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테닛 前 美 CIA 부장/www.medaloffreedom.com/GeorgeTenet.htm
=조지 테닛 美 CIA 부장 회고록 ‘폭풍의 한복판으로’ 중에서 발췌=
*密命: “무샤라프 대통령을 만나 파키스탄의 ‘죽음의 상인들’을 정리하라!”
*오사마 빈 라덴은 이미 핵물질을 입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푸틴은 부시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핵물질이 누출되었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리비아의 가다피, 核을 포기하고 문을 열다!
돈은 얼마든지 준다
“무슬림 방어를 위해서 무기를 획득하는 것은 종교적인 의무다. 만약 실제로 그런 무기를 획득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준 데 대해서 신에게 감사할 것이다.”
-1998년 12월24일자 타임誌. “알 카에다가 핵무기나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오사마 빈 라덴의 답변
알 카에다가 화학무기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옴진리교라고 부르는 종교적 광신도들이 일본 도쿄의 지하철에서 사린 가스를 살포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공격으로 12명이 사망했는데, 가스 살포가 계획대로 되었더라면 사망자 수는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알 카에다의 지도부는 감명을 받았고 그 공격이 자기들의 야망을 성취하는 또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돌이켜 보면, 이 도쿄 공격은 2004년 3월11일 마드리드, 2005년 7월7일 런던에서 감행된 공격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하철과 철도시설에 대한 알 카에다의 관심을 예고했다. 2003년 가을에 계획되었던 뉴욕시 지하철에 대한 공격은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더 나은 목표’를 위해 중지시켰다).
2001년 2월, 뉴욕의 美연방 남부지방법원에서 오사마 빈 라덴은 궐석으로, 다른 사람들은 출석한 가운데 1998년에 있었던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대사관 폭파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여기서 알 카에다가 WMD(대량파괴무기)를 입수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재판에 나온 주요 증인의 하나인 자말 아마드 알파들은, 1993년에 빈 라덴이 수단에서 일종의 核장치에 사용하기 위해 우라늄을 입수하는 일을 도와주었다고 말했다. 알파들의 증언에 의하면 알 카에다는 중량 미상의 우라늄을 입수하는 代價로 1500만 달러를 지불하려 했다는 것이다.
알 카에다로서는 사기꾼에게 걸려들었던 최초의 경험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제의는 진짜일 수도 있다. 우리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그룹이 1990년대 초에 적극적으로 핵물질을 입수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핵분열 물질을 입수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지 하고, 얼마든지 돈을 지불하려고 했다. 그 같은 확고한 결의에 대한 확실하고도 유일한 대책은 그 테러리스트들이 핵분열 물질을 입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다.
수상한 복지단체 UTN
1998년 WMD에 대한 종교적 의무를 언급한 빈 라덴의 발언은 진공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해는 파키스탄이 처음 핵실험을 한 해였다. 빈 라덴의 꿈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과 물질이 그의 아프가니스탄 聖域(성역)에서는 바로 국경 너머에 있었다. 우리는 1998년에 한 정보기관으로부터 빈 라덴이 密使(밀사)를 보내 파키스탄 핵물리학자 A. Q. 칸의 조직망과 접촉하려 했다는 단편적인 첩보를 받았다. 칸 박사는 수십 년 동안에 걸쳐 불량국가들에 판매하기 위해 핵능력 공급망을 만들었다. 이 정보에 의하면 칸은 빈 라덴의 간청을 몇 차례 거절했다고 하는데,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9·11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한 우방 정보기관은, 우마 타미르-에-나우(UTN)라고 불리는 파키스탄의 한 비정부기구(NGO)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사회복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첩보를 알려 주었다. 이 첩보는 UTN이 다른 목적도 가지고 있다고 示唆(시사)했다. 그들은 알 카에다가 화학, 생물학, 핵물리학 계획을 추진하는 것을 돕기 위해 기술을 제공하려 한다는 것이다(NGO는 합법적으로 기술과 물자 및 돈을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 조직을 은폐하는 데 편리한 도구가 될 수 있다). UTN의 지도부는 은퇴한 파키스탄의 핵물리학자, 軍(군)장교, 엔지니어 및 기술자들로 구성되었다. 그 설립자이고 의장인 술탄 바시루단 마무드는 파키스탄 원자력위원회의 核(핵)발전국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1987년 그는 ‘최후의 심판과 死後(사후)의 생활: 성경 코란으로 본 우주의 궁극적 신앙’이란 책을 발간했다. 지하드(聖戰)에서 과학의 역할을 다룬 그의 왜곡된 생각을 담은 책이었다.
알 카에다에 WMD 능력을 제공하려던 그룹의 지도자가 이 책에서 강조한 기본적인 메시지는, 어느 날 핵의 대재앙으로 세계가 불의 심판을 받아 코란의 예언이 실현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CIA 운영부장에게 지시해 全 세계의 모든 우리 연락처에 알 카에다와 기타 테러리스트 그룹에 기술을 제공하려 하는 WMD 관련 인물과 조직에 관해서 가능한 한 무엇이든지 찾아내도록 했다. 우리는 우방국에만 그런 질문을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리비아에도 물었고, 그들이 UTN의 핵기술 판매제의를 일축했다고 확인했다. CTC(CIA의 對테러 본부)의 부책임자 벤 봉크는 리비아의 정보기관 책임자 무사 쿠사와 비밀리에 만나 이 나라와 알 카에다 간의 친밀한 관계로부터 무슨 정보이든 얻어 내려고 했다. 대화 도중 봉크는 쿠사에게 UTN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쿠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에게 핵무기를 팔려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거절했습니다.”
