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 때 私有재산권 침해 반대했던 李承晩

화폐개혁을 주민재산 강탈 수단으로 삼는 김정일.


李承晩 정부는, 1953년 2월17일 화폐단위를 100대1로 절하하는 건국 후 두번째 화폐개혁인 ‘2차 통화개혁’을 했다.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해 원조의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며 미국이 추가원조에 난색을 표하자 정부와 한국은행은 통화개혁을 서둘렀다. 원(圓) 단위의 舊화폐 통용 금지와 ‘환’ 단위의 新券 유통을 포함한 2차 통화개혁의 화폐 교환은 순조로웠다. 긴급명령 당시 화폐발행 잔액 1조 1,367억원 중 1조 1,065억원이 회수됐다. 교환실적 97.4%. 이승만 정권은 성공적인 화폐개혁이라고 自評했다. 주무 팀에선 화폐개혁을 준비하면서 일정 액수 이상에 대해서는 2~3년간 돈을 강제저축시키는 조치를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李 대통령은 이 조치에 반대했다.

'국민들이 피 땀 흘려 벌어서, 쓰지 않고 저축해서 모은 재산을 정부라고 해서 권력을 가지고 강제로 2년 또는 3년간 못 쓰게 한다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

李 대통령은 또 '원래 자본주의의 가장 좋은 점은 사유재산 제도를 엄격히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되묻고는, '정부라고 해서 국민의 재산 사용을 마음대로 제한한다면 누가 정부를 믿겠는가'라고 되풀이 강조했다. 그래도 白斗鎭 재무장관이 굽히지 않았다. '산업자금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李 대통령은 결국 동결안을 재가해주는데 여러 번 '정부가 이러면 안되는데...'라고 내키지 않아 했다고 한다. 통화개혁이 실시된 이후 동결조치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일어나고 국회가 수정안을 내어 동결조치는 有名無實(유명무실)해졌다.

출범한 지 6년밖에 안되는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였지만 私有재산권의 보호라는 자본주의 원칙을 나름대로 지켜갔다는 뜻이다. 1948년 이후 전쟁, 정변, 봉기가 잇따랐으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언론자유, 선거의 자유, 사유재산권을 부분적으로 제한하기는 했으나 전면적으로 포기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는 권위주의식 통치는 있었으나 진정한 의미의 反민주 독재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북한노동당 정권은 화폐개혁을 한다면서 일정 한도액 이상은 新券(신권)으로 바꾸주지 않는, 사실상의 주민 재산 강탈행위를 하고 있다. 진보를 자처하는 한국의 친북세력은 이런 만행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私有재산은 기본권의 핵심이고 人權의 기반이다. 人權유린에 대하여 침묵하는 자들이 진보를 저처하는 것은 對국민사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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