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괜찮아" 세대가 할 일

참을 수 없는 굶주림과 좌절과 온갖 인간적 비극을 당하고도 내색을 하지 않고 의연히 버티면서 "난 괜찮으니 너희들은 잘 되어야 한다"고 자신을 희생하였다.
가수 심수봉이 앉았던 방석이 대통령의 流血(유혈)로 적셔졌다. 申양은 손수건 같은 것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피가 솟고 있는 대통령의 등에 손을 꼭 댔다. 신재순의 손가락 사이로 선혈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朴正熙의 숨소리는 “크르렁, 크르렁” 하였다.  
“각하, 정말 괜찮습니까?”  
'응, 난 괜찮아.”  
申씨는, “난 괜찮아”라는 生前 마지막 말의 뉘앙스가 ‘난 괜찮으니 너희들은 여기를 빨리 피하라’는 뜻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50년 戰時 부산에서 맞선을 보던 날 陸英修는 朴正熙 소령의 뒷모습을 먼저 보았다고 한다.  
“군화를 벗고 계시는 뒷모습이 말할 수 없이 든든해 보였어요. 사람은 얼굴로는 속일 수 있지만 뒷모습으로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에요.”
궁정동 安家에서 朴正熙가 보여 준 최후의 超人的 모습이 바로 그의 뒷모습일 것이다.

가난과 亡國과 戰亂(전란)의 시대를 살면서 마음속 깊이 뭉쳐 두었던 恨의 덩어리를 뇌관으로 삼아 잠자던 민족의 에너지를 폭발시켰던 사람. 썩은 강물 같은 세상을 삼켜 바다 같은 새로운 세상을 빚어낸 사람. 쏟아지는 비난에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면서 일체의 변명을 생략한 채, 부하가 쏜 총탄에 가슴을 뚫리고도 '체념한 듯 담담하게(신재순 증언)’ 최후를 맞은 이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 혁명가 朴正熙였다.  

그가 죽을 때 '허름한 시계를 차고,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을 꽂고, 헤어진 혁대를 두르고 있었던 것'은, 그리하여 屍身을 검안한 군의관이 '꿈에도 각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朴正熙 傳記’ 제13권에서).

朴正熙와 함께 '조국 근대화'에 참여하였던 개발年代의 사람들이 바로 '난 괜찮아' 정신의 소유자들이었다. 참을 수 없는 굶주림과 모욕과 온갖 인간적 비극을 당하고도 의연히 버티면서 '난 괜찮으니 너희들은 잘 되어야 한다'고 자신을 희생하였다. 이 세대의 치명적 실수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지 않아 자녀들이 풍요를 누리면서도 고마움을 모르고, 이 근사한 나라가 공짜로 생긴 존재로 알도록 방치한 점이다. 투표권을 가진 성인중 15%, 약500만 명이 6.25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난 괜찮아' 세대가 만든 평화와 번영이 국민정신을 망가뜨리는 毒이 되고 있다.

朴正熙 서거 30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는 고민한다. 국민적 기억장치와 彼我식별장치가 마비되어버린 미래세대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난 괜찮아' 세대의 기록이기도 한 '朴正熙 傳記 13권'을 읽히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책을 읽은 자녀들은 부모세대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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