의 여신지원은 불가능한 상태였으나, 청와대측과 산은 총재의 적극적인 검토 지시에 의하여 회사채 인수라는 방법을 이용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런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문 : 그 당시 현대건설의 경상적자 규모가 1998년 1,773억원, 1999년 1,682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었으며, 1999년 영업이익이 약 3,139억원이고 금융기관에 지불한 이자는 6,020억원으로 영업이익의 2배에 달하고 있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므로 특단의 대책 없이 추가 여신을 회수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다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당시 계열사 중 현대건설의 자금사정이 가장 어렵기는 하였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문 : 산업은행은 여신지원 대상기업의 “신용평가등급 ‘BBB‘ 이상인 기업체에 대해서만 담보를 면제하고, 그럴 경우에도 담보면제에 대신하여 주주 등을 연대입보“토록 하고 있는 바, 당시 현대건설의 신용평가등급이 ‘BB‘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모사채 인수를 결정하는 등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출과정에서 보다 훨씬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취급되었는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이렇게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1,500억원이라는 거액을 여신지원해 줌에 있어서는 정부측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을 것이고, 정부도 이렇게 무리하게 대출지시를 한 배경에는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대한 대가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잘 모르겠습니다.
문 : 이건 사모사채 인수가 6. 7.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의 대출보다 더 이례적인 사항으로 보여지는 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측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하였던 사항인데, 그렇다면 5월 중순 박지원 장관과의 자금지원 요청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던 협조차원이 아니었는가요.
답 : 저는 사모사채 발행 자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문 : 현대전자에 대한 대북송금 지시는 언제쯤 이루어지는가요.
답 : 2000. 5월 말경에서 6. 1. 사이에 현대건설, 현대상선과 같은 시기에 지시를 하였습니다.
문 : 2000. 6. 9. 현대전자(주)의 미국 및 일본 현지법인은 현대건설 런던지사가 팩스를 통해 알려준 영국 HSBC은행의 ‘현대건설‘ 명의계좌로 1억달러를 송금하였으며, 같은 날 2천만불과 6. 12. 8천만불 등 모두 1억불이 북한측 계좌로 송금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어떤가요.
답 : 송금되었다는 보고만 받았지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송금되었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문 : 2003. 2. 6. 하이닉스가 현대건설을 상대로 한 양수금 청구 소송의 소장에는 ‘2000. 7. 20. 현대전자 영국법인은 스코틀랜드 반도체 공장 매각대금으로 미국 및 일본법인에 1억 달러를 대신 갚아 주고, 현대건설에 대한 대여금 채권을 양수하였다‘라고 밝히고 있으며, 이 부분과 관련하여 현대전자의 회계감사보고서는 영국 현지 반도체공장 매각대금 중 1억달러의 외화를 현대건설의 중동 현지 법인인 Hyundai Al Khafajy Contracting LLC에 단기대여금 명목으로 빌려주고, 그 해 연말에 대손상각(회수불가능)으로 비용 처리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내용을 알고 있는가요.
답 : 모릅니다.
문 : 2000. 4. 9. 정몽헌 회장과 함께 해외에 나갔던 이익치 회장이 귀국하여 현대건설의 김윤규, 김재수를 불러 달러를 모을 것을 지시하였으며, 이00 현대건설 재경본부 금융·재정담당 상무이사, 임00 당시 현대건설 재무기획부장이 실무를 담당하여, 2000. 5월 말경 외환은행 홍콩지점 등 10개 계좌를 이용하여 홍콩 및 싱가포르에 있는 김정일 비밀계좌로 송금되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제가 지시를 한 것이 6. 1.경이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자금조달 지시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문 : 피의자는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에게 양도성예금증서(이하 ‘CD‘라 한다)를 굡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예,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다.
문 : 그때가 언제쯤인가요.
답 : 2000. 4월 중순경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에게 건네준 CD가 어느정도 규모였는지 알고 있는가요.
답 : 150억원을 CD로 건네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피의자가 직접 건네준 것인가요.
답 : 아닙니다. 제가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에게 지시하여 이익치 회장에게 150억원을 건네주도록 하였던 것이고, 이익치 회장이 박지원 장관에게 전달하였고 그 내용을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에게 CD 150억원을 건네주게 된 경위는 어떤가요.
