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冥 曺植 선생의 선비정신

자유인의 孤高한 영혼을 지닌 분이었다.
 

(帝王學談論 2009.3.12.木)    (恒山硏究室  恒山  金 裕 赫)

主題361호: 南冥 曺植先生의 上疏文


  南冥선생은 우리나라 人物史上 가장 손꼽히는 逸士요 逸民이다.

逸士 또는 逸民이라는 것은 神仙이나 道士와 같이 세상물정에 연연하지 않고 명예와 부귀영화 등을 초월해서 孤高하게 살아가는 自由生活型의 隱遁人을 말한다.

  그는 李退溪선생과 同年에 태어났다.

退溪는 安東에서, 南冥은 陜川에서 태어나, 退溪는 道德學風을, 南冥은 氣節學風을 宣揚했다 하여 退溪는 上道(慶北)에서 主仁에 精進하고, 南冥은 下道(慶南)에서 主義에 精進하였다고 칭송한다.


  그래서 退溪의 儒化力은 海闊에 비유되고, 南冥의 氣節像은 山高에 비유되어 당시 우리나라의 學風은 中外에서 海闊山高와 같다 하면서 海東文明의 極致를 이루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그 두 巨儒의 共通點을 참고로 소개하여 先賢像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첫째, 두 분 다 1501년(燕山7년)에 辛酉生으로 태어났다.

  둘째, 두 분 다 8 男妹다. 退溪는 8男妹中 7男이며. 南冥은 8男妹中 2男이다.

  셋째, 退溪는 安東 兎溪에서, 南冥은 陜川 兎洞에서 출생하였는데, 두 분은 공교롭게도 兎字 地名의 고을에서 태어났다.

  넷째, 退溪는 1570년12월8日에, 南冥은 1572년2월8日에, 各各 8日字에 逝去했다.

  다섯째, 두 분은 共히 敬思想을 爲主로 하였다. 退溪는 居敬(主一無適)을, 南冥은 敬義爲學을 기본으로 삼았다.

    

  退溪門下의 三傑로 알려져 있고, 동시에 南冥의 門下이기도 한 鄭寒岡선생이 南冥을 떠나보내며 쓴 輓詞에 따르면, (中略)


  天生豪傑兮여! 惠我東土하고.

    하늘이 내신 호걸이여! 우리나라가 힘입은 바 크고

  志大宇宙兮여! 勇邁前古하며.

    뜻한 바 우주보다 큼이여! 더 없는 용기인이었네.

  富貴浮雲兮여! 道味深長하고.

    부귀를 구름처럼 여김이여! 도 닦는 묘미 심장하고

  忠信爲質兮여! 敬義爲學이라.

    忠信을 바탕으로 함이여! 敬義를 學의 근본 삼다.

여기에서 南冥선생의 人間像을 짐작할 만하다.

그의 氣節像은 여러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그의 詩 몇 구절을 살펴볼까한다.


    (一)


고산여대주  高山如大柱 높은 산은  마치 큰 기둥과도 같구나,

탱겁일변천  撑劫一邊天 영겁이 다하도록 하늘의 한편쪽을 떠 바치고 섰네.

경각미상하 頃刻未嘗下 곧 무너질 것 같은데도 일직이 무너져 내린바 없으니

역비부자연  亦非 不自然  역시 산의 모습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로세.


     (二)


요순생지성  堯舜生之聖  요임금과 순임금은 생이지지한 성군이었지만

기타학후현  其他學後賢  그 밖의 임금들은 학이지지한 뒤에 현군이 되었다네.

군금치상결 君今齒尙潔  군주여 이제부터라도 고결한 마음을 으뜸으로 여기면

서가이광전 庶可以光前  일반 서정을 지난 날 보다 훨씬 빛낼 수 있으리라.


   (三)


노초무명사  路草無名死  길 가에 난 풀은 이름조차 남김없이 밟혀 죽어가지만

산운자의생  山雲恣意生  산 위의 구름은 제멋대로 솟아오르는구나.

