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서도 이렇게 이 단어가 많이 쓰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마침 간접적으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를 발견했다. 인터넷 문화협회 박성현 회장의 아이디어인데, 구글 검색에서 '신자유주의’와 그것의 원어인 'Neoliberalism’을 검색해서 몇 건이 나오는지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의 저자이기도 한 박성현 회장, 역시 대단한 두뇌의 소유자다.
이 글을 쓰는 7월 2일 오전 10시 5분 현재 '신자유주의’ 검색 결과는 425만건이고 'neoliberalism’은 219만건이다. '신자유주의’를 포함한 한글 문서가 전 세계의 모든 문서 중 'neoliberalism’을 포함한 문서의 숫자보다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정말 신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인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유별난 관심이 신자유주의를 좋아하기 때문은 물론 아닐 것이다. 구글 검색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입력하면 온통 '신자유주의 허상,’ '신자유주의 모순’ 같은 말들이 튀어나온다. 신자유주의는 한국인에게 혐오의 대상이다.
장하준 교수가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신자유주의 혐오증에 일조를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 <쾌도난마 한국경제>,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등의 누적판매량이 100만권을 넘었는데, 이 책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에 대한 평가절하이다. 그 중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최근(이 책은 2005년 7월에 출간되었다)의 현상은 한국 경제가 신자유주의적 구조로 바뀐 결과입니다. 신자유주의의 기본 특징이 바로 저투자, 저성장, 고용 불안이에요. 예컨대 고용이 불안하니까 노동자(소비자)들은 돈이 생겨도 쓸 수가 없습니다. 모아둬야 하니까요. 또 기업들의 투자가 줄어든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신자유주의의 특징인 적대적 M&A(인수합병)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적대적 M&A로 경영권이 불안해지니까 수익금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사주나 사들이는 거죠. 때문에 어느 나라나 신자유주의 체제로 들어가면 성장률이 떨어지게 마련인데, 우리도 이제 그런 체제로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장하준, 쾌도난마 한국경제, 부키, 2005, p.16)”
장하준의 신자유주의 비판은 독자들로 하여금 한국이 아주 몹쓸 신자유주의 국가인 것으로 믿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화신일까? 한국은 정말 자유경제의 천국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많은 정부의 개입과 규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반영하는 몇 가지의 사례들을 들겠다.
은행의 감사를 금감원 출신이 독식하는 이유
장하준 교수의 글을 읽다 보면 한국의 금융이 너무 자유방임적이어서 문제라는 인상을 받기가 쉽다. 그러나 한국의 금융은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은행이나 증권회사가 새로운 금융 상품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다.
금융기관의 감사 자리를 금융감독원 출신이 대부분 차지했다는 사실이 바로 금융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 실태를 잘 드러내준다. 금융기관의 감사라는 자리는 짭짤하다. 별다른 책임도 없으면서 억대의 연봉을 받아간다. 금융기관들은 왜 그런 자리를 금융감독원 출신들에게 내줄까? 이것은 정부의 간섭을 비켜나가고, 또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기 위함일 것이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한국의 금융은 아직도 자유라는 말이 안 어울리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노동시장 역시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일단 사람을 뽑고 나면 아무리 일을 못하더라도 내보내기가 정말 어렵다. 아마도 세계에서 해고가 가장 어려운 나라가 아닐까 추측한다. 그렇다는 사실은 희망퇴직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제도에 잘 드러나 있다.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사람은 퇴직 하는 대신에 보통 2~3년 치 급여에 해당하는 퇴직위로금을 받는다. 물론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퇴직금은 별도다. 희망퇴직을 위한 위로금은 한국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화폐액으로 환산한 금액일 것이다. 뽑는 것은 자유지만 해고는 매우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과연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한국에서 민간부문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이루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등록금 규제를 너무 철저히 한 결과 한국의 사립 중고등학교는 공립과 다를 것이 거의 없어진지 오래다. 농산물 수입이 얼마나 철저히 규제되는지 한국의 소고기와 돼지고기 값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한국은 이제 심각한 수도권 규제를 가지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이다. 외환위기 때 망해가는 은행을 구하기 위해 외국 자본을 유치해 놓고 이제 와서 먹튀 논란을 벌이고 있다. 아직도 공무원들과 기업 간의 뇌물거래가 이루어질 정도로 정부의 재량권이 강하다. 외환시장이 너무 불투명해서 환율조작을 하는지 안하는지도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이런 나라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분명 무리이다.