답 : 2000. 4월 초경 제가 출국하기 전에 서울 프라자호텔 호실불상의 객실에서 박지원 장관과 잘 알고 있는 김영완이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김영완이 ‘요즘 사업은 잘 되느냐, 부탁할 것이 있는데 사실은 박지원 장관이 정상회담 준비비용으로 15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좀 도와줄 수 있느냐‘고 하여 제가 ‘준비해 보겠다‘라고 승낙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 :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사무실로 돌아온 후, 제가 출국을 앞두고 있어 직접 전달해 주지 못할 것같아 이익치를 불러 “김재수에게 지시를 해 놓았으니 김재수가 150억원을 갖다 줄 것이다. 김재수로부터 돈을 받아 박지원 장관에게 전달하여 주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문 : 왜 이익치에게 지시를 하였는가요.
답 : 제가 곧 출국을 앞두고 있어 직접 전달해 주는 것이 어려웠고, 아무래도 이익치가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준비회담 과정에서 박지원 장관과 접촉을 한 바가 있어 임의로울 것으로 판단되어 이익치 회장에게 지시를 하였습니다.
문 : 그런 후 김재수에게 150억원을 준비하라고 지시를 하였는가요.
답 : 이익치 회장이 저의 방을 나가고 나서 당시 구조조정본부장인 김재수를 불러 “150억원이 필요하니 준비하여 이익치 회장에게 전해주라“고 지시를 하니 김재수는 ‘알았습니다‘라고 답한 후 방을 나갔습니다.
문 : 김재수의 진술에 의하면 2000. 4월초 피의자가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자신을 서울 종로구 계동 140의2 현대계동사옥 본관 12층 회장실로 불러 창가에 서서 피의자가 자신에게 “자금이 어렵지“라고 하여, 자신이 ‘어렵습니다‘라고 하자, 피의자가 “이익치 회장이 자금이 150억이 필요한 모양이야, 중요한 일이야, 어렵지만 만들어 줘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것이 사실입니다. 김재수의 진술을 들어보니 당시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기억이 납니다.
문 : 김재수는 그 당시 금액이 너무 커서 현대건설(주) 김윤규 사장을 찾아가서 피의자로부터 지시 받은 내용을 보고하고서 ‘걱정이다‘라고 하니까, 김윤규 사장이 ‘요새 중요한 일이 많으니까 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으며, 김윤규 사장과 합의를 마치고 바로 같은 빌딩 15층 이익치 회장실을 찾아가 ‘정회장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회장님과 협의를 하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하니까 이익치 회장이 ‘이름표 없는 CD 있잖아, 그걸로 일단 맨들어 놔‘라는 말씀을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 상황에 대해서는 제가 알 수는 없고 김재수에게 지시를 해 놓았기 때문에 김재수의 입장에서 저의 지시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런 보고절차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은 됩니다.
문 : 김재수는 이러한 CD 매입에 필요한 자금은 2000. 4. 7. 조흥은행 계동지점 30억, 제일은행 영업점 20억, 주택은행 종로3가지점(현, 국민은행) 15억, 신한은행 영업점 10억, 하나은행 영업점 4억, 수협 종로지점 30억, 평화은행 광화문지점(현 우리은행 무교지점) 20억, 외환은행 계동지점 10억, 농협 종로지점 11억원 등 모두 150억원을 일시에 조달한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문 : 이렇게 조달된 150억원으로 같은 날 봉고차량 몇 대를 동원하여 농협 종로지점으로 운반하여 그 자금으로 모두 양도성예금증서를 매입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 내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문 : 당시 김재수에게 지시를 하면서 양도성예금증서(CD)로 준비하여 이익치 회장에게 전해 주라고 지시하지는 않았는가요.
답 :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에게 전달된 150억원은 현대건설(주)의 당좌계좌 9개 계좌에서 현금 150억원이 인출되어 그 자금으로 양도성예금증서(CD)를 구입한 후 박장관에게 전달이 되었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답 :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지시를 하지 않았으나 담당 직원들이 정상적인 자금집행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 추적 등을 피하기 위하여 현금을 인출하고 양도성예금증서를 구입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문 : 김영완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요.
답 : 1980.경쯤 현대전자(주)가 인공위성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방산업체와 관련된 외국기업의 에이전트로 활약을 하고 있던 김영완을 알게 되어 김영완을 통하여 외국기업과의 연계 등을 추진하였으나 결국 성사가 되지 않고 끝나 버린 사실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람입니다.
