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비 딕' 해설

'白鯨'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과 판단력을 過信(과신)하여 삶으로부터 離反(이반)될 때에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다
'白鯨(Moby-Dick)' 해설
(회원토론방)


白鯨(Moby-Dick)

白鯨(백경)은 미국 뉴잉글란드 연안에 있는 Nantucket(난터키트)섬에서 전해지는 거대한 흰고래 Mocha Dick(모카 딕)에 관한 전설과 Herman Melvile(허만 멜빌)자신의 포경선 선원 경험을 소재로 한 낭만적 해양소설이면서도 存在(존재)의 의미를 심오하게 파고드는 철학적 장편 서사시이다. 白鯨은 捕鯨船(포경선) Pequod(피쿼드)호의 선장 Ahab(아합)이 자신의 한 쪽 다리를 잘라간 거대한 흰 고래 모비 딕을 추적하다가 자신은 물론 Ishmael(이스마엘)을 제외한 모든 선원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간단한 줄거리이지만 존재의 조건에 대해서 다양한 省察(성찰)을 보여준다.

우주는 善(선)이 지배하는지 惡(악)이 지배하는지 아니면 선과 악이 공존하는지, 존재의 궁극적 의미는 허무인지 아니면 너무 깊고 오묘하여 인간으로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인지, 神은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왜 고래 같은 위대한 창조물을 죽이는지, 善의 추구가 惡을 동반하는 모순현상은 왜 존재하는지 등 白鯨은 존재론적 模糊性(모호성)으로 가득하다.

白鯨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과 판단력을 過信(과신)하여 삶으로부터 離反(이반)될 때에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자신의 사상이나 이념 또는 자신의 신념을 지나치게 과신하게 되면 현실과 遊離(유리)되어 오판과 愚行(우행)의 덫에 걸리기 쉽다. 병적일 만큼 강한 자존심이 아합 船長(선장)을 자살적인 항해로 몰아간다. 그는 피쿼드호의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 독재자로 군림하며 자신을 선악을 초월한 존재로 간주하고 罪(죄)의 존재 자체를 거부한다.

'나에게 不敬(불경)의 죄를 말하지 마라. 태양이 나를 모독하면 태양을 치겠다. 내 위에 누가 있나?.........나는 운명의 여신의 副官(부관)이다.'

아합은 ' 神과 같은 사람'이지만 자만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아합은 자신의 직관과 도덕성을 절대시함으로서 절대자인 神의 영역을 침범하여 神에 대한 不敬의 죄를 범할 뿐 아니라 편집광적인 독선 때문에 타인의 운명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죄도 짓게 된다.

아합의 자만에 대한 대안은 인간적 고리의 형성과 연대의 강화이다. 타인과의 튼튼한 연결을 통해서 인간은 인생의 위험한 바다에서 보다 안전한 항해를 보장받게 된다. 人間連帶(인간연대:human solidality)는 고정된 사회질서가 아니고 다소 불안정하며 우연이나 공동의 목표 때문에 일시적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이 인간적인 운명을 개인적으로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연대는 연대가 위기에 달 할 때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스마엘과 퀴크그(Queequeg)등 피쿼드호의 선원들은 하나의 공동운명체로서 大洋을 누비는 동안 연대의식이 강화된다.

弱肉强食(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자연에서 한명의 孤兒(고아)로 살아가도록 운명지어진 인간에게 연대는 가장 효율적인 생존 방식이 된다. 이스마엘과 퀴크그를 연결하고 있는 멍키로프[monkey-rope: 바다에 떠 있는 죽은 고래 등에 올라가서 고래의 脂肪層(지방층)을 베어내는 작업을 하는 작살수의 안전을 위해 그의 허리에 메어 놓은 안전로프]는 인간연대에 대한 훌륭한 이미지가 된다:

