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보면 안보와 신성장 동력의 R&D예산을 감축해서 복지예산으로 돌렸다고 볼 수 있다. 안보와 경제성장보다는 소득 재분배에 치중한 결과다.
국회를 통과한 새해 예산은 총지출 342조원으로 정부안 342조5000억원보다 5000억원 줄었다. 국회는 세입도 정부안 373조1000억원보다 5000억원이 감소한 372조6000억원으로 다시 짰다.
세입과 세출을 똑 같은 액수로 줄여 균형재정 유지에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국가채무는 464조6000억원으로 정부안보다 오히려 2000억원 줄었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34.3% 수준을 그대로 유지됐다.
하지만 세부적 내용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무상보육과 반값등록금으로 새로 편성된 예산은 향후 정부재정에 만만치 않은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복지예산은 한번 편성되면 없어지지 않고 수혜자가 늘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점 때문이다.
국회가 처리한 예산안의 가장 큰 특징은 국방예산이 당초보다 3287억원이나 삭감됐다는 사실이다. 방위력 개선 사업 부분이 가장 많이 삭감됐다.
대표적으로 ▲차기 전투기(FX) 1300억원 ▲K-2전차 597억원 ▲대형 공격헬기(AH-X) 500억원 ▲현무 2차 성능개량 300억원 ▲해상작전헬기 200억원 ▲장거리 대잠어뢰 100억원 등이다.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사업(564억원)과 신세기함 UAV 성능개량사업(61억원)도 전액 삭감돼 차질이 예상된다. 국방예산에서 증액된 부분은 여야 모두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병 봉급 인상분으로 249억원이다.
경제 성장잠재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연구개발(R&D) 예산 역시 큰 폭으로 삭감됐다. 미래산업선도기술 개발 100억원, 그린카 등 수송시스템산업 원천기술 개발에서 50억원, 나노융합 2020에서 30억원이 삭감됐다.
해외자원개발 예산 가운데 유전개발사업에 대한 출자는 300억원, 해외자원개발 융자금 700억원도 삭감됐다. 기금예산의 경우 신재생에너지·전략산업, 원자력 융합원천기술개발 사업에서 총 230억원이 깎였다.
안보와 성장예산 줄여 복지로 돌린 새 예산
이렇듯 칼질당한 안보와 경제성장 동력의 예산은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등 복지 관련 예산으로 편입됐다. 그것도 처음 정부안보다 2조원 가량 증액됐다. ‘복지예산 100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새해 예산에서 복지 관련 예산은 총지출의 약 30%를 차지한다. 복지예산은 앞으로도 저출산·고령화 추세 속에 복지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일자리도 크게 늘어났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일자리는 애당초 정부안보다 1만2000개 확대했다. 지역공동체 일자리 5000명, 장애인활동 지원 5000명, 아이돌봄 지원 2000명 등이다.
새정부의 포퓰리즘 예산으로 가장 질타를 받은 부분은 택시 대중교통 편입에 따른 보조금이다. 택시업계는 유가보조금 지원, 부가가치세‧취득세 감면, 영업손실 보전, 통행료 인하 및 소득공제 등으로 연간 1조9000억원을 지원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택시법에 반발해 파업 움직임을 보였던 버스업계를 달래기 위해서도 최대 2800억여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택시 대중교통 편입에 따른 세금지원은 누가 뭐래도 선거에서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지원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택시법의 재정지원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 정치가 어떻게 포퓰리즘에 휘둘렸는지를 보여준다.
‘떼법’에 떠밀려 2조원의 혈세 지원
지난해 11월 선거를 앞두고 운행파업을 결의했던 전국의 시내·시외버스 업계가 자발적 운행재개로 풀리면서 ‘교통대란’이 일단 위기를 넘기자 이번에는 택시업계가 집단 반발했다.
여야 정치권이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일명 택시법)의 본회의 처리를 예산안 통과 때까지 유예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이러한 택시법이 보류되자 현장 택시 종사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개인택시 사업자들의 불만은 정부가 택시 자격증을 무제한으로 발급해 놓고 이제 와서 최소한의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지원조차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와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등 4개 택시 노사단체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30만 택시 근로자를 모두 서울에 집결시켜 운행중단 등을 논의했다.
이와 관련해서 홍명호 전국택시연합회 전무는 “모든 택시 종사자가 버스 운행중단에 무릎을 꿇은 정치권의 결정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대중교통에 대한 국고지원을 놓고 버스와 택시간에 약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정치권은 택시법이 버스 운행중단이라는 역풍을 맞자 부랴부랴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여야 원내 수석부대표는 합의를 통해 “정부는 버스업계와 택시업계 종사자 및 이해관계자들이 납득할 만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내년 예산안에 반영되지도 않은 재원을 갑자기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국토부 당국자가 “정치권이 대책을 마련하라고 하면서도 재원조달 방안은 제시하지 않아 해결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은 정치권이 얼마나 포퓰리즘에 약한 모습을 보였는지 말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과)는 “모두가 만족하는 대책을 내놓으라는 정치권의 요구는 정치권이 벌인 사태의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선거철에 편승해 어떤 분야든 무조건 국가 지원을 확대하라는 것은 문제”라고 평가했다.
점입가경으로 택시단체들이 이러한 요구에 나서자 이번에는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가 쌍지팡이를 들고 나섰다. 이 단체 이준일 회장은 “택시는 대중교통 포함안 대신 특별법을 만들어 대수를 줄이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던 것.