문 : 그 후 계속하여 김영완과 연락을 취하여 오고 있었는가요.
답 : 그 후 한참동안 김영완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어는데 1999.말경 갑자기 김영완이 전화를 하여 금강산사업과 관련하여 애로가 없느냐는 식으로 접근을 하여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문 : 김영완을 다시 만난 장소는 어디인가요.
답 : 1999.말경 제 사무실로 불러서 제 사무실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문 : 김영완과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였는가요.
답 : 당시 현대에서는 금강산관광사업을 하면서 외국인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금강산에 카지노, 면세점 등의 설치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용에 대해서 상의를 하니 자신이 박지원 장관과 잘 알고 있는데 연락을 한번 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문 : 그 후에도 김영완과 만남을 계속하는가요.
답 : 예, 김영완과 저, 단둘이서도 2~3회에 걸쳐 저의 사무실, 하이야트호텔 로비 등에서 만나기도 하고, 김영완과 저, 박지원 장관을 포함한 3명도 약 2~3회 가량 만나게 되는데 그때는 프라자호텔 객실에서 만나곤 하였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 등과 만난 객실의 호수는 기억하고 있는가요.
답 : 그때 그때 객실을 잡았기 때문에 호수는 기억을 잘 못하겠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 김영완, 피의자가 만나는 장소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였는가요.
답 : 저의 입장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금강산에 카지노, 면세점 등의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박지원 장관에게 “금강산에 카지노, 면세점 등을 설치하여야 하는데 애로사항이 많다.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취지의 부탁을 하고, 박지원 장관은 ‘도와주고 싶은데 여론 등 상황이 좋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하면서 나름대로 협조하려는 의사를 내비치는 정도였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과의 만남은 어떻게 하여 이루어지게 되는가요.
답 : 저가 김영완에게 연락하여 박지원 장관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 항상 김영완이 박지원 장관을 모시고 나와 3인의 모임이 이루어졌습니다.
문 : 피의자는 김영완으로부터 ‘박지원 장관이 정상회담 준비비용이 필요하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하였는데 ‘정상회담 준비비용‘이라는 것이 어디에 사용하는 돈이라고 생각하였는가요.
답 : 그냥 정상회담 준비과정이나 정상회담 진행과정에 필요한 비용 정도로 생각하였습니다.
문 : 당시 현대건설(주)의 유동성 상황도 그렇게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답 : 현대건설(주)의 유동성 확보 상황이 그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 : 현대의 유동성 확보 상황도 그렇게 여유가 있는 형편이 아니었는데 박지원 장관으로부터의 150억원이나 되는 자금지원 요청을 선뜻 받아들일 만한 이유가 있었는가요.
답 : 저희들이 정상회담 준비과정에 처음부터 간여하였던 점 때문에 정상회담을 꼭 성사시키고 싶었고 당시 저희들이 대북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입장이어서 정상회담 성사가 되어 남북당국자 간의 교류가 활발하여지면 금강산관광사업, 개성공단 사업 등 저희들이 추진하고 있던 전반적인 대북사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인 점도 무시 못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문 : 그러면 박지원 장관에게 수차례에 걸쳐 금강산에 카지노, 면세점 등의 설치 필요성을 강조한 바가 있는데 박지원 장관에게 전달된 150억원은 금강산관광사업을 운영하면서 카지노와 면세점 등의 설치에 대한 업무협조를 부탁하는 의미에서 지급된 것이라고 보면 되는가요.
답 : 돈을 건네는 과정에서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으나 이미 수차례에 걸쳐 금강산에 카지노, 면세점을 설치하는 데 대한 협조를 요청한 바가 있어 위 150억원이 전달되면 간접적으로나마 위 내용에 대해서 협조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저희들이 추진하는 전반적인 대북사업이 원활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던 것입니다.
문 : 이익치의 진술에 의하면 2000. 4월 초순경 피의자으로부터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에게 150억원을 만들어 건네주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같은 달 중순경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김재수로부터 150억원의 CD를 건네 받아 이를 그대로 박지원 장관에게 건네준 사실이 있다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저가 박지원 장관에게 전달하라고 이익치에게 지시하였고 이익치도 박지원 장관에게 전달하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문 : 피의자가 돈을 지원해 달라는 부탁은 김영완으로부터 받았는데 이익치에게는 박지원 장관에게 돈을 전달하라고 지시를 하였는가요.
