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成東의 인간탐험] 노래 50주년 기념 공연 갖는 ‘엘레지의 여왕’ 李美子
⊙ 성형수술한 적도 없고 치아교정수술 생각해본 적 없어
⊙ 종갓집 며느리로서 음식도 직접 만들고 大小事도 직접 챙겨
⊙ 내 인생 담은 50주년 기념 新曲 ‘내 삶의 여유 있음은’ 연습하며 많이 울어
⊙ 朴正熙 대통령 앞에서 금지곡 ‘동백아가씨’불러
⊙ 자신의 노래 중 曲이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기러기 아빠’
⊙ 가창력에서 趙容弼과 羅勳兒는 극찬해 주고 싶은 가수
⊙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른 가수는 남인수와 현인
李美子
⊙ 1941년 서울 출생.
⊙ 문성여고 졸업.
⊙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 ‘동백아가씨’ 등 노래 2100곡 발표. 가수왕(3회).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 선정(조선일보).
⊙ 무궁화 훈장,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 화관문화훈장, 보관문화훈장.
金成東 月刊朝鮮 기자 (ksdhan@chosun.com)
전화기 너머로 그녀가 까르르 웃었다. 필자의 “선생님의 목소리는 아직도 20대 같다”는 말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이미자 선생님 댁이죠.”
“네 그런데요.”
“이미자 선생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미자인데요.”
“아, 정말요? 목소리가 20대 같아서 선생님인 줄 몰랐습니다.”
정말 그랬다. 텔레비전 등을 통해 익숙한 목소리였음에도 필자는 전화를 받는 이가 당연히 비서이거나 李美子(이미자)씨의 일을 돕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했다. 이미자씨가 전화를 직접 받을 것이라고 예상 못한 데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이미자씨와의 첫 목소리 만남은 유쾌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이미자씨를 만나서 던진 첫 질문이 “평소에도 집 전화를 직접 받으세요?”였다. 돌아온 답은 “네, 제가 주로 받아요”였다. 그녀는 “무대 위에 섰다가도 집의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인 평범한 주부로 돌아가는 삶을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인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노래 2100여 곡을 부른 이 ‘엘레지(悲歌·비가)의 여왕’은 여전히 수줍었다. 1959년 19살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할 때도 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미자씨는 1941년 10월 서울 한남동에서 아버지 李占成(이점성)씨와 어머니 柳相禮(유상례)씨 사이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각종 음악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던 그녀는 1958년 국내 첫 TV방송이었던 HLKZ의 콩쿠르 프로그램 ‘예능로터리’에서 가요부문 1등을 차지하며 작곡가 라화랑씨의 눈에 박혔다.
라화랑씨는 ‘열아홉 순정’으로 이미자씨를 가요계에 데뷔시켰다. 그해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59년으로, 그녀의 나이 역시 우리 나이로 열아홉 살이었다.
싼 개런티 덕에 취입하게 된 ‘동백아가씨’
1964년 발매된 후 100만장 이상이 팔린 ‘동백아가씨’의 앨범 재킷.
1964년 ‘동백아가씨’로 그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트로트(이미자씨는 트로트라는 말에 거부감이 많다. 그녀는 트로트라는 말 대신 전통가요라는 표현을 쓴다) 가수가 됐다. ‘기러기 아빠’ ‘섬마을 선생님’ ‘엘레지의 여왕’ ‘아네모네’ ‘아씨’ 등 서민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들을 잇달아 히트시키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대표곡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20여 년 동안 ‘동백아가씨’를 부르지 못했다. 발표 이듬해 倭色(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기 때문. ‘동백아가씨’ 외에도 그녀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섬마을 선생님’은 몇 개의 소절이 다른 노래와 같다는 이유로, ‘기러기 아빠’는 너무 노래를 처량하게 불러서 ‘비탄조’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이 세 곡은 그녀가 지금도 가장 아끼는 노래들이라고 한다.
(월간조선 3월호에서 발췌).
李美子, “가족들 앞에선 노래 부르지 않는다”
- 月刊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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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2-26, 22: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