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두 돌을 지난 외손자(吳政錫)는 자신의 이름을 '오쩡쩍'이라고 발음한다. 나는  "우짜짜'로 들린다. 이 발음을 하기 시작한 지난 여름 이후 오쩡쩍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자기 주장이 강해진 것이다.
"오쩡쩍 할머니' '오쩡쩍 아빠' '오쩡쩍 엄마' '오쩡쩍 꺼'라고 하여 소유권이나 소속을 분명히 한다. 고집도 세어졌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붕어 같은 눈이 도끼 눈으로 변한다. 부끄럼을 아는지 벌써부터 둘러대기도 잘 한다.
이틀 전 마루에 오줌을 쌌다. 외할머니가 "누가 이랬어?"라고 다그치니 외손자가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하는 말이 "오쩡쩍 몰라, 오쩡쩍 몰라"였다. 乳兒用 변기를 가리키면서 "이건 뭐하는 거야?"라고 계속 몰아붙이니 이렇게 나왔다.
 
"아쩌씨, 고찌, 쉬---"
자기 것이 아니고 아저씨가 소변하는 변기라고 둘러댄 것이다. 吳政錫군이 발음을 깨우치는 순서를 보니 "엄마" '할머니' '아빠' '할아버지' 차례였다. 자신에게 관심을 쏟아주는 순서였다.
"할아버지"라고 말하기 시작하니 나에 대한 애정표현이 훨씬 적극적이다. '사랑은 이름을 부르는 것'이란 팝송 가사가 있다.
 
이름은 자기 正體性이다.  그래서 作名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이름을 말하게 된 후로 달라지는 외손자를 바라보면서 사람이든 조직이든, 무슨 계획이든 이름을 잘 지어야 성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밤 14개월짜리 외손자 吳政錫군이 우리 집에 와서 노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저녁 9시50분: 내 책상 위로 안겨서 올라갔다. PC의 인터넷 화면을 들여다 보다가 자판을 두드리다가 電源을 끄고 다시 의자로 내려와 앉아선 의자를 밀고 당기기 거듭했다. 다시 손을 뻗어 컴퓨터 자판을 누르고 두드렸다. 삐삐하는 소리가 났다. 책상 위로 다시 기어 올라가 자판을 누르고 삐삐 소리 내기를 5회 반복했다. 책상 위의 잉크 병과 볼펜을 만지다가 싫증을 내고 또 자판을 누르고, 마우스 피스를 만지다가 화면을 문질렀다.
*9시56분: 정석이는 책상에서 안겨서 바닥으로 내려와 장갑형 인형에 손을 넣었다가 갑자기 화장실로 뛰어가 들어가려 했다. 내가 말리니 복도를 우- 하면서 달려 부엌에 도착, 한 바퀴 휘 둘러보다가 마루에 있는 간이 미끄럼틀을 붙들고 올라갔다가 미끄러져 내려오기를 2회 반복했다. 방바닥에 있던 줄넘기용 줄을 만지다가 던지고 CD로 방바닥을 두드렸다. 이때가 10시 정각.
*10시1분: 방바닥에서 동전을 줍더니 던졌다. 던지고 줍기를 되풀이했다. 장갑 인형을 던지고 리듬 박스를 이리저리 밀었다. 공차기, 공 던지기, 미끄럼틀 다시 오르고 미끄러지기를 하더니 리듬 박스에서 노래가 나오니 거기에 맞추어 몸 흔들기를 계속했다. 낮은 탁자 위에 있는 공을 내려서 던지기를 하다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잼잼. 필통에서 볼펜 빼는 것을 말리니 떼를 썼다. 가면을 집어 던지다가 텔레비전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니 갑자기 헛웃음을 웃고는 서랍을 열고 물건들을 꺼내 집어 던졌다.
*10시10분: 헤어스프레이를 방바닥에서 집어다가 할머니에게 갖다 주고 칭찬을 들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몸을 흔들어대곤 종이를 밟고 넘어질 뻔했다. 잼잼 하다가 서랍을 닫고 춤을 추었다. 소파에 기어오르더니 창틀까지 딛고 올라 바깥에 있는 복돌이를 보고 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대문에서 누가 초인종을 누르니 이를 듣고 현관으로 달려갔다. 이모가 들어오니 소리를 지르다가 다시 부엌을 둘러보곤 복도로 나와 안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다시 미끄럼틀 타기. 칫솔을 어디서 들고 나와서 소파로 올라갔다가 큰 딸이 물을 냉장고에서 받아 마시는 것을 부엌으로 뛰어가 구경하다. 이때가 10시23분.
*10시24분: 거실의 소파로 올라가더니 커튼을 만지고 장난감 통을 꺼내 물건을 끄집어내 던지고 줍기를 되풀이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휴대 전화를 들고 나와 우와 우와 소리를 지르다가 자기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달려가서 가슴을 헤치고 젖을 더듬었다. 이때가 10시29분이었다.
40분 사이에 대강 50가지 이상의 놀이 행동을 했다. 하루에 자는 시간이 약 10시간이다. 나머지 14시간 동안에 적어도 700∼800 가지 다른 유형의 행동을 하는 셈이다.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이것저것 해보면서 원리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깨지고 찢어진다. 소위 施行錯誤(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이런 인간들이 모여서 사회를 만들고 국가를 건설한다. 민주주의는 이런 사람들이 싸우되 피를 흘리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다.
인간은 움직여야 한다. 인간의 움직임을 규제하는 곳이 감옥이고 독재국가이다. 이동이 줄어들면 반드시 발전이 늦다. 인간, 국가, 조직은 움직이면서 배운다. 가만히 있으면서 상상만으로써 배운 것은 관념이고 움직이면서 부딪치면서 깨닫는 것이 實用이고 실천의 원리이다.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움직임이 적었던 적이 두 번 있었다. 조선조와 북한이다. 가장 움직임이 많았던 적이 두 번 있었다. 통일신라 때와 대한민국. 야만과 문명, 억압과 興起(흥기), 3류와 1류의 차이이다.
한국인들에게 움직임의 무대를 준 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같은 천재들이었다. 이병철씨가 만든 삼성그룹, 그 사령탑이 오늘 압수수색을 당했다. 이것도 사회적 움직임의 하나일 것이다. 하여튼 민주주의는 소란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피를 흘리지 않는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