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진술조서 - 2003년 7월29일

『CD가 든 봉투를 건네주자 박장관이 그 봉투를 받으며 오른손을 앞으로 내미는 동시에 왼손이 뒤따라 나오는 자세가 되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대검 중수부 진술조서

성명 : 이익치(李益治)
주민등록번호 : 440210-0000000
직업 : 전 현대증권 회장
주거 : 서울 광진구 광장동

진술인(피내사자, 피진정인) 정몽헌 등 에 대한 피의(피내사)사건에 관하여 2003. 7. 29.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제1과에서 임의로 아래와 같이 진술한다.

1. 저는 주거지에서 처 (55세 주부), 아들(33세 회사원), 아들 (31세, 회사원), 아들 (30세, 회사원) 등 5인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1. 저는 현대증권 회장으로 근무하던 2000. 4. 당시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대북사업과 관련하여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건네주는 150억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를 정몽헌 회장의 지시에 따라 박지원 전 장관에게 전달한 사실이 있는데 이에 관해 사실대로 진술하겠습니다.

이때 검사는 진술의 취지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임의로 문답하다.


문 : 진술인은 범죄전력이 있는가요

답 : 예, 99. 9. 8.∼11. 3.까지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되어 서울지방법원에 증권거래법위반으로 징역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상고심 계류중에 있고, 2003. 4경 제 아들의 병역비리 사건과 관련하여 뇌물공여로 벌금 1,500만원은 선고받았던 사실이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의 재산관계와 월수입 등 생활정도는 어떤가요

답 : 부동산은 현재 거주하는 아파트 70여평 시가 10억원 상당이 있고, 광진구 광장동 소재 단독주택 1세대 시가 10억 상당이 있으며, 동산은 은행예금 5억원 정도가 있고, 월수입은 현재는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의 학력, 병력, 경력, 및 종교관계 등은 어떤가요.

답 : 학력은 63. 2경 경기고등학교, 69. 8경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각 졸업하였고, 병력은 육군하사로 만기전역하였고, 경력은 69. 10경 현대건설에 사원으로 입사하여 72.9.경까지 정주영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하였고, 그 후 국내현장에서 근무하다가 74년∼78년 사이 이란, 쿠에이트 등 중동현장에서 관리 부장으로 근무하였으며, 79년부터 87년까지 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에서 이사, 87년에 현대중공업에서 전무이사, 90년부터 95년까지 현대해상화재 전무이사, 부사장으로 근무하다가 96. 1경 현대증권 부사장으로 임명되었고, 97. 1경 현대증권 사장, 98. 5경 현대증권 회장으로 임명되었다가 2000. 9. 3. 퇴사를 하였고, 종교는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은 술과 담배를 하나요

답 :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문 : 진술인의 건강상태는 어떤가요

답 : 건강은 양호한 편이지만 혈압이 높은 편입니다.


문 : 진술인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가입한 사실이 있나요

답 :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은 국가로부터 상훈이나 연금을 받은 사실이 있나요

답 :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은 현대그룹에서 추진하는 대북경협사업에 관여를 하였던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제가 직접 관여를 하였던 것은 아니고, 고 정주영 회장님이 고향인 북한과 경제협력사업을 하시겠다고 하여 89. 1.경 정주영 명예회장님이 북한을 방문하였는데 그때 당시 현대건설 전무이사 김윤규, 현대건설 부사장 박재면, 명예회장 비서실장 이병규가 수행하여 앞으로 경제협력을 하기로 하는 의정서를 작성하였으나(저는 당시 동행하지 않았음), 그 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여 10여년간 중단되었다가 97. 12.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정부에서 대북 햇볕정책을 추진한다고 하여 그때부터 다시 대북경협사업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명예회장이 정몽헌 회장과 전에게 전부터 알고있던 일본인 고바야시(전 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에게 편지를 보내서 북측과 다시 접촉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가 있어서 제가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그 후, 98. 2경 북경에서 위 고바야시의 도움으로 저와 김윤규 현대건설 부사장, 김고중 현대종합상사 북경지사장 등 북측의 아태위원회 소속 황철 참사, 조선 경제인연합회장 등과 처음 만나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을 전하고, 경협사업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남측은 위 김윤규와 김고중으로 창구를 단일화하여 추진하기로 하였으며, 약 2주후에 다시 북경에서 제가 정몽헌 회장을 수행하고, 김윤규 사장, 김고중 전무와 북측의 아태위원회 부위원장 송호경, 황철 참사 등이 정식으로 만나서 현대의 금강산관광개발에 관한 회담을 시작하였으며, 그 후 제가 명예회장님을 수행하여 북한을 방문하는 등으로 대북경협사업을 추진하였는데 저는 위 고바야시에게 편지를 보낸 인연으로 북측 인사를 만날 때 동행하였고, 그 후에는 정몽헌 회장이 명예회장의 지시를 받아 추진하면서 북측과 접촉을 할 때 저와 같이 동행하자고 하기에 그에 따라 대북경협사업에 개입하게 된 것입니다.