답 : 수차례에 걸쳐 박지원 장관, 김영완을 만나는 자리에서 박지원 장관과 김영완과의 돈독한 관계를 알았고, 김영완이 말하기를 ‘박지원 장관이 자금지원을 요청‘한다고 하여 이익치에게는 박지원 장관에게 돈을 전달하라고 지시를 한 것입니다. 또한 돈 전달 문제에서 중간에 전달자가 하나 떠 끼이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문 :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박지원 장관이 부탁한 150억원을 박지원 장관에게 잘 전달하였다‘는 내용의 보고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저가 2000. 4. 7. 해외에 출국하였다가 귀국한 다음날 정도로 기억이 되는데 이익치 회장이 저의 방으로 찾아와서 ‘박장관에게 150억원을 차질없이 잘 전달하였다‘라는 내용의 보고를 하였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에게 위 150억원을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하여 보지는 않았는가요.
답 : 돈을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결례가 될 것 같아 확인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돈을 잘 받았다는 인사 전화 등을 받은 사실은 없는가요.
답 :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돈을 잘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는 없습니다. 다만 2000. 4. 20. 전후하여 김영완을 하이야트호텔 로비에서 만났는데 그때 김영완이 ‘박장관이 돈을 잘 받아 고맙다고 하더라‘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카지노, 면세점 설치 등에 대해서는 적극 노력해보겠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바는 있습니다.
문 : 2000. 4월 초순경 피의자가 해외출국에 앞서 김재수에게 150억 조달지시를 하였고, 이익치에게는 동 자금의 전달지시를 한 후, 4. 5. 출국하였다가 같은 달 17. 귀국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사실인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해외출국 전 150억 전달지시를 하였던 이익치에게 김영완으로부터 요청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지요.
문 : 피의자가 해외 출국하기 전 또는 출국한 이후 김영완에게 이 자금을 이익치가 전달토록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아마 제가 해외출장을 떠날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김영완 사장에게는 제가 해외출장 때문에 이익치 회장에게 일처리를 시켜놨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문 : 해외출장을 가기 전인가요, 아니면 해외출장 중에 그 사실을 알려준 것인가요.
답 : 가기 전에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문 : 지금까지도 박지원 전 문광부 장관은 이익치로부터 이건 CD를 받은 사실이 없다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고, 계좌추적결과 이건 CD가 김영완을 통하여 유통이 되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바, 중간에서 전달 역할을 맡았던 이익치가 이건 CD를 박지원 장관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답 : 제가 귀국 후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박장관에게 전달했다는 보고를 받았으며, 2000. 4. 20. 전후하여 김영완을 하이야트호텔 로비에서 만났을 때 김영완으로부터 ‘박장관이 돈을 잘 받아 고맙다고 하더라‘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카지노, 면세점 설치 등에 대해서는 적극 노력해보겠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문 : 2002년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이 발단이 된 이후, 피의자와 김영완이 만나거나 이건 문제에 대하여 협의를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2000년경에 김영완을 만난 이후에 제가 김영완을 만나거나 연락을 취한 적이 없습니다.
문 :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나 더 할말이 있는가요.
답 : 본건은 1989년도 정주영 명예회장께서 방북을 하셔서 각종 금강산관광사업, 철도연결, 각종 경제사업을 합의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2000년도에 금강산관광사업을 시작하고, 공단개발, 사업 등을 북측과 협의하였습니다. 이러한 금강산관광개발사어이든 공단개발사업이든 이 모든 것은 정부간의 기본합의가 있어야 가능하였기 때문에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느껴 현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가 정부의 남북교류협력법이나 외환관리법 등 실정법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외부로 공개하지 못한 채 비밀리에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사항에 대하여는 이해를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송금된 금액에 대하여 분식회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항에 대하여도 아울러 이해를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북쪽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대북사업에 대한 논의를 해보니 그들도 남북경제협력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고, 그래서 현대는 북쪽에 기간산업인 철도, 전력, 통신사업 등 여러 가지 사회간접시설 투자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우고서 이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저희들이 각종 사업에 대한 합의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합의를 기본으로 대북사업을 더욱 열심히 이끌어갈 생각이며, 저의 지난 경험을 통하여 앞으로 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번 건으로 정부 관련 분들과 산업은행 관련 분들에게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하여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문 : 이상 진술이 모두 사실인가요.
답 : 예, 모두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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