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과신으로 살인자가 되는 라스코르니코프
도스토에프스키는 그의 不朽(불후)의 명작 《罪(죄)와 罰(벌)》에서 독선과 독단에 빠져 현실과 遊離(유리)된 이상주의자가 人類愛(인류애)의 실천과정에서 본래의 선한 의도와는 반대로 사람을 무참하게 죽이는 악마의 제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罪와 罰》의 주인공 라스코르니코프는 비범한 지적능력과 높은 도덕성을 겸비한 지식인(intelligentsia)이지만 자신의 理性(이성)과 논리를 과신하며 독선에 빠져 냉혹한 살인자가 된다. 그는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이유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양심에 따라 옳은 일을 했다고 확신하다. 그는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수사관들에게 “법적으로 확립된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사람’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현실적 장애를 무시할 권리가 있습니다”라며 특별한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타인의 피를 흘릴 권리가 있다고 강변한다.
도스토에프스키는 理性(이성)에 대한 過信(과신)이나 이성에 대한 배타적인 從屬(종속)을 경계하였다. 그는 이성의 논리에 따라 결론을 내고 그 것을 행동에 옮겨 노파를 살해하는 라스코르니코프를 통해 合理化(합리화)가 야기하는 可恐(가공)할 惡(악)을 비판한다. “노파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기 때문에 빈대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노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노파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라스코르니코프의 이러한 논리는 개인은 물론 민족이나 인류에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더구나 인간의 진리파악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따라서 인간의 이성작용도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은 자신을 모른다. 나는 내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조차 모른다”라며 인간이성의 불완전함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진리자체도 확정적이고 최종적인 결과이거나 직관적으로 바로 인식할 수 있는 그런 命題(명제)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조폐공사에서 찍어내는 지폐처럼 누구든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그런 旣成品(기성품)도 아니다. 진리는 안개 속의 사물처럼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그래서 도스토에프스키는 진리에 대한 定議(정의)는 명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진리에 대해 直說的(직설적)인 정의를 내리는 순간 진리는 사라진다고 하였다.
不條理(부조리)하고 矛盾(모순)에 가득 찬 우주는 數學(수학)의 公理(공리)처럼 진리에 대한 明瞭(명료)하고도 직접적인 公式化(공식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罪와 罰》에서 도스토에프스키는 “단순한 수학계산 같은 진리의 파악과 理性(이성)의 작용은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하였다.
思想(사상)의 실현을 위한 살인
神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게 되면 자신이 神을 대신하게 된다. 神은 우주를 지배하는 원칙이자 도덕성의 원형이며 인간성에 내재해 있는 善(선)의 化身(화신)이다. 그러므로 ‘강한 인간’이 神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神의 자리를 찬탈하고 恣意的(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正義(정의)를 독점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면 惡魔(악마)가 되는 것이다. 神의 자리를 찬탈하고 스스로 神이 되는 자는 악마에 다름없다.
도스토에프스키는 무신론자인 라스코르니코프의 파멸의 과정을 추적하면서 神안에서의 자유 외에는 진정한 자유가 없으며, 스스로를 강한 인간으로 생각해 神의 권위 안에서 행동하기를 거부하고 정의를 독점하는 者(자)는 필연적으로 악마의 權勢(권세)에 굴복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정으로 강한 자로서 인류에게 혜택을 가져오는 사람은 자신을 법을 초월하는 超人(초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반대로 神의 법률을 따르며 자신을 희생한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스스로 세운 법과 도덕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神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래서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신격화하는 모순에 빠진다. 神의 통제에서 벗어난 불완전한 인간이 불확실한 진리를 절대화하여 개인이나 국민에게 강요할 때 災殃(재앙)은 필연이 된다.
초인의 이름으로, 미래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혁명의 이름으로, 무제한적 평등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는 것이 합법적이 되고 고상한 목적이나 위대한 이상의 실현을 위해 모든 인간을 수단으로 변형시키는 일이 恣行(자행)되기 때문이다. 초인이 무제한의 자유를 추구하거나 모든 사람이 무제한의 평등 곧 극단적인 집단주의를 추구 할 때는 그 초인이나 집단의 이름으로 모든 행동이 허용된다.