'..........나(이스마엘)는 우리 배의 가파른 舷側(현측))에서 아래 쪽 바다에 있는 퀴크그를 멍키로프로 붙들고 있었다. 이렇게 붙들고 있는 것은 우리 둘에게는 우스꽝스럽도록 위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멍키로프의 양쪽 끝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멍키로프의 양쪽 끝은 각각 퀴크그의 널따란 돛베 벨트와 나의 좁다란 가죽 벨트에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그래서 좋건 나쁘건 우리 둘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만약에 퀴크그가 바닷물속에 가라앉게 되면 관례와 명예 때문에 밧줄을 끊지 못하고 나도 그의 뒤를 따라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샴 쌍둥이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퀴크그는 나와 분리될 수 없는 쌍둥이 형제였다..............나의 이런 상황은 살아 숨쉬는 모든 사람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사람은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사람과 이런 샴 쌍둥이같은 연관을 맺고 살아간다.......당신과 거래하는 은행이 파산하면 당신도 피해를 입는다. 만약 藥師(약사)가 실수로 약에다 독약을 넣게 되면 당신은 죽는다. 우리는 매우 조심하면 삶에 끼어 드는 惡運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내가 멍키로프를 아무리 조심스럽게 다루어도 때때로 퀴크그가 로프를 홱 잡아 당기는 바람에 내가 배 밖으로 떨어질 뻔하였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로프의 한 쪽 끝만 나의 조종하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합같이 위대하지만 독선적이고 편집광적인 지도자와 멍키로프가 연결되면 파멸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善한 연대만이 구원을 가져온다. 기괴하게 생긴 야만족 출신의 작살수인 퀴크그와 격의없이 어울리며 맺는 선한 연대가 이스마엘로 하여금 피쿼드호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게 한다.

정신적이든 정서적이든 또는 육체적이든 죽음은 唯我獨尊(유아독존)에까지 밀어 부친 자기과신이 치르는 대가이다. 萬人(만인)의 자아로부터 떨어져 나온 獨尊的(독존적) 자아는 생존의 바탕을 상실하게 된다. 삶이란 인간 운명의 榮枯盛衰(영고성쇠)를 공유할 수 있는 능력과 자연과 우주에 대에 敬畏心(경외심)을 가지고 서로가 선하게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죽음을 가져오는 독단에 대한 대안이다.

이것은 멜로드라마같은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다. 엄격히 말해서 그리스나 기독교적 비극에는 죽음을 통해서 오는 조화로운 삶의 형태인 카타르시스(catharsis)나 救援(구원:redemption)이 있다. 이스마엘이 棺(관)으로 만든 救命袋(구명대)에 의해 유일하게 살아 남았을 때 죽음을 통해서 재생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카타르시스도, 구원도, 재생도 아니다. 일시적인 조화와 희망도 ' 둘째날에 帆船(범선) 한 척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마침내 나를 집어 올렸다. 그 배는 잃어버린 자식들(선원들)을 찾아 逆航(역항)하다가 또 하나의 고아만을 찾아낸 멀리 돌아가는 레이철호(The Rachel)였다.' 라는 음울하고 절망적인 말에 의해 霧散(무산)되어 버린다. 白鯨(백경)에 구원이 없는 것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우주의 모순 때문이며 삶과 죽음에 의미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멜빌에게에는 그리스나 세익스피어의 비극처럼 고통과 고난 뒤에 오는 再生과 보상의 약속은 없다. 고난의 항해 끝에 오는 약속의 항구도 없다. 존재의 고통스러운 모순들이 조화를 이루는 초월의 땅도 없다. 죽음을 통한 삶도 없다. 삶과 죽음만 있으며 개인에게는 그 둘 중 하나에 대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멜빌에게 가장 가공스러운 현상은 잘못된 선택의 폭력적인 결과이다. 멜빌은 또한 많은 욕망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창조적이면서도 모순덩어리인 인간이 전개하는 부조리한 행위에서 희극적인 절망을 본다.

모순의 포로인 인간이 벌리는 극적인 행위도 全知的(전지적) 神에게는 微物(미물)들의 코메디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멜빌은 삶에 대한 牧歌的(목가적)이고 에로틱한 애착과 동료 인간에 대한 이상적인 연대에 감동한다. 상호 애착만이 우주의 고아인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행복이다.
유아독존, 최면에 걸린 自己愛(자기애), 자신이 만든 감옥속에 갇히는 것, 이러한 주제는 멜빌뿐 아니라 미국작가들의 중요한 관심이었다.

물이나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영상에 몰입되어 자아를 상실하는 것- 이것은 지나친 自己愛의 위험성을 표출하는 문학적 장치이다. 白鯨의 바로 서두에는 바닷가에서 바다의 환희에 몰두하여 꼼짝 않고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crowds of water-gazers)이 나온다. 이들은 샘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몰입하여 익사한 Narcissus(나르시스)의 이미지와 같다. 그것은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삶의 환영이다. 아합은 나르시스처럼 모비 딕의 이미지에 뛰어 들어 익사한다. 인간은 아합처럼 심오하고 궁극적으로는 알 수 없는 우주의 深淵(심연)을 들여다 볼 때 자신의 이미지나 자아의 投射物(투사물)인 흰 고래를 보게 된다.