문 : 그후에 현대의 대북경협사업 진행사항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98. 6. 16.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과하여 평양을 방북할 때 정몽헌 회장과 제가 수행하였으며, 그때 유람선에 의한 금강산관광 합약서를 체결하고, 기타 경제협력에 관한 협의서를 작성하고, 같은 해 10.경 명예회장님이 두 번째로 소 500마리를 몰고 평양을 방문할 때도 정몽헌 회장과 제가 수행하였는데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그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금강산관광사업을 현대가 독점개발하기로 하는 약속을 하였으며, 같은 해 11. 18. 금강산 관광 유람선이 첫 출항을 하였고, 99. 2.경 대북경협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현대그룹의 계열사로부터 도합 4,500억여원의 출자를 받아 (주)현대아산을 설립하면서 현대건설 사장인 김윤규를 사장으로, 정몽헌 회장을 (주)현대아산 회장으로 선임하였고, 같은 해 9.경 명예회장이 다시 방북하여 김정일 위원장을 두 번째 면담하였으며, 그 후 남북체육행사를 개최하는 등으로 대북경협사업을 추진하다가 2000. 6경 명예회장이 다시 방북하여 세 번째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하는데 제가 정몽헌 회장과 함께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 후 명예회장님의 건강이 나빠져서 대북경협사업을 정몽헌 회장이 물려받아 김윤규 사장과 함께 추진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준비과정에도 관여를 하였던 사실이 있나요.

답 : 제가 관여를 하였던 것은 아니고, 현대가 대북경협사업을 재개하여 추진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여 10여년간 중단되었던 사실이 있는데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햇볕정책을 추진하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면 정부의 정책에도 도움이 되고, 앞으로 현대가 추진하는 대북경협사업에도 정부의 지원을 원활하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200. 1경 정몽헌 회장이 일본인 요시다를 통하여 북측에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였더니 북측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는 연락을 받고, 정몽헌 회장이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박지원을 통하여 대통령에게 그 뜻을 전달하여 승낙을 받았는데, 정부측의 협상창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현대에서는 북한에 관광사업을 추진하는데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였고, 박지원이 장관으로 있던 문화관광부 소관업무가 많아서 앞으로 도움을 기대하고 박장관에게 정부측의 협상창구를 박장관으로 하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여 박장관이 대통령의 승낙으로 대북특사로 임명되는 등 정상회담 준비를 총괄하게 되었던 것이고, 준비과정에 박장관이 정몽헌 회장과 같이 북측 인사와 접촉할 때 제가 정몽헌 회장을 수행하였던 일은 있습니다만 제가 정상회담 준비 등에 관여를 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문 : 진술인이 정몽헌을 수행하여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준비한 일시, 장소 및 과정 등은 어떠한가요.

답 : 2000. 3. 8. 제가 정몽헌 회장을 수행하고 싱가폴에 갔는데, 남측에서는 박장관과 국정원의 김보현 국장, 북측에서는 위 송호경 부위원장과 한명이 더 나와서 정몽헌 회장이 인사를 시키고, 앞으로 다시 만나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하여 협의하기로 하였고, 같은 해 3. 16.∼3. 23. 상해와 북경에서 제가 정몽헌 회장을 수행하고 갔을 때 남측에서는 박장관, 김보현 국장, 북측에서는 송호경 부위원장이 다시 만나서 정상회담개최협의를 하였는데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고, 같은 해 3. 29. 북경에서 다시 만났다가 같은 해 4. 8. 북경에서 만나 결국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는 협약을 체결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고, 저는 매번 정몽헌 회장을 수행하였는데 회담장에는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은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박지원에게 150억원 상당의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를 갖다 주었던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예,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문 : 그 일시, 장소는 어떠한가요.

