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왜 위대한가?

영웅론적 역사관을 부정하고 大勢論的 역사관을 보여준 작품.
러시아 文豪(문호) 레오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섯 권 분량이 되는 大作이다. 톨스토이가 30代 후반이던 시기에 쓰여졌다. '전쟁과 평화'를 最高의 소설로 치는 문학인들이 많다. 작가는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삼아 러시아 귀족층의 다양한 인물들을 복잡한 사건들과 연관시켜 등장시킨다. 읽고 있으면 어디까지가 가공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그만큼 사건이 자연스럽게 유기적으로 전개된다. 작자의 의도에 따라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시대의 흐름이, 즉 역사가 사건을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소설엔 영웅이 없다. 있다면 나폴레옹의 침략을 분쇄하는 러시아군 사령관 쿠투조프 장군 정도이다. 그도 늙고 겸손한 인물로 그려진다. 나폴레옹조차도 이 소설에선 영웅이 아니라 실수를 많이 범하는 역사의 한 도구이다.

이 소설이 다 끝난 뒤 부록처럼 붙어 있는 제2부는 톨스토이의 역사론이다. 톨스토이가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 소설에 어떤 역사관을 도입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수필이다. 톨스토이의 깊은 知性과 사상을 알게 해주는 좋은 논문이기도 하다.

이 수필과 소설에서 나타난 톨스토이의 역사관은 '위대한 인물론'을 부정한다. 위대한 인물들이 사회를 빚어내고 큰 사건을 만들어간다는 說에 대해서 톨스토이는 냉소한다. 역사가 인물과 사건을 만드는 것이지 인물이 역사를 만들지는 않는다. 사회의 여러 요소들이 모여서 시대흐름을 만들고 이 흐름이 역사를 만든다. 위대한 인물들은 그 흐름을 이용할 뿐 그 흐름을 만들지는 못한다.

'위대한 인물' 나폴레옹도 프랑스 대혁명이 만들어낸 시대상황을 이용했을 뿐이지 새로운 흐름을 만든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프랑스 대혁명이 만든 시대정신을 배신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자신의 역사관에 알맞는 인물로 쿠투조프를 등장시킨다. 나폴레옹은 전투의 전개를 자신이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다고 자신하여 전쟁 도중 연락장교들을 수시로 현장 지휘관들에게 보내 구체적인 작전 지시를 내린다. 이 지시는 지휘관들에 의하여 오해되거나 상황이 바뀌어 쓸모가 없게 되고 때로는 역작용을 만들어낸다.

쿠투조프는 자신의 한계, 전쟁중 최고 지휘관의 한계를 잘 안다. 대략의 전투방향과 임무만 부여하곤 나머지는 부하들이 현장에서 알아서 판단하여 행동하도록 풀어준다. 나폴레옹은 항상 바쁘고 쿠투조프는 항상 여유가 있다. 그는 전투중 줄곧 막사에 앉아 있고, 졸기도 한다. '전쟁과 평화'는 역사와 인간에 대해서 겸허한 자세를 지닌 쿠투조프가 오만한 나폴레옹에 대해서 승리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독일통일의 원훈인 비스마르크는 톨스토이와 같은 역사관을 가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은 大勢를 만들지 못한다. 만들어진 大勢를 이용할 뿐이다'

요사이 한국의 변화를 들여다보면 톨스토이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2005년부터 한국 사회의 여러 요소들이 합쳐져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젊은층의 脫좌파실용화 흐름, 기성층의 反共결집 흐름이 그것이었다. 이 흐름이 선거 때마다 합류하여 노무현 세력을 大敗시키고 한나라당을 大勝으로 몰고 갔다. 이 反좌파 흐름을 만든 것은 국민들이었다. 한나라당과 李明博씨는 이 大勢를 잘 이용한 것이다.


지금 한반도의 大勢는 남북한 좌익연합세력의 몰락으로 달려간다. 김정일의 重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김대중 전 대통령의 失言은 아무도 되돌릴 수 없는 大勢의 한 표현일 것이다. 미국, 이승만, 박정희, 군인들, 기업인들, 민주투사들, 관료들, 노동자, 농민들, 기독교인, 불교도 등이 이 大勢를 만들었다. 그들의 피, 땀, 눈물이 이 大勢에 합류하였다. 이런 큰 흐름을 MBC의 선동방송이, 민주당의 오만이, 민노당의 깽판이 돌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오만한 無知는 달리 없다. 자신이 無識한 줄 모르는 무식장이들은 반드시 자충수로 망한다.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부시 전 대통령의 역사관을 '위대한 인물론'에 비유하고, 이라크 침공의 실수에서 드러난 '위대한 인물론'의 헛점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식 역사관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그는 부시式 역사관과 톨스토이式 역사관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소설 '三國志'와 '플루타크 영웅전'은 '위대한 인물론'의 시각에서 쓰여졌고, '전쟁과 평화'는 대세론적 차원에서 쓰여졌다. 나이가 젊을 때는 영웅론적 역사를 좋아하다가 나이가 들게 되면 톨스토이식 역사관에 기운다.

'전쟁과 평화'는 여러 번 영화화되었으나 가장 유명한 것은 1956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미국의 킹 비도르 감독이 만든 208분짜리인데 오드리 헵번이 나타샤, 헨리 폰다가 피에르, 맬 화라가 안드레이로 나온다. 나이 먹은 헨리 폰다를 젊은 피에르役에 갖다 부친 것이 미스캐스팅이란 평을 듣지만 오드리 헵번의 나타샤役은 소설과 잘 부합된다.

톨스토이는 두 대표작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리나' 중 後者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영국의 데이비드 린 감독이 만든 '닥터 지바고'도 '전쟁과 평화'를 닮은 영화이다. 러시아 혁명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사건에 휘말려드는 인간들의 모습들이 잘 그려져 있다. '닥터 지바고'는 여러 번 봐도 헛점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와 인간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관되고 배우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깊고 큰 러시아의 역사와 삶이 위대한 문학작품을 만들고, 그런 작품은 위대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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