혹은 이스마엘이나 일등항해사 Starbuck(스타벅)같이 자신의 이미지를 보지만 非自我(비자아)가 아닌 현실과 삶의 맥락 속에서 비교적 객관적인 관점으로 본다. 아합처럼 된다는 것은 자아의 마력에 최면이 되어 우주를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지배하려는 충동에 지배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마엘처럼 된다는 것은 자아와 非自我(비자아)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자아의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타벅;같이 된다는 것은 아합을 이해하고 동정하지만 '삶에 대한 집착' 때문에 흰고래에 대한 不敬(불경)스런 추적을 주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게는 흰고래는 불경과 광기에 복수하는 괴물에 불과하다.

99章의 'The Doubloon'(더벌룬)은 白鯨의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더벌룬은 아합이 메인마스트에 박아 놓은 금화이다. 그 금화는 모비딕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이 차지하게 된다. 그 금화는 Ecuador(에콰도르)에서 온 것이다.(에콰도르는 赤道를 의미한다.) 에콰도르는 세상의 중간에 있는 나라이다. 금화에는 Andes(안데스) 산맥에 있는 세 개의 산이 새겨져 있고 각각의 산은 봉우리에 불꽃과 탑과 우는 수탉으로 된 관을 쓰고 있다. 금화는 天球(천구)의 晝夜平分線(주야평분선)이 지나는 天球赤道(천구적도)와 지구의 남극과 북극의 양극단의 중간을 지나는 적도를 나타낸다. 에콰도르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운명에는 두 가지 대안이 있다. 하나는 고립과 광기와 자살로 이끄는 자기도취이고 또 하나는 불완전하지만 다소 객관적인 자세로 세상을 수용하는 것인데 이것이 삶을 보장해준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금화를 보며 명상에 잠긴다. 아합은 아래와 같은 독백을 늘어놓는다.

저 견고한 탑, 저것이 아합이다. 저 화산, 저것이 아합이지. 용기있고 담대하며 승리를 자랑하는 저 수탉도 아합이야. 모두가 아합이지. 그리고 이 둥근 금화는 더 둥근 球(구)의 이미지이며 그 球(구)는 마법사의 거울처럼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신비한 자아를 반사해 주지.

다른 인물들도 각기 나름대로 금화의 상징에 반응을 하지만 아합처럼 금화의 이미지에 구속되지는 않는다. 스타벅은 금화에서 기독교적 신앙의 상징을 본다. Stubb(스터브:이등항해사)는 삶과 죽음을 기꺼이 수용하고 현재를 즐기는(carpe diem) 철학을 상기시킨다. 스터브보다 상상력이 더 부족한 Flask(플래스크)는 금화를 가지고 960개의 시가(cigar)를 살 수 있다고 계산한다.

점장이인 Manxman(만크스만)은 금화를 불길한 징조로 여긴다. King Lear(리어王)의 광대를 연상시키는 Pip(핍)은 인간은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며 절망에 사로잡힌다. 그가 보기에는 자아의 포로가 되어 색맹이 된 사람은 아합뿐만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한계 때문에 사람들은 우주의 궁극적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만 찾지 못하고 보려고 하지만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핍은'나는 본다, 너는 본다, 그는 본다; 우리는 본다, 너희들은 본다, 그들은 본다.'라고 중얼거린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합에 대해서 자기도취와 자기신뢰에 몰입하여 實在(실재)의 환영인 모비딕을 추적하다가 죽음을 자초하는 인물로 간주하여 왔지만 시각을 달리하여 보면 아합은 實在(실재)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아 고뇌하고 방황하고 실재의 추구과정에서 상처입고 고통받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아합은 우주의 불가해성에 대해 '광기와 열정과 끓는 피와 불타는 이마를 하고 분노에 차서 입에 거품을 뿜으며 인간이 아닌 악마처럼 그의 먹이(진리)를 추격'하는 도정에서 파멸적 독재를 하지만 그의 추구는 자기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가 인류의 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것이다. 그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善과 惡의 경계선이 모호한 우주의 암흑에 정면으로 맞서서 實在(실재)의 의미를 줄기차게 추구한 '고귀한' 영웅이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어두움의 深淵(심연)을 정면으로 응시하였다. 스타벅은 그것과 화해하고 스터브와 프래스크는 어두움을 일소에 부쳐버리며 이스마엘은 어두움의 심연을 보지만 그 곳으로 뛰어들지는 않는다. 이들은 암흑의 탐색보다도 아내와 자식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상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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