답 : 2000. 4. 중순 일자불상 21:30경 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프라자호텔 맨 윗층에 있는 토파즈라는 식당에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150억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가 들어있는 봉투를 갖다주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은 위 금품전달 사건과 관련하여 특검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처음에는 위와같이 금품을 전달한 시간이 22:30경이라고 진술한 바 있는데, 그 후 21:30분이라고 정정하여 진술을 하게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당시 처음에는 늦은 시간이라는 기억만 있어서 대충 그 시간으로 진술하였으나, 제가 저희 집 부근에서 김재수 부사장으로부터 그 봉투를 전달받은 시간이 20:00였던 것을 그 후 알게 되어 다시 계산을 해 보니까 21:30경이 맞는 것으로 생각되어 진술을 정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 : 진술인이 위 양도성예금증서를 박지원에게 갖다 주게된 경위는 어떤가요.

답 : 정몽헌 회장의 지시로 갖다 주었는데, 정회장은 당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하여 싱가폴, 북경 등에서 박장관과 같이 북한측 인사를 만나는 과정이었는데, 2000. 4. 5. 정주영 명예회장을 모시고 저와 같이 일본으로 출국하기 직전에 정몽헌 회장실에서 저에게 현대건설 부사장 겸 관리본부장으로 현대건설의 자금을 담당하던 김재수에게 150억원을 마련하라고 지시해 두었으니 준비되면 박장관에게 갖다 주라는 지시를 하기에 저는 그 지시에 따랐던 것입니다.


문 : 진술인이 정몽헌으로부터 위 지시를 받은 일시, 장소 및 지시 내용은 어떠한가요.

답 : 2000. 4. 초순 08:00경 서울 종로구 계동 소재 현대그룹 사옥 12층 정몽헌 회장실에서 정회장이 저를 불러 갔더니 저에게 박장관이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필요하니 도와달라는데 도와 주어야겠다 고 하면서 내가 김재수에게 150억원을 준비하라고 했으니 준비되면 박장관에게 연락하여 갖다주라 고 하여 저는 현금으로 150억원이면 부피와 무게가 커서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부피가 클텐데요 라고 하였더니 무기명 같은 것으로 해서 그렇게 크지는 않을거야 라고 하였고, 박장관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작은 메모지를 주면서 준비되면 그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문 : 정몽헌이 진술인에게 위와 같은 지시를 할 때 위 150억원을 무기명 같은 것 이라고 하면서 구체적인 금품의 형태까지 말하더라는 말인가요.

답 : 예, 그렇습니다, 저는 150억원을 현금으로 갖다 주려면 부피와 무게가 커서 불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부피가 클텐데요? 라고 하였더니 정회장이 무기명 같은 것으로 준비하라고 김재수에게 미리 지시해 두었다는 취지로 말하여 저는 무기명 채권 같은 것으로 준비시켰나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문 : 정몽헌이 진술인에게 위와 같은 지시를 할 때 150억원이라는 돈의 규모만 말하고 돈의 형태 등 구체적인 것은 김재수와 상의를 하라고 한 것은 아닌가요.