이러한 택시법 사태는 앞으로 ‘떼법 우선’이라는 우리 사회 복지예산 약탈전에 대한 우려를 던져준다. 표를 무기로 내세워 사회복지예산을 타내려는 남유럽의 ‘지대추구’형 사회의 경험 때문이다.
그러한 사례는 이탈리아의 경우 이민자들에 대한 복지예산을 확대하자 이민자 그룹들이 단체 결성을 통해 복지연금을 더 먼저, 더 많이 타내기 위해 아수라장이 됐던 케이스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힘이 없고 숫자가 적은 이민자그룹이 소외됨에 따라 양극화가 더 확대됐다는 보고도 있다.
저소득층 외면하는 의료 포퓰리즘 예산
2011년 서울에서 열린 ‘이탈리아 재정위기, 그 원인과 교훈’ 세미나에서 알레산드로 드 니콜라 아담스미스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에는 서구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산당인 이탈리아 공산당이 있었고 가장 거대한 노동조합인 CGIL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사회개혁이 단행됐고 노동자들은 정부가 부르주아의 ‘비즈니스 위원회’로서 모든 이에게 가능한 최선의 공공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죠.
이때 이탈리아에는 ‘이상한’ 복지포퓰리즘의 씨앗이 심어졌고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알렉슨드로 드 니콜라 이사장에 의하면 이탈리아는 공산당과의 타협 과정에서 복지가 가난한 사람뿐 만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확대됐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탈리아의 대부분 사회주의 정당들이 국유화를 포기하는 대신 보건, 연금, 교육, 공공서비스 부문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원에 초점을 맞췄고 중도우파 정당들도 이런 정책들을 지지하고 종종 더 확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민자들이 몰려들며 이들과 마찰이 벌어지고 미흡한 공공제도 등이 문제를 일으키며 또 한번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갖가지 이유로 연금혜택을 더 빨리, 더 많이 누리려고 하고 있다. 즉 기득권층은 그동안 정부가 해왔던 대로 복지혜택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반대로 피지배층은 불평등 해소를 외치며 정부를 상대로 강력한 추가 복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복지 포퓰리즘은 우리 의료산업에서 가장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를 포함한 저소득층과 국가 유공자 등 156만명의 진료비를 지원하는 의료 급여 미지급금은 지난해 6138억원에 달했다. 한마디로 국가가 의사들과 병원에 지불해야 할 저소득층의 의료비를 미루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예산이 올해 더 삭감됐다는 점에 있다. 대신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해 2016년까지 비급여 진료비까지 포함한 총 진료비를 건강보험에서 100%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보건의료 핵심 공약인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정책은 재정추계액이 2조원에 달함에도 100% 보장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4대 중증질환 우선 보장에 따른 타 질병과의 형평성 문제, 대형병원 집중 현상 등 예상되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정책은 다른 중증 질병을 앓는 환자들을 소외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2011년 기준 연간 본인부담액이 500만원 이상인 환자(335만명) 가운데 4대 중증질환자는 15.1%(51만명)에 그친다.
박재용 경북의대 교수(예방의학과)는 “결국 재원은 국민이 부담하는데 (특정 질환만 집중 보장함으로써) 한 사람이 가져가는 몫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1인실 선호 현상, 각종 비급여 진료 증가 등 병원과 환자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의료비 상승, 서울 대형병원으로의 집중 현상 등도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상급 병실료 등 각종 비급여를 건강보험 급여화하는 작업은 의료체계 전반을 손질하는 문제여서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값 등록금은 어떤가.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10일 대학 반값 등록금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 전 부총리는 한 조찬 세미나에서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면 누구든 대학에 가려고 해 노동시장의 불균형이 심화된다'며 '전문대·특수학교처럼 노동시장에 특화된 학교를 만들고 여기에 100% 장학금을 줘서 노동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값 등록금은 노동시장 왜곡 초래
박근혜 당선인의 반값 등록금 공약은 등록금이 비싼 대학에도 반값 등록금 혜택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이다. 소득 하위 20%까지는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40%까지 75%, 70%까지 50%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연간 평균 등록금을 680만 원 정도로 봤을 때 해마다 5조-6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 같은 공약 실현을 위해 국가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지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또 대학 등록금이 계속 오르거나 대학 수가 줄지 않으면 정부의 재정부담이 가중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퍼주기식으로 지원하기 보다 대학 등록금이 합리적인지를 따지는 게 먼저’라고 지적한다.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등록금 상한제를 도입하는 등의 규제를 강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결국 대학의 자구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박 당선인의 공약도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러한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방안은 없을까. 무분별한 복지 지출 확대를 막기 위해 '복지 지출 상한제' 도입은 대안의 하나다.
진념 전 부총리는 '해마다 추가적인 복지 지출은 얼마로 한정하고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자금 조달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최근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노동 복지, 택시 복지 등을 정부 예산이 감당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복지라는 것이 한번 시행되면 축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들의 경험을 통해 관찰된 사실이다.
그렇기에 정부 예산에서 아예 매년 복지예산을 해마다 상한선을 정하고 이 범위 내에서 항목들을 정해 지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복지예산의 무한정 팽창은 막을 수 없다. 바로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의해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다.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은 “일본은 왜곡된 복지로 나약한 국민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 젊은 층은 ‘젊을 때는 일 안 하며 생활보호비로 살고, 늙으면 최저연금으로 대충대충 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도 서서히 일본식 쇠망의 길을 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경고했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