이 첩보는 UTN이 리비아에 접촉하면서 화학, 생물학 및 핵관련 기술을 제공하려 했다는 다른 정보기관의 보고와 일치했다. 쿠사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리비아가 UTN을 필요로 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다른 WMD 용역 공급자를 통하여 파키스탄의 A. Q. 칸 박사와 연결되어 있었다.
CIA는 UTN에 관한 첩보를 파키스탄 정보기관에 보냈고, 그들은 즉각 7명의 理事(이사)를 잡아 들여 訊問(신문)했다.
UTN 관계자들은 모두 잘못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파키스탄 당국은 그들을 적절하게 격리해서 신문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매일 조사를 받은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파키스탄 정보기관은 UTN 관계자들을 사회적 지위에 맞게 정중하게 대우했다. 그들은 파키스탄에 커다란 공헌을 한 과학자로 대접을 받고 있었다.
파키스탄行 비행기에 오르다
한 서방 정보기관은 2001년 가을 놀라운 첩보를 알려주었다. 한 정보원에 의하면 9·11공격이 일어나기 몇 주 전인 2001년 8월 UTN 관계자인 마무드와 마지드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아이만 알자와히리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캠프 파이어에 둘러 앉아서 알 카에다가 핵장치를 만드는 방법을 토의했다. CIA는 파키스탄에 압력을 넣어 이 새 첩보를 가지고 마무드와 마지드를 조사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리비아의 첩보도 내놓았고, 다른 정보기관이 수집한 새로운 첩보도 전달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9·11공격이 일어났고, 우리는 추적을 늦출 수 없었다. 파키스탄의 지지부진한 진전을 그냥 두고 보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2001년 11월 말, 나는 부시 대통령과 체이니 부통령 그리고 라이스 안보보좌관에게 최신 정보와 우리의 우려를 브리핑하고, 대통령의 개입 없이는 이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WMD 책임자인 롤프 모와트-라르슨과 수석 WMD 테러분석관 케빈 K를 데리고 갔다. 그 후 이어진 대화에서 부통령은 “알 카에다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케빈은 대답했다.
“알 카에다의 핵계획을 전통적인 분석평가로 보면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부통령은 “만약 1%라도 그들이 핵을 보유할 확률이 있다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추적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다음 날 파키스탄으로 가서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우리의 우려를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UTN의 알 카에다 지원이 어느 정도 진전되었는지 몰랐지만, 파키스탄의 핵전문가와 알 카에다의 지도자들이 캠프 파이어 앞에서 핵무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롤프, 케빈과 함께 한때 대통령 전용기였던 美 공군의 707기를 타고 파키스탄으로 갔다. 나는 잠 못 이룬 긴 비행시간 동안 이야기할 내용을, 본부에서 보내온 최신 자료를 인용하며, 노란색 종이 철에 적어 놓았다. 나는 무샤라프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제시하여 그가 필요한 결정을 내리고 우리 우려를 해소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었다.
긴장한 무샤라프 대통령
우리는 한밤중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파키스탄에 있는 우리 고위 요원과 계획을 검토하고, 내가 파키스탄을 떠난 다음 그가 파키스탄 정보국과 취할 다음 단계에 관해 토의했다. 우리는 무샤라프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고위 요원은 무샤라프가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전날 통보받은 이 이례적인 방문의 성격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중무장한 모터케이드 편으로 대통령궁까지 짧지만 긴장된 드라이브를 했다.
나는 몇 마디 의례적인 인사를 한 다음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미국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단히 중대한 첩보를 가지고 왔다고 설명했다. 나는 오사마 빈 라덴 및 알자와히리와 UTN 지도자들 사이에 있었던 캠프 파이어 모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각하, 파키스탄이 빈 라덴의 핵무기 입수를 돕고 있는 과학자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알려질 경우, 미국에서 터져 나올 분노를 상상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장치가 사용될 경우 미국 국민의 분노는 누구든 알 카에다를 도와 준 사람에게 집중될 것입니다.”
무샤라프는 신중하게 내 말을 검토했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테닛 부장, 그 사람들은 지금 동굴 속에 숨어 있습니다. 설사 그들이 그런 무기를 보유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의 전문가들은 그것이 그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먼 곳에 있다고 확언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의 보좌관들 중에는 ‘죽음의 核商人’ A. Q. 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점에서 토의 주제를 칸 쪽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 문제는 다음에 토의할 수 있었다. 당면 과제는 UTN이었고, 칸은 다른 문제였다.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나는 파키스탄 정부가 신속하게 시행해야 할 일련의 긴급조치 항목을 열거했다. 나는 파키스탄 군부 안에 있는 특정 그룹과 정보기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UTN에 대한 더 철저한 조사와 함께 파키스탄은 면밀하게 핵물질의 在庫(재고)조사를 할 시기가 되었다고 건의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우리가 각하를 믿을 수 있다고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해도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