강류무한한  江流無限恨  기나긴 강물은 끝없는 한을 품고 흐르지만

불여석두쟁  不與石頭爭  흘러가다가 돌 머리에 부닥쳐도 다투는 일이 없다네.


    (四)


추산하처불황업  秋山何處不黃葉 가을 산 어디에나 단풍 잎 아닌 것이 없건만

강석수혼유백신  江石雖昏猶白身 강물에 우뚝 솟은 바위는 어둠 속에서도 스스                                     로 희다는 것을 뽐낸다오.


  南冥 曺植선생은 55세 때, 當時 朝廷으로부터 丹城縣監 發令을 받게 되었다.

그 때 南冥선생은 就任을 辭讓하는 意思를 上疏文으로 대신하였다. (要旨 紹介)


* 殿下之國事已非 - - 군왕께서는 나라 일을 이미 그르치고 있습니다.

* 邦本已亡 - - - - - 나라 존립의 근본은 이미 망가지고 있습니다.

* 天意已去 - - - - - 하늘의 뜻도 이미 우리를 버리고 있습니다.

* 人心已離 - - - - - 세상의 인심도 이미 군주로부터 떠나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하기를, 오늘의 현실은  마치 백년 늙은 고목이 벌레의 침범으로 말미암아 말라 죽어가는 지경에 이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폭풍우가 언제 불어 닥칠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첨언했다(比如大木已枯 不知風雨至者).


* 殿下之所從事者 何事耶? 군왕께서는 주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 好學問乎?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 好聲色乎? 주색을 좋아하십니까?

* 好弓馬乎? 말 타고 활을 쏘는 사냥을 좋아 하십니까?

* 好君子乎? 학덕이 높은 어진 군자를 좋아 하십니까?

* 好小人乎? 아니면 아첨이나 하고 비위나 맞추려는 소인배를 좋아하십니까?


* 爲政在人, 取人以身則 帳幄之內 無非社稷之衛也.

  정치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바른 몸가짐으로써 사람을 기용하면 주변에 나라 지키기를 소홀히 할 자 없습니다.


* 若取人以目則 "941;席之外 盡是欺負之徒也.

  만약 눈대중으로써 사람을 기용하면 소매 자락 닿지 않는 곳에서는 군왕을 속이    고 백성을 기만하여 가렴주구 하는 무리들이 들끓게 될 것입니다.


* 殿下 必以正心 爲新民之主. 修身 爲取人之本.

  임금님이시어! 반드시 마음을 바르게 지니고 백성들로 하여금 새롭게 거듭 날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군주가 되셔야 합니다.

  그리고 임금님 스스로 몸을  바르게 닦아서 그 수신하는 정신으로써 인물을 간택    하는 근본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위 內容은 남명 선생께서 남긴 상소문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읽어보아도 毛骨이 소연해짐을 금할 길이 없다.

왕으로부터 받아야 할 현감 발령을 거부한다는 그 자체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그 취임 거부 이유의 주종이 군왕의 失政 때문이었음을 서슴없이 밝혔으니 올곧은 선비의 참모습을 뼈에 새기는 심정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올곧은 선비의 直諫을 탓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조정의 분위기가 작으나마 살아 있었다는 것은 善政을 위한 刷新의 여지가 있었다는 示唆이었음을 감안할 때 도리어 존경스럽다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이 현실은 어떠한가? 정책을 가지고 논쟁을 하지 않고 도리어 상대방의 말끝을 트집 잡아 계파 간에 이간을 조장하며 책임 轉嫁에 급급하여 설왕설래를 일삼는 정가 일우의 치졸한 片貌는 참으로 目不忍見이다. 올곧은 선비의 뜻을 남명선생의 상소문의 일부를 빌려서라도 함께 들려주고 함께 음미해보는 마음의 여유를 지녔으면 한다. (끝)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