필자의 이런 평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분이 많을 테니, 객관적인 국제비교 데이터를 가지고 한국이 얼마나 신자유주의적인지, 또는 신자유주의적이 아닌지를 확인해 보겠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왜 자유주의가 아니고 신자유주의일까?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대비하기 위해서 등장한 말이다. 신자유주의는 1979년 영국에서 대처수상이 집권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까지 영국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사상은 전체주의였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국가가 나서서 뭔가를 하는 것이 좋다는 풍조가 팽배해 있었다. 근대 자유주의 사조의 본산지격인 영국에서조차 1970년대에 들어서는 개인적 자유, 재산권을 주장하는 지식인을 찾아보기 어려웠을 정도였다고 한다.
대처가 했던 일은 18세기부터 20세기 초 사이 100여 년 간을 지배했던 자유주의 사상을 되살려내는 것이었다. 개인적 자유와 책임의 사상적 기반 위에 작은 정부,큰 시장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는 20세기 초까지의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를 것이 없었지만, 구체적인 정책은 다른 모습을 취했다. 이미 방만해져 있던 상태에서 이런 정책들을 취하자니 긴축 재정과 긴축 통화, 국영화된 기업과 국유재산들의 민영화 같은 새로운 정책들이 등장했다. 그 이후 레이건의 미국과 캐나다, 뉴질랜드, 남미의 여러 나라들에서 이와 비슷한 정책들이 채택되기에 이른다. 이런 사조와 정책들을 일컬어 고전적 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이든 고전적 자유주의이든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신자유주의의 구체적 정책들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경제적 자유의 보장 → 불필요한 규제의 폐지 및 완화
② 국가간 개방 폭의 확대 →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의 국가간 이동을 방해하는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의 폐지 또는 완화
③ 작은 재정 → 재분배적 목적의 재정 규모 축소 및 감세
④ 통화가치 안정 → 중앙은행 목적을 통화가치 안정에 두기, 경기 자극 목적의 금리인하 정책 안하기
⑤ 법치주의 → 엄격한 법집행과 사법부의 독립성
우리가 신자유주의 국가라고 믿고 있는 대한민국에는 이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얼마나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국제비교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조망해보기로 한다.
경제자유지수로 보는 한국의 신자유주의성
한 나라가 얼마나 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펴고 있는지 판단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지표들이 몇 가지가 있다. 캐나다의 프레이저 연구소는 경제적 자유지수(Economic Freedom Index), 미국 헤리티지재단은 경제자유지수(Index of Economic Freedom), 세계은행은 기업환경지수(Doing Business Indicator) 등이다. 이 지표들의 점수나 순위가 높은 나라일수록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강한 경제정책을 펴는 나라라고 보면 된다. 각각의 지표들을 만드는 방법은 다르지만, 대개 나라별로 순위가 비슷하게 나오기 때문에 그중에서 가장 보기가 쉬운 헤리티지 재단의 경제자유지수를 활용해서 한국의 위치를 판단해 보겠다.
헤리티지재단의 경제자유지수는 전 세계의 179개 국가의 경제자유도를 평가하고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지표에서 한국은 순위로 35등이다. 가장 자유로운 나라는 홍콩과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이다. 장하준 교수가 신자유주의의 대표 격으로 지목하는 미국은 이들 나라보다 낮은 9위이다. 흥미로운 것은 장하준 교수의 글에서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묘사되고 있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경제적 자유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핀란드는 17위, 스웨덴은 22위로서 한국의 35위보다 훨씬 높다. 한국보다 핀란드, 스웨덴 이 두 나라가 더 신자유주의 국가인 셈이다.