삶의 통제나 인간에 대한 가치판단을 神이 아닌 초인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맡게 되며, 그 초인은 동정심과 敬畏心(경외심)이 없고 비인간적이다. 라스코르니코프는 이러한 誤謬(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思想(사상)을 가진 초인들 중의 하나이다. 그는 자신의 사상의 실현을 위해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해답을 전적으로 자신의 恣意的(자의적)인 판단에 맡긴다. 이러한 판단은 인간이 아닌 ‘보다 높은 사상’인 神에 속한다. 神의 의지에 머리를 숙이지 사람은 자신과 이웃을 파괴한다. 정의를 독점하는 초인은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악마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민중 해방’의 광기에 휩싸인 러시아
19세기 후반의 러시아는 ‘民衆(민중)’의 문제가 사회를 주도하던 시대였다. 1861년에 農奴制度(농노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소수의 귀족 및 지식인 계층과 방대한 수의 극빈 농민층으로 兩分(양분)된 사회는 그대로 존속되고 있었다.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어 자기들만이 풍족하고 우아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罪意識(죄의식)에서 러시아의 귀족과 지식인들은 민중을 거룩한 존재로 우상화하게 되었다. 그들은 민중을 善(선)의 화신으로 간주하였다. 지식인들은 민중을 ‘거룩한 야만인(noble savage)’으로 聖化(성화)시키고 이들 앞에 머리를 숙이고 이들을 현대화하고 교육시키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지식인들의 소위 ‘민중 속으로(브나로드, vnarod)’ 운동은 시대의 召命(소명)인 것처럼 간주되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는 자연히 혁명에의 열정을 불러 일으켰다. 민중은 선량하고 착한데 정부를 비롯한 군대와 교회 등의 暴壓(폭압)적인 제도로 인해 민중이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기존체제를 전복하고 착취로부터 민중을 해방해야한다는 사회주의혁명사상이 지식인을 중심으로 사회의 전 계층으로 확산되어 갔다. 러시아의 지식인 사회는 급진좌파가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러시아를 혁명의 광기로 몰고 가고 있었다.
라스코르니코프는 급진좌파의 선구자이다. 그는 비록 마르크스(Marx)를 읽지 않았고 나폴레옹을 숭배하고 자신을 선악을 초월하는 초인으로 간주하였지만 그에게는 인민위원의 싹이 보인다. 사회정의에 대한 강렬한 욕구, 이념에 대한 병적인 집착, 융통성이 없는 경직된 행동- 이런 것들은 공산주의자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그가 고리대금업자를 죽이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부르주아를 숙청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고리대금업자(부르주아)를 제거하고 앞으로 전진하자. 고리대금업자를 처치한 후에 계급도 없고 착취도 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의 창조를 위해서는 고리대금업자를 죽이는 것은 정당하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도스토에프스키는 “비록 인류의 이익을 위한 것일지라도 殺人(살인)은 옳지 않다. 그리스도는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다”라며 공산주의자들의 ‘善을 위한 살인’을 강렬하게 반대하였다. 공산주의와 도스토에프스키의 차이는 惡(악)에 대한 관점의 차이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고리대금업자, 즉 부르주아는 악이다. 그러나 도스토에프스키는 악은 고리대금업자이기 보다는 고리대금업자를 제거하기 위해 라스코르니코프가 채택하는 수단, 즉 暴力(폭력)이다.
라스코르니코프는 고리대금업노파를 죽일 뿐 아니라, 증인을 없애기 위해 죄도 없으며 신앙심 깊은 리자베타(노파의 자매)도 무참하게 살해한다. 도스토에프스키는 善(선)의 이름으로 살인의 도끼를 휘두르는 라스코르니코프를 正義(정의)의 使徒(사도)가 아닌 惡(악)의 化身(화신)으로 간주한다.
‘혁명’의 이름으로 무고한 1억 인민을 학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惡은 존재하지 않으며 惡이 있다면 그것은 혁명으로 제거할 수 있는 사회구조적인 악(social evil) 이다. 그러나 도스토에프스키에게는 惡은 개인 각각의 가슴속에서 개인적인 사실로 존재하고 이러한 악은 혁명적인 상황에서 폭력적인 수단에 의해서 가장 많이 噴出(분출)된다고 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 혁명의 正當性(정당성)에 의해서 아무리 검은 양심도 깨끗이 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도스토에프스키는 인간성에 내재하는 제거 할 수 없는 악의 존재를 인정한다.
도스토에프스키는 혁명에 반대하였다. 그는 혁명은 인간성에 내재하는 惡靈(악령)이 善(선)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라며 혁명의 惡魔的(악마적)인 속성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도스토에프스키의 경고는 當代(당대)의 러시아를 사로잡았던 사회주의혁명의 도도한 물결에 휩쓸려 무시되었다. 그리하여 1917년에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러시아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고난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러시아는 죽음의 나라가 되었다. 라스코르니코프의 도끼는 레닌과 스탈린의 손을 거치면서 3500만 명의 리자베타(무고한 인민)를 학살하였다. 러시아에서뿐만 아니라 라스코르니코프의 도끼는 지난 100년 동안 중국, 북한, 동유럽, 캄보디아, 쿠바 등에서 혁명의 이름으로 1억의 무고한 인민을 학살하였다.
아직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惡(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말하면 악은 자본가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무고한 인민 수천만 명을 학살한 악의 化身(화신) 스탈린은 자본가인가? 지구상 최악의 살인 독재자 김정일도 자본가인가? 라스코르니코프는 미천한 창녀 소냐의 사랑과 기도로 懺悔(참회)하고 재생의 길로 가지만 가치와 정의를 독점하고 도끼를 휘두르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이 땅의 무수한 친북 좌익 惡靈(악령)들은 누가 쫓아 낼 것인가?
革命이란 용어는 兇器가 될 수 있다!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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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1-12, 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