답 : 아닙니다. 정회장이 김재수에게 미리 지시를 해 두었으니 준비되면 박장관에게 연락해서 갖다 주라고 하였는데 저는 150억원을 현금으로 갖다주면 불편하다는 생각에 부피가 클텐데요 라고 하였더니 정회장이 무기명 같은 것으로 준비하라고 하였으니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말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재수가 준비되면 저에게 갖다 줄거라고 하여 저는 정회장이 김재수에게도 구체적인 지시를 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문 : 현대건설 부사장 겸 관리본부장으로 근무하던 김재수의 진술에 의하면 2000. 4. 4.경 아침에 정몽헌 회장이 불러서 정회장 사무실로 갔더니 정회장으로부터 현대건설의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150개(150억원을 말함)를 만들어 이익치 회장에게 갖다주고, 자세한 것은 이익치 회장과 상의를 하라 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정회장이 김재수에게 지시하면서 150개 를 준비하라고 하였다는 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박장관이 150억원을 현금이 아닌 1억원권 채권 같은 것 150장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여 정몽헌 회장도 현금이 아닌 부피가 적은 1억원짜리 채권 같은 것으로 150개를 주기로 미리 약속을 하였기 때문에 김재수에게도 150억원 이 아닌 150개 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이 박지원에게 150억원을 주려면 자금세탁한 자기앞수표나 무기명채권 등으로 주어도 될 것을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로 준비하여 주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제가 CD로 준비하여 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회장은 돈을 받을 사람이 해 달라는대로 주는 성격으로 알고 있는데 CD로 준비해 준 것을 보면 박장관 측에서 미리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로 달라고 요구하여 그대로 해 주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 : 김재수의 진술은 당시 현대건설의 자금사정이 어려운데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150억원을 비자금으로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고 김재수와 같은 6층에 근무하고 있던 김윤규 사장에게 가서 정회장이 150억원을 준비하라고 하여 큰일났다 는 등의 보고를 하였는데, 김윤규도 대북사업과 관련된 돈인 것 같으니 준비해 주라 로 하기에 다시 진술인의 사무실로 가서 진술인에게 현대건설의 자금사정이 어려운데 정몽헌 회장이 150억원을 준비하라고 한다 는 보고를 하자 진술인은 방법을 생각해 보라 고 하면서, 무기명으로된 양도성예금증서로 준비해 달라 는 지시를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김재수가 김윤규 사장에게 보고하고 저의 사무실로 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 와서는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고 하고, 준비되면 다시 보고하겠다는 말만하고 나갔던 것이고, 제가 김재수에게 양도성예금증서로 준비하라는 등의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위와 같은 지시를 받았던 것을 보면 김재수도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150억원을 무기명으로된 양도성예금증서로 준비하여 저에게 갖다 주라는 지시를 받았을 겁니다. 제가 김재수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문 : 진술인 정몽헌이 무엇 때문에 박지원에게 위 150억원 상당을 갖다 주라고 하는지 그 이유는 알고 있었나요.

답 : 정회장은 저에게 박장관이 남북정상회담 개최 준비에 필요하다면서 도와달라고 하여 준다고 하여 그렇게 알았습니다.


문 : 진술인은 당시 현대가 대북사업과 관련하여 정부의 도움을 받을 것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 도움을 받기 위하여 박지원에게 돈을 준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요.

답 : 그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문 : 그러면 당시 현대에서 정부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것은 있었나요.

답 : 98년 11월18일 금강산 유람선 관광이 처음 시작되었는데, 현대에서는 처음 위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사업성을 계산하면서 유람선의 카지노와 면세점 등을 설치하여야만 수지타산이 맞을 것으로 계산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카지노와 면세점에 대한 허가가 나지 않은 상태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매일 3억원의 적자가 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현대에서는 카지노와 면세점 허가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였습니다. 이러한 허가는 당시 정부의 실세이고 문화관광부장관이던 박지원 장관의 도움이 절실하였던 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은 정부측에서 북한측과 협상을 하여 추진하는 것이지 현대건설에서 그 비용을 부담할 성격은 아닌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현대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어야 앞으로 현대가 추진하는 대북경협사업에 정부의 지원을 원활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또 그 당시에도 현대에서는 금강산관광사업을 추진하면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어서 정몽헌 회장은 박지원 장관을 정상회담개최 준비 등과 관련하여 만나면서 면세점과 카지노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해 오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문제뿐만 아니라 현대그룹이 대북경협사업을 하면서 많은 손해를 보아 재정난에 처해 있어서 앞으로 박지원 장관의 도움으로 정부의 협조를 받기 위하여 돈을 주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문 : 면세점과 카지노는 어디에 설치를 하려고 하였나요.

답 : 현대에서 금강산을 왕래하는 유람선을 구입할 때에 선박내에 카지노와 면세점을 설치할 수 있는 시설이 준비된 배를 마련하였고, 카지노 등 도박을 즐기는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을 유치하기 위하여 카지노시설이 된 배를 마련하였는데, 정부에서 허가를 해 주지 않아서 정몽헌 회장은 그 허가를 받으려고 박지원 장관에게 여러번 부탁을 하고 있다는 말을 정회장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문 :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박지원이 카지노와 면세점 허가를 해 줄 수는 있었는가요.