헤리티지 재단은 이런 상황을 지도로 표시하기 위해 나라들을 크게 5개의 등급으로 분류했다. 자유로운 나라(Free), 대체로 자유로운 나라(Mostly Free), 중간정도 자유로운 나라(Moderately Free), 대체로 자유롭지 않은 나라(Mostly Unfree), 억압받는 나라(Repressed)의 등급이다. 아래의 지도에서 색깔이 짙을수록 자유도가 높은 나라를 뜻한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홍콩과 싱가포르 호주 미국 등의 가장 짙은 색깔을 띠고, 그 다음이 유럽의 핀란드, 스웨덴 같은 나라들이다. 한국은 중간등급인 중간정도 자유로운(Moderately Free) 국가 등급에 포함된다.
![]() |
| ◇ <그림 1 경제자유지수 지도> 한국은 3단계인 Moderately Free에 속한다. |
헤리티지 재단의 경제자유지수는 10개의 분야로 구성되는데 한국의 강점과 약점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는 것이 좋겠다. 비교 대상으로 삼은 국가 중 홍콩과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신자유주의적인 속성을 가장 강하게 가진 나라이며, 미국은 장하준이 신자유주의의 화신으로 지목한 국가이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으로 삼았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는 장하준이 신자유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이상적인 나라로 지목하고 있거나 또는 그럴만한 나라이기 때문에 포함했다. 그리스는 장하준 교수의 말에 상당히 가깝게 따랐다가 위기를 맞이한 나라이기에 포함했다.
![]() |
대체로 한국은 세금으로부터의 자유, 정부지출의 적은 정도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한국은 지금까지 정부지출의 크기를 잘 통제해 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기업 활동의 자유와 화폐적 자유 분야에서는 나라들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무역의 자유에서는 비교 대상 국가들에 비해서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예전에 비해서 개방 폭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한국은 아직도 무역에 대한 제한이 많은 나라이다.
가장 점수가 낮은 부문은 부패로부터의 자유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다. 정책결정과정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부패국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비정규직이 많다고 비판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제비교를 통해서 봤을 때 한국은 신자유주의적인 색채가 강하지 않다. 한국의 경제적 자유는 장 교수가 극찬하는 스웨덴과 핀란드, 덴마크에 비해서도 많이 모자란다. 한국의 여러 부문 중 가장 자유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것이 세금과 재정지출이다. 이것이 작은 만큼 상대적으로 민간 부문이 잘 작동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빠르게 악화되어 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큰 폭으로 늘고 있는데다가 무상 급식, 무상 보육, 반값 등록금 등 선심성 복지지출이 확대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 민간 부문의 자유는 줄어들 것이고, 그 결과는 한국경제의 활력저하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마치 신자유주의의 화신인 것처럼 자학하는 것은 국제적 현실과 맞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한국인들의 강한 전체주의적 성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인은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 개인적 책임 대신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좋다는 전체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다.(주1) 일만 터지면 정부는 왜 뒷짐만 지고 있냐는 말이 거의 자동적으로 나오는 우리의 일상적 경험을 숫자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조사인 것 같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지금과 같은 약간의 경제적 자유마저도 지나친 것으로 비쳐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은 우리가 걱정할 정도로 신자유주의적인 나라가 아니다.
------------------------------------------------------------------
1. World Value Survey라는 프로젝트가 57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치체계를 조사했는데 그 중에는 전체주의 또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여주는 지표도 있다. 특정 사회 문제에 대해서 정부책임과 개인책임을 대립시킨 후 각자가 1점에서 10점까지를 선택하게 했다. 1을 택한 사람은 가장 정부책임을 선호하는 것이고 10을 택한 사람은 개인의 책임을 선호한 것이다. 대상국 전체의 평균은 4.8인데 한국은 3.5를 기록했다. 스웨덴은 6.4, 핀랜드는 6.0로 우리보다 훨씬 개인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높았다. 한국보다 더 정부지향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이라크, 요르단, 모로코 같은 중동 국가들이었다. http://www.wvsevsdb.com/wvs/WVSAnalizeQuestion.jsp 참조.
김정호 / 자유기업원장
위 글의 출처는 <자유기업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