답 : 카지노허가는 박지원이 장관으로 있던 문화관광부 소관업무로 알고 있고, 또한 박장관은 국민의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고 있어서 정부 각 부처의 업무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돈을 주라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문 : 그렇다면 정몽헌은 공무원인 박지원에게 금품을 주라고 하는 것이고, 진술인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도 박지원에게 위 양도성예금증서를 갖다 주었다는 말인가요.

답 : 예, 결국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문 : 진술인이 정몽헌으로부터 위와 같이 박지원에게 회사에서 마련한 금품을 전달해 주라는 지시를 받은 후에는 어떻게 하였나요.

답 : 저는 정몽헌 회장이 현대건설의 자금을 담당하던 김재수 부사장에게 150억원을 무기명 같은 것으로 준비하라는 지시를 해 두었다 는 말을 듣고 15층에 있던 저의 사무실로 와 있었는데 조금 후에 김재수 부사장이 저의 사무실로 찾아와서 위와 같은 보고를 하고 간 후 제가 근무하는 여의도의 현대증권회장실로 갔고, 4. 5부터 4. 7 사이에 명예회장님과 정몽헌 회장을 수행하여 해외 출장을 갔다온 후에 김재수로부터 150억원을 1억원권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로 준비해 두었다는 보고를 받고, 박지원 장관에게 연락하여 만날 약속을 한 후, 김재수로부터 CD가 든 봉투를 받아 박장관에게 갖다 주었던 것입니다.


문 : 진술인이 위 김재수로부터 위 예금증서를 받은 일시, 장소 및 경위는 어떠한가요.

답 : 제가 2000. 4. 8. 정몽헌 회장을 수행하여 북경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준비와 관련하여 출국하였다가 4. 9. 혼자 귀국하였는데, 그 며칠 후 4. 중순경 언제인지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침에 계동의 현대그룹 사옥 15층 저의 사무실에 출근하였더니 김재수 부사장이 저의 사무실로 찾아와 전에 정회장님이 지시한 것이 준비되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라고 하여 저는 박장관에게 연락하여 약속이 되면 김재수로부터 건네 받으려는 생각에서 김재수에게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답변을 해 놓고는 여의도 현대증권에 있는 저의 사무실로 간 다음 그날 오후 2∼3시경에 정회장이 그 전에 저에게 주었던 박장관의 연락처로 전화를 하여 박장관과 통화하면서 그날 저녁 9시30분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나서 다시 김재수에게 전화하여 그날 저녁 8시까지 광장동에 있는 저의 집 앞 산책로에서 만나 CD를 전해 달라고 하여, 그날 저녁 8시경 광장동 소재 저의 집 앞 산책로에서 김재수를 만났는데 김재수가 스카치테이프로 밀봉한 누런색 봉투를 주어서 알았다고 하고 받았고, 김재수는 가겠습니다 하고 갔고, 저는 집으로 돌아와서 박장관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이 김재수로부터 받은 양도성예금증서는 어떠한 형태로 되어 있던가요.

답 : 저는 CD를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누런색 봉투에 150매를 넣었는지 봉투가 조금 커서 그 봉투를 접고 입구를 스카치테이프로 밀봉을 한 상태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문 : 진술인은 그 상태대로 박지원에게 갖다 주었는가요.

답 : 저는 김재수로부터 CD가 든 봉투를 받아서 집으로 돌아와서 옷을 갈아 입었는데, 왠지 그 봉투를 그대로 가져가기가 꺼림칙하여 다시 집에 있던 서류봉투에 그 CD봉투를 넣어서 가져갔습니다.


문 : 진술인이 박지원과 만나기로 약속한 경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있나요.

답 : 예, 제가 2000. 4. 중순 바로 그 날 09:00경 계동 현대그룹 15층의 제 사무실 출근하여 김재수로부터 150억원을 무기명 CD로 준비해 두었다 는 보고를 받고 김재수에게 다신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여의도의 현대증권 저의 사무실로 가서 정회장이 준 박지원 장관의연락번호로 전화하여 정 회장님이 해외에 나가 계신데 저한테 장관님께 전해 드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라고 하였더니 박장관이 알겠습니다 라고 하고, 저에게 만날 시간을 물어봐서 제가 저녁 9시 반 이후에는 괜찮습니다 라고 하였더니 그러면 조금 후에 일정을 보고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하여서 제가 그 당시 가지고 있던 핸드폰 중에서 한 개의 번호를 알려주었는데, 조금 있으니까 박장관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프라자호텔 맨 꼭대기 층에 있는 무슨 빠를 아십니까 라고 물어서 제가 프라자호텔은 몇 번 가 봤지만 맨 윗층의 빠에는 가본 기억이 없어서 모르지만 찾아갈 수는 있습니다 라고 하자 박장관이 그러면 저녁 9시 반에 프라자호텔 맨 꼭대기층 스카이라운지에 무슨 빠가 있고, 그 빠의 한쪽 구석에 조그마한 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봅시다 라고 하면서 구석에 있는 방은 그 빠의 입구 오른쪽으로 한번 꺾어서 오다가 한번 더 오른쪽으로 꺽어서 계속 들어오면 한쪽 구석에 한 분이 있고 그 뒤에 조그마한 방이 있다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어서 제가 알겠습니다라고 하고, 김재수 부사장에게 전화하여 저녁 8시까지 광장동에 있는 산책로로 준비해 둔 CD를 가지고 오라고 하고, 오후에 일찍 퇴근해서 집에 있다가 저녁에 집 앞 산책로에서 김재수를 만나 동인으로부터 CD가 든 봉투를 받았던 것입니다.


문 : 일반적으로 장관이라는 고위직과 시간약속을 하려면 상대방의 일정에 맞춰 시간을 정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보이는데, 진술인의 경우는 그 날 저녁에 일찍 퇴근한 것으로 보아 특별한 다른 약속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술인이 저녁 9시반이라는 일반적인 약속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먼저 지정하여 약속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저녁식사 시간으로 약속을 정하면 아무래도 술을 한잔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또 함께 있는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기에 저는 껄끄러운 시간을 오래 갖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 시간을 약속시간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답변했던 것입니다.


문 : 진술인이 박지원에게 전화한 전화번호는 동인의 사무실 전화번호던가요.

답 : 아닙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011로 시작하는 핸드폰 번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전화번호를 기재해 둔 메모지를 그후에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그 번호를 기억할 수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이 박지원에게 알려준 전화번호는 몇 번이었나요.

답 : 저는 그 당시에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지급하는 핸드폰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한달 씩 사용하고 버리는 무적 핸드폰을 두 개를 구해 가지고 다녔는데 그 중에서 한 개를 가르쳐 주어서 지금 그 번호는 기억할 수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이 김재수를 만날 때 복장은 어떠하였나요.

답 : 츄리닝 복장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위에는 츄리닝 잠바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문 : 김재수로부터 받은 봉투는 어떻게 소지하였나요

답 : 츄리닝 상의 안에 있는 안주머니가 있는데, 그 속에 넣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문 : 진술인은 평소 몇시에 귀가하는데 그날은 집에 귀가하였다가 집 부근에서 김재수를 만났나요.

답 : 저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할 일이 없으면 평소에는 저녁 7∼8시경에는 집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날은 제가 집에 무슨 일이 있어서(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음) 조금 오후 5시경 조금 일찍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문 : 진술인이 위 150억원의 예금증서를 박지원에게 갖다준 일시 장소 및 경위를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가요.

답 : 2000. 4. 중순 김재수로부터 그 봉투를 받은 즉시 집으로 돌아가 신사복으로 갈아입고 제 차를 손수 운전하여 프라자호텔로 가 21:30경 프라자호텔 맨 윗층 빠의 구석방에서 박장관을 만나 150억원 상당의 무기명 CD가 든 봉투를 건네주었는데, 저녁 9시반에 프라자호텔 맨 윗층의 빠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집에서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제가 직접 에쿠스를 운전하여 프라자호텔 뒤쪽 별관 신축공사장 앞 도로변 주차장에 도착한 것이 약속시간보다 15분정도 남았던 시간입니다. 그래서 약10분가량 차에 앉아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다가 약속시간 5분정도를 남기고 차에서 내려 호텔 뒷문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박장관이 가르쳐준 대로 맨 꼭대기 층에서 내렸더니 바로 빠가 보이기에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조금 가다가 한번 더 오른쪽으로 꺽어서 계속 들어갔더니 구석에 조그마한 방이 한 개 있고, 입구에 대형 화분이 있어서 저는 박장관이 꽤 자세히도 가르쳐 주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화분 뒤에 방이 있나 하고 살펴보았더니 역시 박장관이 말한대로 방 입구가 유리로 반쯤 가려져 있는 방이 있었고, 그 내부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입구 쪽으로 가까이 가면서 보았더니 박장관이 저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박장관에게 안녕하십니까 라고 인사를 하니까 박장관이 저를 알아보고는 앉으라는 뜻으로 손짓을 하기에 저는 아닙니다 라고 하고, 저는 바로 가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정회장님이 전달해 드리라고 하여 심부름을 왔습니다 라고 하면서 가져간 CD가 든 봉투를 건네주자 박장관이 그 봉투를 받으려고 오른손을 앞으로 내미는 동시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서면서 앞서 나온 오른손에 뒤이어 왼손이 뒤따라 나오는 자세가 되어 두손으로 제가 건네주는 봉투를 받아서 박장관의 오른쪽 쇼파 팔걸이 쪽에 놓으면서 앉기에 저는 그냥 가겠습니다 라고 인사하고 바로 나왔고 제가 박장관을 만나서 CD를 전해주고 나온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짧은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문 : 진술인이 박지원을 만났다는 빠의 상호는 토파즈 라는 곳인데 박지원이 진술인에게 장소를 알려줄 때는 토파즈라는 상호를 알려주지는 않던가요.

답 : 박장관이 저에게 장소를 알려줄 때는 상호를 말해 주어 당시에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둘러보니 박장관이 말한 바로 그 상호의 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제가 처음 가 본 곳이었고, 그 후에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상호를 잊었던 것입니다.


문 : 진술인이 위 토파즈에 도착하였을 때 종업원이 진술인을 본적이 있는가요.

답 : 제가 토파즈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는 계산대가 있었는데도 그곳에 마침 종업원은 아무도 없었고, 종업원들은 안쪽에서 손님들의 시중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만 제가 들어가는 것을 본 종업원은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문 : 진술인이 박지원에게 위 CD를 전달하고 나올 때는 진술인을 본 종업원이 있었나요.

답 : 제가 나올 때는 입구에 종업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남자인지 여자종업원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종업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은 됩니다.


문 : 진술인은 박지원에게 위 증서를 갖다주고 정몽헌에게 보고는 하였나요.

답 : 예, 정몽헌 회장은 4. 8. 북경에서 박지원 장관과 같이 북한측 인사들을 만나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협상을 하였는데, 저는 그 다음날 4. 9. 혼자서 귀국하여 그 며칠 후 위와 같이 박장관에게 CD를 전달하고나서, 정몽헌 회장은 4. 17. 해외출장에서 귀국한 직후 다음날 07:00경 계동 사옥으로 출근하였기에 제가 정몽헌 회장실로 찾아가 인사하고, 회장님이 지시하신 대로 박장관님께 전달하였습니다 라고 보고하였더니 알았다 고 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은 그후, 정몽헌으로부터 박지원이 위 CD를 받았는지를 확인하였던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예, 제가 정몽헌 회장에게 위와같이 보고한 며칠 후, 07:00경 계동 사옥으로 출근해 있었는데 정몽헌 회장이 저에게 사무실로 내려 오라는 연락을 하여 내려갔더니 정회장이 저에게 박장관한테 잘 받았다는 연락이 왔는데, 수고했어요 라고 하여 저는 박장관이 정회장에게 잘 받았다는 인사를 했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은 김영완을 알고 있지요.

답 : 예, 김영완은 무기중개상으로 일하던 사람으로, 80년대 알게 되었는데 그 무렵 정몽헌 회장과도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가 그 후에는 한참 연락이 없었는데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고 현대에서 금강산관광사업을 할 때 정몽헌 회장에게 연락하여 다시 만나면서 저도 다시 만나게 되었고, 김영완은 박지원 장관과도 옛날부터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이 정몽헌으로부터 박지원에게 위 150억원을 전해 주라는 지시를 받을 때 김영완이 관여가 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위 150억원에 대하여 김영완이 관여 되었다는 말은 제가 전혀 들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특검에서 조사받으면서 김영완이 관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 : 진술인은 위 양도성예금증서를 박지원에게 전해 준 것이 아니고 김영완에게 전해 주었던 것은 아닌가요.

답 : 그것은 전혀 아닙니다. 정몽헌 회장이 저에게 분명히 박장관에게 전해 주라면서 박장관의 전화번호를 주기에 박장관에게 연락하여 박장관에게 직접 건네주었던 것이고, 김영완이 150억원에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은 이번에 특검에서 처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 : 정몽헌이 박지원에게 위 150억원 상당의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를 진술인을 통하여 교부하고 도움을 받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요.

답 : 제가 구체적인 혜택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2000. 6경 현대상선에 산업은행이 4,000억원의 대출을 해 주었던 사실이 있고, 관광공사에서 금강산관광객에게 정부에서 관광자금으로 자금지원을 해 주는 등 많은 혜택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2000. 9경 퇴사하여 그 후에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문 : 그 후 정부에서 현대에 특혜지원을 한 것은
① 2000. 6경 산업은행에서 현대상선에 2회에 걸쳐 1,000억원과 4,000억원 등 도합 5,000억원의 대출을 해 주었고
② 문화관광부 산하의 관광공사에서 현대아산이 금강산관광 대가로 북한에 지급하여야 하는 자금지원을 해 주었고,
③ 2000. 말경 현대상선의 자금악화로 발행한 회사채를 금융기관에서 인수하지 않자 산업은행에서 회사채를 신속하게 인수해 주었으며,
④ 2000. 6. 경 현대건설이 대북송금 1억 5천만불로 인해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산업은행에서 사모사채로 1,500억원을 인수해 주었고,
⑤ 2000. 10경 현대건설의 1차 부도이후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하게 하여 부도를 막아주었으며,
⑥ 하이닉스의 자금사정 악화로 부도 위기에 처하자 채권단으로 하여금 출자전환으로 자금지원을 하게 하여 부도를 면하게 하였고,
⑦ 2002년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금 4,000억원이 불법대출로 문제가 불거지자 현대상선이 보유하고 있던 자동차운반선을 매각하여 대출금을 상환하기로 하였고, 운반선을 매각하려면 현대자동차의 운송보증이 있어야 가능한데, 정부에서 현대자동차로 하여금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매각이후에도 매각한 운반선을 이용할 수 있게 약정하도록 하여 매각대금 1조5,000억원 가량을 현대상선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유동성 확보에 도움을 주어 현대상선의 부도를 면하게 해주었던 것 등은 박지원의 영향으로 특혜를 입은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예, 제가 자세히 모르고 있었는데 그러한 것이 현대로서는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문 : 진술인은 위 150억원이 현대건설의 자금을 불법인출하여 조성한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요.

답 : 예, 김재수가 현대건설의 자금을 관리하고 있었고, 그 김재수가 자금을 조성한 것은 현대건설의 자금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은 정몽헌이 김재수를 통하여 현대건설의 자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여 불법인출하는데 있어서 김재수로부터 현대건설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150억원의 비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정을 들어서 알게 되었음에도 김재수에게 정몽헌의 지시를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며 지시하는 등으로 현대건설의 비자금 조성 및 유출에 일조를 가한것으로도 판단되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김재수가 그 자금을 회사 돈으로 조성하는지는 짐작하였지만 정몽헌 회장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그 지시를 거부할 수는 없는 입장에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 : 진술인은 본건에 대하여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요

답 : 저는 월급쟁이로서 오너가 시키는 대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이번 사건도 그러한 맥락에서 그저 오너가 시키는 대로 심부름을 했을 뿐입니다. 제 잘못에 대해 선처해 주신다면 앞으로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위 조서를 진술자에게 열람하게 하였던 바 진술대로 오기나 증감 변경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므로 간인한 후 서명·무인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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